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 하린
1. 상상테마를 적용할 때 기억해야 할 시 쓰기 3단계
어떤 사람들은 '시 쓰기를 어떻게 가르치나?' '시 쓰기는 기술이 아니다. 어떻게 훈련시킬 수 있나?'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문예창작학과 폐지론까지 펼치기도 한다. 필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예술에 대한 기본 감각을 기를 때까지 미술 분야나 음악 분야는 끊임없이 연습과 훈련을 하는데, 왜 유독 시는 시적 영감이나 나르시시즘에 빠져 창작만 열심히 하면 저절로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가?" 단적으로 말해 시도 감각이다. 관찰 감각, 사유 감각, 표현 감각이다. 관찰도 사유도 표현도 감각적으로 했을 때 감동과 신선한 정서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나만의 차별화된 시적 사유와 시적 감각이 생길 때까지 다양한 시 쓰기 방법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고 따라 하고 개별화하여 자신만의 시적 세계에 도달해야 한다.
제1장에서 말하는 시 쓰기 전체 과정은 필자가 오랜 창작 활동과 훈련을 통해 정착시킨 관찰 감각, 사유 감각, 표현 감각에 관한 것이다. 이 방법은 수도 없는 시 쓰기 방법 중 예시에 해당하는 하나일 뿐이다. 독자들은 이 방법을 변용할 수도 있고 이 방법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방법을 착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취사 선택하려는 자세로 1장을 꼼꼼하게 읽어주길 바란다.
1단계 : 스스로 점검하기_메시지 분명히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제일 좋은 시는 감동과 여운을 오랫동안 주는 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 좋은 시를 창작하고자 할 때 실패하는 이유 중의 한 가지는 바로 쓰고자 하는 나만의 지점(메시지)을 분명히 하지 않고 쓰기 때문이다. 그저 소재주의에 빠져 자꾸 새로운 소재만 찾거나 단순한 영감에 의해 창작하게 되면 그러한 결과를 얻게 된다. 기막힌 소재나 모티브, 시적 영감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이 나만의 지점을 갖고 있는 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시는 크게 두 축에 의해 창작된다. 나만의 간절한 지점이 하나의 축이고, 간절한 지점을 대신 표현할 객관적 상관물(현상)이 또 하나의 축이다. 두 개의 축이 분명하게 세워졌을 때 창작을 시작해야 한다. 하나의 축만 설정한 다음에 시를 쓰게 되면 막연한 시가 되거나 누군가 쓴 것 같은 시가 되기 십상이다. ‘나만의 간절한 지점’은 지독히 시적이고 예민한 상태의 정서적 문양, 존재론적 문양, 관계론적 문양을 말한다. (실제로 감동을 주는 현대시는 이 세 가지를 주로 쓴다.) 여기서 “지독히 시적이고 예민한 상태”라는 것은 구체적이고 간절한 경험 맥락을 가진 화자나 시적 대상이 어떤 구체적인 정황(상황) 속에서 드러내는 개별적 심리 상태이다. 예를 들어 미혼모 화자를 등장시켜 유산하는 상황으로 시를 쓴다고 했을 때 화자의 상태를 구체적인 간절함 속에 놓이게 해야 한다. 막연히 안타까운 감정을 가지고 단순히 산부인과 상황만 인식하고 쓰면 안 된다. 적어도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경험 맥락과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미혼모의 나이는 17살,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 시간적 배경은 모든 생명이 신생을 향해 움직이는 봄인데, 학업을 위해 유산(죽음을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이 정도로 경험 맥락을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유산의 상황도 수술 전 침대에 누워 있는 심리 상황으로 할 것인지, 수술을 마치고 산부인과 복도를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아이를 안고 오는 산모를 봤을 때의 심리 상황으로 할 것인지, 수술을 끝내고 밤에 몰래 후문으로 빠져나가는 심리 상황으로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반드시 구체적인 경험 맥락과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했을 때에만 내가 쓰려고 하는 구체적인 나만의 지점이 탄생하는 것이다.
트럭 / 하린 트럭, 하고 공기를 토하면 거대한 밤이 질주해 온다 살다 보면 폭력적인 기계를 몰고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싶은 밤은, 꼭 온다 너는 비행소년에서 비행청년으로 자라고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엔진으로 장착한다 방향지시등이 고장 난 삶에서 넌 애인에게 예민한 급소를 들킨다 건기 내내 굶주린 사자처럼 넌 너무 오래된 이빨을 숨겼다 천천히 혈관을 따라 불법 제조한 분노가 주입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혁명이 끓어오른다 식상한 표정으로 어머니가 시야를 흐린다 애야, 넌 너무 착하단다 이제 그만 일하러 가야지 어머니가 걸어갈 때마다 등 뒤에선 사리事理가 뚝뚝 떨어진다 B급 기름 같은 아버지와 길들여지지 않는 애인과 마이너스 통장을 보고도 그런 악몽을 견디다니 어머니는 트럭보다 무서운 기계다
아, 씹어 먹고 싶은, 으깨고 싶은 밤은, 꼭 온다 트럭, 하고 입을 벌리면 신호등이 녹색 불로 바뀌고 불만을 가득 채운 가스통을 싣고 트럭들이 몰려온다 어제도 그제도 백 년 전에도 너는 방치된 유전자다 - 시집 『서민생존헌장』, 천년의시작, 2015.
