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 리뷰
평범한 생활을 지내던 중 갑자기 히틀러가 어떤 인간이였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두 가지 크나큰 결함이 있다. 문장의 길이가 너무길다는 것과 문장성분간의 문법적 호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글을 시원시원하게 읽어나가지를 못하고 각각의 문장의 의미를 생각하는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아마 히틀러가 글을 이런식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것은 분명히 번역자의 자질 문제이다. 이러한 불편을 제외하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히틀러가 어떤 사람이였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고, 나치즘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히틀러 하면 많은 사람들이 광기에 가득찬 미치광이 지도자를 연상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므로 '나의 투쟁'을 읽기 전에는 그의 자서전에 분명 광기에 가득찬 내용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글속에서 만난 히틀러는 미치광이가 아니였다. 그는 자기 자신을 굉장히 철저하게 관리하는 꼼꼼한 사람이였다. 또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지나치다고 느껴질 만큼 잘 알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의 투쟁' 내용이 전부 그에 관한 것이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세관원이였고 어머니는 가정에 충실한 주부였다. 어린시절의 히틀러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애정을 듬뿍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13세가 되는 해에 그의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했고, 얼마 안가 그의 어머니도 병사하고 말았다. 히틀러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고아 신세가 되었고, 빈털털이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히틀러의 광적인 애국심과 인종주의는 이 시기에 생겨났다. 히틀러는 청소년 시절부터 역사와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얼마안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애국심에 불타오른 히틀러는 스스로 참전하였다. 이 책에서 히틀러는 자신의 첫 전투를 회상을 했는데, 그 전투에서 히틀러는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기쁨에 겨워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의 광기가 느껴지는 부분이였다.

종전 후, 히틀러는 제대를 하고 나서도 계속 군대에서 일을 했다. 그 시기에 히틀러는 이런저런 정당집회에 자주 참여하며 지냈는데, 우연히 만난 어떤 남자가 정당가입 권유를 하며 팸플릿을 하나 주었다고 한다. 정당의 이름은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이였는데, 이 정당이 바로 나치스이다. 히틀러는 고민 끝에 독일노동자당의 당원이 되어, 연설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히틀러의 뛰어난 연설 덕분에 불과 5년사이에 10명도 안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독일노동자당은 독일에서 가장 큰 정당이 되었다. 당내에서 최고 권력자가 된 히틀러는 1923년에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진압당했다. '나의 투쟁'은 그가 그일로 교도소에 갇혔을 때 쓴 책이다.
히틀러는 극단적인 인종주의자였다. 그는 민족간에 우열이 있다고 믿었고,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그 근거로 선진문명, 문화가 게르만 민족에게서 가장 먼저 발달했고, 상대적으로 열등한 일본인들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문명인이 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열등한 민족은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고 환경이 개선되어도 선천적인 열등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며 우수한 민족이라 할지라도 열등한 민족과 피가 섞이게 되면 그 우수함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민족 중에서 유대민족이 가장 열등하다. 따라서 유대민족은 먼 미래에 언젠가 자연도태될 것이다. 유대인들을 제거하는 것은 그저 자연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것일 뿐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
이것이 히틀러가 그의 자서전에서 주장하는 유대인 학살의 근거이다. 히틀러가 얼마나 유대인들을 싫어했는지, 이 책에서 유대인을 기생충에 비유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인종주의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사이비 진화론이라고 부르고 싶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절대 종과 종 사이에 우열을 두지 않
았다고 한다. 박쥐와 인간 중에 어느쪽이 더 우수한가?? 다른 환경에서는 박쥐보다 인간이 더 우수할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동굴에서는 인간은 얼마안가 굶어죽겠지만 박쥐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환경에 따라 종과 종 사이의 우열은 달라진다. 히틀러는 인종간의 '차이'를 두고 우열을 정하려고 했다. 그의 그릇된 인
종관이 그토록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르게끔 한 것이다.
히틀러는 사회주의를 극도로 혐오했는데, 그는 그의 저서에서 사회주의는 정신적 페스트이며 사회주의자들은 조국을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서술한다. 사회주의란 국가, 민족의 경계를 뛰어 넘어 전 인류의 포괄하는 사상이기 때문에 자연히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라는 것이 없었다. 극단적인 애국심과 인종주의에 빠져있던 히틀러에게 사회주의가 혐오스러웠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게다가 사회주의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칼 마르크스는 히틀러가 혐오하고 또 혐오하는 유대인이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국제자본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히틀러는 사회주의자들이 국가자본을 파괴하려는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노동자들의 해방이지만, 실은 각각의 나라들의 국가자본을 파괴시킨 후 국제자본에 종속시켜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라고 생각했다. 가히 음모론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히틀러는 진심으로 믿는 듯 해 보였다.
히틀러의 인종주의는 개인의 차원에도 적용되어, 그는 소수의 우월한 인간이 열등한 대중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는 그저 열등한 자들의 중우정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아래에서 독일의 민주주의는 한창 그 싹을 틔우고 있었는데 히틀러는 그 싹을 잘라버렸고, 독일 민족과 인류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되었다. 히틀러는 민주주의를 칭해 비겁하고, 위선적이고, 무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짧은 안목으로 보면 민주주의라는 것은 무능해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아무리 비겁하고, 무능하다 하더라도 결코 파국으로 치닫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게 되 있고, 다수는 언제나 상식의 범주 내에서 판단을 하기 마련이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할때,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엄청나게 커지는 법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patriot80393?Redirect=Log&logNo=103396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