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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님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가까이보니 굉장히 미인이시군요.."
"드레스가 잘 어울리기때문이겠지요."
나는 낯이 뜨거워 긴 머리중간에 걸린 연분홍의 베일을 끌어당겼다.달아오른 뺨을 가릴게 없었다.그가 슬며시 내손을 잡더니 베일을 뒤로 당겨 원위치로 늘어뜨렸다.
"굳이 얼굴을 숨기려할 것 없다."
그가 낮게 속삭였다.단장한 내 용모가 무척 마음에 드는 듯했다.그 귀부인이 솜씨가 뛰어난 건 인정해줘야할것같다.
내가 오늘 최고의 미인이라고말하는 걸보니..
내옷은 흰색의 실크에 분홍색이 허리아래부터 약간씩 도는 드레스였다.
눈에 띄는 보석은 황제가 선사한 루비목걸이하나였지만ㅡ개선식에 불참한대신 황궁에서 신전으로 시종을시켜 약속된 보수인 금화가 든 상자와 함께 전장에서의 기적에대한 치하로 선물로 보내주었다.ㅡ역시 분홍과 흰색의 장미생화로 머리와 가슴을 꾸며 청순해보였다.
나를 치장해준 귀부인이 봄의 여신처럼 보이게하겠다고 자신했으니..항상 롤빵처럼 빚어올려 캡아래 감추던 머리칼을 빗질하고 길게 늘어뜨려 작은 진주박힌 머리핀들로 장식하면서 내피부가 희고 깨끗하고 고와 굳이 짙은 화장이 필요없다고 말했다.어차피 사제들은 화장을 거의 않으니 황궁의 귀부인들처럼 짙은 화장은 내가 견더나질 못했다.
로렌도 평소처럼 흔한 검은 예복이 아니라 기사단의 은실로 자수를 놓은 남색과 흰색의 정복차림이었다.기사단장들과 휘하기사들이 모두 기사단의 정식복장으로 한껏 멋을 내고 모여있었다.
개선축하파티는 아주 호화로았다.꽃과 와인,샴페인향이 넘쳐났다.황제의 장황한 치하가 끝난뒤 나는 로빈황자와 로렌 몇기사단장들과 제국의 수호자로 소개되었다.귀부인들은 실크드레스와 보석으로 늙던 젊던 이루말할수없이 호화로운 차림들을 하고 귀족들은 축하인사를 되풀이하며 황제부부와 승리의 주역들곁으로 모여들었다.유감스럽게도 그중에 내가 끼였다는 것이다.
"사제님?"
"아..네.."
"수호천사들의 출신이 국교가 아닌적이 드문데.. 사제님은 신교의 신전이시더군요."
"아..네. 신교입니다."
나는 국교신자인 귀족들로 둘러싸인 황궁에 와있으니 소규모신교출신이란걸 내세우고싶지않았다.그러니 곤란한 질문에는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귀족들이 상냥하게 구는 것도 내색은 못하고 불편할수 밖에 없었다.
몰려든 사람들은 내 미모와 전쟁의 공적을 칭송했지만 나는 불편하고 부끄러워 미소지으면서도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보고 자랑스러운듯 웃었지만 그의 노려보는 시선한번에 몰려든 사람들의 쓸데없는 말들이 뚝 끊기고 인사를 마치자 조용히 흩어졌다.
지난번 신년파티때는 내주위에서 힐끔거리며 호기심어린 시선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귀족들이 낯뜨거울정도로 아부하며 접근하다못해 궁중의 시종들까지 내 눈치를 보았다.나는 나에대한 온갖 헛소문이 떠도는 걸 깨달았다.치유력이 역대 최대란 평부터 보기드문 절세의 미인이라는 말과 황족만큼 고귀한 핏줄이라느니 세기의 명의라니..민망하고 낯뜨거운 아첨들이었다.
나와 안면을 익히려는 몰려드는 귀족들때문에 내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그는 꽤 신경쓰고 있었다.
"몇달새에 사람들 시선이 너무 변하는군요."
