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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스데반 황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요한복음 4:31-42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가 대화하는 중에 동네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갔던 제자들이 갑자기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황급히 대화를 멈추고 우물가를 떠났습니다. 물론 제자들은 그들의 랍비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 아무 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한편, 사마리아 여자는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것인데 그 목적을 잊은 듯 물동이를 우물에 두고 떠납니다. 지금 그녀의 마음과 머리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 만남은 그녀에게 거듭난 생명을 주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향하던 그녀의 관심은 끊어지고 그녀의 모든 관심은 주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너무나 기뻐서 그 복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녀는 제자들이 온 것을 보고 예수님과의 대화를 멈추고 곧바로 그녀가 사는 마을로 들어가 주민들에게 외쳤습니다.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흥미롭게도 이 말은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했던 말과 같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그리스도)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 1:45-46).
사마리아 여자도 똑같이 말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세요. 여러분이 직접 그분에게 가서 그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지 당장 확인해 보세요.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변화된 모습으로 확신에 가득 찬 말을 하는 수가성 여자는 그곳 주민들에게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은 변화된 이 여자의 증언을 통해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요 4:39).
이처럼 “직접 와서 보라”는 권면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매 설교마다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전도 대상에게 “와서 보라”고 말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교회에 찾아와서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되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공예배에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영으로 임재하시기에 복음을 더욱 뚜렷이 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안드레와 세배대의 아들 요한이 세례 요한의 반복적인 선포를 듣고 주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전도 대상자를 교회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즉, 은혜의 복음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단 한 번의 말씀 선포와 권유로 영혼 구원의 열매가 거두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오직 끊임없이 반복되는 은혜의 강만이 수많은 강퍅한 마음을 씻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교회에 왔을 때 거듭나지 않았다면 다시 몇 차례 더 권면하는 것은 지혜 중에 지혜입니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이 교회에 와서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을 받는다면 그 영혼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와서 보라’는 권면을 힘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평소의 삶이 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고 권하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 복된 교회에 단 한 사람도 데리고 오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주 앞에 섰을 때를 상상해보기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을 통해 단 한 사람도 구원 받은 사람이 없다면 예수님 앞에서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롯입니다. 그는 단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 간신히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간 안타까운 신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롯처럼 되지 않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전도 대상이 생기면 그 사람을 위해 늘 기도하다가 “우리 교회에 와서 보라”고 권하기 바랍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 등, 아직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교회에 “와서 보라”고 권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사마리아 여자처럼 삶에 목마른 사람들을 보면 더더욱 “우리 교회에 와서 보라”고 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 구원 받으면 그때 우리 모두가 누리는 기쁨은 한량없이 클 것입니다.
아무튼 여자의 말을 들은 수가성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당장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우물에 도착하여 예수님을 만나 뵙자 그들은 예수님께 자기들과 함께 머물러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우리 예수님은 이틀 동안 수가성의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요 4:40-42)
사랑하는 여러분!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의 증언으로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믿었고 그들이 예수님을 자기 동네로 초청하여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자의 말을 듣고 먼저 예수님을 믿었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듣고 믿음이 더욱 깊어졌고 또한 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을 보고는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이 사건은 매우 놀라운 사건입니다. 지독히 서로 멸시하는 원수들이 서로 하나가 되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를 얼마나 경멸하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미움이 극복되며 하나가 됩니다. 원수가 친구가 됩니다.
일반적인 상태라면 수가성 사마리아인들이 떼를 지어 야곱의 우물로 달려와서는 그곳에 있는 유대인 랍비를 당장 쫓아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이 몰려 올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몰매라도 맞는 것은 아닌가 하고 겁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몰려와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자기들과 함께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여자의 증언으로 이미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지극히 환대하며 주의 말씀을 듣고자 초대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유대인이기만 했다면 그들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개나 돼지처럼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주이시기에 그들의 초대를 승락하십니다. 그리고 그들과 이틀 동안 머무십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주무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더 많은 길잃은 사마리아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원수 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지금 예수께서 사마리아인들과 이틀을 지내셨다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시고 그들을 죄와 마귀와 세상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치르실 십자가 속량에 근거하여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자신의 의로 그들을 덮어주심으로 그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사마리아인에게 주시며 그들의 참된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 5:10-1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려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여서는 안 됩니다. 학벌, 출신 배경, 재력, 가문, 외적인 미모나 잘 생김 등, 세상 조건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심지어 원수에게까지 복음의 향기가 되어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을 뿌리는 자가 되는 비결이고 뿌린 그 복음의 씨 때문에 우리 또는 다른 사람이 그 복음으로 인한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세상적인 조건, 즉 외모로 취하여서는 안 됩니다. 특히 목사는 빈부귀천 및 종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향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즉, 오직 복음을 설교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이때 주의 종을 통해 복음이 선포될 때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자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그 누구에게든 선포되어야 합니다.