필자의 「트럭」의 경우 '나만의 지점'은 빈부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자가 겪게 되는 극단적인 이탈 심리이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방치된 유전자"로 살아가는 화자에겐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 사리(事理)'에 맞게 행동해도 가난이 악몽처럼 달라붙는다. 그 악몽의 반복 속에서 화자는 분노와 이탈 심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나만의 집중할 하나의 시적 지점으로 그런 심리 상태를 설정하고 시를 썼던 것이다.
나만의 간절한 시적 지점을 찾고 나서 쓰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번 시의 적용할 '내 시만의 장점'이고 또 하나는 객관적 상관물(상관 현상) 찾기다. '내 시만의 장점'에 대해 먼저 설명하겠다.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시를 어느 정도 배워서 쓰다 보면 진지하게 잘 쓴 시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한 경지에 오르기까지 힘든 과정도 겪었을 텐데 막상 진지하게 잘 썼는데도 사람들이 ‘당신 시는 신선하지가 않아.’ 또는 ‘당신 시는 개성이 없어.’라고 한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허무해지게 된다. 그렇게 진지하게 잘 쓴 시로는 독자나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예심을 통과하더라도 본심에서 선택받으려면 ‘내 시만의 장점’을 적어도 하나는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필자는 나만의 시에 적용할 시의 장점을 여덟 가지로 설정했다.
첫째, 새로운 발상(상상, 역발상 포함)이다. 어떤 당선작들을 보면 ‘참 발상이 좋네!’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니 새로운 발상이나 상상, 역발상을 통해 나만의 시에 도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예시 작품 찾아보기: 마경덕 시인의 「놀란 흙」, 한혜영 시인의 「퓨즈가 나간 숲」, 박성우 시인의 「넥타이」 등)
둘째, 지독하게 섬세함을 동반한 표현과 사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놀랄 만큼 섬세함이 자리한 시를 읽게 되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관찰을 하다니’, ‘놀랄 만큼 섬세하게 시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니’하는 평이 나온다면 그 시는 성공한 시다. (예시 작품 찾아보기: 문보영 시인의 「막판이 된다는 것」, 김기택 시인의 「멸치」 「껌」 등)
셋째, 탁월한 비유이다. 시는 근본적으로 비유의 속성을 갖는다. 시인이 시 속에 표현하려고 하는 나만의 지점(원관념)을 향해서 갈 때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객관적 상관물이나 객관적 상관 현상(보조관념)을 끌어와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이 비유다. 그럴 때 비유가 정말 탁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가 막힌 비유를 활용할 줄 안다면 그것 또한 대단한 장점이다. (예시 작품 찾아보기: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 신철규 시인의 「샌드위치맨」, 이원 시인의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길상호 시인의 「식은 사과의 말」 등)
넷째, 탁월한 상징이다. 시에서 구체성 안에 암시성을 담는 방법 중 하나는 상징을 활용하는 것이다. 상징은 추상적인 사실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대표성을 띤 기호나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일을 말한다. 상징 자체가 ‘구체적인 사물’이나 감각화된 표상을 활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구체성 획득에 무난하고, 암시성도 자연스럽게 담기는 힘이 있다. 이런 상징을 탁월하게 활용해서 시를 창작하면 이것도 나만의 장점에 해당한다. (예시 작품 찾아보기: 김지녀 시인의 「선」, 안희연 시인의 「사슴」, 박소란 시인의 「검정」 등)
다섯째, 신선한 시적 직관이나 예기치 못한 시적 반전이다. 어떤 좋은 시의 경우엔 ‘정말 시인의 시적 직관이 탁월하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에 나타난 정황과 화자나 대상이 가진 존재론적인 의미를 꿰뚫어 보듯이 표현한 직관을 읽을 때 우리는 시의 깊이와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 (예시 작품 찾아보기: 김충규 시인의 「바닥의 힘」 등)