"그때는 그대는 신교사제출신인 여의사라는 직위뿐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않은가?"
"남들이 너무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뒷담화를 하고있는 듯 해요."
"왜?싫은가?"
"저는...주시받는다는게...싫어요."
나는 얼굴을 붉혔다.
"신전의 아름다운 여사제와 용맹한 젊은 귀족의 연애는 충분히 낭만적인 일이아닌가?"
그가 내머리위로 얼굴을 기울이며 빙긋 웃었다.그가 다시금 내 머리위에 당겨쓴 베일을 끌어내렸고 내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황궁에서는 노부인들이 아니면 베일을 쓰지않았고 대부분 보석장식이나 타조깃털이 아니면 화관으로 꾸미고 다녔다.황궁에서 베일을 쓰는 것은 구식이었지만 그 귀부인은 내가 사제라는 데 신기함을 더하려고 섬세한 레이스의 베일을 내머리에 반쯤 걸쳐주었다.나는 일부라도 얼굴을 가릴수있어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확실히 그것은 낭만적인 로맨스였다.
내가 수호천사가 아니고 그가 공작이 아니었더라도..
나도 내 용모가 미인 축에 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나를 만난 환자들이 자신들이 본 여의사나 사제중 가장 아름답다고 종종 칭찬했으니..내스스로 용모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삼촌의 말에따르면 돌아가신 내어머니는 그시대의 황족중 꽤 아름다운 분이었다고한다.,황녀들도 질투할만큼 ...그런 어머니를 닮았으니 신전에서 썩기는 아깝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이번 전쟁에 내보낼때도 삼촌은 혹시 로렌 멜튼경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면 귀족 자제들을 잘 사귀어보라는 말도 했었다.
어쩌면 그는 나를 유력가문의 자제에게 시집보내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네네도 맞은편에서 먼저번 원정에 참여한 기사와 춤추고 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았다.
네네는 평민 어머니와 시골귀족인 아버지사이에서 태어나 나처럼 귀족의 피가 섞인 탓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까진 귀족영양같이 자랐다고했다.그래서 춤도 화술도 꽤 능숙했다.
사제가 되기로한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순전한 자신의 결정이다.사제생활이 맞지않는다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늘 하고 있단 걸 삼촌도 알고 있다.
젖먹이때부터 신전에서 자란 나보다 더 귀족스러웠다.비록 내 모친이 황족출신이라지만 나는 황궁의 귀족사회에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삼촌이 내게 가르칠수 있는 것은 모두 가르쳤는데도...
"그대는 앞으로도 계속 주시받아야할거야..궁의 파티는 처음이라면서 궁중예법에 밝더군.어디서 배운거지?"
"삼촌이 같이 궁에 올때마다 가르쳐주었어요."
"아, 대주교도 정기적으로 황궁에 들릴테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고의 지원을 받는 신전의 사제들은 정기적으로 황궁에 보고를 하고 설교와 예배를 주관하기도한다.
그때마다 삼촌은 늙은 유모에게 나를 깔끔하게 단장시켜 데려오며 황궁의 귀부인들에게 인사를 시키기도했다.
하지만 나는 달갑지않았다.그녀들의 속삭이는 뒷담화가 항상 불쾌했기때문이다.
전대 대공의 손녀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민이나 다름없는 한미한 가문의 남작과 결혼해서 낳은 유일한 딸이라는..
"그대가 황녀만큼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건 아는가?
사제가 아니더라도 어딜가든 쉽게 눈에 띌텐데..."
그가 아쉬운 듯 물었다.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고 버티고있느니 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편이 맘이 편하겠어요."
"그럼 ..나의 출정때마다 종군사제겸 군의로 동행하겠나?"
"또 사람죽는 걸..시체가 산처럼 쌓이는 걸 억지로보라구요?"
나는 얼굴을 붉히며 낮게 소리쳤다.
그가 하하 호쾌하게 웃었다.