수가성의 사마리아 사람들은 회심한 사마리아 여자의 증언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었고 곧바로 예수님을 자기들의 동네로 모셔와서 이틀 동안 예수님을 극진히 모시며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말씀에 선 확고한 구원의 믿음을 갖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로써 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언약이 사마리아인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그 씨’인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곧바로 만민에게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만민이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심으로 얻은 수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뵙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거듭난 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요 4:42).
한편, 사마리아 여자가 자기 동네로 가서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만나보라고 외치는 사이에 제자들은 동네에서 가져온 음식을 펼쳐 놓고 예수님께 잡수라고 권합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요 4:31).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실 이른 아침부터 여리고 근처에 있던 사역지에서 출발하여 사마리아의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른 것이니 적어도 4시간 이상 광야를 걸은 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목이 말랐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동네 안에서 음식을 구해 온 것입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 4:32).
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직 예수께서 이 양식에 대해 그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으셨기에 그들은 이 양식을 모릅니다. 따라서 그들은 ‘양식’이라는 말을 듣고 당연히 육체에 필요한 음식을 뜻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서로 말합니다.
“누가 우리 랍비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린 것인가?”(요 4:33)
물론 제자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 이유는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사마리아 땅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를 경멸하고 싫어하는 관계이기에 예수님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음식을 얻어 드실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즉, “이곳은 사마리아 지방인데 누가 우리 랍비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겠는가? 그런데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하시니 그 양식은 어디서 나신 것일까?” 하며 의아해 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예수께서는 ‘나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양식을 먹고 힘을 냅니다. 양식을 먹는 것은 즐겁고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공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마귀가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여 굶주린 배를 채우라고 유혹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이는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 8: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주의 뜻대로 행할 때 그 사람이 힘이 나고 즐겁고 참된 만족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둘째 아담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즉, 아버지의 뜻을 행함이 참으로 주께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참된 만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예수님을 향한 아버지의 뜻은 주의 백성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속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량에 근거하여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20).
“인자가 온 것은 …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이로 보건대, 예수님은 먹는 음식에 마음을 쏟기보다 자신의 사역으로 구원 받게 될 영혼들을 마음 속에 두시고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지긋지긋한 일이 아니라 너무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의무보다는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는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생명의 근거가 되며 우리의 삶에 힘이 됩니다. 즉, 음식을 먹음으로 육체가 힘을 얻듯이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며 힘을 얻고 만족하게 되며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주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영적인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된 우리가 성령께서 나누어 주신 은사를 따라 그리스도를 섬길 때 반드시 마음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만족이 따릅니다. 이때 우리가 철저하게 기억할 것은 신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더라”(요 6:29).
이 말씀은 우리가 영광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붙드시며 하늘의 은사들을 허락하시고 맘껏 하나님의 일을 섬길 수 있는 신령한 힘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 길에는 언제나 두 가지 음식이 차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과 그리스도와 연결된 지혜 여인이 베푼 참된 잔칫상이고, 다른 하나는 사탄과 연결된 저주스럽고 속이는 여자인 탕녀가 차린 더럽고 독이 든 위선의 허접한 잔칫상입니다. 이때 인생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즉, 어떤 음식을 먹을지 스스로 결정하여야 합니다. 탕녀가 차린 음식을 먹으며 탕녀와 함께 지낼 것인지, 아니면 지혜 여인이 차린 하늘의 잔칫상의 음식을 먹으며 그녀와 함께 지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자, 두 여인의 초청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
1 지혜 여인이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2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3 …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
13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미련한 여인도 떠들며
14 …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15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16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17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참조, 잠 9:1-3, 5-6, 13-17)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는 구원과 생명입니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 3:18).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 13:14).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잠 15:24).
그러나 다른 하나는 저주와 지옥입니다.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지옥)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잠 2:18-19).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지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잠 9:18).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음식을 누구와 먹는지에 따라 간교한 마귀적 지혜를 가지고 살며 마귀를 닮을 수도 있고 하늘로부터 나오는 선한 지혜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닮으며 살 수도 있습니다.
[
14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4-18)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 심판을 두려워하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주의 최종 심판은 영원한 지옥 또는 영원한 천국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먹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을 먹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입니다.
[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하리라
](요 6:33-35)
그러므로 다윗은 주의 율법이 영의 양식인 것을 알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7-10)
주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지 않고는 우리는 더럽고 흉악한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 수 없습니다. 주의 빛 된 진리의 말씀을 먹지 않고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수억 만개의 거짓말에 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의 거짓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것이 사실인 줄 착각하지만 주의 진리의 말씀을 먹으며 바른 생각을 하게 되면 이 세상은 마귀가 뿌려 놓은 거짓말로 온통 가득한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성경을 늘 읽고 묵상하며 우리의 영적인 양식이 되게 하기 바랍니다. 또한 성경을 읽은 때는 성령의 조명을 받아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그 뜻에 신속히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그 양식은 우리에게 생명을 줌과 함께 하늘의 신령한 힘과 즐거움과 만족을 안겨줄 것입니다.
