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비지땀이 쏟아진다. 이럴 때는 월드스타 비가 아니더라도 ‘태양을 피하는 방법’ 정도는 숙지해야 할 것 같다. 특히나 여자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화와 그을음의 원인인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 그런데 누구보다 ‘비주얼’에 민감할 여자 연예인들이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종횡무진 달린다. 서로 밀치고, 동료끼리 다독이며, 벌겋게 익은 얼굴로 포효한다. SBS 수요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이다.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냐’ ‘그게 축구냐’ 같은 편견과 성별 고정관념은 두 개의 현실을 지운다. 하나는, ‘축구하는 여자들’의 존재. 세상은 번번이 지소연이나 여민지, 이민아처럼 뛰어난 선수가 활동하고 유소년축구대회나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여자축구의 수준이나, 전국 어딘가에서 지금도 신나게 뛰는 여자축구인들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다. 또 다른 하나는, ‘여자는 원래 축구 같은 거 안 좋아한다’는 편견이 사실인 양 형성되는 과정이다.
여고 재학 시절, 체육대회 종목에 축구가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당황했다. “여고에서 축구라고?” 의외로 축구팀 모집은 대성황이었고, 입시가 우선순위인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점심시간마다 ‘축구 특훈’이 열렸다. 축구팀에 들어간 친구들은 급식을 마시다시피 하고 황급히 공을 차러 뛰어나가곤 했다. 체육대회 당일, 경기는 공 두 개로 진행되었다. 남자 체육선생님이 비웃었다. “공만 따라다니네.” 갑자기 화가 울컥 솟았다. 가르쳐준 적은 있고?! 벌떡 일어나 목이 터져라 아무 팀이나 응원하기 시작했다. 뙤약볕 아래 흙먼지와 뒤섞인 친구들이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용맹하고 씩씩하게, 누구도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시킨 적 없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어설프지만 즐겁고 뜨겁게. 여대에 다닐 때도 축구 경기가 매년 열렸다.
조금 특수한 환경에 있었기에 여자축구라는 단어가 그렇게까지 낯설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 모든 풍경의 구경꾼으로만 존재했다. 옆에서 강아지가 아무리 맛있게 간식을 먹어도 그건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듯, 한 입 달라고 하면 큰일 나듯, 제법 재미있어 보이고 보는 사람의 가슴마저 뜨겁게 해봤자 … 축구는 ‘내’가 하는 운동이 아니었다. 그 문턱은 왜 그렇게 높고 아득했을까.
첫댓글 좋은기사다 진짜 여축 판 더 커졌으면..지소연을 데려다놓고도..어휴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