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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도미해 미국 100대 우량기업인 TYK 그룹 설립하고 성공신화 창조한
김 태 연
여자로 태어난 죄로 받았던 천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고난이 일궈낸 눈부신 성공
라이트 하우스와 모닝 플라넷, 데이터 스토어X, 엔젤힐링등을 거느린 TYK 그룹의 총수 김태연 회장(55)의 성공 신화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에서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이라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숱한 고생을 겪으면서 그랜드 마스터로, 실리콘 밸리 신화를 창조한 기업인으로 성공을 거둔 그녀의 영화 같은 인생 스토리를 담았다.
많은 사람들은 김태연 회장을 단순히 성공한 기업인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실리콘 밸리의 작은 거인’, ‘여성 최초의 그랜드 마스터’, ‘미국 100대 우량기업 여성 CEO’, ‘김태연 Can do’.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들은 그녀가 미국에서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지를 대변해준다. 반도체 장비회사인 라이트 하우스와 웹사이트 전문회사 모닝 플라넷, 놀스타, 데이터스토어X, 엔젤힐링 등 유망 하이테크 산업의 최고 경영자일 뿐만 아니라 정수원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미국 최초의 여성 그랜드마스터로서 젊은이들에게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주변에서 모두들 성공을 인정하고 있는 그녀는 그러나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턱없이 무시당하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64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그녀는 정월 초하루가 시작되는 밤12시 무렵에 첫 울음을 터뜨려 온 집안 집안 사람들로부터 ‘세상을 흔들 장군감’이란 기대를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도 잠시였을 뿐 태어난 아이가 사내가 아니라 계집아이라는 사실은 가문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모진 시련이 시작되었다. ‘집안을 망하게 할 아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늘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으며 특히 아버지의 지독한 냉대는 어린 마음에 지울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그녀의 유년 시절은 그렇게 눈물이 마를 새 없이 지나갔다.
그녀의 고난은 미국 생활에서도 그칠 줄 몰랐다. 고향에서 제대로 기 한번 못펴고 지내다가 23세 때 가족들과 함께 이민길에 오른 그녀는 유색인종으로서 겪어야 할 갖은 어려움은 다 당했다. 어린 시절 배운 태권도로 도장을 운영을 할 때나 자신의 사업을 꾸려 나갈 때도 혼자 넘어야 할 산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았다. 할 수 있다는 마음, 반드시 해내고 말 것이라는 신념으로 버텨다.
현재 그녀가 운영하는 라이트 하우스는 연매출이 1천5백억원을 기록하는 우량기업이며 환경, 컴퓨터, 인터넷, 피부미용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확장 시켰다. 사업뿐만 아니라 태권도 도장인 정수원 아카데미의 그랜드 마스터로, 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인 ‘태연 김 쇼’ 진행자 등 미국 내 저명인사들의 반열에 올라있다. 그녀는 분명 성공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성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POINT 1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올해 초 김 회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잠시 귀국을 했다. 지난 96년 방문 이후 5년 만에 다시 고국을 찾은 그녀는 이번 방문을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자신의 오랜 신념을 깊이 심어주었다. 지금까지 숱한 고생 속에서도 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Can Do’를 잊지 않았던 그녀는 프로그램 마지막에 특유의 강한 목소리로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는데 왜 나라고 못하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녀의 성공 이야기를 듣기 원하는 수많은 기업체와 학교들로 쇄도하는 요청을 수락, 강연을 위해 잠시 귀국했을 때 인터뷰에 응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도 자신의 성공 포인트는 ‘할 수 있다’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인생을 결정짓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안된다고 생각 때문에 조바심을 내고 자학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자신의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할 수 있는 일을 왜 자신은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까? 모든 일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부터 출발을 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이 발로 성공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POINT 2 도전하는 자만이 성공을 만난다
성공을 한 사람의 공통점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바로 도전정신이다. 김 회장 역시 남다른 도전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특히 그녀의 인생을 살펴보면 무엇 하나 쉽게 이루어진 것이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그녀로 하여금 세상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감으로 도전하는 자세를 갖추게 했다.
그녀가 미국에 갔을 때까지만 해도 그곳에서는 동양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버몬트에 새로운 둥지를 튼 그녀는 자신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새로운 터전에 적응을 하기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했지만 누구 하나 마음을 터놓고 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그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기로 결심했다. 흰 종이에 큰 글씨로 ‘내 이름은 김태연입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되고 싶다’는 문구를 적어 피켓을 만든 그녀는 그것을 들고 무작정 마을을 돌았다. 하루에 백 군데를 돈다는 목표를 세운 그녀는 집집마다 방문해 초인종을 눌러댔다.