"내곁에 제국의 수호천사가 될 사제가 있는데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문득 웃음을 그치고 한숨을 쉬더니 내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황궁은 전쟁때마다 그대를 상징적존재로 선두로 세우려하겠지.."
그의 손의 너무나 부드럽게 내 금갈색머리를 쓰다듬었다.마치 아이를 억지로 떼내는 어미처럼 애처롭다는듯..
나도 따라 한숨을 쉬었다.
소신전에서 부사제로 사제지원생들을 가르치고 신전의 병원에서 의사노릇을 겸하면서 인생을 보낼 계휙이 완전히 망가졌다.
"의학은 누구에게 배웠지?"
"삼촌은 사제이면서 의사세요."
"아..그래서 그대에게 모든 걸 가르쳐준거군.평범한 사제치고는 학식이 박식하다생각했는데..."
그가 중얼거듯 평했다 .
"신성력이 있는데다 의학까지 배웠으니 최고의 후보지.."
"파티에만 오면 얼굴본적도 없는 귀족들 스캔들과 황궁암투까지 다 알게되네요.
"수호천사후보가 소규모신교에서 나왔으니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거지..그대의 위치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만만치않을테니..주의하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문에 별다른 말을 않고 있지만 긴장감이 도는 건 어쩔수없군요. .."
나는 정말 파티때마다 거의 입을 닫고 있었지만 수호천사후보라해도 내위치가 애매한 건 확실히 느낄수있었다..
황족과 평민사이의 유복녀,국교인 구교도 아닌 교세가 약한 신교의 여사제..거기에 황실과 대립하는 젊은 공작의 연인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이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황실에서 보기에는 모든 마땅치않은 조건을 가진 후보였던것이다.비록 역대 수호천사들이 대다수 평민출신이었다해도..
"그만 돌아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얼굴비출만큼 비추었고 귀족들 뒷담화를 듣고 있기도 피곤하니 돌아가서 공작저나 신전의 응접실에서 따뜻한 차나 한잔하고 싶었다. 그는 시종에게 마차에서 내망토를 가져오게해서 어깨에 걸쳐주었다.
귀부인이 드레스와 같이 맞춰준 흰담비털이 달린 장미색의 망토였다.
"사제님 저희집다음주 파티에 꼭 초대하고 싶습니다만 두분이 같이 참석하시면 영광이겠습니다."
"사제님의 신전에 한번 들러뵙지요."
궁의 넓은 대리석계단을 내려오는데도 따라붙는 귀족들에게 나는 엄청난 초대부탁을 받았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와 서둘러 파티장을 나왔다 .
로렌은 정말 내 주변을 걱정하고 있었다.신전에서만 자라 궁중의 귀족사회나 세상물정에 어두운 내가 엉뚱한 일에 말려들까봐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봐 불안한 듯했다.
하지만 계단 끝에서 우리는 생각지못한 불청객을 만났다.
등뒤에서 들리는 낯익은 음성에 나는 깜짝 놀랐다.
"사제님 멜튼경, 왜 벌써 돌아가는 겁니까?"
로빈황자였다.돌아보니 그는 흰색과 황금색으로 지은 기사단의 정장차림이라 태양에서 태어난 사람인양 위엄있어보였다.가지런히 빗질한 금발,조각같은 얼굴선의 혈색좋은 얼굴빛..
"씨씨가 피곤해하는군요.몸이 아직 좋지않아.. "로렌이 머뭇거리며 답했다.
"아...사제님은 전장에서 심신이 과하게 혹사하셨지요."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신성력이 높은 치유사를 한명 보내드리지요."
"아..네..그토록 마음을 써주시다니.."
나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어머님이 사제님에대해 안부를 궁금해했는데 며칠 지나고 한번 황궁에 문안차 들리시지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마차에 오르며 가만히 살피니 로렌은 아까부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황자의 말이 당신을 불쾌하게 한 건가요?"
"무슨 속셈인지 뻔히 보이니까.."
그가 얹잖은 듯 대답했다.
