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
"......."
서로 한참의 침묵을 지키며 시간을 얼마나 흘려보냈을까, 화련은 사내의 목에 가져다 대었던 손을 힘없이 내렸다.
적으도, 그렇다고 싸울 마음조차 없는 상대를 경계하는 짓은 자기 자신만 힘빠지는 일이였다.
화련이 손을 치우자 사내가 한발자국 앞으로 몸을 뺀뒤 목을 한번 쓰다듬으며 뒤돌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분명한 신장차이는 있었지만 그녀는 사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사내가 잠시 놀란듯 눈을 크게 떻다. 전에는 분명 검은색 눈동자였는데 이번엔.. 푸른색이였다.
시중에서 파는 물감섞은듯한 푸른색이 아닌.. 정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바다색같은 눈동자에 넋을 빼앗기고 만다.
정신을 놓은 사내를 비추고 있는 바다가 움직인다. 잠잠했던 바다가 꿈틀거리더니 하늘을 뒤엎을듯 커다란 해일이 되어 사내를 덮쳤다.
마치, 자신이 그 해일에 휩쓸려 고통속에 허우적 되며 발버둥치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흠짓, 자신도 모르게 사내는 몸을 떨었고 망상속에서 그 또렿함을 잡아간다.
"...오랫만이군."
"......."
사내의 질문에 귀찮다는듯 화련이 머리를 쓸어 올린다. 한쪽 귀에만 걸려있는 초승달 문양의 귀걸이 흔들린다.
화련이 사내의 시선이 자신의 귀에 가있다는 것을 알자 자연스럽게 머리를 내려 시선을 차단했다.
귀걸이로도 알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저것은 '그림자 달'의 또 다른 상징. 한쪽에만 걸려있는 귀걸이.
그것하나만으로 눈앞에 있는 사내는 자신을 알아 볼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화련은 몸을 돌렸다. 상대할만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사내였다.
"이것으로 두번째인가."
"......."
"한번뿐인 인연엔 관심없다고 했지 아마.. 그렇다면 지금은 두번째이다."
"......."
"너의 이름은 무엇이지..?"
"......."
갈길을 가던 화련의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 벌어진 거리에서 화련이 몸을 틀고 사내를 감정 없는 눈에 담는다.
감정없는 그녀의 눈동자엔 비친 감정은 자신의 주위에 얼쩡거리는 파리새끼 한마리를 보는듯한 하찮고 귀찮은듯한 표정이였다.
그 당당하면서도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시선에 사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쳐졌다.
"...한번은 관심없다고 했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두번째에서 관심이 가져질리 없지 않은가."
"......."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마치 '낚였다.'하는 표정이였다. 그때 공사장과 다른.. 표정이 들어나는 모습에 화련이 인상을 썼다.
순간.. 누군가 떠올랐는데, 누군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까 보였던 표정은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로 벌려진 거리를 좁히며 화련에게 다가가 멈춰선다.
"..그날, 같이 있었던. 정진고의 '정시후'를 알고 있나?"
"알면서 묻지 마라, 짜증난다."
화련의 날카로운 일침에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기는 켜녕, 피식- 웃고 만다.
"..윗대가리들의 두뇌 구조엔 관심도, 알고 싶지도 않지만."
"......."
"자신들의 이익에만 눈먼 자들의 생각이란 뻔하지."
"......."
화련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정시후. 왜 그의 이름만 들어도.. 이렇게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일까.
"..정진고의 '정시후'와 니가 말한 윗대가리들과 관련이 있단 말인가."
화련의 말에 사내가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궁금해 진다. 점점. 정확히 알아 들었다. 자신의 말을.
그리고 그때 봤던 힘, 기술, 그리고.. 명령적인 어투와 어울리는.. 함축적인 용어들.
도대체 저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18의 나이로.. 어떤 인생을 살아온지 점점 궁금해 진다.
"그런것쯤이야,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사내의 말에 화련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 시간 있나."
"......."
"잠시 들릴곳이 있다."
"......."
"물론, 댓가는 있다."
"......."
사내의 말에 화련이 잠시 뜸을 들인다. 굳이 그에게 듣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자신옆에는 현재 '유'가 있었다. 저 눈앞에 있는 사내가 알고 있는것보다 훨씬 더 많고 정확하고 세세한 정보들을 손에 안겨줄..
