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동에서 구산으로
구월 첫 주 금요일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이른 시각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나 현관을 나섰더니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소답동으로 가는 102번 첫차를 타고 가다가 원이대로 간선 버스 도계동 정류소에서 32번으로 갈아탔다. 대방동을 출발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 들녘 상리로 가는 버스였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나기까지 1번 마을버스와 노선이 겹쳐 익숙한 주변 풍광이었다. 다만 날이 밝는 즈음 하늘은 흐린지라 안개는 끼지 않았다. 주남삼거리에서 단감 테마공원으로 들렀다가 화목과 동전을 거쳤는데 요양원으로 출근한 이들이 내리고 나니 남은 승객은 셋뿐이었는데, 아낙 둘이 용연에서 내려 혼자 타고 죽동으로 갔다.
죽동 본동 곁에 죽동 당산도 가까이 붙어있는데 마을 뒤에 신령스러운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져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났지만 언제 거기로 한 번 올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내는 현장을 둘러볼 생각인데 추수가 끝난 이후 겨울이나 봄이 좋을 듯하다. 마을 어르신을 만나 동신제를 지내오는 유래와 절차를 구술받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없이 좋을 듯하다.
죽동은 대산면에서 당산 말고도 두 가지로 알려진 동네다. 그곳은 대산 들녘을 휘저어 유등까지 흘러간 죽동천이 낙동강 본류로 합류하는 죽동천의 발원지다. 하천이나 강이 시작되는 곳은 지대 높은 산봉우리를 낀 골짜기인데 들녘 복판임이 특이하다. 다른 하나는 거의 십 리에 이를 죽동천 천변 조경수로 심어둔 산수유가 수령이 제법 되어 봄날의 꽃이나 가을의 열매가 장관이다.
버스가 죽동 당산을 지난 구산마을 입구에 이르렀을 때 나는 내리고 기사는 송정마을로 향해 나아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낮은 구름이 낀 동녘 하늘은 아침놀이 살짝 비치는 즈음이었다. 날씨 관련 속담에 놀이 낀 아침이면 날이 저물기 전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어쩌면 오후에 강수가 있을지도 모를 날씨였다. 벼농사를 대신한 비닐하우스단지는 겨울 작물을 심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마을과 한참 떨어진 경작지에 사과밭이 나왔는데 통념상 기후가 서늘한 고장에 심는 과수가 들녘에 자라 눈길을 끌었다. 부사처럼 키를 낮게 키운 왜성사과가 아닌 높이 자란 수형에서 열매가 달려 빨갛게 착색이 되어갔다. 사과밭을 지나자 가을 이후 수확할 파프리카가 자라는 비닐하우스도 보였다. 어느 비닐하우스단지는 베트남 청년들이 지붕 위로 올라 그늘막 부직포를 씌웠다.
들녘 복판 구산마을을 지날 때 인적이 없어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회관에도 머무는 이가 없었다. 마을회관 이름을 한자어로 써두었으면 좋을 듯했는데 아쉬웠다. 구산의 ‘구’가 땅이름이나 거북을 의미한 ‘거북 구(龜)’일 가능성만 짐작했다. 곁으로 죽동천이 흘러가는 낮은 지대라 거북이가 나올 듯도 하고, 오래전부터 터 잡은 유구한 마을이라 뜻을 담았으리라.
구산마을을 지난 들녘에는 트럭을 몰아와 드론을 띄워 벼 논에 농약을 치는 두 젊은이를 만났다. 논 어귀에 세워둔 깃대에 색이 다른 매듭이 세 개 묶였는데 이번이 세 번째 치는 농약인 듯했다. 논 임자 농부는 논으로 나올 일 없이 농협으로 의뢰해둔 농약 방제단에서 때가 되면 알아서 약을 뿌리지 싶다. 고물이 차는 벼가 고개를 숙이는 즈음이라 이번 방제가 마지막이 될 듯했다.
멀리 모산마을을 지나는 국도에는 차량이 질주했다. 벼농사 들녘 사이 규모가 큰 비닐하우스단지는 초여름 한 차례 따낸 다다기 오이 농장인데 두 번째 심은 오이가 넝쿨이 자라 열매를 맺어갔다. 배양토에 모종을 심는 수경재배라 연작으로 인한 병충해를 염려하지 않고 계절과 상관없이 수확했다. 가술까지 걸어 도서관 열람실에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는 맡겨진 임무를 수행했다. 2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