정말 다음날 신전으로 황후의 치료사가 찾아왔다.돌아오자마자 며칠동안 몰려든 환자로 나는 피곤해 녹초가 되어 오후부터는 병원에나가지못하고 삼촌의 말대로 쉬기로 했다.
침실에서 누워 있던 나는 의아해하며 흰옷차림의 중년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황후께서 걱정하셔서 들러보라고하셨습니다."
"황후께서요?" 나는 일개 신교의 사제이고 가끔 불려가는 젊은 여의사일뿐인데..황후가 나에게까지 신경을 쓴단말인가?
"여의사신가요?"
"저는 단지 구교의 사제입니다.다만 치유력이 좀 있어서 황후마마를 돌보고 있지요.젊었을때 의술도 좀 배웠습니다."
그녀가 내 이마위에 손을 얹었다.과연 치유력이 있었다.그녀는 원정간동안 황궁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주었다.황제가 얼마나 원정의 성공을 기대했는지 황후가 얼마나 황자의 안위를 노심초사 했는지...내안부도 궁금해했다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귀찮게말고 내버려두는게 고맙겠다.수많은 황족처녀들과 귀족영양들중 내게 관심가질 필요가 뭐 있담...로빈황자가 내 주위를 맴도는 듯한것도 달갑지않은데...
문득 밖이 소란스러지며 발소리가 들렸다 .
"씨씨.몸은 어떤가?"
문이 열리며 로렌이 들어섰다.
"웬일이세요?이런 시간에?"
아직 해질녁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반색을 하며 일어났다.
"네네가 당신이 아프다던데..."말하는 걸보니 병원에 들렀다가 별관의 내거처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궁에서 나온 중년의 여사제는 그의 상기된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머리숙여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돌아갔다.
"웬 구교사제지?"흰색에 보라색이 섞인 문양의 사제복으로 그는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고 이상한 듯 물었다.
"황후마마가 보내었어요.몸이 불편하니 날 좀 돌봐주라고 ..".나는 대수롭지않은 듯 대꾸했으나 그는 다소 얹잖은 듯 말했다.
"글쎄...뭔가 염탐하는 듯한 눈빛인데...?"
"염탐이요?"
내가 의아한 듯 묻자 그가 대답했다.
"당신주위를 별다른 일이 있는지 알아보는거지.가령 수호천사가 될 처녀에게 귀족들이 몰려와 들러붙는다든지....황궁을 헐뜯으며 황족들과 이간질시킨다든지. .."
그가 얹잖은 듯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일주일쯤 뒤에 황궁에서 전갈이 왔다.황후가 감기로 몸이 좋지않으니 와달라는 것이다.
우울증이겠지..궁에 감기정도를 치료할 의사들이 없을 리없다.
"어서 와요.씨씨 사제.."황후는 의외로 미소지으며 나를 맞았다.
나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물었다.
"감기에 걸리신건가요?기분이 좋지않으십니까?"
"사실은 핑계요.씨씨사제가 보고 싶어서 이야기나 나눌까하고...여전히 미인이군.그래 전장에서는 어땠나?"그녀의 회색눈이 궁금증에 차 있었다.
"들으신대로 아시는 바입니다."
나는 내행적에대해 내세우고싶지않아 얼굴을 붉혔다.
시녀가 차를 내왔다.잔을 집어든 순간 황후가 기침을 쏟으며 잔을 엎질렀다.
나는 재빨리 황후를 부축하려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네.잠시 사레들린것뿐이니.".온화한 미소를지으며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정원이나 산책할까?봄볕이 좋군.."
나는 황후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곧 여름이네요."정원에는 색색의 장미와 향이 강한 흰백합,튤립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미안하군.유쾌한 티타임을 보내려했는데..
그런데 사제님은 전보다 야윈것같은데...?"
"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병원일로 바빠서요."
"전보다 허리도 가늘어졌어.."