자신의 말 한마디, 해달라는 그 한마디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해다 줄 소중한 존재가 옆에 있었지만..
화련은 사내의 입에서 들어도 손해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짜피 이유 없이 정시후에게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
"앞으로 2시간."
화련의 말에 사내가 그럴줄 알았다는듯 힐끔, 자신의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시선을 따라 내리던 화련의 머리위로 물음표가 뜬다.
사내의 손에 담긴 정성스레 포장된 과일 바구니. 저것을 들고 어딜가고 있었던 것일까..?
덩치에 안맞은 언밸런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일바구니에 가있던 시선을 들어 사내를 보며, 짦막하게 내뺃는다.
"안 어울리는군."
"굳이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사내 역시 지지 않고 맞받아 친다. 화련은 불쾌한 기색없이 사내에게 어서 이동하라는듯 한 눈빛을 보내자 사내가 뒤돌아 걷기 시작한다.
들어왔던 골목을 나가고 사람들이 많은 시내를 걸을때 동안 사내는 한마디 하지 않았고 묵묵히 자신의 걸음을 걷고
화련 역시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딱히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내가 걸음을 멈추자 화련은 파란 두눈을 깜박 거리며 커다랗고 하얀 걸물을 올려다본다.
'...가야 할곳이.. 여기 인가..?'
그제서야 사내의 손에 들린 과일 바구니의 용도가 이해가 됬다.
2m나 가까이 되는 키에 떡벌어진 어깨.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도배한, 보통 성인 남자도 추츰하게 만들 덩치에
심상치 않은 기운까지 더해지자 안내 데스크를 지나 복도를 걸어가는 그의 주변엔 소음이란 찾아볼수도 없었다.
커다란 거구의 남자가 지나가자 알아서 길을 비켜주거나 힐끔, 하고 쳐다볼 뿐이였다.
거구의 사내의 발걸음 소리만이 잠시 울려퍼지고 지나가자 남모르게 숨을 돌리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숨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덩치에 가려져 뒷편이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바닷빛 눈동자를 가진 교복을 입은 소녀가 소리 없이 사내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허리뒤에서 찰랑거리를 긴 검은 머리를 새카만 색을 바라보듯 한치의 빛을 허용하지 않은 완전한 검은색이였다.
시선조차 흡수하는 검은 색 무릎근처에서 흔들리는 머리카락색과는 대조되는 허여스름한 얼굴에 박혀 있는
사파이어빛 두개의 보석은 무심하게 빛나고 있었다. 늘씬하게 빠진 몸매에 소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성도 아닌.
그 어중간한 형태의 체형을 가진 그녀는 몇년뒤가 정말로 기대될듯, 눈을 땔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해 사람들의 시선을 잡고 있었다.
가는 손을 들어올려 쓸어 올리는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공중에 너울거리며 한쪽 귀에만 걸리 은빛 귀걸이의 존재를 잠시 부각시켜준뒤 사라진다.
물리 흐르는듯 자연스러운 모습에 손댈 수 없는 존귀함에 그저 얼굴을 붉힌 채로 자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조차 잊어버릴듯
멍한 시선으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쫒을 뿐이였다.
"...대단하군."
"....?"
"흐음.. 자각이 없는 건가..?"
"......."
앞서 걸어가다가 살짝 뒤돌아 보고 뜬금없이 내뺃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번 눈을 껌벅이자 사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대답을 요구하는 화련의 눈빛에 사내는 이런 좋은(?)것을 알려줄수는 없다는듯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려 앞을 볼뿐이였다.
혹시나 자신이 놓친거라도 있는 것일까? 그럴리는 없다는 생각에 화련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 봤다.
하나같이 똑같이 한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을 보낸다.
사내가 멈춰선 곳은 개성없이 생긴 똑같은 병실문짝중 하나였다. 사내의 발걸음이 문앞에 멈춰서더니 뒷따라 멈추는 화련을 쳐다본뒤 문을 연다.
사내의 커다른 덩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3인병실 안에서 걸죽한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하! 그래서 말이야... 형님!"
"형님! 이제 오십니까?!"
"안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래."
자연스럽게 병실안으로 들어가는 사내를 쫒는 6개의 눈동자. 모두 각각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과일 바구니를 작은 냉장고 위에 올려 놓으며 목 아래 전신을 붕대로 감고 팔다리, 흉부에 깁스를 하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간다.
