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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생각이나 느낌은 우주 에너지의 현상이다. 생각이 곧 에너지다. 인간의 몸에서는 쉬지 않고 에너지가 발생하며, 그 에너지에 의해서 사고하고 다양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전기가 끊기면 전기장치들을 사용할 수 없듯, 인간의 몸에서 에너지가 고갈되면 어떤 정신이나 생각도 품을 수 없다. 생각의 에너지는 파동을 만들고, 그 파동은 우주전파의 현상으로 자연이나 우주에 전달하게 만든다.
인간들만 생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나 동물들도 생각을 한다. 논리적이고 조합적인 사고는 못 하더라도 자율신경에 의한 본능적인 사고력은 모든 생명체가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곤충이나 벌레도 잡으려고 하면 도망간다. 도망간다는 뜻은 붙잡히면 죽는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식물들도 생각을 하고 불행과 행복을 느낀다.
영양과 수분이 충분하면 좋다는 표정으로 싱싱한 모습을 나타내고, 그렇지 않으면 생기가 없고 축 늘어져 괴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식물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존재가 가까이 다가오면 행복한 파장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자기를 해치거나 상처를 입히려는 존재가 나타나면 두렵고 고통스러운 파장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식물들은 가까이 다가온 존재의 파장에 의해서 적인지 친구인지도 구분한다고 알려져 있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들은 우주의 슈퍼 정보장과 연결된 유기체 현상들이기 때문에 서로의 파장을 읽고 느낄 수 있으며, 그 파장을 통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한 파장을 우주의 공용어인 텔레파시라고 부른다.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텔레파시를 통해 의사를 교환할 수 있다. 식물과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우주의 텔레파시를 통해 우주의 모든 존재들과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우주 텔레파시는 초월적인 힘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현상이며, 불신의 고정관념 때문에 그 기능들이 인간에게서 퇴화되어 있다. 우주 텔레파시를 이용하면 산에 들어가 산새들과 대화를 나누고, 물가에서 물고기들과 대화를 나누며, 화초밭에서 꽃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의 사례를 한 가지 소개한다.
열 살 때쯤 일이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동네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가냘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음... 음... 아... 목말라...”
어린이 목소리처럼 가늘고 가냘픈 목소리였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하고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돌아보았지만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터벅터벅 앞을 보고 걷고 있는데 또다시 똑같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 목말라 죽을 것 같아. 물... 물..."조금 전처럼 들리는 신음소리에 다시 뒤돌아보았지만 여전히 사람 모습은 없었다.
그때 어느 집 담 너머에 버려진 화초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봉숭아 꽃나무였다. 버려진 꽃나무는 시들시들 뿌리 채 말라가고 있었다. 화초라고 하지만 시들어가는 모습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깐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신음소리가 또 들렸다. “살려줘... 살려줘..."그 신음 소리는 시들어가는 봉숭아 꽃나무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꽃나무가 말을 하다니...?'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살금살금 봉숭아 꽃나무 곁으로 다가갔는데, 괴로운 신음 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그 신음 소리는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시들어가는 봉숭아 꽃나무의 괴로운 파장에 의해 전달되어 오는 텔레파시 현상이란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
시들어가며 괴로워하는 봉숭아 꽃나무를 집어서 들고 재빨리 물이 흐르는 개울가로 가서 담가주었더니, 축 늘어지고 시들하던 봉숭아 꽃나무는 금세 싱싱한 모습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보잘것 없는 화초 한 그루이지만, 기운 없이 시들어가다가 물을 머금고 다시 소생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시들어가던 봉숭아 꽃나무를 다시 살려내는 물의 힘도 신비하고, 물에 적시자마자 싱싱하게 되살아나는 봉숭아 꽃나무의 생명력도 경이롭게 느껴졌다.
되살아난 꽃나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화단에 정성들여 심어주었다. 그리고 밖으로 다시 나가 약속한 친구들과 놀다 돌아왔더니, 화단에 심어 놓은 화초는 따가운 태양의 열기를 견디지 못해 다시 시들시들해져 있었다.
시들해진 꽃나무에 물을 주고 이번에는 그늘까지 만들어 주었다. 축늘어져 있는 꽃나무이지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이튿날 일어나서 아침 일찍 화단으로 나가보니, 시들시들하던 화초는 밤새 이슬을 받아먹은 탓인지 생기 왕성한 모습으로 곧게 서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중에 그 꽃나무가 무럭무럭 잘 자라서 다른 꽃보다 더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볼 때마다 반가운 파장의 인사말을 보냈다. “사랑해... 사랑해..."
나도 그 꽃나무를 볼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되뇌이면서 다정하게 화초의 손을 잡듯 꽃잎들을 쓰다듬어 주곤 했다. 꽃잎을 쓰다듬으면 짜릿하게 떨리는 진동이 전달되어왔다.
