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청휘가 본 착한여자... (청휘시점입니다.)
오늘도 늦잠이다.
밤새 축늘어져버린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오늘따라 혼자사는 오피스텔이 너무도 넓어보인다.
억압하는 부모님의 교육방침이 싫어 무작정 가출을 해버렸다. 그게 벌써 3개월째.
어쩐일인지 나를 찾지않는 부모들.
뭐, 나야 편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
‘한국중학교’라는 간판이 달린 학교. 지독하게 2년 반을 다닌 학교.
3학년 6반. 이라는 팻말이 달린 교실에 들어갔다.
오늘도 지각을 했지만, 선생은 모른 척 덮어준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우리집안 권력에 기가 눌려 학생에게 꼬리를 마는 선생들.
맨 뒷자리 창문 가. 이 학교 다니면서 내내 내가 고집했던 자리.
그곳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내자리에.
“씹, 야. 너 나와.”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여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의 길다란 머리를
가진 여자. 내 눈을 마주친 순간, 전기가 통했다고 해야하나... 커다란 고양이 눈을 가진 그
녀는 마치 내가 여자를 처음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내 띠꺼운 말투에 기분 나쁜 듯 얼굴을 찡그렸다가 얼굴을 피는 여자.
전학생인가 보다.
“...여기 선생님이 앉으랬는데... 내가 여기 앉으면 안될까?”
입은 웃고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 모습마저 아름다워 보였다.
...... 유청휘 갑자기 왜이러냐..
나는 여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다 그냥 옆자리에 앉아버렸다. 여자에게 내 3년 자리를 양보했
다.
“...고마워.”
이번에는 거짓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을 짓는 여자는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아름다운 여자...
*
학교가 마치기도 전에 지루함에 못이겨 거리로 나왔다.
담배하나에 불을 붙이고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 담배를 피며 당당히 걸어가는 것에 눈을 찡그리며 수근댔지
만, 선뜻 나서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 생각도 않고 아무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그냥 움직였다.
그냥 발이 가는 대로...
‘나비공원’.
그렇게 길을 걷다 한 공원에 발을 멈추었다.
나에겐 추억이 많은 공원이었다.
벤치에 앉아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 여자가 보던 하늘은 어떤 하늘일까...
“저..저기..”
“아, 이거놔요! 아, 더러워!”
“저리안가? 어디 거지새끼가 기어올라?!”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화장을 떡칠한 여자 두명이 허름한 차림의 노숙자한테 화를 내고 있었다.
..말이 심하잖아.
그 여자들이 재수없었지만, 내가 그리 나설일이 아니라고 판단을 했다.
그 노숙자하고 아는 사이도 아니고, 아는 사이라고 해도 남을 도와줄 만큼, 난 착하지 않았
다.
그저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아가씨.. 미안한데.. 돈좀.. 친구녀석이 아파.. 우리같은 사람들은...”
“이거노라고요! 아, 씨발! 졸라 더러워!”
“거지새끼, 꺼져버려!”
두 여자는 힘으로 노숙자를 밀치고는 침을 뱉고 공원에서 빠져나갔다.
노숙자는 넘어진 채 울고있었다.
한참을 그 노숙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노숙자를 일으켜 주었다.
...아까 낮의 그 여자. 전학생.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노숙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지갑을 통째로 노숙자에게 건네주는 그 여자.
노숙자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자 그 여자가 갑자기 화를 낸다.
“울지마!”
울지말라고 하며 노숙자의 등을 때리는 여자.
...뭐야, 존나 황당하네..
“...고..고마워..”
“..아니, 됐어. 그 친구가 저기 입구에 누워있는 아저씨지? 얼른 데리고 병원가.”
그 여자의 말에 노숙자는 후다닥 일어나 자신보다 한참어린 그 여자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
를 하고는 친구에게 달려갔다.
........
저 여자애. 뭔가, 황당하지만 착하다.
처음에는 외모에 흥미를 가졌지만, 이제는 그녀의 엉뚱한 성격이 내가 그녀를 반하게 했다.
#번외
- 청휘가 본 착한여자 2
아까 공원에서 본 여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밤이 된 어두운 공원에서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Rrrrrrrrrrr....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해 보니 우리학교 부짱 채한식이다.
“어.”
짧게 대답을 했다.
[하아.. 짱! 어디야?! 지금 한강중쳐들어왔어! 한국중뒷 골목으로 얼른 와!]
다급해 보이는 한식이의 목소리.
“..씨발. 알았다.”
전화를 끊고 싸움터로 향했다.
*
눈을 떠보니 약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이었다.
머리를 짚으며 일어나 보니 옆엔 친누나 유청하가 있었다.
“아? 일어났어? 괜찮아?!”
호들갑을 떨며 내 손을 꼭 쥐는 누나.
“..어. 나 어떻게 된...”
“너너! 어제 또 싸움질하다가 어떤 미친놈이 각목으로 니 대가리 내려쳤다! 이놈아!!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 아나, 이 잡놈!”
마구 소리치며 내 얼굴에 삿대질하는 누나.
타고난 B형 성격의 소유자. 입을 열지만 않으면 고상하고 도도한 외모에 남자가 제법 꼬일
만 하지만, 저 이상한 성격에 누나가 남친을 만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아... 어제 싸우다 다쳤나 보다.
“애들은?”
“에라이, 그 병신들도 이 병원에 있다! 임마! 귀여운 한식이는 옆방이다!”
유난히 한식이를 귀여워하는 누나는 ‘귀여운’을 강조하며 탁짓으로 옆병실을 가리켰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한식이에게 갔다.
만화책을 읽으며 깔깔대던 한식.
다리 한 쪽에 깁스를 했다.
“야.”
“엉? 아, 짱! 크크크~ 괜찮아?”
“짱이라고 하지마라. 어제 어떻게 됬냐?”
“크크, 알았어~ 너 어제 대가리 깨져서 잠잘 때, 내가 삼진애들 불렀는데! 때거지로 몰려와
서 한강중 박살냈어~ 크크크, 나 잘했어?”
“어.”
짧게 대답을 하고 내 병실로 돌아왔다.
내 침대 바로 맞은 편에 자리한 창문.
침대에 앉아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니 어제의 그 여자가 생각났다.
...이게 사랑인가?
한 눈에 뻑간다는 말을 들으면 비웃었었는데, 내가 지금 그 꼴이다.
*
전치3주라는 진단을 받고, 3주만에 학교에 나왔다.
평소같으면 학교는 나오지 않아도 그만이었지만, 왠지 그 동안 그 여자가 미치도록 보고싶
었다.
오랜만에 나온 학교.
그 여자를 볼수있다는 생각에 기분좋은 웃음이 자꾸만 새어나왔다.
뛰다시피 3-6반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여자는 없었다.
반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야, 내 자리에 앉던 여자. 어디갔냐?”
“..어?어? 아... 걔 일주일전에 양복입은 남자들이 데리고 갔어...”
“뭐?”
“....일본으로 유학 갔다고 하던데..”
“뭐?!”
허탈한 감정에 나도 모르게 소리질러버렸다.
덕분에 잔뜩이나 몸을 움츠려 쫄아버린 반장.
“후...걔 이름뭐였냐?”
“이..이..이제너..”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 이름을 내 가슴깊이 받아들였다.
이제너.
정말 아름다운 여자.
하늘을 좋아하던 여자.
황당한 여자.
어이없는 여자.
나를 웃게 만든 여자.
보고싶은 여자.
정말 착한 여자.
내가 그녀에게서 알고있는 것은 이것 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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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 넘 재밌어
혈숙님, 뎃글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발전하게 노력하겠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