창가쪽 침대에 누어 팔에 몇개의 링거를 맞은채 가슴 부위에 단단해 보이는,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이는 깁스를 하고 있었다.
젊은 얼굴에 해맑게 웃는 모습이 절대 요 몇칠간 중환자 실에서 죽다 살아난 사람이라곤 보기 힘들 것이다.
옆에 앉은 사내와 맞은편 창가쪽에 누은 사내가 외관상 상당한 부상을 입은듯 했다.
기이하게 꺾였던 팔과 다리는 깁스를 하고 얼굴에는 붕대와 거즈가 즐비했다. 몸도 성치 못했다.
늑골이 나가고 인대가 다쳤었다. 그 누구 문병안 안올동안 하루하루 끊임 없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들어와 직접 과일까지 깎아주는
형님의 정성과 무뚝뚝한 얼굴과 눈빛이지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걱정스러운 마음은 그가 하는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몸은 어떤가..?"
"행님, 걱정하지 마이소. 기철의 철자가 쇠철 아임니까?! 지는 괜찮습니다!"
표준어와 방언을 섞어쓰며 씨익- 화사하게 웃는 젊은 사내를 보며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였다.
일요일 저녁까지 이상한 기계들 사이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죽은듯 잠들어 있었다고 생각하기 힘든 상태였지만
이제는 좀 살만한지 움직이지도 못한 몸이 불편한지 안그래도 시끄러운 놈이 말수만 늘었다.
"형님! 저녀석 아주 멀쩡합니다요, 암요!"
"맞습니다! 아주 귀에 딱지가 않겠습니다! 옆에서 얼마나~ 쫑알쫑알, 전생에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아주 시끄럽다 못해 이제는 저녀석 목소리만 들어도 속이 덥수룩합니다."
"아따, 행님들. 좋다고 웃으실때 언제고 와, 이제와서 딴소리 십니까?!"
사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듯 3개의 입에서 와르르, 쏟아진다.
사내는 그런 말들을 듣다 '아!'하고 짧은 탄성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일순간 다른 사내들이 입을 다물고 커다란 사내를 바라보았다.
"....기철아."
"예예? 행님?"
"놀라지 말거라."
"예? 예이?"
환자는 절대 안정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는지 전신에 붕대를 감은 가장 기철이라는 사내를 불렀다.
사내는 기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내는 몸을 돌려 문가에 무표정으로 기대던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화련을 본다.
화사했던 분위기가 한 순간 싸늘해 지는것이 느껴진다.
특히 기철이라는 사내는 아직까지 상황파악이 안된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 혀, 형님!!!"
"저... 저... 여자는...!!!"
두 사내의 경악어린 목소리가 화련의 귀를 강타했다. 화련이 긴 속눈썹을 들어 푸른 바다를 들어내 사내를 응시했다.
그녀였다. 자신들을 이렇게 만들고도 모잘라 꿈속에서 까지 찾아와 자신들의 괴롭히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하억─!"
기철이란 사내가 놀란듯 숨을 들이켰다. 가슴 부근에서 꽉 막힌 무언가를 느꼈다.
"내가 올 자리가 아니였군."
"신경쓸 필요 없다. 내가 데리고 온것이니."
"......."
사내의 말에 화련은 비웃음을 닮은 미소라 볼 수 없는것을 지어줄 뿐이였다.
"...혀..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싸우러 온것이 아니라는거다, 내가 데리고온 손님.. 이라고 할 수 있겠군."
아무일 아니라는듯 무뚝뚝한 사내의 어조에 기가막힌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눈앞에 여자가!! 어떤 자인지 알면서!! 당한것은 눈 깜박할 세였다!
느긋한 물이 흐르는듯 자연스럽고 가벼운 동작이.. 어느새 자신의 목숨을 조이고 있었다.
고르지 못한 호흡, 생살을 가르는듯한 잊을 수 없는 통증, 그리고 아득해지는 정신속에서 오만하고도
당연하다는듯 마치 하찮은 미물을 보는듯한 소름끼치는 시선으로! 쓰러지는 자신들을 내려다 보는 여자.
절실히 느꼈다. 언제나 죽음을 마주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죽을 수도 있겠다 라고 느껴지는 통증 앞에선..
살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 강자였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뼛속까지 얼어붙는 차가운 무언가의 그림자에 정복당했다. 무언가를 품고 있는 눈앞에 여자는.. 솔직히 말해.