순간 나는 황궁의 선물들이 어떻게 내몸에 딱 맞았나 깨달았다.내어깨위에 얹혀있던 그녀의 손이 슬며시 내려가 내 등을 어루만지고 나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지난번 황궁에 불려온 이래 황후는 면밀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제국에서 유행의 선두를 달리는 황후이니만큼 여인의 몸치수정도는 금방 파악했을 것이다.순간 기분이 묘했다.어쩐지 놀라운 감정이 웬지 불쾌해가며 가라앉았다.
"내일 궁에서 기사들과 운동경기가 있는데 황자들도 참여한다오.참석해주었으면하오."
"말씀은 황송하지만 병원일이 바빠서.."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싶었다.로빈황자와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오래걸리지않을 거요.황궁의 귀부인들에게 씨씨사제를 소개하고싶소."
"전 이미 폐하의 칭호를 받아서 최고의 치유사로 불리고 있는습니다.귀부인들이 절 필요하실때는.."나는 머뭇거리며 핑계를 찾았다.날 알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데 새삼스레 무슨 소개람?
"개인적으로 귀부인들이 씨씨사제를 만나고싶어한다오."
이쯤되면 거절할 핑계가 없다.
"그럼 감사히 참석하겠습니다."황후는 그제야 만족스러운듯 미소지었다.
황후의 초대이니 안갈수도 없지만 귀부인들의 쑥덕거림을 참고 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이왕 초대받아 가게 된일 내모습이 초라해보이지않도록 모양이나 내고가자는 심정으로 옷장을 열었다.뒷담화라도 좋게 들으려면,수다스런 귀부인들에게 얕잡히지않으려면 단정하게라도 보여야지않겠어?.황궁에서 선물받은 드레스들이 눈에 띄였다.로렌이 얹잖아 할까봐 만날때나 행사때도 한번도 걸치지않은 옷들중에 나는 진홍빛드레스를 펼쳐들었다.어깨가 살짝 드러난 상의는 분홍이었지만 하의는 스커트가 아래로 갈수록 색이 짙어져 여름장미같은 붉은 색의 실크에 은실로 자수가 놓여있었다.
옅은 화장을 한뒤 황궁에서 선물로 보내준 루비목걸이에 어머니가 남겨주신 진주머리장식을 올렸다.
때마침 황궁의 마차가 도착했다고 네네가 알려왔다.
"아가씨는 황녀보다 아름다와요."유모가 감탄하듯 말하며 역시 같은 감으로 지어진 진홍의 망토를 걸쳐주고는 나를 배웅했다.
" 씨씨사제.. 장미색이 잘 어울리는군.."황후는 나와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지었다.나는 고개숙여 절을하고 무릎을 약간 굽혀 인사를 올렸다.어쩌면 황자가 보낸 선물들은 황후가 골라준 것인지도..그렇지않으면 어떻게 그옷들이 내몸에 딱 맞겠어...?
"이리와서 앉아요."
"오.씨씨사제님이시군요."황후와 담소하던 호화로운 자줏빛드레스의 부인이 부채를 접으며 돌아보았다.
"멜후작부인,궁금해하던 씨씨사제에요."
"정말 미인이군요.거기에 사제님은 학식도 뛰어나 박식하다면서요."
"저기 대공비와 두카백작부인이 오는군요.이리 오세요.사제님."귀부인들은 서열대로 황후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내게 몰려들었다.
기사들의 경기는 말을 부리는 마술이였다.승마를 하며 기교를 부리는 경기였다.말과 기수들이 장애물들을 넘고 기교를 선보인뒤 귀부인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ㅡ 던지는 꽃과 손수건의 수로 ㅡ이로 결정된 우승자가 황후에게 장미의 관을 받기로 되어있었다.
여러명의 기사들이 각기 말을 타고 나와 기교를 과시했다.모두 훌륭했지만 나는 별 흥미가 없었다.황후곁의 내주위로 여인네들이 몰려와 퍼붓는 질문에 피곤하고 지루했다.
내색은 못하지만 기계적인 미소를 짓는 것도 지쳐갔다.빨리 끝나고 돌아갈 시간만 기다려졌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속삭이던 귀부인들은 로빈황자가 흰말을 타고 나오자 주위가 술렁였다.흩날리는 금발, 조각같은얼굴선,균형잡힌 훤칠한 체격..
