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 삶의 리듬 -친교의 관상가, 선교의 활동가
2024.1.26.금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2티모1,1-8 루카10,1-9
12년전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오늘날도 호소력이 있고 공감이 가는 2권의 책을 선물받았고 즉시 읽으려 합니다. 한권은 <피로사회), 한권은 <시간의 향기-머무름의 기술->이란 책으로 현대사회는 물론 공동체 이해와 건설에 좋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또 어제 받은 카톡 글도 공동체 삶에 좋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인용합니다.
-2500년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 섭공이라는 제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나라에 문제가 있었으니, 백성들이 날마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인구가 줄어들고 세수가 줄어들어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초조해진 섭공은 공자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날마다 백성들이 도망을 치니 천리장성을 쌓아서 막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이 여섯 글자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무슨 뜻입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라는 뜻입니다. 기쁘게, 행복하게 사는 형제들의 공동체라면, 향기로운 꽃을 찾는 벌들처럼 저절로 성소자도 손님들도 끊임없이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선적인 것이 좋은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Christ is password for a happy life”
(그리스도는 행복한 삶의 암호이다)
엊그제 강론에 인용되어 많은 분들에게 신선한 깨우침이 된 교황님의 말마디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공동체의 비밀은, 열쇠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있음을 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가 되어 가까이 함께 있는 사람들이 기쁘게 살면 멀리있는 사람들도 저절로 찾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제자들 공동체가 그러합니다. 공동체 훈련이 잘 된 그리스도 예수님의 친교 공동체는 제자 72명을 파견하므로 빛나는 선교공동체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정말 좋은 공동체는 친교공동체이자 선교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어제는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이었고, 오늘은 바오로의 최측근 제자이자 영적 아들이자 협력자인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입니다. 성 티모테오는 터키의 에페소 교회를, 성 티토는 그리스의 크레타 교회를 맡아 돌보았던 목자입니다. 오늘 독서 둘을 보면 바오로 사도가 얼마나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 삶에 충실하며 제자들을 사랑했는지 마음에 와닿습니다. 성 티모테오에게 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감동적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전례중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한 영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내리시고,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시어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사를 불태우게 하시며,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를 이뤄주십니다. 티토에게 준 편지글중 일부입니다.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새삼 그리스도 예수님이야 말로 은총과 자비와 평화의 영적 보물창고의 패스워드 즉 암호이자 열쇠임을 깨닫습니다. 성 바오로, 성 티모테오, 성 티토 참 좋은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 형제들임을 깨닫습니다. 직접 예수님을 모시진 못했어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서 바오로의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의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이니 바로 이점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에서 파견되는 72명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도 놀랍습니다. 얼마나 영적훈련이 잘 된 공동체의 제자들인지 짐작이 갑니다. 필요가 적을수록 진짜 부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만으로, ‘하느님의 나라’ 비전만으로 참으로 부유하고 행복한 무소유의 제자들입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 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병자들이 있으면 고쳐주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여라.”
군더더기 없는 본질적인 사명의 나열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꿈과 그리스도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었기에 거품이나 환상이 없는 이런 단순한 본질적 깊이의 무소유의 삶입니다. 문자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라, 요구하지 말고 피하지도 말고 본질적 사명에 충실하면서 주님의 평화를 선물하면서 무소유의 영성을,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 늘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우정이 날로 깊어갈수록, 우리 모두 소유에 소유되지 않고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무소유 영성의 자유로운 삶을, 지상 순례자로서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다음에는 일흔 두 제자의 귀환이 소개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님의 공동체는 ‘관상의 친교’와 ‘활동의 선교’라는 공동체 삶의 리듬이, 균형과 조화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봅니다. 관상과 활동, 기도와 일의 삶의 리듬은 생명의 리듬이요 어제 읽은 구절도 생각납니다.
“리듬이 없는 시간은 고유한 시간의 질(質)을 상실한 채 양화(量化)된 시간이다. 한마디로 ‘향기가 없는 시간’이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친교의 관상가(觀想家)로 산처럼, 또 선교의 활동가(活動家)로 강처럼, 하느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조화롭고 향기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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