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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처럼 나타난 묘령의 여인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부유했던 집안은 갑자기 몰락을 거듭했다. 아버지의 사망 후 어머니는 곧바로 재혼해서 집을 나가버렸고 할아버지마저 화병을 앓다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남은 것은 할머니와 나 어린 남동생뿐이었는데, 이때부터 삶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는 굶주리고 있는 이웃들에게 양식도 많이 나누어 주고 동정도 베풀었지만, 집안이 몰락한 우리 가정을 보살펴주는 친척이나 이웃은 어디에도 없었다. 집안이 넉넉할 때는 발이 닳도록 들락거리던 아버지 친구나 문중의 친척들 누구도 어렵게 사는 우리 가정을 찾아오는 일이 없어졌다.
땅이 있어도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으니 양식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겨울이면 땔감이 부족해서 추위에 떨 때가 많았다.
너무 어릴 때 겪었던 일이라 이러한 일들이 슬픔인지 삶의 고난인지 분간하지도 못했다.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슬픔은 있었지만 사는 것이 원래 그러려니 여기며 어린 날들을 보냈다.
지금은 기후도 많이 변해서 겨울이라 해도 큰 추위가 없는데, 그 시절 어릴 때 겨울은 눈도 많이 내리고 추위도 심했다. 시골에서 자랐던 관계로 시오리가 넘는 학교까지는 걸어서 다녔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추운 날씨에 속옷도 입지 않고 학교에 다니느라 매서운 추위를 온몸으로 견딜 때도 있었다.
학교까지 오가려면 두세 개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야 했는데, 고개를 넘을 때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와 뱃속으로 스며드는 한기는 춥다 못해 아팠다.
뿐만 아니고 혹한의 날씨에 양말도 신지 않고 반바지 차림으로 등교할 때도 있었다. 그러한 차림으로 등교하면 상급 학년의 형들이 <용감한 놈>이란 별명을 붙여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어려운 살림이기는 했지만, 할머니는 우리 형제를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부모 없이 자란다는 표식이 안 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은 우리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가정도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도 부모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관계로 다른 아이들보다 우리 형제와 할머니가 겪는 가난이 더 불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 생각으로는 한 번도 우리 집이 궁핍하고 가난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다만 부모님의 따뜻한 그늘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친구들이 부럽게 느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힘들고 어린 시절에 설상가상으로 전국적인 재앙이 발생한 때가 있었다. 이제 막 밭에서 보리를 수확할 무렵 엄청난 태풍과 폭우 그리고 길고 긴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우리 가족은 생명줄과 같았던 농작물을 미쳐 거둬들인 일손이 없어 모두 밭에서 썩히고 말았다.
논에 모내기한 것들도 모두 떠내려가서 벼농사도 망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해는 우리 가정뿐 아니라 다른 집들도 심각한 식량난으로 궁핍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아홉 살이었다.
할머니는 썩어가는 밭에서 비를 맞아 썩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며 이렇게 울부짖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이젠 우리는 꼼짝없이 굶어 죽겠구나. 이할미는 굶어 죽어도 여한이 없다만, 어린 손자새끼들 굶어 죽는 꼴을 어찌 바라보란 말이냐. 하늘도 무심하구나! 하늘도 무심하구나!"
할머니가 울고 있으면 어린 나는 이렇게 할머니를 달랬다.
“할머니 운다고 썩은 보리가 멀쩡해지나요? 우리는 굶어도 괜찮으니 할머니가 울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할머니는 우리 형제를 끌어안고 더욱 대성통곡하며 하늘을 원망했다.
그해 겨울이 되니 벌써 끼니를 연명하지 못한 집안의 아이들은 심한 영양실조에 걸려 얼굴이 누렇게 뜨고, 힘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형제는 영양실조에 걸리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살이 포동포동 찐 모습으로 거리를 활기차게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다른 집 아이들은 먹지 못해 얼굴이 누렇게 떠서 상해 가는데, 우리 형제는 달랐기 때문이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부잣집 아이들처럼 얼굴의 화색이 좋으니 동네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생각하기는 만무했을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집안에 양식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세 식구가 매일 배불리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허기진 우리 가족의 배를 채워준 당사자가 다름 아닌, 이름도 성도 모르는 묘령의 아가씨였다.