여섯째, 읽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솔직 담백한 시적 진술을 잘 구사하는 것이다. 이런 시들은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시인과 화자가 잘 분리된 상태에서 오로지 화자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해서 공감과 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시 쓰기 방식이다. (예시 작품 찾아보기: 김이듬 시인의 시들, 김민정 시인의 시들, 강성은 시인의 시들 등)
일곱째, 재미있는 풍자이다. 특히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고 비판적 안목을 갖고 시를 쓸 때 적용해야 할 장점이다. 무작정 재미없게 직설적으로 비판하지 말고 풍자 미학을 활용해 탁월하게 비판을 하면 시를 읽는 재미와 통쾌한 비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누구나 비판은 잘한다. 비판은 쉽고 간편하다. 그런 비판도 풍자 미학을 활용해서 시로 형상화시킬 때 미학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예시 작품 찾아보기: 복효근 시인의 「난해시 사랑」, 필자의 「서민생존헌장」 등)
여덟째, 지금까지 남들이 안 쓴 소재나 모티브로 시는 쓰는 것이다. 지금까지 누군가 안 쓴 소재나 모티브를 발견할 때 쾌감은 매우 크다. 독창적인 시적 포즈를 취할 수 있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감탄하게 만드는 나만의 소재나 모티브를 찾아서 쓰게 되면 그것 또한 커다란 장점 중의 하나가 된다. (예시 작품 찾아보기: 박은영 시인의 「발코니의 시간」, 정한용 시인의 「후일담」, 고영민 시인의 「통증」, 이영주 시인의 「녹은 이후」 등)
이 여덟 가지 중에서 단 한 가지만 있어도 그 시는 독자성을 인정받는다. 앞으로 창작을 하기 전에 ‘내 시만의 장점’을 꼭 한 가지씩 설정하고 시를 써보자.
필자의 「트럭」에서의 장점은 바로 시인만의 시적 직관이다. "방향지시등이 고장난 삶에서 넌 애인에게 예민한 급소를 들킨다" "천천히 혈관을 따라 불법 제조한 분노가 주입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혁명이 끊어오른다" "어머니가 걸어갈 때마다 등 뒤에선 사리(事理)가 뚝뚝 떨어진다. B급 기름 같은 아버지와 길들여지지 않은 애인과 마이너스 통장을 보고도 그런 악몽을 견디다니 어머니는 트럭보다 무서운 기계다" "어제도 그제도 백 년 전에도 너는 방치된 유전자다"와 같은 표현이 바로 그런 장점에 해당하는 부문이다.
2단계_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가 이미지이다. 이미지가 있어야 독자들의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실감과 공감을 쉽게 얻는다. 이미지는 단적으로 사물이나 현상이다. 그래서 사물과 현상을 소재나 모티브 또는 객관적 상관물(현상)로 잡아야 한다. 그 사물과 모티브가 대부분 비유의 보조관념으로써(정서 상태를 대변해 주는 대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나만의 보조관념으로 사물과 현상을 활용할 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1단계에서 나만의 간절한 시적 지점을 잡았다면 그 간절한 시적 지점을 대변할 사물과 현상을 찾는 것이 2단계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수행할 때 작고 단순한데 시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사물, 현상, 속성을 찾아야 한다. 크고 총체적이고 복잡한 것은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소재나 모티브이기 때문에 나만의 객관적 상관물(현상)이 되지 못한다. 작고 단순한데 시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서 그 객관적 상관물(현상) 위주로 시를 써야 한다.
위의 예문에 나온 필자의 「트럭」의 경우, 단순한 객관적 상관물은 트럭이다. '가난한 자가 겪게 되는 극단적인 이탈 심리'가 나만의 간절한 지점으로 잡힌 상태에서 그 지점을 가장 잘 대변할 상관물로 트럭을 설정했던 것이다. 트럭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단순하다. 크고 거칠고 묵직한 이미지를 가진 운송수단이다. 만약 그 트럭이 끝없는 질주를 한다면? 무섭거나 공포스러운 이미지도 포함한다. 「트럭」 은 그렇게 트럭이 갖는 단순한 속성에 움직임 현상까지 활용하여 나만의 시를 창작하게 되었다.
객관적 상관물을 활용할 땐 지독하리만큼 정밀한 관찰을 해야 한다. 한발 물러나서 관팔하는 상태가 아니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모든 것을 알고 깨닫고 있는 듯한 상태가 아니라 정말 그 대상과 하나가 된 밀착한 상태에서 남들이 안 보는 눈으로 정밀하게, 세밀하게 객관적 상관물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나만의 발견과 나만의 직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한 기법을 필자는 「시클」에서 ‘현미경 기법’과 ‘내시경 기법’이라고 명명했다. ‘현미경 기법’은 자신만의 정밀한 눈으로 시적 대상의 외적 요소를 관찰하고 읽어내는 기법이고, ‘내시경 기법’은 자신만의 섬세한 직관으로 대상의 안쪽이나 너머를 깊이 있게 읽어내는 기법이다.