두려웠다.
"앉겠나?"
"......."
"아니 앉는게 좋겠군. 신경쓰지 마라. 권유다."
"......."
사내가 조용히 눈짓하는 곳으로 화련은 걸어가 앉았다. 기철의 침대에 놓인 보조 의자였다.
기철이 흠짓! 하고 몸을 굳히며 그녀를 힐끔, 힐끔 쳐다본다.
"..히끅!"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기철이라는 사내가 급격하게 숨을 들이쉬더니 얼굴을 시뻘게 물들인다.
화련의 푸른 눈동자에 붉게 물든 자신을 보자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더 빨개지다 이내 펑~ 하고 터진다.
"...뭐하는 거지..?"
기철의 반응을 빤히 바라보던 화련이 얼굴을 찡그리며 자신을 대리고온 거구의 사내에게 물었다.
인상 찡그린것 조차 아름다운 얼굴위에선 하나의 조각처럼 빛난다.
"....나도 모른다."
"혀, 형님.. 기..기철이! 이러다 심장마비 일으키겠습니다!"
보다 못한 건너편 사내가 소리쳤다. 가만히 보고만 있는 사내가 답답했는지 몸을 움직이려고 아둥바둥 하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는다.
"..지...지는.."
"......."
"기..기철이라.. 해유.."
"......."
시뻘개진 얼굴로 버벅버벅 사투리를 내뺃는 기철이라는 사내를 불쾌하단 얼굴로 바라보는 화련.
힐끔 거리던 곁눈질이 푸른 눈동자와 딱 마주친 순간 숨넘어 갈듯 몸을 움찔! 떤다.
"...히..윽..!!"
숨넘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기철아."
"......."
"기철아."
"얌마! 형님이 부르시잖아!!"
"...예예?!!"
멍한듯 꿈에 빠져있던 기철이 얼른 고개를 돌려 창가에 기대어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얼굴과 아직까지 꿈에서 깨지 못한듯 몽롱한 눈빛이 사내의 눈썹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저 얼굴 기억나지 않는거냐."
"예..예? 지..지가 언제 저런.. 이쁜.. 얼굴을.."
"......."
"지는, 보는것만으로 황홀 하구만유... 헤헤헤.."
"......."
끝꼬리를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헤헤헤, 하고 바보같이 웃어버린다. 그나마 멀쩡한 손으로 뒷통수를 글쩍이며 멋쩍게 웃는다.
침대에 누워있는 또 다른 사내들은 뒤통수를 싸맬 수 밖에 없었다.
한가지 밖에 없었다. 이중 시골에서 온 놈이라 순박하기도 했지만.. 저렇게 얼빵할줄은 몰랐다!
어떻게.. 어떻게.. 저 얼굴을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인가!! 저 얼굴을!
그냥 봐도 잊을 수 없는 얼굴을....!! 저렇게 만든 얼굴을 어떻게 잊은채 좋아라 하고 헤헤헤! 하는 웃음을 흘릴 수 있단 말인가!
"바보군."
"예? ...헤헤, 지는 바보유.."
화련의 바닷빛 눈동자가 그에게 향하자 붉은 얼굴로 열심히 끄덕인다. 커다란 덩치에 꽤나 큰 눈이 참으로 선해 보인다.
화련의 시선이 사내에게 향한다.
"재미있어."
"......."
"..이런 바보가 있는 줄은 몰랐다."
"이렇게 바보일 줄은 생각도 못했지."
사내의 말에 화련이 작게 킥-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 숨넘어 갈듯 기철이라는 사내가 얼굴을 붉히며 투박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다.
화련의 시선이 침대에 누워있는 두 사내를 한번씩 훑어 내렸다.
그 섬득한 시선에 자신들도 모르게 시트자락을 움켜잡는다. 그 모습을 보았는지 피식- 하는 비웃음 소리에 얼굴이 새빨개 진다.
"마시겠나?"
다른곳에 시선을 두던 화련이 자신에게 날라오는 무언가를 가볍게 잡아챈다.
"이상한건 안 넣었으니 걱정 할 필요 없다."
"......."
넣어도 상관은 없었다. 왠만한 독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 있을 테고 그것을 구별할만한 혀도 가지고 있었으니.
하지만 화련은 마시지 않고 손을 조용히 내렸다.
계속해서 자신을 힐끔 거리는 기철이라는 사내의 시선이 온 몸으로 느껴졌지만 가벼이 무시한다.
