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불의도시 (프롤로그)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과 따스한 햇살 아래 대륙의 북서쪽에 위치한 불의 도시 중심지에 광활한 시내 한복판이 펼쳐져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는 곳곳마다 보이는 초가집들.
그 지붕아래서 자신의 물품을 홍보하며 외치는 장사꾼들과 그 거리를 지나다니며 장거리를 구경하는 시민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난치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시내는 한층 더 활기차보였다.
어느 한 구역에 모여있는 초가집을 약간 벗어나면 겉으로만 봐도 꽤나 높은 신분이란걸 알게해주는 고급스런 기왓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기왓집 주변은 아까전의 시내 한복판에서 약간 허름한 옷을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반 시민들과는 달리 고급원단을 사용해 만든 화려하고 기품있어 보이는 의복을 입고 다니는 귀족들이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 귀족들이 가끔 평민들이 살고 있는 거리를 거닐고 있으면 그 귀족들을 쳐다보면서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거나 고개를 숙이며 지나가는 평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귀족들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곳은 시내, 아니 이 불의 도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큰 붉은색의 기와로 지붕을 덮은 거대한 궁과 그 부근에서 살고있는 곳.
즉, 이 불의 도시를 통치하고 관할하는 자들이 모여있는 불의 가문 일족들이었다.
불의 가문 일족들이 거주하는는 시내 한복판의 중심지에 우두커니 자리잡고 있는 지역.
거주지를 중심으로 어느정도 떨어진 곳에 거주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 10명이 올라서야 닿을수있는 정도의 담벽이 설치되어있었고, 앞뒤로 설치된 거대한 현관 앞에는 보초를 서고 있는 원소술사들이 있어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 엄청난 신분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불의 가문 거주지 담벽 너머에 넓게 펼쳐진 연무장 사이에서 한 아이가 기합을 외치고 있었다.
회색 빛 암석이 깔린 넓은 연무장.
사람 크기의 가죽 인형을 앞에 두고 수련에 열중하는 한 아이와 옆에서 지도하는 사내,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연무장에 아이의 기합성이 울릴 때마다 연기와 함께 인형에는 여기저기 그을음이 생겨났다.
한참을 수련에 열중하는 중에 땀을 뻘뻘 흘리던 아이가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듯이 온힘을 다해 기합을 외쳤다.
"핫!”
아이가 인형을 향해 손을 뻗고 몇 십초 지났을 때, 인형에 팔에 연기가 나더니 이윽고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초 동안 인형에 붙은 불은 아이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곧 꺼지고 말았다.
인형에 불을 붙인 자신의 능력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는지 아이는 멍하게 인형만 쳐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땀범벅인 채로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온몸으로 자신의 기쁨을 표현했다.
“드디어... 드디어 해냈어!!!”
“아주 잘하셨습니다. 풍재 도련님. 도련님 나이에 저 인형에 불을 붙이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 인형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건 곧 사람에게도 불을 붙일 수 있다는 뜻, 도련님도 이제는 어엿한 원소술사이십니다."
"하지만 도련님, 결코 자만하시면 안 됩니다! 실전에서의 적들은 인형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 법. 도련님이 실전에서 당당하게 화염술사로서 한 몫 하시려면 이보다 더욱 더 노력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풍재라 불리는 소년의 수련을 도와주던 남자는 풍재의 자신감을 높여 주는 한편수련 의욕을 고취시켰다.
남자에 말에 자극받았는지 풍재는 다시 한 번 인형을 가져오더니 수련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두 명의 남자 중 한명의 남자.
이 불의 도시에서 가장 높은 신분임을 표출하는 불꽃 문양이 등에 새겨져있는 화려한 붉은색의 예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옆에있던 한 남자에게 물었다.
“이보게. 내 아들의 모습이 어떤가? 일곱 살 이네. 일곱 살! 초대 가주가 아홉 살에 불태우는 능력을 익혔다는데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불린 사내는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풍재를 쳐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일곱 살에 저 인형에 불을 붙이다니, 놀랄 따름입니다.”
말과는 다르게 그리 놀랍지 않다는 듯 침착한 대답에 기분이 상한 남자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대단하다면서, 자네는 별로 놀라지 않는군? 비록 내 아들이라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화염술의 대가인 이 풍조가 놀라는데 말이지...”