다시 34절을 보면, 우리 주님의 양식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태어난 순간부터 하나님의 뜻이 담긴 계명을 다 행하심으로 완전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보내시며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속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속량하신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완전하게 이루신, 흠과 점이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러한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 이루시자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셔서 만유의 주와 영원한 그리스도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살아계신 영광의 예수님과 믿음으로 연합하면 그분의 십자가 속량 때문에 완전한 죄사함을 받게 되고 더불어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믿는 그 신자에게 전가되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완전한 의를 행한 신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약속대로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속량하시고 부활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믿는 자는 죄사함 및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 그리고 예수님 및 이후 사도들의 사명이었고 또한 복된 소식을 전해 듣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과 참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에 맡겨진 중대한 사명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께서 계속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요 4:35-38).
예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흔한 격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씨를 뿌리고 난 후 추수까지는 적어도 넉 달이 있으니 너무 성급하게 서둘지 말라”는 격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십니다.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추수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씨를 가리키던 구약 시대가 지나고 마침내 복음의 주인공이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세와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이루어지면서 심판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말하였습니다. 다만 그들은 만민을 향해 복음이 퍼져나가는 기간이 상당히 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그들은 하나님 나라는 메시야의 오심으로 도래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주의 계시에 따른 정확한 믿음이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이시기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만민을 향한 추수가 시작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은 메시야의 오심의 특징은 만민이 시온으로 모이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들이 생겨나면서 하늘의 시온,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추수는 사마리아 여자의 회심에 의한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대거 영생을 얻게 된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온 사건은 이제 앞으로 펼쳐질 대추수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의 제자들에게는 추수해야 할 일이 한없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재림 때까지는 추수해야 할 영혼들과 민족이 아직 한없이 많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마리아가 만민 중에서 처음 추수의 대상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사마리아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거두지 않으셨다면 주의 제자들은 결코 척박한 그 땅에 복음을 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민 중에 가장 먼저 유대인들의 가장 큰 원수인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고 곧바로 사마리아인들의 영혼들을 추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은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거두는 자"는 구약 시대에 주의 백성이 고대하여 온 만민을 구원할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주의 복음으로 만민으로부터 영혼들을 구원하는 교회를 뜻합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 거두는 자는 그리스도 그분이며, 그 이후로 거두는 자는 사도들과 주의 교회입니다.
사실 만민을 향한 주의 부르심은 구약 시대에 참으로 많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모든 만민이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을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영생)을 얻을 것이라”(창 12:3).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영생)을 받으리라
](창 26:2-4)
야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영생)을 받으리라
](창 28:13-14)
그리고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나타나시면 시온 산으로 만민이 모여들며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약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나타난 이후의 세대를 ‘말일’이라고 불렀습니다.
[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 2:2-3; 참조, 미 3:1-2)
[
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슥 8:20-23)
[
9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습 3:9-10)
이렇게 만민으로부터 시온으로 주의 백성이 모인 결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하는데 이것이 인류 역사의 최종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메시야 예수님에 대해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요 4:42).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시며, 그 첫 번째 이방 사역 대상이 사마리아였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신 성령 강림과 함께 시작될 복음 전파 사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러므로 ‘거두는 자’는 일차적으로 예수님이시며 그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과 복음의 교회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편, ‘거두는 자’는 그들의 수고에 삯을 받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을 것입니다.
[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5-9)
그리고 그들의 수고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8-9).
그러므로 메시야께서 오셔서 십자가 속량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와 만왕의 왕이 되신 후로는 복음을 뿌리는 자와 복음으로부터 거두는 자가 다 함께 즐거워하게 됩니다. 물론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습니다.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가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37절에서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의 속량이 이스라엘 민족을 포함한 만민의 구원의 씨이며 거두는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12:23-26)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새언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모든 만민으로부터 택함 받은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교의 도구로 쓰임 받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썩지 않는 면류관을 영원한 상급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마음은 온 통 한 영혼이라도 추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승리의 면류관을 얻고자 하노라
](참조, 고전 9:19-25)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의 씨를 뿌리고 거둔 영혼들에 대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빌 4:1)
라고 불렀고,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고 고백했습니다.
지금도 영광의 예수께서 우리에게 외치십니다.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5).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주의 영광스런 추수의 일에 동참하여야 마땅합니다.
오늘도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과 고백으로 ‘와서 보라’고 외치며 추수의 풍성한 열매를 얻는 복된 주의 백성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