"...이런 시답지 않은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 나를 데리고 온 것인가?"
"제시한 2시간동안은 따라와 주어야 댓가를 줄 수 있지."
싸늘한 화련의 말을 덤덤히 받아치는 그를 보며 화련은 오호~ 하는 표정을 짓는다.
마치 어린아이 애교를 감상하는 듯한 눈빛에 표정이 구겨진것은 오히려 사내쪽이였다.
"...고, 고럼.."
"......?"
"...두, 두시간... 동안.. 이, 이쁜.. 아씨.."
"......."
"여.. 여.. 게시는.... 거유..?"
"..그렇게 되는 거지."
"..(화끈~!) 지, 지는 좋구만유!!!"
상황파악 못하고 순진하게 빨개진 얼굴로 냅다 소리치는 기철을 보며 사내는 쿠쿡-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무표정인 화련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며 쳐다 본다.
사내가 쿠쿡- 웃다가 무표정인 얼굴인 화련을 향해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졌다.
"잘 어울리는군."
잠깐의 침묵, 화련의 얼굴에 물음표가 퐁! 하고 나타난다.
"헤헤, 해, 행님.. 부끄럽잖아유.."
기철이라는 사내의 말에 의미를 파악한 화련이 무표정한 얼굴로 살벌한 내용을 내뺃는다.
"죽여주지."
올라가는 손에 기겁을 반응한 침상위에 두 사내는 자신들의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도 잊고 사내의 앞으로 몸을 내던졌다.
***
"...제기랄! 미쳤어, 정시후!"
절뚝 거리는 다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나 진화련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일까봐 이 악물고 다리를 끌지 않은 그였지만
혼자서 한시간 넘게 돌아다니다 보니 자존심이고 뭐고 아파 당장이라도 어디 앉아 쉬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온 몸이 땀에 절어 찝찝했다. 게다가 삐걱 거리는 어깨는 도움은 커녕 오히려 짐만 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놓고 있지 않은 핸드폰, 벌써 몇통화를 걸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또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받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
[고객님의..]
"씨발!"
그의 사나운 욕지거리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힐끔, 쳐바보지만 시후의 날카로운 눈빛에 급히 시선을 돌리며 제갈길 간다.
지겨울만큼 들은 사무적인 여성의 음성이였다. 이제는 진절 머리가 난다.
그러면 그럴 수록 더더욱 그리워지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무심한 목소리가 그리워 지는 것이다.
듣고 싶었다. 마치 물 밖에 나온 물고기 처럼, 어서 한시라도 빨리 바닷속으로 그 몸을 담그고 싶은 마냥
끊임 없는 갈증이 일어났다. 제기랄! 시후가 욕을 내뺃었다.
멀쩡한 손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문득, 의사가 되도록 움직이지 말라고 짓걸였던게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없어도 잘만 살고 있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눈앞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안심이 될 수 없는 마음, 물가에 던져 놓은 아이처럼.. 초초하고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
또 다시 전화를 걸어보지만 역시나 신물이 날 정도로 똑같은 목소리에 핸드폰을 집어 던지려다 손을 내린다.
대신 으스러질듯 핸드폰을 쥔다. 이것이라도 없으면 연락할만한 것이 없으니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진화련. 너는 사람 화병으로 죽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지금 이말을 들으면 진화련이 깔보는 듯한 눈동자로 '시끄러워.'하는듯한 음성이 귓가에 맴돈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만큼의 그리움, 담배를 끊을때 나타나는 금단현상처럼.. 그녀를 그리워한다.
이것이 무슨 감정인지 생각해보지 않은 적은 없으나.. 혼자서는 답을 낼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는데도 부정하는 것일지도..
"씨발, 지금 그게 문제냐?!!"
쓰잘대기 없는 잡념을 지워버리고 또 다시 발걸음을 움직인다.
진화련! 정말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
***
"하아-, 하아..-, 젠장..."
이제 더 이상은 못 걷겠다. 깁스한 오른쪽 발목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해진 밤하늘, 낮을 싫어하는 녀석이라면.. 어딘가 몸을 짱박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훗- 하고 자조가 섞인 웃음이 나온다. 포기하자.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자.
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온 몸에 비가 내린듯 젖은 몸만큼 피로가 짓눌러 왔다.
