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있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건 10년 뒤 즈음에나 가능할 것 같다. 충동구매를 일삼던 미혼 시절 동안 사둔 물건들이 아직 너무 튼튼하기 때문이다. 이 물건들이 망가지고 해지려면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결국 나는 멋없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버렸다. 스타일의 완성은 10년 뒤에나 꿈꿔본다. 어쩔 수 없다. 돈을 우습게 알고 '지금 당장'의 기분에 휩싸여 물건을 고른 대가니까. 점퍼 하나를 살 때도 고민은 짧았고, 결제는 빨랐다.
"이 점퍼가 질리면, 그때 새 점퍼를 사면 되니까."
옷이나 신발, 가방과 액세서리가 망가지거나 해져서 새로 산 적은 없었다. 그저 지겨워지면 쇼핑했을 뿐이다. 막 샀고, 대충 골랐다. 덕분에 지금은 100% 마음에 들지 않는, 스스로도 조금은 스타일 없게 느껴지는 그런 옷과 가구들을 끌어 안고 산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을 버리고 튼튼한 새 물건들과 미니멀하게 살아 볼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 쯤은 10년 뒤로 양보하기로 했다. 더 나은 물건이 있다고 해서 지금 충분한 물건을 미워하지 않는 태도가 절약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비를 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미세먼지 그리고 플라스틱 팬데믹의 시대. 이 엉망진창인 시대에 경악했기 때문이다. 살던 대로 살 수가 없었다. 새 옷을 살까 고민하다가도 기후위기가 걱정돼서 올해까지만 더 입어보자며 버티게 됐다.
한국인처럼 자원 소비를 하면 지구 3.5개 필요
내 얘기인데 남 얘기 같을 때가 있다. 초대 국립기상과학원 원장 조천호 박사가 '한국인은 지구 3.5개어치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2018년 기준)라고 알려준 때가 그랬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나는 지구 1개어치 일 거야'라는 한가한 생각을 했다.
궁금했다. 집안 전구들도 LED로 교체했고, 우유를 살 때에도 비닐 사용을 최소화한 기업의 제품을 구매했다. 비닐도 여러 번 씻어 쓰며 식비도 4인 가족 하루 15000원으로 제한한다. 이런 내 삶을 유지하는 데는 몇 개의 지구가 필요할까?
생태발자국을 계산해주는 사이트(https://www.footprintnetwork.org)로 들어가 직접 계산했다. 총 11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① 육식 비중 ② 로컬 음식(음식 생산 거리 320km 이하)과 가공 식품의 비중 ③ 주거 형태 ④ 집을 지은 주재료 ⑤ 가족 수와 평수 ⑥ 가정 내 에너지 효율 ⑦ 재생 에너지 비율 ⑧ 물건을 얼마나 많이, 자주 사는지 ⑨ 일주일 차량 주행 거리 ⑩ 연비 ⑪ 카풀 비중 ⑫ 대중교통 이용 거리 ⑬ 비행기 이용 시간.
59㎡ 콘크리트 아파트, 4인 가족, 일주일에 자동차로 100km 주행하는 우리집 기준으로 지구 1개어치의 살림을 계산해봤다. 지구 2.2개였다. 기후 악당.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가 맞았다. 세계인의 자원소비 평균은 지구 1.7개어치 만큼이라던데, 평균치를 갉아먹는 축에 속하다니! 오기가 생겼다.
첫댓글 전국민이 저기에 다 대답해 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