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엔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명절이면 3kg 면포대의 설탕이 선물로 들어오곤 했는데, 엄마는 큰 양식이나 된듯 다락방에 고이 모셔놓았다.부엌에 있어야할 보라색 플라스틱 설탕통은 다락방에서 진귀한 음식인냥 숨겨져 있었다. 손님이 오실 때 홍차와 함께, 아버지께서 피로하실 때 설탕물로, 누군가 아프면 약숟가락 뒷쪽에 살짝 묻혀서 나오는 귀하디 귀한 음식이었다. 어린 내게는 마치 금단의 열매와 같은 설탕이었다. 내 눈에 보이지 말아야할 설탕통은 잊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안방 다락에서 살곰살곰 나를 부르곤 했다. 엄마가 시장에 가시거나 집을 비울 때면 그 유혹의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내 키의 반도 넘는 다락에 낑낑거리며 올라가서 설탕통을 마주하면 어디 높은 산 꼭대기에 오른듯 뿌듯했다. '단 한 숟가락만' 시작은 늘 그랬다. 설탕통에 꽂혀있는 찻숟가락으로 듬뿍 떠서 입안에 넣으면 그 행복감 포만감 희열 등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어린 머리에 철저함도 있어 설탕통을 바닥에 탁탁 두드리면 퍼먹은 자리까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처음이 중요하지. 설탕통은 그 이후로도 나를 얼마나 목청껏 불러대는지....
하루는 막내 동생이 아파 특별한 선물이 주어졌다. 폿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 폿도를 해먹게 되는 행운의 날이 왔다. 국자에 설탕을 살살 녹여서 소다를 넣으면 찐빵처럼 노랗게 부풀어 올라 작은 우리들 가슴도 마냥 부풀어 올랐다. 뭐든지 과하면 탈이 나는 법. 3살 막내 동생이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막내 동생의 설사만 아니었다면 그런 기쁜 날이 더 있을만 하건만 그걸로 끝이었다.
어느 날은 내가 감기로 몹시 아팠다. 늘 동생의 약숟가락에만 올려지던 설탕이 내게도 허락이 되어지는 날이었다. 설탕을 밥에 비벼먹게 해주셨다. 입이 까끄러워 물 한 모금도 어려웠는데 설탕에 비빈 하얀 쌀밥은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맛의 기억이란게 있을까? 가끔씩은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설탕 한 숟가락 푹 퍼먹고 싶은 때가 있다. 그때 그 달콤한 유혹의 맛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을까? 완전범죄를 저지르던 그 유혹의 맛이 기억이나 날까? 지금은 마치 인류의 죄악인양 된 설탕, 그 달콤함이 내겐 꿈결같은 맛으로만 기억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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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풍경화처럼 원문보기 글쓴이: agenes
첫댓글 차암 아네스님은 어찌 그리 어릴 적 기억을 잘 떠올리셔요.저도 설탕에 대한 기억이 있으련만 별로 생각이 안나네요.그저 소다에 녹여 별,하트.동물,나무등등의 모양을 잘 잘라내려고 핀침에 침묻혀가며 애쓰던 기억밖에는.
제가 별걸 다 기억하느라고 공부를 못했어요. ㅋㅋㅋ
어쩜 설탕 한가지를 가지고도 이리 이쁜 글을 쓰실수 있을까요? 근데 전 좋은 기억보다는 (토마토는 넘 맛이 없었다 이런거).....ㅎㅎ 글고 폿도라는거 집에서도 해먹었군요. 전 동네 골목에서나.... 풋도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어요.
우리동네서는 폿도라고 하고, 지역마다 동네마다 이름이 다르더라고요. 달고나라고도 하고,똥과자라고 하는 부산친구도 봤어요. 각자 자기지역의 이름을 대면 얼마나 나올까요? 국자가 다 타버려 국을 떨 때 엄마의 눈흘김을 감내해야 했죠.
풋도가 뭐래요? 난 포도라고만 생각이 되니 역시 찰라는 돌대가리야ㅎㅎ~ 설탕 퍼 먹는 소녀의 모습이 여과없이 그려지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근데 지금은 뭘 몰래 퍼 먹지요..ㅎㅎ
제가 주방장이 되고 보니 몰래 퍼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찰라님은 착실한 소년기를 보내셨나봅니다. 저는 하굣길에 먹던 군것질 열 가지도 넘게 말할 수 있어요. 어? 나도 착한 어린이상도 받고 했는데 착한 어린이가 아니었던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