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 한번 쯤 길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그 아득한 공포와 존재의 두려움을,
하지만 길을 헤메다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것들,
서점이 숨어 있는 도시 뒷골목의 평화로운 풍경들에 마음이 차오르면서 느껴오는
살아있다는 존재에 대한 희열..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뉴욕이지만 하루쯤은 인적 드문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게으른 여행자’ 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우리는 여행책자에는 나오지 않는 보석같은 ‘진짜 뉴욕’을 만난다.
도시역사의 생활에서 오는 일상의 삶은,
화려한 쇼핑몰 모퉁이를 돌아 소박한 구멍가게와 구두수선집이 자리한다.
아방가르드 식 작품을 전시하는 작은 갤러리들과 각 나라의 음식점과,
헌책방과 구멍가게와 중고품 상점들...
30여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뉴욕을 오가면서 느끼는 감성은 ‘뉴욕은 걷기에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그 거대함으로 인간의 척도를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온도와 질감을 갖고 있는 곳,
이것이 '뉴욕의 맨 얼굴'과 마주치는 신선한 내 감흥이다.
뉴욕의 거리를 배회할 때는 혼자가 좋겠다.
혼자 헤메고 다니다보면 존재에 대한 화답이 번쩍하고 지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쇼 윈도우 사이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린다.
"세상에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할 때,
그것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너의 정신을 안락한 삶 속에 가두지 말지어다'.
최선을 다했는가는 오직 자신만이 알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서울에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일요일 아침 미사시간을 알리는 성당의 은은한 종소리에 숙연해지며 흐르는 한줄기 눈물...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욕망이 얼룩처럼 묻어있는 곳이 뉴욕이고 서울이다.
하루 종일 걸어 지치고 배가 고프면 서점 뒤쪽 골목이나 42번가 브로드웨이로 발길을 옮긴다.
유서 깊은 뉴욕의 레스토랑만이 아닌 터키.그리스.일본.쿠바.아이티.아프가니스탄. 한국 등
세계의 국적 수만큼 다양한 국가의 소소한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뉴욕의 차이나타운(Chinatown)
독일유학시절 그리스 친구들의 따뜻함과 그들과 함께 했던 조르바 춤 생각에 그리스 음식점에 들어갔다.
새우,소시지,스테이크 등을 꼬치에 꽂아 유리 진열대에 진열해 놓은 모습이 독특하다.
꼬치 하나에 10불.
시끌벅적한 음악에 맞춰 희랍인 조르바가 추었음직한 서로의 어께에 손을 얹고 흥겹게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나 역시 몸을 흔들며 유쾌해진다.
-진짜 여행은 그 동네 사람이 되어보는 것
살아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그곳에 대한 간절함 때문일까 ?
한때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유행했다.
이른 아침,
좁은 골목을 따라 마주한 오래된 건물사이를 어슬렁거릴 때,
잠에서 덜 깬 아랫동네를 바라보며 느껴오는 편안함,
희뿌연 안개는 솜털처럼 길 위에 떠 다니고,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대지의 신선한 공기,
개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동이 트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크게 한 바퀴 돌고 나니,
식당과 카페들은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의자와 테이블 정리에 분주하며 하루 장사를 준비한다.
짧지만 아득한 시간의 길을 돌아,
낯섬과 두려움이 익숙함이 되어가는 그 소소한 일상들
낯선 풍경, 낯선 얼굴, 낯선 언어가 주는 생경함 까지도,
내가 잠시 익숙해진 곳, 사랑하게 된 시간.
커피잔을 앞에 놓고 얼마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가,
함께했던 친구들과 잔상처럼 남아있는 그 밤공기와 친근한 웃음들,
잠시 잠깐 추억만으로도 행복하다.
지나고 보면 저만치 물러나있는 시간들이지만
그래서 때론 덧 없지만.
그래도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그 무게감
어디서 읽은 한 줄의 글,
" 하루가 참 길다 ~~.“
하루 한번 씩 드나드는 빵집 겸 브런치카페, 타르트와 파이가 특히 맛있다.
빵집이 대형 마트 같다, 땅도 크지만 뭐든 풍성한 미국이다.
과일가게.. 망고, 화이트체리, 도넛피치 ,망고애플등..
전혜린은 집시처럼 세상을 떠돌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다.
반평생 난 내 삶의 오차범위에서 벗어나는 게 두려웠다.
대부분 마음 뿐,
나 보다는 가족을 그리고 집안의 누가 될까 늘 조심하며 살았다.
세상에는 봐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그리고 느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여행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자유와 설레임과 두려움 그리고 고단함까지..