그가 경기를 끝마치자 꽃과 손수건이 비오듯 쏟아졌다.
당연히 우승자는 그였다.
"씨씨.".황후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 속삭였다.
"이 화관을 황자에게 전해주렴."
"예?"나는 의아해 난처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미인 내가 아들에게 씌워주는 게 보기좋지않으니.."
나는 얼떨결에 장미의 관을 들고 단상앞으로 걸어나갔다.
계단을 올라와 한쪽 무릎을 꿇은 황자가 순간 나를 올려다보며 미소지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우시군요.사제님."
바람이 불어 내 진홍의 드레스스커트자락이 그의 뺨을 스쳤다. 그가 손을 뻗쳐 화관을 씌워주며 머뭇거리는 내손을 잡더니 내손등에 입맞추었다.
주위에 들리지않는 소근거림이 따가운 여인네들의 시선과 함께 퍼져나갔다.
"씨씨 .또 황궁에서 사람이 왔어."
"또 무슨 일이래?"
"황후마마의 티타임에 초대한다는데?"
어제는 황후의 병간호에 불려가고 사흘전에는 대공비의 부탁에 왕진가고.. ...
감기몸살정도야 궁안의 의사들이 치료하겠지만 여인네들 자궁이나 질출혈또는 갱년기의 병은 여의사가 아니면 남자의사에게 설명하기 곤란하니 나를 부른다지만..
문제는 황궁의 호출과 로빈황자의 선물공세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표내지는 않았지만 내가 받는 선물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금방 알아챌수 있었다.
이번에는 생각을 바꾸었는지 신전과 병원의 필요한 물건들이 주로 왔다.아마 내가 그가 보낸 옷들은 좀처럼 입지않을 거라고 여긴탓인지...
그와중에 귀부인의 물건들이 얹히는 건 덤이었다.향료나
은으로 만든 수술도구만이 아니더라도 황궁의 문장이 찍힌 섬세한 세공의 거울이나 향이 짙은 자작나무빗,상아의 머리핀,보석이 한두개씩박힌 머리장식이나 목걸이 ,브로치따위는 황궁소속의 공방에서 만든 표시가 났다.에머랄드장식이 많았는데 황가가 북부지역에 황실소유의 광산을 가진 때문일것이다.ㅡ내가 귀를 뚫지않는다는 걸 봐서 그런지 귀걸이는 없었다.ㅡ요란하지는 않았지만 비싸면서도 단아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내가 로빈황자에게 관을 씌워준 그 경기이래 나는 그와 엮이고 싶지않았지만 ..
로렌이 알면 뭐라고할까?하루걸러 만나러오지만 별로 신경쓰지는 않는 듯했다.과묵하기도하지만 워낙 바쁜 사람이니..
"곧 황제 폐하의 탄신일인데,."
"여름도 다 가기전에 연회를 한번 열어야지요.황후마마?"
"그러믄요.이제 서쪽의 국경도 조용해졌으니..봄의 개선파티이후로 연회가 없었으니.."
귀부인들은 황후를 둘러싸고 호호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나는 대공비영애의 생리통을 치료하러와서 부인들 뒤에서 잠자코 향이 짙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정원에서 작은 소란이 들렸다.
"황자님.먼저 치료를..!"
"괜찮아.별것 아니다.낙마할때 골절되거나 삐지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복도에서 덜거덕거리는 박차의 발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지금 돌아왔습니다."
"빨리 돌아왔구나.그런데 부상이라니. . 다친거냐?"황후는 다소 놀란듯 문가로 다가가 아들을 얼싸안았다.
"별것 아닙니다.북쪽국경의 지형이 험해서요."
나는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다가 이내 낯익은 금안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씨씨사제가 와 있으니 치료를 부탁하면 되겠구나."
나는 머뭇거리며 망설였으나 황후의 한마디에 귀부인들이 이내 정원으로 물러갔다.황후도 따라 나갔다.
