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851075950
유비의 입촉 후, 50여년간 촉과 위는 오랫동안 싸웠다.
하지만 첫 북진의 한중 점거 이후,
촉의 북벌은 딱히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지못했다.
애초 촉의 국력이 열세이기도 했지만,
위의 장수들도 능력이 매우 훌륭한 이들이 많았다.
명확하게 딱딱 정해져있던 건 아니지만,
대촉전선 장수들의 서열 순번은
도독제군사를 겸한 정서장군 - 옹주자사 - 토촉호군
대체로 이 정도로 생각하면 간단할 듯.
위의 역대 대촉방면 총사령관들을 알아보자.
(촉 전선에 있다가 중앙으로 불려갔다온 경우도 있고,
다른 전선으로 출장(?)다녀오는 경우도 있고,
게임처럼 순서 1! 2! 3! 하고 딱딱 정해진게 아니니
그냥 대체적인 순서, 흐름 정도로 봐주시면 될 듯)
1. 하후연
조조의 친척 동생.
전선의 총사령관으로 일족을 등용하던 조조가 중용.
조조의 한중 점거 이후 하후연은 정서장군으로 임명,
휘하에 장합, 서황을 두고 대촉전선 총사령관이 되었다.
사령관임에도 선두에서 직접 발로뛰며 싸우는 성향으로
수십년간 성공을 거뒀으나..
결국 저러한 성정은 '방면 총사령관 전사'라는,
위나라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219년, 유비에게 패배하여 전사.
이후 10여년간 한중 방면에선 큰 전투 없이,
관우가 북진한 북형주가 주요 전선이 되고
촉과 오는 서로 싸웠고
조비는 촉은 내버려둔채 오와의 전쟁에 집중했다.
2. 조진
조조의 조카.
오 전선에 배치되었을 때도 있었으나,
조비 사후 시작된 제갈량의 대대적인 북벌을 막아야할
위의 대촉 전선 총사령관이 되었다.
친척 조휴와 더불어 당대 위 군부의 투톱이었고
조휴 사후 그의 직책이었던 대사마로 승진,
명실상부 위 군부의 1인자가 되었다.
촉으로 쳐들어간 원정에 실패하기도 했으나
대체적으로 3년간 촉의 북벌을 무난하게 방어했다.
그는 중병에 걸린 후 수도로 돌아갔고, 얼마후 사망한다.
231년, 40대의 나이로 병사.
3. 사마의
명문가 사마씨 출신.
조진 사후, 형주 방면 사령관이던 대장군 사마의는
대촉 방면 총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후 3년간 (제갈량의 사망까지)촉의 공격을 막아냈고,
그 공으로 삼공 중 하나인 태위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조예 사후 탁고대신이 된 사마의는
쿠데타를 일으켜 같은 탁고대신이었던 조상을 죽이고
위를 사실상 사마씨의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그에게 반발한 친구 왕릉을 죽인 얼마 후,
사마의는 눈을 감는다.
251년, 72세의 나이로 병사.
사마의가 수도로 간 후 몇년간 '조엄'이
정서장군 도독옹양제군사가 되었으나
이 시기는 딱히 촉과 위의 대규모 전투가 없었다.
4. 하후현
위의 형주방면 총사령관이었던 하후상의 아들.
조진의 조카이자, 사마사&사마소의 처남이기도 했다.
사촌형제 조상(조진의 아들)이 집권한 후,
정서장군이 되어 대촉방면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하후현이 주도한 촉으로의 원정에서,
위군은 전례없는 대패를 당해 거의 전멸했고
그는 커리어에 심각한 오점을 남기며 비웃음당한다.
사마의의 쿠데타로 친척 조상이 주살되자
역시 대촉전선에 있던 그의 숙부 하후패는 위협을 느껴
조카인 하후현에게도 촉으로의 망명을 권했지만
하후현은 거절 후 수도로 송환..
결국 몇년 후 처남이었던 사마사에게 처형된다.
254년, 45세의 나이로 처형.
5. 곽회
조부가 최고위직인 삼공구경 중 하나인 대사농으로,
곽회도 꽤 잘나가는 가문 출신.
