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fmkorea.com/6756093793
1921년, 세인트루이스, 미주리, 미국
존 롤랜드 레드라는 소년이 태어났다
레드 가족은 음악인 가족이었다
레드 7남매는 노래, 악기 연주, 춤 등을 익혀서 음악인으로 활동했고
존 역시 어렸을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당시 미주리에는 짐 크로 법으로 인해
흑인들은 온갖 억압과 차별 속에서 살아야했고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시설, 공간을 이용하지 못했다
존 역시도 흑인들만 다니는 학교를 다녔다
1940년대 초, 결국 존은 먼저 떠난 형제들을 따라서
기회의 땅 캘리포니아로 가게 된다
캘리포니아에서 존은 누나의 친구, 베릴을 만나 사귀게 되고
당시에는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혼인은 금지였기에
둘은 멕시코에 가서 결혼을 한다
캘리포니아에서도 흑인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한정적이었다
이에 존은 후안 로란도라는 가명을 가지고
멕시코인으로 활동하기로 한다
흑인과 백인의 혼혈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인지
존은 흑인 치고는 흐린 피부와 곱슬모가 아닌 직모를 가지고 태어났고
주변인들을 속일 수 있었다
존은 라디오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흑인들에게는 금지됐던 각종 음악인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더 많은 기회들을 얻을 수 있었다
새로운 기회들을 놓칠 수 없었던 존은
아내와 상의 끝에 또 한 번의 변신을 기획하게 된다
코를라 판딧
뉴델리에서 브라만 아버지와 프랑스계 오페라 가수 어머니
그 사이에서 태어난 상류층 인도인
음악 공부를 위해 영국을 거쳐 미국까지 온
시카고 대학교 졸업생 천재 뮤지션
미국인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내 베릴이 담당한 이국적인 화장과 머리에 싸맨 터번은
당시 미국인들이 동양에 가지고 있던 환상을 충족시켜주었다
(참고로 힌두교도들은 터번을 쓰지 않는다)
터번을 쓰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 인도인 판딧은
할리우드와 미국 엔터테인먼트를 정복해나갔다
1948년, 타임 포 비니라는 인형극의 배경음악 참여를 시작으로
작곡, 오르간 연주, 음반 활동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하게 된다
코를라 판딧의 음악 속의 모험 오프닝
"마그네틱 테마"
1949년, LA의 KTLA 방송국을 통해
본인 이름이 들어간 프로그램까지 론칭한 판딧은
할리우드에 자택을 마련하고
당시 최고의 할리우드 스타들과 친분을 쌓으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미실루를 연주하는 코를라 판딧 (1951)
또한 음악적으로도 당시에는 대중음악에 잘 쓰이지 않던
오르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1950년대 미국 엑소티카 열풍에 탑승하여
엑소티카의 대부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놀랍게도 초기의 판딧은 방송 중에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오르간을 연주하며 카메라를 응시하던 모습은
대중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고 오히려 그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아시아의 종교, 철학, 전통들을 공부하여
이와 관련된 토크쇼와 강의까지 진행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1970년대 이후, 그의 인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했지만
그는 코를라 판딧이라는 캐릭터를 버리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갔다
판딧은 더 이상 캐릭터가 아니라 그의 새로운 자아가 된지 오래였다
그리고 1990년대 반짝 인기를 다시 누린 판딧은
1998년 숨을 거둔다
그리고 2년 후
베일에 싸여있던 그의 정체를 밝히는 글이
LA 잡지에 실리게 된다
해당 글을 쓴 R. J. 스미스에 의하면
판딧은 친척들을 만날 때도 매우 비밀스럽게 만났으며
자녀들도 데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의 자녀들은 판딧이 흑인이라는 루머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위의 글이 출판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코를라 (2015)
그의 생애를 그린 다큐멘터리
차별과 억압을 피해, 그리고 성공을 위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평생을 살아간 그
시대, 환경, 업계의 특수성, 그리고 그의 집념까지
모두 합쳐져서 탄생한
다시는 반복되기 힘든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존 롤랜드 레드 / John Roland Redd (코를라 판딧 / Korla Pandit)
1921-1998
프랑스는 자유평등박애 외치며 식민지를 조졌고
미국은 압제에 저항하는 민주국가 건설해 흑인을 조져버림
자유평등박애(백인만) ,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백인을 위한) 이거 아닐까 애초에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 흑인을 조진게 아니라 흑인을 조지고 있던 애들이 건국의 아버지라서
워싱턴만해도 흑인 존나 많이 소유하고 있었음. 듣기에는 대우(;;;)는 잘해줬다하긴함.
짐크로우는 19세기에 미국 민스트럴쇼라는 TV프로의 막간극에서 만들어진 노래하고 연극하는 우스꽝스러운 흑인 캐릭터이다
백인들이 얼굴을 숯검댕이처럼 분장하고 흑인을 희화화하며 연극하였는데 흑인 조롱과 흑인 인권 문제 폭로라는 두가지 성격을 가졌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1865년에 노예를 폐지했으나 농업위주인 남부 중심으로 흑인은 여전히 심하게 차별받았음
1876년 시행된 짐크로우법으로 흑인을 합법적으로 백인과 분리하여 관리하기로 하였는데 오히려 차별이 합법화되었다고 할수있음 1965년 폐지됨
첫댓글 뭐랄까 백인놈들의 동양인 판타지를 충족시켜줌으로써 성공했다는 점에선 굉장히 불쾌한 일인데, 그게 또 인종차별 때문에 생존을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고... 자기 자식들까지 철저하게 속였다는 점에선 대단하기도 하고...
아…정말 인간은 잔인하구나
참 인간이란게…;인종으로 차별한다는게…에휴…
혼혈인데 라이트스킨으로 태어나서 백인인척 살아갔던 흑인 나오는 소설들 몇 번 봤는데 실제로 비슷한 사례도 있구나....진짜 피부색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