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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그린란드인가
왜 그린란드인가. 세계 최대의 섬이다. 면적이 한반도의 10배. 인구는 5만7000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이누이트족이다.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으로,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치권을 행사한다.
여기에 미국이 탐내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군사적 요충지. 그린란드 북서부에는 '피투픽' 우주군 기지가 있다. 과거 툴레 공군기지로 불렸다. 북극을 통과해 미국 본토로 날아오는 러시아·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장 먼저 탐지하는 '눈'이다.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하는 다층 미사일 방어망 '골든 돔(Golden Dome)'을 완성하려면 이 기지의 완전한 통제권이 필수다.
둘째, 자원의 보고. 그린란드 빙하 아래에는 중희토류가 약 3600만~4200만 톤(산화물 기준) 묻혀 있다. 중국 다음 수준의 잠재 매장량이다. 세계 매장량의 3분의 1에 해당한다는 평가도 있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풍력 터빈, 첨단 무기에 들어가는 '산업의 쌀'이다. 현재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가공의 90%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의존에서 벗어날 대안이 필요하다.
셋째, 미래 항로. 지구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 항로의 상업적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간 운송 시간을 수에즈 운하 경유 대비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다. 중국이 '빙상 실크로드'를 내세우며 북극 진출을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알래스카와 그린란드를 양 날개로 삼아 북극해 입출구를 선점하려 한다.
J.D. 밴스 부통령이 8일 말했다. "그린란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뿐만 아니라 세계의 미사일 방어에 정말 중요합니다." 그는 덧붙였다. "유럽이 하지 않으면 미국이 무엇인가를 해야 할 텐데, 그게 무엇인지는 대통령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외교적 수사인가, 군사적 위협인가. 선이 흐릿하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집착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집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9년 1기 임기 때 처음 꺼냈다. 당시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트럼프는 예정된 덴마크 국빈 방문을 취소해버렸다.
7년이 흘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그린란드 카드를 꺼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베네수엘라 작전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붙었다. '말'만 하던 1기와 달리, '행동'의 옵션까지 테이블 위에 올렸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7일 말했다. "군 통수권자가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입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같은 날 의회에서 못 박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그린란드 매입입니다. 다음 주 덴마크와 만나 대화를 나눌 겁니다."
미국 역사상 동맹국 영토를 대상으로 매입 의사와 군사적 수단을 동시에 거론한 건 처음이다.
◇덴마크·유럽의 반격
덴마크가 발끈했다. 프레데릭센 총리가 말했다.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토 동맹의 일원입니다. 미국이 다른 나토 회원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면 나토를 포함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구축된 안보 질서가 모두 무너질 것입니다."
유럽도 들고일어났다. 6일, 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스페인·영국·덴마크 정상 7명이 공동 성명을 냈다.
"그린란드와 덴마크 사안은 오직 그린란드와 덴마크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강자의 법칙"이라고 비판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국제법 위반을 용인할 수 없다"고 맞섰다.
덴마크 언론은 흥미로운 사실을 전했다. 1952년 제정된 덴마크군 교전수칙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덴마크군이 공격받으면 '선반격 후보고'가 가능하다. 이 규정은 그린란드 주둔 덴마크군에도 적용된다. 동맹끼리 총구를 겨눈 적 없는 NATO에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그린란드 주민은 어떨까. 옌스-프레데릭 닐센 그린란드 총리가 말했다. "합병에 대한 환상을 버리세요. 우리는 미국인도, 덴마크인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린란드인입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미국령 편입에 반대가 85%, 찬성은 6%에 불과했다. 덴마크로부터의 독립 자체는 56%가 찬성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품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주민이 트럼프 행정부의 현금 제안에 마음이 흔들릴까. 쉽지 않아 보인다. 덴마크는 매년 약 6억 달러의 보조금을 그린란드에 지원한다. 예산의 절반 이상이다. 무상 의료, 무상 교육, EU 시민권까지 딸려온다. 미국이 이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의회가 인구 5만7000명의 섬에 매년 수천억 원을 영구적으로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킬지도 불투명하다.
◇트럼프에게 남은 카드
트럼프에게 남은 카드는 무엇인가. 세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먼저 논의 중인 '직접 매입'. 역사적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은 1867년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샀다.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덴마크에 1억 달러 상당의 금괴를 제안하며 그린란드 매입을 타진했다. 거절당했다. 이번에도 덴마크는 "판매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둘째, 검토 중인 '분리 독립 유도 후 연합'. 그린란드가 덴마크에서 독립하면, 미국이 마셜제도·팔라우 등 태평양 도서국과 맺은 '자유연합협정(COFA)' 모델을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그린란드는 주권국이 되지만, 국방권은 미국에 위임한다. 대신 미국이 재정을 지원한다. 현금 지급 검토도 이 맥락에서 나왔다. 독립 찬성표를 유도하거나, 독립 후 COFA 체결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수단이다.
셋째, 가장 우려할 만한 '군사적 개입'. 군사 전문가들은 "인구 5만7000명에 자체 군사력이 전무한 그린란드를 점령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기술적으로는 그렇다. 정치적으로는 다르다. NATO 회원국 영토를 침공하면 집단방위 조항인 5조가 발동된다. 동맹 체제의 근간이 무너진다. 백악관도 이 점을 안다. 대신 노보 노디스크 등 덴마크 기업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경제 압박이 먼저 올 공산이 크다.
◇흔들리는 전후 질서
이 사태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순한 영토 문제가 아니다. 전후 국제 질서의 규칙이 도전받고 있다.
트럼프는 1823년 먼로 독트린을 21세기 버전으로 확장하고 있다. '먼로 독트린'은 유럽 세력의 미주 대륙 간섭을 배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중국과 러시아가 서반구의 전략 자산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미국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필요하면 물리력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를 끌어냈다. 다음은 그린란드의 중국·러시아 영향력을 끊어내겠다는 셈법이다. 동맹이든 아니든, 미국 국익에 방해가 되면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유럽 국가들은 충격받았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의존하기보다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략적 자율성'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현실적으로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어렵다. 그린란드 주민의 85%가 반대하고, 덴마크가 완강히 버티고, 유럽이 공동 대응에 나섰다. 2009년 자치법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조차 그린란드를 일방적으로 매각할 권한이 없다. 그린란드 의회의 승인, 주민투표, 덴마크 의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은 현금 지원과 문화적 침투를 통해 그린란드 내부의 독립 여론을 자극할 것이다. 덴마크와의 틈새를 벌려 그린란드가 스스로 미국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당장의 매입보다는, 피투픽 기지 사용권 확대와 중국 자본 배제를 담보하는 새로운 안보·경제 협정을 체결하는 게 현실적 시나리오다. 명분은 덴마크에 남기되 실리는 미국이 챙기는 절충안이다.
북극이 달라지고 있다. '평화와 과학의 영역'이라 불리던 곳이 '안보와 자원의 전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는 신냉전의 최전선이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서 얻은 모멘텀을 그린란드로 밀어붙이고 있다.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유지돼 온 국제 질서의 규칙이 흔들리고 있다. 동맹국조차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될까. 1867년 알래스카처럼, 2026년 그린란드도 미국의 51번째 별이 될까.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포인트데일리)
첫댓글 그럼 그렇지
에구 트럼프의 속셈..
국제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어.
참으로 흥미로운 글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