몸은.. 집에 가라고 그렇게 외치면서도 이몸의 몸은 철저하게 머리를 배반한다.
짜증날 정도로 따로놀고 있었다. 슬금슬금 오기까지 생기기 시작한다.
"오냐, 해보자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쿡- 하고 미소가 생긴다. 미친것이 틀림 없다. 마치 그녀와 경쟁하는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정말 미칠것만 같았다. 가슴이.. 미칠듯 요동치고 있자니 두려움 마저 일어난다.
후- 하고 매연섞인 공기를 들여마신다. 담배가 절실히 그리워지는 순간이였다.
"...후..야!!"
"......?"
"..시후야! 얌마!! 정시후!!"
"......."
재빠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하지만 도로 건너편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자신을 향해 손흔들고 있었다.
"...형?"
피로에 쩔은 얼굴이 단번에 활짝- 미소가 펴진다.
자신을 동생처럼 생각하고 자신 역시 '유일하게' 가족이라 생각하는 사람!
자신의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사람.
"..형!!"
"하하! 오랫만에 본다! 임마! 건너가마!"
도로 건너편에 있던 유독 눈에 띄는 흑발을 가지고 있는 큰 키의 사내가 손을 흔들더니 커다랗게 소리친다.
횡단보도 쪽으로 움직이는 걸로 봐서 건널 모양이였다.
시후 역시 대도로에서 뜻하지 않은 만남을 가진지 피곤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환한 웃음이 번졌다.
절뚝 거리는 발로 횡단보도로 향하는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의 단축번호를 무의식 중에 눌러 귀에 가져다 댔다.
진절머리가 날만큼 들은 사무적인 기계 음성이...
[두─... 두─... 두─..]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사무적인.. 기계음이.. 아닌....
심장을 크게 울리게 만드는... 신호음,
멀리서 손을 흔들며 자신을 기쁜듯 부르고 있는 형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을만큼 뛰고 있는.. 심장이... 거짓말 처럼 움직임을 멈춘다.
[....왜.]
...이 무심한 목소리가.. 이토록 반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야.."
잠긴 목소리가 나왔다. 이성은 주체할 수 없을만큼 뛰는데.. 이상하게 심장은 잔잔하게 뛰었다.
목소리도 이상할만큼 침착했지만.. 몸은.. 그러지 못한것 같다.
[....병원.]
자신의 목소리에 한참 뜸을 들이 그녀가 말했다. 머리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병원..?
병원..? 병원이란.. 어디라도 아픈것인가?!!!
"....어디 아픈거야!! 아니!! 아니 어디 병원이야!!!"
그녀가 잠잠히 듣고 있다. 속 어딘가에서 울컥하는 것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어디냐고!!!"
또 다시 찾은 침묵이 지나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새하얗던 머리가.. 점차 이성을 찾는다.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마!! 기다려!!"
일방적으로 끊은 전화에 만나면 싸늘한 얼굴을 마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음과 동시에 오랫만에 듣는 목소리가 들린다.
"시후야!!"
어느새 신호등이 바뀌었는지 이쪽으로 빠른걸음으로 다가오는 형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뀐 반대편으로 뛰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형과 함께 회포를 풀고 싶었지만..
몸은 철처히.. 그녀를 향해 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시후야?!!"
뒤에서 들리는 의아한 목소리에도.. 발걸음은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진화련
이 세글자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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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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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의 사랑찾아 삼만리」[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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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꺄핫~ 재미잇게 보구가요..
하하! 즐겁게 읽어주세요^^*
잼있어 담편이 기대되
후- 전 늘 다음편이 막막하답니다..;;
시후.. 교통사고나.. 비슷한거 내시면 죽여버릴끄에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64.gif)
글구요.. 잼서여~!!
쿠, 쿨럭!! 죽이지 마세요!! 안죽어요ㅜㅁㅜ!!
어느 병원인지 알고 가는것인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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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는데로오~ 가겠죠-_-
재밌어요 >_< 아프면서 어딜 뛰어가는지 헤헷 담편도 빨리 보고싶어용
......병원으로 뛰어가요^^*(퍽!!)
>ㅇ< 꺄아아!! 다음편 완전 완전 기대요@!!@!
하하! 담편... 힘들구나아~!!
>ㅇ< 꺄아아!! 다음편 완전 완전 기대요@!!@!
뭐, 열심히 써야죠..-_-;;
재밌어요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