대부분 문도 열어주지 않은 채 창 밖으로 쳐다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방문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씩 문을 열고 악수를 건네거나 집 안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홍보하고 다닌 그녀의 노력은 마침내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이웃들도 점점 늘었다. 미국에서의 첫 도전은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녀가 미국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게 된 것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버몬트의 한 고등학교의 교장을 찾아가 무작정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작은 동양여자가 되지도 않는 영어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하니 학교 측으로서는 쉽게 믿을 수 없었지만 워낙 당당하고 열정이 느껴져 수업을 허락했다. 그녀가 미국에서 최초의 여성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첫 출발이었다.
그녀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결국 사업으로까지 이어져 1985년 오랫동안 머물렀던 버몬트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산호세에서 새로운 둥지를 마련, ‘라이트 하우스’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고 컴퓨터 사업을 시작했다. 버몬트에서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찾아 왔다가 양아들이 된 스캇과 마이클, 토머스가 그녀를 도왔다. 실리콘밸리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POINT 3 포기라는 말을 사전에서 지운다
컴퓨터 사업을 시작하면서 성공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로 치밀한 계획도 세웠다. 넉넉하지 않은 자금으로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에 들어갔다.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열심히만 하면 자리를 잡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넘치는 의욕과는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집에 마련한 작은 사무실에 컴퓨터 몇 대가 고작인 새로운 업체를 알아주는 곳은 없었다. 게다가 워낙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돈을 아껴쓰기 위해 늘 수제비와 고구마로 끼니를 이어갔다.
처음 의뢰가 들어온 프로젝트를 위해 매일 밤을 꼬박 새가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6개월씩이나 늦게 완성을 하는 등 처음부터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일이 들어오지 않아서 수제비 만들 밀가루를 살 돈이 없을 때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버티기 힘들만큼 어려운 적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털렸을 때도 꿋꿋하게 버텼던 그녀였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라이트 하우스가 미국 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것도 어려움 앞에서 포기하기보다는 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녀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사업에서뿐만 아니라 태권도장을 설립하고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과정에서 더 감동적으로 나타난다. 버몬트에서 오래된 창고같은 허름한 건물의 2층을 빌려 도장을 열었을 때 그녀가 겪은 시련은 기억하기 싫을 만큼 끔찍했다. 동양인 여자가 운영하는 체육관이라고 해서 허가를 내는 것부터 애를 먹이더니만 ‘더러운 동양 여자는 나가라’, ‘동양인은 이 땅에서 살 자격이 없다’등 갖가지 욕을 하는가 하면 도장안에 쓰레기를 던지는등 심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저에 대한 그들의 시기와 질투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이 저를 주저 앉히지 못했죠. 오히려 제 자신을 더 채찍질 했습니다. 그런 모욕을 받을 때마다 반드시 성공을 하리라고 결심을 했으니까요.”
힘들 때마다 샤워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목놓아 울면서도 그들보다는 강해지고 단단해져 언젠가는 성공하고 말겠다고 스스로를 다졌다는 그녀는 무슨일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승자의 미소를 갖게 되었다.
POINT 4 진실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
현재 그녀는 산호세에서 15만 평의 대지에 ‘스타게이저’라는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오래 전 자신과 인연이 없는 남자와의 결혼을 접은 그녀는 6명의 아들과 세명의 딸을 입양해 함께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들은 현재 그녀의 사업을 이끌고 있는 주춧돌이기도 하다. 그녀는 현재 자신이 이룬 성공도 자녀들로부터 얻은 ‘어머니’란 이름에 비하면 하찮을 것일 뿐이라는 말을 할 만큼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그녀와 좋은 관계로 만난 것은 아니다. 이들이 지금의 어머니인 김 회장을 만나기 전에는 결손가정의 자녀들이었으며 폭력과 마약, 섹스 등 사회의 어둠속을 떠돌던 그야말로 문제아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런 아이들을 그저 쉽게 판단하고 가까이 하기조차 꺼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사실 이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부에는 나름대로 뛰어난 재능을 안고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그 재능을 높이 샀다.
대부분 자신의 도장을 찾아와 태권도를 배우면서 김 회장과 사제지간으로 만나기 시작한 이들은 그녀가 보여준 따뜻한 정과 인간적인 마음에 이끌려 모자의 인연을 맺었다. 특히 김 회장으로부터 엄격한 훈련을 받은 이들은 과거의 어두웠던 생활은 완전히 잊고 지금은 모두들 김 회장의 그룹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녀가 지금의 성공을 이루기까지 6남3녀의 역할은 눈부심 자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들 모두가 과연 외국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극한 효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일이라면 모두들 자다가도 달려나올 정도며 어머니의 말이라면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지킨다.