그 봉숭아 꽃나무는 그해 유난히도 화려한 꽃망울을 많이 터뜨렸고, 자신의 분신인 예쁜 씨앗들을 화단에 잔뜩 뿌려 놓고 삶을 마감했다. 보잘것없는 화초 한 그루와 나눈 감동적인 인연이며 추억이었다.
그 후부터 말 못하는 식물이라 하여 함부로 꺾고 뽑아버리는 습관이 내게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식물의 가지를 꺾으면 아프다고 괴로운 신음을 낼 것 같고, 식물의 뿌리를 뽑아버리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릴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 때는 내게도 작은 생명체들을 함부로 하고 괴롭히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이유 없이 개구리나 뱀을 장난감삼아 괴롭히고, 귀엽고 예쁜 곤충들을 붙잡아서 못살게 했던 기억도 있다.
시들어가던 봉숭아 꽃나무를 살려 준 후 나의 감성은 매우 순화되고 어질게 변했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 후로는 나뭇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꺾거나, 작은 곤충의 생명이라도 함부로 여기는 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작거나 크거나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모기나 파리같은 해충이 주변에서 성가시게 굴더라도 살생하는 버릇이 없고, 멀리가도록 쫓아주기만 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고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 못하는 식물이나 미물들과도얼마든지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체험을 얻었다.
봉숭아 꽃나무와의 인연으로 더욱 화초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화초밭으로 달려가 무언의 대화를 속삭였다. 예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화초나, 아름다운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저절로 말을 걸고 싶은 습관이 생겨났다.
사람은 입으로 말을 하지만 자연은 온몸으로 말을 하고 의사를 표현한다. 꽃잎의 떨림이라든가 화초의 향기라든가 나뭇잎의 팔랑대는 모습이 모두 자연의 교향곡 같은, 아름다운 언어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의 교향곡을 통해 자연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으며, 자연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 우주와의 깊은 대화가 가능해진다. 자연과의 깊은 대화법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다가온 묘령의 아가씨인 연화를 통해 익혔다.
내가 살던 시골집 마당의 화단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수 많은 화초들이 자라고 꽃을 피웠다. 그러한 화초들 중에는 이름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종류의 것들이 더 많았다. 나는 천성적으로 화초를 좋아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얻어 온 화초들로 언제나 화단이 가득했다.
화단에 가득 피어난 화초의 꽃망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황홀해져 견딜 수 없었다. 특히 가을이 되어 화단은 물론 마당의 구석구석, 대문 입구까지 온통 휘늘어지게 피어난 무궁화, 접시꽃, 코스모스, 국화 같은 꽃물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저절로 환상적인 기분에 들떠지곤 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흐느적거리는 꽃송이들은, 마치 하늘의 선녀들이 떼 지어 내려와 무아의 경지에서 천상의 군무에 열중하는 풍경 같기도 했다.
그러면 내 마음은 저절로 꽃과 하나 되어 어울리고 싶지만, 꽃송이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릴 뿐 나를 외면하고 모른 체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마치 내 혼자서 화초들의 마음만 살짝살짝 훔쳐보며 짝사랑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독에 빠지기를 좋아했고 외로움을 잘 탔다. 너무 고독한 순간에는 방안에서 윙윙거리는 파리 소리조차 반갑게 들릴 때가 있었다. 외로운 순간에는 작은 벌레에게조차 말을 걸고 싶고, 풀섶의 작은 꽃잎에게 조차 말을 걸며 외로움을 달랠 때도 많았다.
고독했기 때문에 주변의 사물과 자연들이 대화의 상대가 되고 교감이 통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자연과 벗하여 교감이 통할 때는 행복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속상했다.
그날도 화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코스모스 꽃물결에 도취되어 한참 고독한 생각에 젖어 외로움을 타고 있을 때, 홀연히 보이지 않는 세상의 연화가 웃으며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 피부는 꽃잎을 닮았고, 그녀의 의상도 꽃잎의 향기로 물들어 있는 듯 아름다웠다.
나보다는 열 살쯤, 연상으로 보이는 묘령의 아가씨였다.
마치 연화는 장미와 백합꽃의 부부가 서로 사랑하여 만들어 놓은 꽃의 정령처럼 느껴졌다. 홀연히 웃음 지으며 나타난 연화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도련님 또 꽃님들을 짝사랑하다 마음이 토라졌나 보네? 불러도 대답 없는 임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고독에 젖어 있으려나?"
연화는 지지난 겨울부터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와 배고픔을 채워주던 보이지 않는 세상의 아가씨였다.
연화가 나타나 다정하게 나를 감싸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꽃향기보다 더 좋은 냄새가 코끝에서 감돌았다. 꽃처럼 예쁜 연화가 나타나 말을 건네주니 꽃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해 답답했던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는 듯했다.
내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흐르자 연화는 또 이렇게 말했다. "꽃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응답이 없어 속상했나요?"
