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사
일초 일초를 어떻게 지내느냐가
일분을 어떻게 잘 지내며 일초 일초를 어떻게
가다듬느냐에 따라서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내가느냐가
결정이 되고,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하느냐가
결국은 하루를 어떻게 알뜰하게 지내느냐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님 법문을 듣고 경을 읽고 헌 것도 중요하고
계율을 지키고 부지런히 일도 하고 또 보시도 하고 허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나,
팔만세행(八萬細行)이
결국은 우리의 한 생각을 어떠헌 마음,
어떻게 단속허느냐가... 에 따라서 팔만세행이 결정이
되는 거고,
결국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해나가느냐가
천당에도 가고 지옥에도 가고 인도환생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참선이라고 허는 것은
그 한 생각을
화두일념에다 집중을 해서
화두, 활구참선은 의심, ‘이 뭣고?’
무자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거각을 해가지고
그 의심이 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희미해지거나
딴 생각이 들어오며는 또 ‘이 뭣고?’ 그렇게 화두를
어떻게 단속해나가느냐가
한생각을 단속하는 방법이며,
한 시간을 어떻게 지내냐가
그 화두를 어떻게 거각 허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앉아서도, 서서도, 걸어가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그 자기의 본참화두를 거각해나가는데,
가장 정말 정신 차려야 할 곳은 남이 자기에게 억울한
소리를 허거나 자기의, 자기에게 욕을 허거나
오장을 뒤집은 그런 말을 허거나 그런 광경을 보았을 때
그때 그 듣는 데로 쫓아가지고
오장이 뒤집어지면 그 사람은 제대로 정진을 허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 오장이 뒤집어질 그 마음을 들은 그 찰나에
그,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 뭣고?’ ‘이 뭣고?’
한 번 해도 잘 안되면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그밖에 오장이 뒤집어지지 아니헌 때에는
그냥 항상 심호흡(深呼吸)을 하면서 ‘이 뭣고?’
이렇게 단속해나가서,
그렇게 항상 그렇게 해나가는 사람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바로 자기의 본참화두로 그런 것을 다 이겨나가고,
오히려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깨달음의 길로 돌아오기 때문에 역경계를 만나는 것이
자기를 꼭 해롭게만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세속에 사는 데에도 어려운 난관 일을 당함으로 해서
정말 자기의 인생, 참 인생을 되돌아보고 ‘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인가.’
이 길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제정신을 못 차린 사람은
좋은 일을 당해도 그걸로 인해서 자기의 바른 길을
놓치게 되고 역경을 만나면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신세한탄을 험으로 해서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
그 친구 간에 웬수가 되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참선을 허는 사람은
어떠헌 경우를 당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로 돌아오고 바른 공부로 나아가기 때문에, 활구참선법, 정법, 이 최상승법(은 그래서,
그래서 우주법계의 모든 법 가운데에 최고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산승은
사주를 잘 보는 사람들이 나보고 말하기를,
“여든 여섯(86)이 되면 죽을 수가 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백 프로 사주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이 본래 「생사(生死)는 호흡지간에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 호흡,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요 내생이거든.
나는 그것을 철저히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죽을는지 앞으로 한 시간 후에 죽을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마는,
그렇게 ‘생사가 호흡지간에 있다’고 허는 말을 철저히
믿기 때문에 그렇게 믿음으로 해서
이 세상에 명예니, 권리니, 지위, 부귀니, 그런 데 생각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사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러헌 말씀을 하게 됩니다.
확실히 ‘생사가 호흡지간에 있다’고 허는 것을
철저히 믿기만 허면
그것이 무상을 깨닫는 거고 무상 속에서 영원을 찾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