풍조의 짜증 섞인 말투에 생각에 잠겨있던 사내가 급하게 말을 수정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잠시 옛날 일이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물론 풍재 도련님이 재능이 뛰어 난건 사실입니다. 풍재 도련님을 보다가 잠시 풍연 도련님이 떠올라서 그랬습니다.”
풍조의 화난 음성에 현준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풍연? 그 아이가 왜?”
짜증을 내던 풍조의 목소리는 풍연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가라앉고는 냉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시다시피 풍조님의 형님이신 풍진님과 사모님이 몇 년전에 돌아가신 후, 풍연 도련님이 너무 걱정되어서 풍연 도련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풍연 도련님의 거처에 들어섰을 때, 안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군요. 저는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다급하게 뛰어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그 때 저는 정원에서 풍진님과 사모님의 유품을 주먹에 쥐며 불태우는 풍연 도련님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청염'으로 말이죠.”
“청염이라니... 말도 안돼. 있을 수 없어! 자네가 잘못본거 아닌가?”
항상 위엄있고 침착했던 그가 평소답지 않게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물론 불꽃의 크기가 작아 희미했지만 그 불꽃의 색깔은 푸른색이 틀림없었습니다.”
확신하듯이 말하는 사내의 대답에 풍조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긴 듯
했다.
“가주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가주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사내가 물었다.
‘성인식을 치루고도 십몇년은 수련해야 겨우 청염의 경지에 도달하거늘, 아직 성인식을 치루지도 않은 17살 꼬맹이가 청염의 기운을 느꼈다는건가? 믿을수가 없군...’
풍조는 매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사내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그 이후에도 청염을 보았는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거친 어투로 풍조가 말했다.
“그 이후로는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어느 샌가 실력이 급성장해서 연무장의 인형을 5초도 안 되서 다 태워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빠르기도 빠르지만 허수아비를 부위별로 불태우는 섬세한 조절 능력도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하더군요."
"그 이후에는 뭐, 풍연 도련님이 야만인들을 소탕하러 다니느라 직접적인 실력을 보진 못했지만, 혼자서 야만인을 소탕하러 다니는 정도라면 아마 도시의 각 현들을 수호하는 현장들의 수준에까지 올랐다고 예상이 됩니다.”
사내는 풍연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듯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아이의 실력이 괜찮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까지였을 줄이야. 헌데 왜 이
런 사실이 아직까지 장로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나? 나조차도 오늘 처음 듣는 말인데.”
풍조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사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풍연 도련님이 그런 말을 여기저기 하고 다니시는 성격도 아니고 가주님도 아시다시피 풍진님의 사건과 가주 승계식, 물의가문과의 분쟁 때문에 다들 십년간 바빠서 정신없이 살아서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이제 석달 후에 있을 성인식에서 불의 가문 모두가 풍연 도련님의 본 실력을 알게 될겁니다.”
사내는 아버지인 풍진과 어머니를 잃은 뒤 가문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풍연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번 성인식에서 풍연이 실력을 뽐내 가문에 알려 자신의 자리를 잡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나저나 풍연, 그 아이의 그러한 실력을 몇 명이나 알고있는가?”
풍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근 호조님께서 풍진님이 돌아가신 뒤 풍연 도련님의 안위가 걱정되셨는지 저를 불러 풍연 도련님에 대해 말씀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쩐지 권력밖에 모르는 호조가 가문에서 배척받는 풍연이를 최근부터 자주 찾아가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군. 그 아이를 너무 방치시켜놨어. 더 크기전에 손을 써놓는게 좋겠군.’
풍조는 생각과는 정반대로 차분한 어조로 사내에게 말했다.
“이 얘기는 이제 다른 누구에게도 하지 말아주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형님의 유언대로 풍연이에게 가문을 물려줄 생각이야.
그런데 물의 가문과의 분쟁으로 바쁜 이 시기에 이 얘기가 우리 가문에 새어나간다면, 나를 지지하는 장로들과 호조를 지지하는 장로들 사이에서 그 아이를 놓고 시끄러워지지 않겠어?
지금은 물의 가문과의 분쟁에 집중해야하네. 게다가 방황하는 풍연이를 위해서도 이런 얘기가 퍼지지 않는게 좋을거야.”
“알겠습니다.”
풍조의 단호한 의사에 사내는 알았다는 듯이 수긍했다.
“나는 남은 업무가 있어서 이만 가보겠네.”
풍조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연무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