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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세워주시는 은혜 (막3-32)
2024년 7월 17일 (수요일)
찬양 :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본문 : 막6:45-52절
☞ https://youtu.be/k9cEzqdDgM4?si=PXvqGAuUVkc-Jg1Y‘
어제 웨이브리즈 플랫폼 대표자 회의를 했다. 멀리서 달려와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시며 모두가 공유한 가치로 시작하기 위해 늦었음에도 함께 나아가고 있다. 주님 인도하소서.
내부적인 준비와 개발 준비 등 꺼내놓아야 할 것들이 많지만, 조급하지 않고 모두를 존중하며 협력하여 나아가려고 한다.
오늘은 중보기도 세미나 교재 완성을 위해 최종적인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한다. 금주간 마무리하여 다음 주간 교재 편집을 해서 마무리를 해야 한다. 모든 일정 가운데 주님의 지혜가 있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제자들을 서둘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가게 하신 후 기도하러 산에 가신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풍랑에 힙겹게 노 젓는 제자들을 향해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나온다. 48절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먼저 감동되는 것은 밤새 힘겹게 노 젓는 것을 주님이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를 걸어 오셨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분명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고, 제자들은 바다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떠났다. 물리적인 시력으로 제자들을 볼 수 없으셨지만, 주님은 자신의 명령을 따라 바다를 건너는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모습을 보셨다고 한다. 이것은 과거 분사형태로 지속적으로 예의 주시하셨음을 나타내는 단어다.
두 번째로 이해되지 않는 단어가 나온다.
<지나가려고 하시매>란 단어다. 이것은 헬라어로 "παρελθεῖν" (parelthein)이란 단어로 옆을 지나가다, 통과하다란 뜻이다. 오늘 성경의 문맥에서 이 단어는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 단어가 의도하는 것은 단순히 제자들을 지나치려고 했다는 의미보다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르치려고 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출33:22절에서도 하나님이 지나가실 때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 순간 제자들이 어떤 상태인지를 분명하게 체크하시며 당신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알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언제나 제자들을 생각하시며 다가오시는 주님을 묵상한다.
주님의 예측대로 이들은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49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이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예수님이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라고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에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의 모습에 두려움에 가득하여 유령이라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주님으로 인정하기에는 이들의 믿음으로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아주 자상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50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제자들은 다 혼란에 빠져 버렸다. 그렇게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놀라는 제자들을 향해 아주 자상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목소리는 아주 자상하게 표현하였지만 <내니>라는 이 표현은 결코 자상한 소리가 아닌 아주 엄청난 소리였다. 바람과 풍랑과 지구의 중력까지도 정복하시고 바다 위에 우뚝 서 계신, 그분이 바로 제자들이 믿고 따른 자신들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지닌 모든 공포와 유혹을 물리쳐주실 수 있는 만유의 주이심을 “내니”라는 그 한 마디를 통해 전달하신 것이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먼저 주님의 사명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를 주님이 지속적으로 예의 주시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음을 자백한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가 믿음이 없어 이렇게 흔들리고 있음을 바라보시고 지체없이 달려오신다는 사실이 매우 큰 감동과 한 편으로는 매우 큰 찔림으로 동시에 다가온다. 흔들림속에 주님을 맞이하는 제자들의 심정도 아마 나처럼 감동과 찔림이 교차되지 않았을까? 진실로 믿음위에 굳건하게 서는 제자로 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주님은 내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3년이란 시간을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있는 내게 그러면서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다시 시작하며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있는 나를 아시고 내게 주님이 <내니 안심하라>고 하신다.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하실 능력이 주님께 있다. 우리를 지시하신 분도 주님이시며, 우리를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언제나 주목하고 보고 계시고 그분은 영광과 권능의 능력으로 함께하시는 분이시다. 아멘. 아멘. 아멘.
나도 참 주님을 엄청 많이 경험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제자들처럼 놀라기 바쁜 나는 아닌지 주님은 나를 다독이며 그 영광과 권능의 주님을 믿음으로 안심하고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라고 하신다. 아멘.
주님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지 모릅니다. 남들은 그렇게 14년이 되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기에 주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기에 얼마나 두려운지 모른다. 수없이 오병이어를 경험했음에도 말이다. 온전한 믿음위에 서 있지 못하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분명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면서도 주님 없이 너무도 잘살고 또 그렇게 주님 없이 살다가 풍랑이 다가와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면 두려움에 빠지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하신다.
왜 그럴까?
제자들은 그렇게 생생한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왜 놀랐을까? 왜 주님을 찾지 않았을까?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바로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 아침이다. 과연 이런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에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수없이 나를 놀라게 하시며 나의 믿음 없음을 자상한 목소리로 다가오셔서 가르치시고 은혜로 믿음으로 세워가시는 나의 주님께 이 아침 깊은 감사를 올려드린다. 진실로 이 은혜로 주님은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이렇게 세워가신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어쩜 그렇게 나를 정확히 아시는지 어제 대표자 회의를 마치고 혼자 앞으로의 플랫폼을 생각하며 두려워했던 내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시고 나를 찾아오신 주님께 섬뜩한 심정으로 회개하며 주님을 맞이한다. 주님 ~
주님, 감사드립니다. 이 종을 늘 주시하사 약할 때마다 찾아주시고 저로 믿음위에 서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합니다. 겸손히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이 하루 두려움을 떨치고 주님이 찾으심앞에 나를 내려놓고 회개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믿음으로 서는 자로 변화되기를 다짐합니다. 주여 ~ 이 종의 약함을 붙잡아 주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웨이브리즈> 플랫폼이 새로운 도약을 이루며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진짜 목사가 세워지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3.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4.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6. 땡스기브가 세운 틴케이스 공간이 소중히 쓰임받게 하소서.
7.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8. 충주 라마나욧이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