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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박사는 그에게 찾아온 우울증 환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 주간만 나의 처방을 따른다면 당신은 건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처방이란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를 궁리해서 그걸 실천하면 됩니다.”
값비싼 약이나 까다로운 처방을 내릴 것을 기대하고 찾아온 많은 환자들은 대부분 이 싱거운 처방에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처방을 따른 사람에게는 당장 특효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남을 돕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전했더니 우울증이 없어졌다고 고백합니다.
사랑은 부메랑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주는 만큼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돌아올 것을 위해 사랑한다는 것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부활이 없었으면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기쁘려면 기쁘게 해 주어야하고 사랑받으려면 사랑해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랑도 원금이 보장되는 장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내가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이 그 평화를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그 평화는 소진되지 않고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사랑은 준만큼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장사처럼 이익까지 얹어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제자가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 때문에 박해받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음식을 청했을 때 모욕 받고 매 맞으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사랑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라 그것이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없는 것을 가지게 되니 항상 이익인 것입니다.
워런 버핏은 투자할 때 원금을 잃지 않는 것을 가장 기본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투기성 투자보다는 안전한 투자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10년은 가지고 있지 않을 주식은 구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갑자기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지만 기다리다보면 꼭 오르고야마는 그런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철학이 그를 세계에서 가장 투자를 잘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랑도 반드시 이득을 내는 장사라고 믿으면 누가 사랑에 투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투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잃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손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어주십시오. 결코 손해 보는 일 없이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를 받아들이면 나에겐 평화가 사라질까요? 배로 늘어납니다. 평화를 줄 줄 아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당신 평화로 더 채워주실 것이고 또한 나 때문에 평화를 얻은 사람이 또한 나에게 평화로 보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사랑의 투자법은 ‘선교’입니다. 오늘은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입니다. 성령께서는 내려오시면 우리를 선교의 길로 이끕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누구를 사랑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우리는 누구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로 파견 받습니다.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길이 그 기쁜 마음을 유지하고 커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100% 수익이 보장되는 가장 안전한 장사입니다. 그 보상은 영원한 사랑이고 영원한 행복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점삼용신부)
안식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 8월에 시작했는데 이제 2달 정도 남았습니다. 안식년을 하면서 필요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교구에서 특별한 장소를 지정해 주는 것은 아니므로 머물 수 있는 숙소를 구하는 것입니다. 동창 신부님의 배려로 편안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미사 할 수 있고, 식사와 청소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안식년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3개월은 제주 엠마오 연수원에서 충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의 달라스 한인 성당에서 동창 신부를 도와서 1달 정도 머물었습니다. 지난 4월에는 안식년을 지내는 다른 신부님들과 남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음 달에 유럽 성지순례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제가 원해서 이루어진 것도 있고, 동창 신부의 배려와 도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시간에는 물리적인 시간과 신학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변화와 생성을 주도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집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한 달 30일, 1년은 365일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씨줄과 날줄이 되어서 모든 것을 품어줍니다. 제게도 물리적인 시간이 주어졌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꽃은 피었다가 지고, 만난 사람은 헤어지게 됩니다.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물리적인 시간과 더불어 춤을 춥니다. 고고학, 유전공학, 생물학은 물리적인 시간의 흔적들을 찾아냅니다. 앞으로 남은 지구의 시간, 태양계의 시간을 계산합니다. 우리의 인식과 상상을 넘어서기는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은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을 것입니다.
성서는 특히 신약성서는 또 다른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충만한 시간, 기회의 시간, 약속의 시간, 의미의 시간, 가치의 시간, 은총의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시간을 사셨습니다.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셨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때’가 왔음을 선포하였습니다. 회개하고 기쁜 소식을 믿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함께하는 시간이 왔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묶인 이가 해방되고, 갇힌 이가 자유를 얻는 때가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때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라고 합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시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년도 마치 하루와 같은 때입니다. 온 우주가 함께하는 때입니다. ‘Fortune favors the Brave(행운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다.)’라는 말처럼 행동하는 시간입니다. 아픈 사람을 치유해주고, 마귀를 쫓아내며,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고,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 부활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바르나바 사도 축일입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초대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많이 하였습니다. 이분들의 땀과 노력이 열매를 맺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유대인의 회당이 아닌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직을 수행함으로써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신 말씀은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신앙생활은 물리적인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강물을 거꾸로 흘러가는 연어처럼 의미의 시간, 가치의 시간, 약속의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입니다.(조재형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