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Baudelaire
두편의 다큐와 영상 한편 보고 쓴 글
<비용을 북한이 아닌 동유럽에서 부담한거라
유학보다는 위탁 교육이란 말이 적합할 수도 있음>
세계 2차 대전의 여파로 동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좋지 않았고 특히 폴란드는 나라가 폐허가 된 수준이었는데 왜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싶은 의문이 드는데
1. 남한은 고아들을 자동차 수출하듯 입양보냈지만 우린 같이 책임진다!하는 사회주의 국가들 나름의 연대와 체제선전용이 가장 컸고
2. 2차대전 당시 폴란드 난민 2만명을 인도에서 받아줬는데 인도 역시 영국의 식민지로 힘든 와중이었거든 거기에 큰 감동을 받은 폴란드는 자기들도
도움이 필요한 나라가 있다면 무조건 동참하겠다는
열망이 강했대
그렇게 폴란드, 체코, 헝가리,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로
가게 된 아이들은 공식적으로 5000명
비공식적으론 10000명 정도로 추측 중이야
아이들은 하루에 다섯끼를 제공받고 당시 최고의 의료진들이 기숙사에 배치되는 등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동시에 북한에서 따라온 선생님들에 의해 철저한 사상교육과 감시도 함께 받았어
같은 사회주의라도 북한과 동유럽은 넘나 차이가 컸기에,,,
얼마나 부르게 했으면 동창들도 지금껏 기억하는
김일성 찬양송 ㅎ
북한은 현지인 선생님들에게 애정을 주지말라고 당부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어
선생님들 역시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었기에 이들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거든
아이들은 늘 이 말을 외치며 군대처럼 발을 맞춰
걸어야만 했는데 종종 현지 선생님들은 야외 수업을
핑계로 아이들을 숲에 데려간 뒤
여기선 발맞춰 걷지말고 마음대로 뛰어놀라고 해줬대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도 있어
전쟁 중 전선이 두번이나 이동하며 종종 북에 혼자
남겨진 아이들이 있었다고 ㅠ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정신적 압박이 강했던 아이들은
정말 독종 같았대
피지컬이 밀림에도 불구하고 운동경기도 잘했고
싸움이 나면 상대방이 쓰러져야 끝났다고해
스펀지마냥 언어도 문화도 빠르게 흡수하며
적응한 아이들
그러며 다양한 국제커플도 탄생했는데 뒤에가서
한번 더 나올 예정이야
1950년대 후반 동구권에도 자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해. 민주주의를 외치는 헝가리 혁명에 북한 아이들이 가담을 하고, 학교를 탈출해 난민 신청을
하려다가 발각되는 경우가 여럿 발생하며
김일성은 불안감을 느끼게 돼
위탁교육은 아이들을 나라를 재건할 인재로 만들 좋은 기회였지만 그 이상의 자유까지 맛보게 한거지...
하늘을 날아본 사람이 어떻게 땅만 보고 살겠어
전원 소환 명령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 아이들
기차를 타고 북한으로 들어가면 한명은 여기서 내리고 한명은 저기서 내리고 하는 식으로
가족같던 애들을 다 떼어놨대 ㅠ
그 열차에는 루마니아-북한 국제부부인 미르초유,
조정호도 있었어
둘은 교사였고 양국의 승인을 받은 결혼이었지만 미르초유가 잠시 딸의 치료를 위해
출국하자 북한은 재입국을 허락하지 않았어
탄광으로 보내졌단 편지를 마지막으로 남편과의
연락은 끊기게 돼
돌아간 아이들이 동유럽으로 보내온 편지
선생님을 어머니, 아버지라 불렀었고 당시 북한은
편지를 검열할 능력도 없어서
국제우편은 막지 못했대
사진 속의 원둔촌이라는 아이는 걸어서 폴란드로 돌아가겠다며 국경을 넘으려하다 늪에 빠져 사망했는데
그 역시 다른 아이들이 보내 준 편지를 통해
선생님들이 알게됐어
물론 편지마저 곧 막히게 되는데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김정일의 지시라고 알려졌어
돌아간 아이들 중에 외교관, 교수 신분으로 다시
동유럽을 방문한 사람은 4명 정도래
위탁 교육의 시작은 체제선전이었으나
이들의 사이엔 그 어떤 정치적인 이념도 없이
그냥 연민, 사랑만 존재했더라
첫댓글 ㅠㅠ 여기선 마음대로 뛰어놀라고 했다는 거 넘 따숩고 맘아푸다
너무 슬프다
ㅠㅠ슬프다 글 고마워
ㅜㅜ
너무 슬프다.............진짜 김일성 김정일 나쁜새끼들
진짜 슬프다
마음아프다 .. 하.. 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