묘령의 아가씨는 그 해 추운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새 양식을 수확할 때까지, 우리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날라다 먹이며 보살폈다.
어느 날 이었다.
지독히도 추운 겨울날, 혼자서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온몸을 웅크린 채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는데, 통학길의 언덕 밑에서 낯선 아가씨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를 오가다 너무 추우면 친구들과 함께 잠깐씩 들러 추위를 피해 가는 <바람막>이라고 불리는 장소였다.
첫눈에도 고운 피부가 너무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나이는 대강 스무살이 될까 말까 한 아가씨였다. 그 아가씨는 한 손에 무엇을 싼 보자기를 들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아가씨는 나를 보자 대뜸 반가운 시늉으로 손짓하며 불렀다.
“어머, 우리 백마선 도련님! 추워서 온몸이 꽁꽁 얼어 보이네? 어서 이리와요. 내가 추위를 녹여 줄테니..."
백마선은 내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백마를 탄 선인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묘령의 아가씨는 내 이름 대신 그 별명을 불러주었다.
낯선 아가씨가 내 별명을 알고 있다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곁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나를 품 안에 꼬~옥 안아주며 따뜻한 훈기를 온몸에 전해주었다. 그러자 추위로 얼어붙었던 몸이 따뜻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추위가 풀리자 그녀는 보자기에 싸 온 음식을 꺼내 놓으며 먹으라고 권했다. 영문도 모르고 낯선 아가씨가 싸 온 음식을 허겁지겁 배불리먹기 시작했다.
선녀처럼 아름다운 아가씨는 마치 우리 집안의 모든 내력을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다는 행동으로 나를 대했다. 마치 같은 집에서 오래 함께 살았던 고모나 누나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아가씨였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인데도 그 아가씨 곁에 있는 동안 봄날 같은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고, 꽃도 피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들장미 향기가 코끝에서 물씬거렸다.
들장미 향기는 아가씨 몸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아름다운 향기가 물씬거리는 낯선 모습의 아가씨 곁에서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기분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 아가씨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사랑스러운 듯, 다시 두 팔로 꼭 껴안아 주기도 하고, 얼굴에 묻은 콧물이나 눈물 자국을 옷소매로 닦아주기도 했다.
그때 어린 가슴에도 따뜻한 모성애가 진하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모처럼 느껴보는 감동적인 모성애였다. 묘령의 아가씨로부터 진한 모성애를 느낄 때, 슬프고 행복한 감정이 반복해서 교차 되었다. 마음은 따뜻하고 포근해지는데, 웬일인지 자꾸 울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갑자기 어린 형제를 버려두고 집 나간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언덕 밑에서 묘령의 아가씨가 싸온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저만큼서 학교 갔다 돌아오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나는 손짓을 하며 힘찬 목소리로 친구들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크게 부르는 내 목소리를 친구들이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친구들을 불렀던 것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아가씨와 함께 다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 주며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내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묘령의 아가씨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을 눈치조차 못 채고, 그냥 곁으로 지나쳐 버리자 너무 속상하고 아쉬웠다.
심지어는 들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바로 우리 곁을 지나갔지만, 그들
의 눈에도 우리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무표정하게 지나가곤 했다. 모두들 일부러 우리들의 행복한 모습을 모른 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묘령의 아가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묘령의 아가씨는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기운 때문이에요. 보이지 않는 기운이 도련님과 제 모습을 가려주고 있어 아무도 우리 모습을 발견하지 못해요."
아가씨의 설명을 듣고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누나는 도깨비 나라에서 온 도깨비 처녀란 말인가요?"아가씨는 웃으며
"도깨비 나라에서 온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도련님을 만나러 왔어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진짜 있을까? 그 세상에는 무엇들이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
“보이지 않는 세상에는 이 세상에서 구경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이 살아가고 있답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누나를 보면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어. 누나처럼 예쁜 여자는 아직 세상에서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으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누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그러면 나도 누나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은데...”
“도련님이 우리들 세상을 방문하고 싶으면 나중에 꼭 초대할게요."
“정말? 내가 정말 누나가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구경갈 수 있어?"
“그럼요...”
그렇게 말하고 묘령의 아가씨는 나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아가씨가 넉넉하게 싸 온 음식은 집에도 가지고 가서 식구들에게 먹였다. 한동네에 살고 있는 고모할머니도 초대해서 나눠 먹었는데, 그 음식들은 고기나 나물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세상 불행을 다 잊을 만큼 좋았다. 과자나 떡처럼 생긴 음식도 있었고 처음 보는 열매의 과일도 있었다.
