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가을]
ㅡ모교ㅡ
사계절이 있어 세월의 흐르는 속도를 느끼게 된다. 입동을 맞으니 이미 가을은 접히고 겨울로 들어선다. 우리의 늙음도 세월과 비례하는데 반해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내일 이후부터 가을을 시샘하는 비소식이 있다. 다행히 주말 날씨는 쾌청하다. 용진 후배와 지인 세 명과 함께 가마고개 산행을 하기로 했다. 분원초등학교 뒷산 둥구지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경사진 길을 올라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니 팔당댐과 동네가 보인다. 모교는 올해 100주년을 맞는다. 내가 40회 졸업생이니 그 이후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그 사이에 변한게 너무 많다. 건재한 방울나무 몇그루가 아직도 학교의 역사를 읽고 있을 뿐이다. 일제시대에 지은 학교는 헐리고 현대식 2층 건물로 바뀌었다. 가르침을 준 선생님도 세상을 떠나고 없다.
우리 학급 다음 학년부터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교실 부족으로 운동장 천막에서 수업하거나 오후반이 생겼다. 전쟁이 머문 상태여서 평화롭게 이어지는 가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늘어나는 인구 억제 정책으로 국가에서 가족계획을 강요한다.
지금과는 상반된 정책이다. 국가나 사회가 피폐해 있어 생활의 궁핍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지금은 폐교 위기에 처해 동문들이 안타까워한다.
ㅡ사옹원ㅡ
지금의 학교 자리는 조선왕실에 생활자기를 공급하던 사옹원司饔院 분원分院 가마터다.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면 세계유산에 등재될 유물이다. 일제시대에 가마터를 부수고 학교를 지은 것이다. 당시에도 운동장 주위는 온통 폐기된 백자들이 산더미였다. 지금도 수십 미터 땅속까지 깨진 사기 그릇이 수두룩하다.
학교 바로 위 터에 근래에 지은 분원백자 자료관이 있다. 도자기 몇점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본래 가마터 모습으로 다시 지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사옹원의 분원은 한양으로 운반할 물자 수상로로 용이한 우천리가 인접해 있다.
인근 가마터에서 구운 백자가 분원을 통해 한양까지 뗏목으로 운반된다. 조선이 막을 내리면서 사옹원은 자연히 역사에 묻히게 된다.
ㅡ청정 분원ㅡ
5일장은 광주 지역에서 분원이 으뜸이었다. 팔당댐 건설 이후로 옥토가 물에 잠기면서 폐장된다. 주민이 거의 외지로 떠나고 없다.
상수원 보후구역이어서 제약이 많은 지역이다. 대신 자연 훼손이 적어 환경은 상대적으로 좋아졌다.
한적한 고향의 뒷산으로 옛시절 되새기며 낙엽을 밟는다. 학교 뒤 둥구지는 선배들의 데이트 장소였다. 인연을 맺은 연인들의 후세들이 2세 3세로 대를 잘 이어가고 있다. 하늘을 가린 수목들은 묵묵부답이다.
며칠 사이 떨어진 단풍이 발목을 덮는다.
바삭 하는 소리가 적막을 깬다. 가마고개 등산객은 다섯명 뿐 한적한 산길이다. 능선 쉼터에 가방을 풀고 간식을 먹는다. 세찬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김밥을 덮는다.
일행이 부르는 민요 한 가락은 산 계곡을 탄다.
팔당호에 비친 양수리 마을은 고층 건물이 도시를 이룬다. 계곡에 묻혀있는 오른편의 금사리 마을도 옛모습이 아니다. 도시의 주택과 별다름 없는 시골 마을도 끊임없이 탈바꿈한다.
"비인 듯 뿌려지는
낙엽을 밟아본다
바사삭 속삭이며
어렴풋 고향 소식
유년에
소꿉 친구들
허공에서 맴돌고."
"둥구지 골짜기로
불어오는 바람은
옛 사연 들리는 듯
귀에다 소곤소곤
반세기
견뎌낸 고목
무성함의 자화상."
금봉산으로 이어진 왼편길에 낙엽송 군락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밀림으로 변한 가마고개 등산길은 대낮인데도 해가 가려 서늘하다.
금사리와 경계를 이루는 수리울은 한동안 고시생들이 기거하던 동네다. 지금은 주로 외지인이 살거나 주말 휴식 공간으로 이용한다.
타박타박 아스팔트길을 걸어 귀여리 물안개공원에 이르렀다. 나그네의 쉼터 원두막에 잠시 앉아 숨고르기한다.
고향의 내음이 코로 스민다.
반갑게 맞아줄 사람 없는 낮선 동네로 바뀌어 간다. 해는 여우고개 너머에 걸린다. 용진이 잡은 마이크에서 흐르는 '보릿고개'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해준다. 재창再唱은 안동역이다. 귀여리가 배출한 팔방미인이다.
팔당호 명경지수를 비출 초승달은 붕어를 희롱할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노을을 벗삼아 내고향 분원길 걸으며 흥얼거려본다.
"종달새 보금자리
번지가 사라지고
해와 달 거울 삼아
팔당호 만년 길 벗
초승달
낚싯 바늘에
놀란 붕어 줄행랑."
모처럼 만난 선ㆍ후배는 노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인걸은 점점 사라지고 무심히 가는 세월이 무상하다. 종일 밟고 다닌 고향땅에서 새삼 옛시절의 향수를 느껴본다.
2021.11.07.
첫댓글 옛 고향
가을 향기
아름답고 심오합니다
늘 좋은 글 올려주시는
정 선생님
감사할따름입니다
환절기 건강 잘
챙기세요~??
분원 초등학교~
옛 추억을 더듬으시며
변모된 흔적 속에 세월을
되집어 찾으신 시간이 아름답습니다
삶은 추억을 먹으며 살아가지요
그 시간을 가슴에 깊이 묻어두세요~
가마고개 산행, 분원초등학교 뒷산 둥구지로 이어지는 능선...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지허 선생님의 고향, 분원길에서 담아오셨군요.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살다보면 문득 고향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니 필름이 스칩니다. 가끔 추억을 회상해보는것도 의미가 다릅니다.
같은 마음으로 답을 주시어 감사를 드립니다.
겨울이 시작됩니다.
문우님들께 건강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