시녀가 약을 가져오자 나는 잠자코 그의 팔의 갑주를 벗기고 얼굴과 팔의 긁힌 상처들을 치료했다 .
"사제님.선물들은 마음에 들었소?"
문득 그가 내손을 잡고 물었다.
"신전과 병원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말고 내가 어머니에게 부탁해보낸 물건들말이오?"
역시..그의 지시였다.
"아름다운 것들이지만 너무 비싸고 사제인 제가 쓰기에는 사치스러워서 .."
"필요할 때가 있을거요.곧 아버님의 생신이니.."
그가 윙크하며 내손등에 재빨리 입맞추었다.
다음날 로렌이 신전에 들렸다.
"병원을 며칠 비워도 괜찮겠나?"
여름저녁 노을이 지는 과수원을 같이 걸으며 그는 내게 물었다.
"왜죠?"
"며칠 같이 영지에 다녀왔으면해서.."
용건은 공작가의 영지에 신교신전을 세우려는 요청이 들어왔는데 허락할 생각이라고했다.
"같이 가겠나?그대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되는 것같던데.."
"삼촌도 아시나요?"
"말씀드렸다.찬성하시더군.신교의 교세가 확장되는 일이니 기쁘실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자주 황궁에 불려간다며?"그가 내눈치를 보며 물었다.
"네.좀 귀찮아요.여인네들 뒷담화가 신경쓰여서.."
"로빈황자가 그대에게 관심이 많다던데...승마경기에서 화관을 씌워주었을 때부터 궁중에 헛소문이 돌던데...."
순간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누군가에게 들었군요?"
내가 얼굴을 약간 붉히며 묻자 그는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큰누님이 그날 경기를 구경했는데 황궁에서 귀부인들수다가 보통이 아니라더군.."
아..궁중의 여인네들중에 그의 이복누나들이 끼여 있었을 거라는 걸 생각못했다.여인네들 입방아에서 불어난 소문이 떠돌다 결국 그의 귀에 들어는 갈거라고 생각했지만...
"황후가 그대에게 각별하다지.."
그는 내색않았지만 황후가 날 불렀을때부터 생긴 일들을 모두 아는 눈치였다.하지만 난 부끄러운 일도 없었고 떳떳하니까...
"황후마마보다 로빈황자가 내곁에서 맴도는게 더 신경쓰여요".내가 진지하게 그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러니 그런 소문이 나겠지.."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직접 내주위에 접근말라고 소리좀 칠래요?헛짓거리하면 주먹나갈줄 알라고 말하지그래요?"그가 쓰게 웃었다.
"영지에 다녀오려면 오가는 시간도 꽤 걸릴테니 거기서 푹 쉬고 오는 게 좋겠어.한두달쯤 지내고 올까? ."
"며칠 내가 수도에 없으면 조용해질거에요."
그가 나를 웃으며 안았다.
"곧 황제 폐하의 생일파티가 있을거야.우리 둘다 없으면..."
"이 부지를 다 쓴다고요?처음 짓는 신전이면 단촐한것이 나은데.."
주위를 돌아본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물었다.그의 영지중 교통의 요지인 곳의 땅의 일부를 기부했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넓은 장소였다.
"건물을 세우고 정원을 만들면 그리 넓은 면적은 아니다.신전에는 정원이 딸리는 게 필수적이니까.."
그가 담담히 대답했다.
"이곳의 정원에도 수도의 신전처럼 백장미와 벚나무들을 심어야겠군요."
구교의 상징이 흰백합이면 신교는 벚꽃이었다.때로 백장미를 쓰기도했다.
"오늘은 그만 저택으로 돌아가 쉬자.사흘이나 마차로 왔으니.."그가 곁에선 내팔을 잡으며 타이르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닌게 아니라 몹시 피곤했다.하지만 사흘간의 마차여행은 즐거웠다.
그와 계속 대화하면서 이따금 지나는 마을에서 내려 군것질거리와 특산품을 사주고 낯선 마을을 돌아보는 것은 소풍나오거나 수학여행 온 듯한 기분이었다.