할머니와 고모할머니는 내가 싸 와서 꺼내 놓은 음식들을 살펴보며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와 고모할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한입씩 깨물어 삼키면서 이렇게 한마디씩 했다.
할머니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있었단 말이냐?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 말로 표현할 길 없구나.”라고 했고...
고모할머니는
“그러게 말이에요. 떡도 아니고 과자도 아닌 것이 별미네요. 조카가 생전에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먹여 살리더니 그 은덕으로 하늘이 보살피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동생은 내 말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저 어디서 사 온 음식으로 알고 신나서 죽는 표정으로 이것저것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들을 보니 어린 마음에도 너무 행복한 생각이 들었다.
그해 한겨울을 넘기기도 전에 쌀독의 양식은 이미 바닥 나 있었지만, 묘령의 아가씨가 매일 날라다 주는 음식을 먹으며 우리 식구는 굶주림 걱정 없이 가난한 흉년을 견디어 내고 있었다.
추워서 견디지 못할 때는 따뜻한 의복도 가져다 입혀주었는데, 그녀가 가져다준 옷을 입으면 따뜻한 햇볕을 몸에 두른 기분이었다.
할머니는 아가씨가 보자기에 싸 준 옷을 풀어서 입어보며 “이런 옷은 내 생전에 처음 만져 본다. 무슨 옷감이 이렇게 가볍고 감촉이 좋을까? 이런 옷은 아무나 입고 살지 못할 텐데...”라고 감탄을 연발했다.
우리 식구들이 처음 보는 의상을 집에서 입고 있으면 담 너머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했다. 우리 집은 길가에 위치하고 있었고 담장이 낮았기 때문에 지나가는 누구에게라도 우리 식구들이 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필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뒷집에는 동네에서 소문난 부잣집이 살고 있었다.
그 부잣집 주인이 아버지의 친구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냉정한 모습으로 변해 갔다. 그 부잣집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좋은 옷을 가장 초라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식구들이 입고 있었으니, 그 집 식구들이 담 너머로 지나가며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의복을 건네줄 때마다 묘령의 아가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금지옥엽처럼 귀하고 귀한 우리 도련님이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되어선 안 되는데... 하늘에서는 귀한 몸이 땅에서는 박대가 심하니 엊저지?"
그리고 이어서 독백처럼 이런 말도 내뱉었다.
“우리 백마선 도련님의 고향은 지금의 현실 세계가 아닌, 거룩한 백성들의 나라 그곳이죠. 그곳은 슬픔도 아픔도 모르고 살아가는 행복한 곳이지요. 도련님은 그곳에서 할 일이 있어 잠시 이곳으로 여행왔을 뿐..."
“도련님이 이 세상의 일을 모두 마치고 그곳으로 돌아가면 지금 겪고 있는 아픔들은 꿈처럼 다 잊어버릴 거예요. 그러므로 힘들고 어렵더라도 꿋꿋한 모습으로 세상을 잘 살아야 해요. 무엇보다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은 아름다운 영혼이에요.”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을 얻더라도 아름다운 영혼을 상처 나게 하면 하늘이 슬퍼하고 땅이 통곡해요. 도련님의 나라로 다시 돌아갈 때, 도련님의 유일한 소유는 도련님의 아름다운 영혼 하나뿐이란 사실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도록 명심해 주세요."
이런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들려주던 아가씨는 어느 날 소나무 숲이 울창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학교를 오가다 보면 저건너편에 바라보이는 산이었는데, 아직 한 번도 가까이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 산의 이름을 <토성산>이라고도 부르고 <망산>이라고도 불렀는데, <토성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산 능선에 흙으로 쌓아 올린 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망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옛날 전쟁 때 망을 보던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여 꼬불꼬불 이어진 소나무 숲길을 따라 산새 소리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걸어서 들어갔더니 처음 보는 마을이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그 작은 산속에 그렇게 아름답고 신기한 마을이 감추어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또 누구에게 들은 적도 없었다.
