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원한 적 없는 한 문장을 우체통에 넣었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머리에 탱자를 이고 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봤다
감기 기운인지 봄기운인지 헷갈려서.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일 년도 가고 십 년도 갔다
텅 빈 우편함에서 탱자 냄새 희미하게 불어왔다’
- 고선경 詩『오래된 기억인지 오래전 꾼 꿈인지 알 수
없어요』
- 시집〈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열림원
전화기 너머, 친구의 기침이 멎질 않는다. 지난 주말 집회에 참여했다가 감기에 걸렸다고 한다. 처음엔 걱정이 되었다가, 따뜻하게 챙겨 입지, 공연히 부아가 치밀었다가 나중에는 미안하게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듣다 보니 리듬이 있네. 나름의 바이브가 있네. 친구는 기침을 하다가 웃다가 다시 기침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잠시의 어수선함이 가시고 친구는, 기침이 잦았더니 머리가 아프다. 영혼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야, 한다. 그렇지. 그래서 외국에선 신의 가호를 빌어주기도 하잖아. 그러고 보니 너의 기침에는 솔(soul)이 있구나. 나의 대꾸에 친구는 정색한다. 그만 놀려. 감기는 만병의 근원이라잖아. 나이가 들어서인지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좀처럼 낫질 않는단다. 병원에도 다녀왔어. 환자가 참 많더라. 대기실 가득 모여 있는 사람들이 제각기 기침을 하는데 제법 웅장했다고. 상상해본다. 일종의 오케스트라인가. 저기는 베이스, 여기는 테너. 그만 놀리라 했으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지만, 웃음이 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야, 나 힘들다. 배에 근육이 다 생길 지경이야. 너 감기 걸리면 연락해. 나도 약 올릴 테니까. 정말 심통이 난 건 아니겠지만, 친구는 서둘러 통화를 끊는다.
시인 김수영은,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권유했다. 그럼으로써 살아 있자고.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자고. 안에 든 나쁜 것을 뱉어내자고. 의학적으로도 옳은 말이다. 아픔은 낫기 위한 조건이다. ‘낫고 나면 더 건강해지자. 더 건강하게 살아 보내자.’ 친구에게 문자와 함께 비타민C를 선물했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Anne Sila - Je reviens te chercher (Contenu Offic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