“응. 봉숭아 꽃나무의 목소리처럼 국화나 코스모스의 목소리도 듣고 싶어. 그런데 아무 꽃송이도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해. 내가 그동안 자기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잡초를 뽑아 주었는데...”
"정말로 도련님은 화초들의 속삭임이 귓가에 들려오지 않나요?"“도무지... 도무지... 저 예쁜 꽃송이들의 마음이 내게 전달되어 오지 않아. 무슨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은데... 나 혼자 쉬지 않고 소곤거려 보지만 도무지 꽃잎들은 모른 체 하는 것만 같아...”
“그건 도련님이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저 화초들은 지금도 도련님을 향해 사랑한다고 반갑다고 수없이 말들을 걸어오지만, 도련님이 그 소리들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을 뿐이에요.” “정말일까?"
“말 못하는 화초들인 것 같아도 자기를 길러주고 가꾸어 주는 주인을 끔찍하게 알아보지요. 멀리서 다가오는 주인의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화초들은 반가워하고, 꽃잎을 쓰다듬어 주는 주인의 손길만 느껴도 꽃잎은 행복해 하지요. 그 이상 어떤 대화가 필요하고 어떤 대꾸가 필요하다고 도련님은 생각하지요?"
“그럼 내가 꽃잎들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건가?"“사실이지요... 서운한 쪽은 오히려 꽃잎들일 거예요."
“그럼 연화의 귀에는 지금도 꽃잎들이 소곤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모두 들려오고 있어?"
“그래요. 다 들려요. 도련님도 조용히 꽃잎들이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며 귀여운 몸짓들을 하는 장면들을 들여다보세요. 화초들의 귀여운 몸짓이 바로 화초들의 언어이며 우주의 메시지와 다름없어요.”
“꽃잎에서 풍겨오는 그윽한 향기이며, 햇빛에 반짝이는 고운 색깔들... 어느 하나 아름다운 꽃잎들의 언어이며 사랑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어요. 그러한 메시지를 통해 꽃잎들이 도련님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해주고 있어요. 왠지 알아요?"“모르겠는데?”
“도련님은 봄이 되기 전부터 정성을 다해 화단을 가꾸고 화초들을 돌보았잖아요. 그러한 정성과 사랑을 화초들은 모두 알고 있어요. 그래서 화초들은 도련님이 나타나면 모두 행복한 기분에 젖어서 사랑의 기운을 잔뜩 뿜어내고 있어요. 그러므로 화초들이 도련님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지 않는다고 서운해 할 일은 없어요."
“화초들의 언어는 마음으로만 느끼세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황홀한 생각이 든다면, 그보다 행복한 대화가 어디있겠어요. 화초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들은 소리 내어 말을 하지 않아도, 생겨난 그 모습의 자체로도 우주의 메시지를 힘차게 전달하고 있어요.”
“이제부터 도련님은 자연을 향해 소리의 대화만 들으려 하지 말고, 마음으로 전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삼라만상의 어떤 존재들과도 나누지 못할 대화가 없을 테니까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찾아온 연화의 교훈을 듣고, 나는 우주와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다시 배웠다.
삼라만상의 모든 자연은 그냥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무언의 메시지를 쉬지 않고 전달하며 세상을 깨우치고 있다고 연화로부터 가르침 받았다.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들과도, 하늘에서 흘러가며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을 바라보면서도, 그리고 이름 없이 피어난 길가의 작은 꽃망울 하나와도 마음의 깊은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워 나갔다.
어린 나이부터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터득하니, 마음이 커지고 생각이 깊어지며 우주와 자연을 향해 경외하는 생각들을 품을 수 있었다.
연화는 이렇듯 배고플 때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천사였을 뿐만 아니라, 생각과 사고를 깊게 단련시켜주는 스승이기도 했다. 일찍부터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조숙한 관념들을 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연화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연과 우주의 목소리는 고독할 때 잘 들린다.
세상 누구와도 대화의 상대가 없고, 자신의 말을 전달해 줄 상대가 없을 때, 자연히 우주에 대해서 작은 생명체들에 대해서 관심이 깊어진다. 이제 태어난 아기와 엄마 사이에 무언의 깊은 대화가 오고 가듯, 관심을 가지면 이 세상 무엇과도 대화가 통하지 않을 상대가 없다.
밤하늘을 향해 별빛을 바라보면 별빛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것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자연과 우주의 소리를 듣고, 그것들과 심연의 대화를 나누어 갈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자아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사랑의 유기체라고 단정할 때, 쉬지 않고 우주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받으며, 한층 순결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우주의 소리를 경청할 수 있다면, 삶 저 너머 존재하는 또 다른 차원의 삶을 부정하지 못 하리라.
빛과 무한이론의 세상을 지배하는 주인공들 - 도선당(백마신선) 저
첫댓글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