산자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가 내턱을 손끝으로 들어올리더니 그의 입술이 서서히 내얼굴로 내려왔다.타는 듯한 남자의 입술이 내입술에 닿았다.
저택에 도착하니 예복을 걸친 노신사가 마중나왔다.아마 저택관리인인 모양이었다.
"아가씨 이층에 방이 준비됐습니다."
하녀가 나를 안내했다.영지의 저택도 수도의 공작저이상 규모가 크고 휼륭했다.
"햇볕은 이쪽이 잘들어요.침실과 연결된 테라스니..."
모두 나에게 유별나게 정중했으므로 방에 들어서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너무들 신경쓰는군요."
"당연하지요.기사단장님 약혼녀시잖아요."
나는 얼굴을 붉혔다.
"저녁만찬에 치장은 제가 도울께요."
"만찬?"
"저녁정찬에 지역유지들이 초대되어있잖아요."
어쩐다.난 그생각은 못했다.가져온 트렁크에 이번 여행을 위해 여름옷을 챙겨왔지만 드레스는 하나뿐이었다.사제니 혹시 신전부지에서 낙성식이라도 할지몰라 그가 봄에 개선파티에서 맞춰준 흰드레스였다.
약혼녀라니...아직 공식적인 건 아무것도 없는데...
로렌은 영지의 관리인들을 만나고있는지 입구에서 중년의 남자들과 나간후 보이지 않았다.
마차여행에서 잠시 멀미기가 있어서 대강 목욕후에 침대에 드러누웠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서늘했다.
한시간쯤 뒤에 노크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고상해보이는 중년부인이 들어왔다.
"미인이시군요. 처음 뵙는군요.기사단장님이 부르셔서 양장점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입을 드레스들을 펼쳐들었다.초록과 짙은 바다빛,흰색의 실크로 지어진 아주 고급스러운 옷들이었다.
누군가를위해 지어진 옷인듯 약간 헐렁한 허리부분은 부인이 직접 바늘을 들고 바느질해 줄였고 수놓은 리본의 색까지 골라맞춰주었다.
정찬준비로 아래층은 북적거렸다.
"준비는 다 되었나?"
그가 들어서는 소리에 치장을 하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름답군.급히 준비하게했지만..."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시선에 그가 쑥쓰럽게 설명했다.부담스럽게해서 미안하다며 사실은 그도 이런 만찬 일정이 잡혀있을 줄 몰랐다고한다.신전건립의 일로 기적의 사제가 온다는 소문에 공작영지의 지역유지들이 날 만나고싶어한다는 부탁에 공작가의 당숙이 잡은 일정이었단다.
여행으로 들린거니만큼 아무런 보석장식따위는 가지고오지않아서 양장점의 귀부인은 생화로 날 단장해주었다.머리를 흰장미로 꾸미고 드레스에도 장미를 꽂았다.
그의 당숙은 나이가 꽤 지긋한 신사였다.건강이 안좋아 수도에서 영지로 내려와 정양하는 중이었다고했다.그는 날 보더니 내손을쥐고 정중히 밉맞추었다.나도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정찬의 분위기는 꽤 명랑했다.황궁의 피곤한 연회보다 훨씬 즐거웠다.귀족들뿐만아니라 나이든 농부들도 깔끔한 복장으로 차려입고 초대받은 듯했다.농사의 수확부터 계절의 날씨에 이르기까지 소박하면서도 솔직한 대화가 이어져 마음은 편했다.
"황궁에서 우리에대해 궁금해할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신전부지에 놓은 초석들을 바라보며 나는 벌써 이주가 바람같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어제 기공식을 했다.
영지에서 우리는 정말 잘지냈다.
늦여름 포도수확의 잔치에 가기도하고 영지내 사냥대회에 참석도했다.
정식약혼녀는 아니었더라도 사람들은 이미 날 그의 약혼녀로 여기고 있었다.
"내일 돌아가면 소문이 가라앉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