이미 수십년간 대촉전선에서 싸우던 곽회.
하후현의 수도소환 이후,
이미 수년간 에이스로서 촉을 막아낸 옹주자사 곽회가
정서장군으로 승진.. 명실상부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후 거기장군으로 승진하고,
곽회의 부인은 반란을 일으킨 왕릉의 누이였음에도
그의 구명으로 사면될 정도로 곽회는 위상이 대단했다.
마지막까지 성공적으로 촉의 북벌을 방어해냈고,
병으로 사망하자 곧바로 대장군이 추증되었다.
255년, 추정 70대의 나이로 병사.
6. 진태
명문가 출신으로, 사공 진군의 아들이자 순욱의 외손자.
곽회 사후 옹주자사였던 진태는 정서장군이 되어
촉 방면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왕경이 옹주자사가 되어 들어왔다.
곽회가 죽기 전부터 몸이 좋지않던 노령의 곽회를 대신해
대촉전선 3인자격 정촉호군 서질이 전사하긴했지만,
강유의 북벌을 막아낸 진태.
총사령관이 되고 얼마 후, 강유는 또다시 쳐들어오는데..
부하 옹주자사 왕경이 역대급 대패를 당해,
촉은 북벌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거두며
옹양주가 마침내 촉에게 떨어질 뻔 하는데..
진태의 활약으로 결국은 강유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승진해 중앙 조정에서 일하기도 하고,
오 전선에 투입되기도 하는 등
사마씨 정권에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진태.
하지만 그 와중 사마소가 대놓고 황제를 죽여버리는
초대형 사고가 터지고...
사태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던 진태는, 얼마후 사망한다.
260년, 황제가 시해된 뒤 분사or의문사or자살.
7. 사마망
사마의의 조카. 당시 집권자 사마소의 사촌형.
황제 조모에게 중용받던 문관이었던 사마망은,
실권자이자 사촌동생인 사마소의 눈치가 보였고
결국 황제 곁을 떠나기 위해 전선으로 자원입대..
제갈탄의 난으로 위의 거의 전병력이 수춘으로 모이자
그 틈을 노린 강유는 다시한번 북벌을 감행했으나
사마망은 등애와 연계하여 이를 잘막아낸다.
이후 승승장구하여 다시 중앙으로 가 삼공이 되었고,
서진 건국 이후 왕으로 분봉받고
군부의 1인자인 대사마까지 찍는다.
271년, 66세의 나이로 병사.
8. 등애
명문가 출신 전임자들과 달리, 평민 농부 출신.
이미 지난 수년간 실질적 에이스로서 촉을 막아낸 등애.
사마망이 중앙으로 간 이후, 마침내 정서장군이 되었다.
등애는 사마소의 촉한 침공을 무리라며 반대했지만,
결국 촉한 정벌군 3명의 대장 중 한명으로 출진하게된다.
주력이자, 총사령관격은 중앙에서 12만을 끌고 온 종회.
등애는 3만의 병사를 이끌고 조공으로 출격한다.
등애 자신도 자신이 조공인 편제를 잘알았고
강유의 분전으로 진격로 검각이 완전히 틀어막히자,
등애는 다른 방법을 구상하는데..
험준한 산맥을 넘어 강유군을 우회하는 것.
그렇게 내부를 공격, 검각의 강유를 끌어들여
주력군인 종회의 대군을 이끌어낼 생각이었는데..
어떻게어떻게 로또가 연달아 터지며,
조공이었던 등애군이 촉의 수도로 진군..
결국 촉을 멸망시키는 대공을 세우게되었다.
이 공으로 등애는 위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식읍을 받고
태위가 되어, 평민농부 출신이 가장 정점까지 오르는
신화를 썼다.
그러나..
고작 두달 후 촉 지방의 혼란 속에서 등애는 살해되었고,
나이 일흔에 정점에 올랐던 그는 순식간에 몰락했다..
264년, 70대의 나이로 아들과 함께 살해됨.
여러분은 저 중 누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시나요?
첫댓글 아니 중간에 무능력자 하나 껴있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 글만 읽어서는 등애나 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