추운 겨울 날씨에 산과 들에는 흰 눈이 가득 쌓여있는데, 처음 보는 그 마을에는 따뜻한 햇살이 감돌고 향기로운 꽃들이 가득 피어 천지를 뒤덮고 있으며, 탐스런 열매들이 나뭇가지마다 달려있는 세상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딴 세상의 모습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걱정이라고는 없는 표정들이었고 선량한 미소들이 얼굴마다 가득했다.
아가씨는 안개에 덮여 있는 것 같은, 아름다운 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꺼내 놓으며 먹으라고 권하기도 하고, 전망루 같은 높은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멀리 떨어진 좋은 경치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망루는 활짝 핀 연꽃이 긴 대롱 끝에 매달린 모습이었고, 높이 솟은 전망루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멀리 멀리까지 아름다운 세상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지붕이 뾰족뾰족한 집들은 성처럼 지어져 있었고, 성처럼 보이는 집들은 꽃과 수풀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했다.
그 세상 사람들은 작은 마차를 타고 가까운 곳과 먼 곳을 이동했는데, 말처럼 생긴 날개 달린 짐승이 마차들을 끌고 있었다. 날개 달린 짐승이 이끄는 마차는 아주 빠른 속력으로 달리는데, 땅에서 구르는지 공중에 떠서 달리는지 쉽게 분간이 어려웠다.
어린 마음에도 그 세상의 풍경은 꿈속의 장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가 살고 있는 집도 성처럼 생겼는데, 주변에는 넓은 호수가 거울처럼 맑은 모습으로 고여 있고, 호수 위에는 연꽃이 활짝 피어 만발했다. 연꽃 사이로 작고 큰 물새들이 날아다니고, 벌과 나비들이 연꽃에 앉아 꽃가루를 뭉치며 춤을 추고 있었다.
무척 평화스럽고 아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연꽃 호수의 풍경이었다.
묘령의 아가씨와 함께 올라갔던 전망루는 그 연꽃의 호수 위에 지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아가씨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연화라고 소개했다. 전망루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 되어 있으면서, 연화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연화 누나 여기가 어딘가요? 아직 나는 이런 마을이 산속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는데...”
“도련님과 처음 만났을 때 들려주었던 보이지 않는 세상... 그 세상이 이곳이에요. 보이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에 바깥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세상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지요."
“지금 내 눈에는 다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니..."
“이곳 세상의 모습은 이곳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고, 도련님이 살아가고 있는 바깥세상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랍니다."
“잠시 후 도련님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순간 이곳 세상의 모습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 거예요. 이곳은 보이지 않는 빛으로 가려져 있어서 바깥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고 바깥세상 사람들의 귀로는 들을 수 없어요."
“정말 신기한 세상도 다 있네? 이런 세상을 두고 요지경 속이라고 부를까?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요지경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세상들이 보인다고 하던데...”
“요지경 속은 아니지만 바깥 세상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별천지이겠지요. 이곳은 하늘도 새롭고 땅도 새로운 신성한 세계이니까요. 그러므로 도련님도 앞으로 보이는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지 말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 보아요. 보이는 세상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영원하니까요. 도련님이 떠나왔던 거룩한 나라처럼..."
“나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데... 그러면 부모가 없어도 흉보는 사람이 없고, 가난해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난 그런 말들이 가장 듣기 싫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면 아름다운 영혼의 눈을 가지도록 노력해요. 보이지 않는 세상은 아름다운 영혼의 눈에만 보이니까요."
“아름다운 영혼의 눈을 가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해요?"
“항상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아름다운 영혼의 눈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러면 남들이 부모 없는 아이라고 흉을 보든, 가난하다고 업신여기든, 조금도 슬픈 생각이 들지 않아요. 아름다운 영혼의 눈에는 항상 축복된 세상의 모습들만 보이니까요...”
"어떻게 살면 아름답게 사는 걸까?"
“작은 생명들을 사랑하고 양심이 좋아하는 일만 해봐요. 양심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 아름다운 영혼의 눈을 절대 가질 수 없어요. 도련님은 지금 들려주는 말들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나요?"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어. 아무튼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어. 그렇지 않으면 천사 같은 연화 누나를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이어서 연화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펼쳐진 이야기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글자의 책들을 펴 놓고 읽어주면서 하늘과 땅의 이치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우주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어려운 이야기들이긴 해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연화의 이야기는 보이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들이었다. 어린 가슴에도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는 한없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연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린 나이에도 웬만큼 잘 이해되었고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흥미롭게 들렸다. 연화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갑자기 의식이 성장해버리는 것 같았고, 특히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방문했을 때는 그러한 느낌이 더 확실해졌다.
