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 흐른다. 락콘서트에 온 것 같았던 요란한 총소리가 멎은 것이다. 종연과 은혜는 카운터에서 고개만 살짝 들어 바깥을 살펴보았다. 이미 정문과 벽이 허물어져서 술집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 따위는 없다.
“왜 안 갔어요?”
시선과 총구는 블러디 크로스가 있는 바깥을 겨냥한 채로 은혜가 물었다. 종연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두 가지에요. 하나는 복수하고 싶어서. 또 하나는…….”
종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총알들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둘은 재빨리 카운터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하나는 다음에 들어야겠네요. 일단 여기서는 벗어나야겠죠?”
은혜의 말에 종연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헛된 감흥에 젖을 시간이 없다. 방심 했다간 죽는 것이다.
자동차 안에서 십 여 분간의 총격전을 지켜보던 식스가 하품을 하면서 내렸다. 그가 내리자 블러디크로스 요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언제까지 할 거야? 경찰들 막고 있는 게 쉬운 일로 보여?”
기묘한 광경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고등학생에 불과한 식스에게 서른 두명의 요원들이 모두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총격을 멈춘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들이 마치 담임에게 혼나고 있는 고등학생들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식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D, E. 갔다와.”
자동차의 운전석과 조수석이 열리더니 똑같은 얼굴을 한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내렸다. D, E라는 코드네임을 지닌 그들은 조심스레 문을 닫더니 식스의 앞에 서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여전히 식스가 미소를 짓고 있는 사이, 그들은 시위가 당겨진 화살처럼 술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카운터 너머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은혜의 표정이 바뀌었다. 두 남자의 얼굴이 자신이 알고 있던 그였던 것이다. 누구의 작품인지 알겠군. 회한 섞인 눈빛으로 뛰어오고 있는 둘을 보던 은혜의 표정이 갑자기 사나워졌다. 그리고 카운터 위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종연에게 외쳤다.
“쏴요!”
[타타타탕]
그녀가 MP8기관총을 갈겨대기 시작하자, 종연도 반사적으로 일어나 방아쇠를 당겼다. 종연도 뛰어오고 있는 그들이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그 소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던 두 녀석들. 그렇다면 그 자식과 얼굴 없는 괴물도 여기 있단 말인가? 행복하고 평화롭던 일상에서 이런 지옥으로 날 끌어낸…….
“으아아!”
괴성을 지르며 기관총을 쏘아대는 종연을 힐끗 쳐다본 은혜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분노를, 복수하기 위한 대상을 찾았을 때의 기쁨. 그러나 곧 그 이룰 수 없는 복수에 대한 허무를 느끼고 자기처럼 살리라.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목적을 둔, 그런 삶을. 그러나 짧은 상념에 잠길 시간조차 둘에게는 없었다. 계속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D와 E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두 남자가. 양복은 총알에 맞아 넝마가 되었고, 총알에 맞거나 스치고 지나간 부위에서는 피가 흐르고, 살갗이 찢어져 시뻘건 피부가 드러났지만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죽지도, 쓰러지지도 않은 채.
“멋지군. 멈춰요.”
은혜의 말에 종연은 사격을 멈췄다. 그 순간, 은혜는 그의 오른손을 잡더니 말했다.
“뛰어요!”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은혜. 종연은 그녀에게 손을 붙잡힌 채로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주방으로-무기고라고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리겠지만-들어간 종연. 그는 순간 멍하니 은혜를 쳐다보았다. 뭘 하려는 거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종연을 보고 은혜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해요?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요!”
총기고 앞에 있는 전자레인지를 킨 은혜. 전자레인지로부터 삐삑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일정한 박자로 나는 소리. 마치 시한폭탄의 카운터 같은……. 종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런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은혜는 이번에는 총기고의 오른쪽 벽 하단에 있는 오물폐수구라고 쓰인 명패가 붙어있는 알루미늄으로 된 문을 발로 찼다. 알루미늄 철문이 바닥에 떨어졌고, 어른의 몸통이 들어가기 충분한 구멍이 나타났다.
“들어가요!”
얼떨떨하게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서있던 종연에게 은혜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종연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재빨리 구멍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종연은 보았다. 다가오는 두 괴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자신을 지키고 서있는 그녀의 등을.
“으윽!”
종연은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를 이를 악물고 참았다. 오기였다. 은혜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는커녕 삼층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못했던 고소공포증 환자인 자신에게 이건 죽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점점 새파랗게 질리는 종연의 얼굴이 이제 붉게 변할 무렵,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추락도 그 끝을 보였다. 질퍽한 흙탕물과 악취가 나는 오물덩어리들이 종연의 엉덩이를 맞이한 것이다.
“크윽.”
뼈와 근육이 분리되는 것 같은 고통에 종연은 베어져 나오는 신음소리를 이를 악물고 참았다. 분노와 복수심이 고통을 이겨내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그도 어쩔 수 없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로 은혜의 엉덩이가 떨어진 것이다.
“꺄악!”
[풍덩!]
다시 튀어 오른 흙탕물과 오물이 둘을 흠뻑 적셨다. 잠시 후, 둘은 켁켁 기침을 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다. 서로의 하반신 부분에 얼굴을 갖다 대고 있는 어색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야릇함과 어색함에 얼굴을 붉히고만 누워있던 종연을 보고 은혜가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일어나요.”
“그 쪽 먼저.”
종연의 말에 은혜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일어났다. 종연도 어색함을 이겨내려는 듯, 흠흠 헛기침을 하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은혜가 있는 힘껏 그를 밀었다. 그대로 흙탕물과 오물 속에 잠수를 하게 된 종연은 얼굴을 흔들며 재빨리 일어났다.
“무슨 짓이…….”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자신과 은혜가 떨어져 내린 구멍 위로 불길이 뿜어진 것이다.
[화르르륵-]
일렁이는 불길,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커다란 굉음. 흔들리는 하수구. 멍하니 불길을 쳐다보던 종연이 쿵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수초 후, 진동이 멈췄고 불길도 천천히 삭으러들었다. 종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은혜에게 물었다.
“뭐죠?”
“전자레인지에요. 한번이라도 요리를 해보고 싶었는데. 아깝네요.”
전자레인지? 아까 그게 시한폭탄이었단 말인가? 종연은 더욱 더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멍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종연을 향해 은혜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마 오 분만 더 그렇게 있으면 몸에서 평생 냄새가 날 걸요? 후훗. 여자랑 잘 수도 없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종연은 벌떡 일어났다. 바닥에 붙어있는 불길을 피해, 그는 은혜의 옆에 다가가 섰다. 그녀는 샐쭉한 표정으로 종연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오른 손등으로 코를 막으며 말했다.
“냄새가 심하네요.”
“그건 마찬가지에요. 앞장서요.”
“예?”
“복수를 하러 가야죠. 우리 차례잖아요. 그리고 가르쳐줘요. 이제는 알아야 할 것 같네요. 꼭.”
은혜는 종연의 눈빛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결의. 단호한 결의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총격전과 방금 전의 괴물들과 폭발이 그에게 무엇을 느끼게 한 걸까? 아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는 이제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아진 것이다. 옛날 자신이 배웠던 그 용병학교의 사람들과 같은 눈이었던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자들의 눈.
“좋아. 가요. 다른 사람들도 기다릴 테니까 빨리 움직여요.”
종연은 은혜를 두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소풍을 가는 여고생 같은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에 종연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런데……. 은혜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종연은 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그도 어느새 자신감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첫댓글 아~~ 넘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