김 회장에 대한 태도는 비단 양자가 된 6남3녀뿐만 아니다. 그녀의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 그리고 그녀가 설립한 정수원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많은 제자들이 그녀를 대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이는 곧 그녀가 그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거 진실하게 대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녀는 자신의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원들을 위해 파티를 자주 여는 편인데 언제나 가족을 동반하라고 이른다. 그리고 파티가 열리면 가장 말단 사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내고 그들의 능력을 아낌없이 칭찬한다. 가족들 앞에서 회장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사원이 더욱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POINT 5 내 자신도 ‘상품’임을 잊지 않는다
김 회장을 처음 만나는 사람이면 그녀의 화려한 외모에 먼저 눈이 가게 된다. 스스로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다고 밝힐 만큼 그녀의 복장은 눈에 띤다. 화장도 보통 사람들에 비해 짙다. 인터뷰를 위해 김 회장을 만났을 때 그녀는 선명한 빨간색의 투피스를 입고 있었으며 오른쪽 가슴에 하트 모양의 브로치를 달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복장은 철저하게 상대를 배려한 것이라는 것을 한참동안 대화를 나눈 후에야 알게 되었다.
“레이디경향은 여성 독자들이 많은 잡지죠? 그래서 일부러 빨간색 의상을 선택했어요. 만일 잡지 성격이 달랐으면 제 복장도 달라졌겠죠. 가슴에 단 하트 모양의 브로치는 비록 지면을 통해서지만 제가 독자들과 마음을 터놓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달았습니다.”
짧은 인터뷰를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쓸 만큼 그녀는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녀가 화장을 하고 의상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외모를 꾸미는 일에 대해 도통 관심이 없었던 그녀가 자신을 변모시킨 이유는 스스로가 ‘상품’임을 내세우면서부터다. 키 작은 동양 여자에 대해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한 특별한 방법을 생각하다가 다소 ‘튀는 느낌’을 주기 위해 화장을 시작했고 의상을 준비했다. 요즘에도 그녀는 미팅의 성격에 따라 어울리는 의상을 준비해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갈아 입는 성의를 보인다.
그녀가 신경을 쓰는 것은 비단 외모뿐만 아니다. 올해 55세인 김 회장은 그러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하고 활기차다. 한국 태권도연맹이 공식으로 인정한 세계 최초 그랜드마스터인 만큼 여전히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으며 늘 계획적인 생활을 유지한다. 워낙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한번 시간에 쫓기다 보면 하루 일과 자체가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과 방송, 강연등 많은 일을 하면서도 명상과 운동 등 스스로를 단련하는데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그녀가 여전히 젊게 사는 비결이며 성공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
◆취재 후기
김 회장과의 인터뷰는 그녀가 짧은 일정으로 귀국했을 때 신라호텔에서 이루어졌다. 세종대학교와 국방대학원 등에서의 강연, 방송출연, 고향 방문등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마음을 다해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에서 보냈던 어린시절과 미국에서 성공하기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 할 때는 복받치는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성공을 위해 갖은 고생을 다 참아낸 그녀였지만 가슴속에는 누구보다도 여리고 따뜻한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한시간 반동안 이어진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에 들어간 김 회장은 거센 비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 촬영을 부탁하는 사진기자의 정중하고도 조심스러운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었다.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기 바라기 때문에 어떤 악조건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인터뷰와 촬영을 모두 마치고 작별의 인사를 나눌 때까지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거듭 밝혔다.
“좋은 경험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마세요.”
도널드 트럼프랑 동갑..46년생..
저때는 옛날이었으니까 인종차별 더 했을듯..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근데 성공시대 볼때 이분이랑 같이 사는 미국인들이랑 종교단체처럼 행동하는걸로 보였던건;;
22222 진짜 매스컴에 자주 비춰주는데 그때마다 사이비종교같이 히캔두잇쉬캔두잇와이낫미 를 외쳐대던.ㄷㄷ
멋있네요!
진짜 이분..전에 방송에서 봤는데 집이 장난이 아니였음..대문이 열리면 언덕(들판같은)이 나와서 그 넓은 땅을 지나야 집이 나옴...완전 대단..키 150cm인데도 불구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라고..
저도 봤삼. 너른 들판에 집있고 막 마당에서 해뜨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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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사람이 쓴 책있는데.. 글쎄..뭐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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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목을 맨손으로 도미회 성공신화 창조한 신화-_- 라고 보고 들어왔33333 가수신화로 보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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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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