연화와 나는 실제적으로 열 살은 더 나이 터울이 많을 것 같은데, 연화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나는 굉장히 성장한 모습이어서 연화와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연화와 보낸 시간들은 실제적으로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데, 현실 세계 시간으로는 여러 날과 여러 달이 흘러간 기분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세상에 도착하면 짧은 시간도 길게 늘어나는 마술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잠깐 동안 꿈속에서 복잡하고 긴 사건을 경험하는 현상과 다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시간과 현실 세계의 시간은 다른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연화와 함께 지내다 돌아올 때는 너무 서운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짧은 시간에 깊은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아니라면 바깥세상으로 정말 돌아가기 싫었다.
그러한 마음을 알고 그녀는 이렇게 달래주었다.
“도련님이 살아가는 세상의 시간은 길고 지루한 것 같아도 우주의 시간으로는 찰나처럼 짧고, 잠깐의 시간이랍니다. 지구의 현실 세계는 우주에서도 가장 진흙탕 같은 세상이지만, 도련님이 선택해서 찾아온 곳이므로 어차피 견디어 내야 할 어려움들이 많겠지요. 그리고 마침내 현실 세계를 찾아온 도련님의 목표를 달성하고 아름다운 그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도련님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슬프고 마음 아픈 일들을 겪을 때 이 연화를 생각하세요. 그러면 이 연화가 그림자처럼 도련님 곁을 지켜줄게요"
이 외에도 연화는 여러 가지 격려와 힘이 되는 말들을 내게 들려주었다. 연화와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소나무 숲을 빠져나오면 조금 전에 보이던 세상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로도 보이지 않는 마을의 세상을 몇 번 더 방문했다. 그 세상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려주면, 일부러 꾸며낸 이야기라고 믿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녀석 참 말도 재미있게 지어낸다. 아무래도 커서 큰 이야기꾼이 되려나보다...”
연화와 동행하지 않으면, 토성산의 소나무 숲에 감추어진 세상은 찾아낼 수 없었다. 돌아올 때 표식까지 해 두었지만, 다시 혼자서 찾아가면 그 표식들까지 사라지곤 했다.
결국 혼자서는 찾아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란 걸 나중에 깨달을 수 있었다.
연화의 모습은 내 나이 열세 살이 넘은 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살펴주었다. 연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이후로 연꽃 호수가 펼쳐져 있던 보이지 않는 마을은 꿈속에서나 찾아갈 수 있었고, 연화가 전해 주던 맛있는 음식도 다시 맛볼 수 없었다.
연화와 보이지 않는 세상은 꿈속에서만 자주 나타났고,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손만 내밀면 가까운 곳에 연화의 웃는 모습이 나타나고 보이지 않는 연꽃 호수의 세상이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빛으로 가려져 있는 그 세상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슬프게 느껴졌다.
이후로 연화는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영원한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고아처럼 외롭게 세상을 살아갈 때, 힘들고 슬픈 일들을 만날 때마다 연화가 살고 있던 따뜻한 세상이 한없이 그리워지곤 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연화라고 하는 유령을 따라 유령의 세상을 방문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는 연화와의 만남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연화는 한 집에서 영원 전부터 살아 온 식구 같은 기분이었고, 연화가 안내 해 준 세상은 현실 세계의 일부라고 느끼며 방문하곤 했었다. 그러한 연화는 어릴 때 나의 정신세계를 크게 일깨워주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우쳐 준 우주의 스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화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내 곁에서 아주 떠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 들 때가 많았다. 그녀는 항상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곁에서 지켜보는 것 같았고,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갈 때는 무언의 위로를 보내주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녀의 몸에서 발산하던 따스한 기운이며 훈풍에 실려 오는 꽃향기같던 그녀의 체향이 항상 코끝에서 느껴지곤 했기 때문이다.
연화와의 인연을 계기로 나는 늘 우주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우주를 마음에 품을수록, 우주에는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습이 더 크고 오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연화는 보이는 현실 세계를 바깥세상이라고 표현했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안 세상이라고 표현했다.
