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빙판길 옆 모래 적재함이에요. 그대의 헛바퀴 밑에서 그대의 먼 길을 배웅하지요. 삽날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제 생의 전부임을, 그 아픔의 성에를 말하지는 않겠어요. 미끄러지지 않는 삶은 쉬지도 바로 갈 수도 없잖아요. 하지만 뒤집히거나 굴러 떨어지진 말아요. 돌아오지 않는 길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빙판길 저 아래에 쌓인 고운 모래톱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거나 억새꽃으로 피어올라 그대 차창을 흔들 거예요
삼 년 전인가, 무식하게 눈이 내리던 대설 언저리에 여기에서 죽을 뻔했다고, 이 적재함에 바퀴가 걸렸기 망정이지 큰일을 치를 뻔했다고, 호들갑을 떨며 옆좌석의 연인에게 자랑하지 말아요. 그대와의 아스라했던 만남을 몸서리치며 냉이꽃을 피워 올리는 집 한 채가 있어요. 단칸방 속에서 그대의 삽날 자국을 뜨개질하고 있는 젖은 실뿌리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옆좌석에 있는 그대의 연인이, 나도 저 모래의 집처럼 어둡다고, 당신의 응달에서 당신의 바퀴 탄내에 마음 졸이며 살아가고 있다고, 억새의 새순 같은 하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녀의 작은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삽날 부딪는 소리, 그 소름 돋는 사랑을 꼭 한 번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건 순전히 그대 맘이지요. 하지만 다시는 눈보라 속 빙판길을 넘어오지 못하겠지요. 모래의 집 속에서 단 한 번으로 부서지고야 말 서릿발이, 겨우내 까치발을 딛고 있으니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