뉴욕에는,
센트럴파크, 박물관, 미술관과 수많은 개인갤러리, 세계유수의 대학과 연구소,
브로드웨이 극장가, 소호. 쇼핑가, 재즈 바, 강, 호수, 항구 그리고 대양까지 모든 게 다 있다.
사람도 넘치고, 물건도 넘치고,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다.
이런 우스게 말이 있다.
- 한국에서 자식혼사 잘 시키려면 뉴욕에 보내라.
재벌가, 부자, 이런저런 인사, 심지어 연예인 자식까지도 다 뉴욕에 있다 -.
센트럴파크 메트를 중심으로한 '부'와,
할렘 슬럼가의 홈리스, 쓰레기, 온갖 인종과 아낌없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와 소비..
게다가 아직도 환상처럼 남아있는 관대함, 경외심, 보헤미아, 자유, 반항이란 예술적 기질까지도,
뉴욕엔 뭐든지 다 있다.
9.11테러가 왜 뉴욕에서 일어났는지,
예술가가 왜 뉴욕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세계가 왜 뉴욕을 동경하는지,
이 상반된 모순 속에서 우리는 당황한다.
그게 뉴욕이다.
<참고자료 : 네이버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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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다, 마침 시댁에 집안행사가 있어 뉴욕을 다녀왔다.
얼마 전 강남선릉에 여행도서관이 개관되었다.
대학 선생님들은 학자금대출을 받아서라도 여행을 권하고,
해마다 항공사. 여행사는 최고의 흥행기록을 갱신한다.
70대 노부부가 사회 은퇴 후,
집과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도시여행자가 되어 책까지 냈다...
또는 잘 나가던 대기업사원이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혼자 또는 온 가족이 세계를 떠도는 일은
이제 특별할 것도 없다.
어쩌면 여행은 이제 우리들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지금까지 나도 우연하게 이런저런 여행을 했지만,
지난 30년간,
그 시간을 오가면서 내가 느낀 뉴욕은 아쉬움이 참 많은 도시다.
30여 년 전 처음 맞딱 드린 뉴욕은 그 거대함으로 내게는 ‘경이’였다.
하지만 강 건너에는 불빛이 반짝이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느리게 소호를 어슬렁거렸다.
보헤미안들이 아직 발붙일 만한 동네였다.
에드거 앨런 포우, 월드 휘트먼이 살았고,
오 헨리가 그리던 그리니치빌리지의 예술적 문화적 보헤미안들..
뉴욕에서는 드물게 길 너비가 좁아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 카페. 상점등이 늘어서 보헤미안 식
또는 파리의 뒷골목과 같은 정서를 지녔다하여 '아메리카의 보헤미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크리스토퍼가에 성소수자 거주지가 형성되면서,
이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전 세계적인 운동이 이곳서 시작되었고,
7~80년대에는 반전운동과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에 관련된 활동도 활발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초상은 이젠 흔적을 찾기 쉽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그런 문화는 부동산 경기 따라 사라져갔다.
방문 때마다 먼저 것은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들어섰다.
‘서울은 공사 중’이듯이 뉴욕도 그렇다.
젠트리피케이션, 모든 게 자본의 논리다.
그래서 뉴욕은 서울처럼 끝없이 적응해야하는,
지도가 거듭해 그려져야 하는 나에게는 언제나 '미완의 도시'다.
...
꿈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곳 북한,
남북이 통일되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를 거쳐
우리조상의 애환이 서려있는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가도 가도 하늘과 눈밭과 자작나무만이 뒤로 밀려가는 풍경
모스크바까지 온전히 기차 안에서만 6박7일이 소요된다는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입니다.
춘원의 소설 ‘유정’에 환상처럼 등장하던 바이칼호수도 그 여정 어디쯤에 있겠지요.
모스크바에서 볼쇼이발레를 보고,
100년도 지나지 않아 무너진 사회주의 혁명이 과연 정당했는가를 붉은 광장의 ‘렌닌’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그 사회주의 종주국이 와해 되었음에도 마지막 희생자로 남은 대한민국,
그로 인해 우리민족은 70년이 넘는 세월을 아직도 분단의 그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에르미따쥬에서 전 세계 미술사가들이 ‘그림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극찬하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보겠습니다.
<돌아온 탕자>1661~1669년경,
캔버스에 유채, 262×205㎝,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다시 오리엔트특급열차를 타고 파리를 거쳐 이스탄불이나,
또는 우리가 10여년을 살았고 딸의 유년의 기억이 있는 이른바 손기정 루트인 베를린에 닿는 것..
간절히 통일을 기원합니다.
첫댓글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어제 종보편찬위원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점심 전후 시간을 내서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글을 예쁘게 잘 쓰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