<과연 나는 연화의 말대로 이 진흙탕 같은 세상을 일부러 선택해서 찾아온 것일까. 일부러 찾아온 세상이라면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정말 이 세상 삶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곳은 슬픔과 어두운 그림자들이 보이지 않는 세상일까...>
이러한 생각들을 혼자 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그리워하곤 했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
연화는 나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타나 따뜻한 모성애로 마음의 토양을 북돋아 준 영성체였다. 연화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부모를 잃고 쓸쓸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야 할 처지가 얼마나 가련했을지 불 보듯 빤하다.
연화는 가끔 나를 데리고 마을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찾아다니며 호연지기를 일깨워주곤 했다.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 속에서 우주에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충만한 우주의 기운을 몸속에 축적하며 우주적 삶을 살아가는 훈련이었다.
연화가 생각날 때면 나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자연이 숨 쉬고 있는 산을 찾았다. 대자연이 꿈틀거리는 산을 찾아가면 문득 숲속에서 연화의 웃는 모습이 나타날 것 같고, 보이지 않는 세상이 문득 눈앞에 다가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화가 마지막 모습을 감출 때까지 함께 자주 방문하던 산소의 무덤 하나가 있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와 마음의 위안을 얻는 장소였다.
무덤이 있는 산소 주변의 풍경은 호연지기를 가다듬을 만큼 아름다웠고, 산만하고 흐트러졌던 마음도 그곳에만 도착하면 차분히 가라앉곤 했다.
조용한 계곡에 자리 잡고 누워있는 무덤에서 바라보면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이고, 때로는 흰 구름이 둥둥 흘러가다 멈추어서 내려다보기도 하며, 주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며 계곡을 흘러가는 물소리며 무엇 하나 흐트러진 마음들을 가다듬어 주지 않는 요소들은 없었다.
산소의 무덤을 찾아가 등을 기대고 누워있으면 다정한 영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선량한 영혼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 반가운 미소로 반겨주는 것 같았다.
무덤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외롭던 마음도 저절로 풀리고 평화로워졌다. 물론 혼자서만 독백하듯, 가슴으로 외치는 대화였다.
그러다 싫증 나면 산소 주변의 자연과도 대화를 나눴다. 산소 주변에는 소나무 떡갈나무 등 다양한 수종들이 수풀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내가 지어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마다 눈길을 보내며 이름을 불러주곤 했다.
말 못하는 자연의 식물들이지만 이름을 불러주면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큰 나무뿐만 아니라, 잡초 속에서 얼굴조차 보일 듯 말듯 피어 있는 야생화도 이름을 붙여 불러주면 좋아하는 반응이 메아리처럼 전달되어져 왔다.
그 이후로 세상의 하찮은 존재들일수록 이름을 붙여 주고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집안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주인이 이름을 만들어 불러주면 따르고 좋아하듯이...
그래서 내가 숲이나 산소를 찾아가 자연과 가깝게 지내고 친해질 수 있었던 비결은 자연의 생명체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면 자연은 반드시 행복한 느낌을 전달해주었다.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은 연화에게서 배웠다.
연화는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내게, 자연과 친하게 어울릴 수 있는 비결을 전수해 준 셈이었다. 자연과 친하게 되면 저절로 우주와도 친해질 수 있고, 별빛과도 가까워질 수 있고, 우주의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집안의 뜰이나 정원에서, 때로는 숲이나 들에서, 이름 없는 자연들을 향해 이름을 붙여 주고 불러보자. 반드시 친해지고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전달받게 될 것이다.
고독하지 않으면 자연도 우주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고독은 곧 자연과 우주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날도 이제 막 신록의 계절이 시작되는 6월 초쯤,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소를 찾아가 무덤에 기대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무덤의 영혼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이상한 현상을 체험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면서 바람결에 흘러가는 것 같은 목소리가 가슴을 울리며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며 시끄럽게 떠들던 산새 소리마저 뚝 그치고, 귀가 멍~ 해지면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갑자기 고도가 높아질 때 고막이 막히고 먹먹해지는 현상처럼 주변의 목소리들이 가늘게 들리는 느낌 같았다.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상한 공명장치를 통해 울려오는 소리 같기도 한데,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그 소리의 발원지는 우주의 공간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되었다.
빛과 무한이론의 세상을 지배하는 주인공들 - 도선당(백마신선) 저
첫댓글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