3단계_확장하기_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시를 잘 쓰려면 체험을 진실되게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시적 진정성 때문이다. 그래서 체험은 시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체험이 진정성의 절대적 조건은 아니다. 진정성은 시인의 진실한 체험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시 속 화자의 진실한 태도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시인이 시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가 시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만 깨닫는다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체험은 모두 소용없는 것인가? 아니다. 화자의 체험은 시인의 직간접적인 체험이 스며들어서 나타난다. 간이역에서 이별한 적 없는 시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이별하는 화자의 상황을 시로 쓴다고 치자. 그럴 때 기차역에 대한 시인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하나도 없다면 간이역을 배경으로 하는 진정성 있는 이별시는 탄생할 수 없게 된다. 시인이 적어도 기차역을 가보거나 간접적으로 다른 매체를 통해 간이역을 경험해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화자가 상상적 체험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시인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확장되고 재조립되어야만 화자의 경험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인의 체험이 이렇게 중요한 데도 시인의 체험만 가지고 쓰지 말라는 것은, 시인의 이성과 가치관, 윤리 등이 화자의 책임을 확장하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화자 입장에서만 정황과 정서가 철저하게 펼쳐지고 뱉어 나가야 하는데, 시인이 그 화자를 간섭하는 그림자로 따라붙는다면 시 세계는 한정되고 제재도 금방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그런 상상적 체험을 극단까지 끌고 가서 실감 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의 대상이 가진 존재적인 의미를 탐구할 때도 대상이 처한 상황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다양한 환경적 조건과 정서적 조건을 부여해서 가장 잘 존재성을 발현할 수 있는 체험적 상황을 설정해야 한다. 기존에 있던 익숙한 체험적 상황에서 최대한 벗어나고, 벗어날 수 없다면 전혀 다른 경험적 발상을 적용해야 한다.
상상적 체험은 시인의 주관성을 버리고 화자 입장에서 아주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 시간적 체험, 공간적 체험, 사건적 체험 등을 내밀하게 펼치면 된다. 다시 한번 간이역에서의 이별을 시로 쓴다고 치자. 시간적 체험으로 ‘노을 낀 저녁’ ‘비 내리는 새벽’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 ‘얼음이 녹기 시작한 3월’ ‘억새가 산등성이를 물들이는 가을’ ‘어둠의 숨소리마저 차가운 겨울’ 등 다양한 시간과 계절을 떠올려야 한다. 같은 상황이어도 봄의 이별과 가을의 이별은 같을 수 없고 막차 시간 때의 이별과 첫차 시간 때의 이별 또한 같을 수 없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매표소 앞의 이별과 플랫폼 안의 이별과 역 광장에서의 이별은 다르다. 바닷가 앞 간이역과 들판 앞 간이역은 또 다르다. 상황도 다양하게 체험해야 한다. 헤어진 존재가 기찻길로 뛰어드는 상황, 화자와 헤어진 이가 서로 반대편 행 기차를 타고 가는 상황, 승차가 아니라 하차하면서 이별하는 상황, 헤어지고 나면 죽은 후에야 만날 수 있는 상황 등 다양한 상상적 체험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상상적 체험을 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1단계에서 설정한 나만의 시적 지점이다. 무작정 상상적 체험을 하지 말고 나만의 시적 지점을 머릿속에 품은 상태에서 체험을 극적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엄마에 대한 오묘한 연민 의식’을 나만의 지점으로 설정하고 시를 쓴다면 그 메시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체험을 펼쳐야 한다. ‘오묘함’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상상을 펼치면 좋겠다. 친엄마는 일찍 자신을 버렸는데, 새엄마는 귀찮아하면서도 끝까지 화자를 돌보는 상황. 그 상황을 바탕으로 솔직 담백하게 새엄마의 심리와 화자의 심리를 동시에 반영하면 ‘오묘함’이 확보될 것이다. 지나치게 착한 새엄마로 상상을 하거나 지나치게 나쁜 새엄마로 상상을 해서 쓰게 되면 전자는 ‘작위적이다.’ 후자는 ‘너무 뻔하다.’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연민의 경우 추가로 이런 상상까지 하게 되면 더욱 좋다. 친아빠마저 죽고 병든 새엄마만 남겨진 상황, 그럴 때 병든 새엄마에 대한 심리 상태는 묘한 연민 의식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엄청 잘 해준 적은 없지만 끝까지 버리지 않고 키워준 것에 대한 고마움 + 친엄마의 자리를 차지하고 혈연처럼 잘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 + 나마저 버리면 새엄마가 비참하게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대한 미안함’ 등이 합쳐져서 묘한 연민 의식이 자리하게 된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누구나 공감이 가능한 있을 수 있는 상황을 체험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만의 상상적 체험을 하라고 하니까 특수하게 있을 수 있는 (1,000명이면 한두 명 경험할 수 있는) 상황으로 체험을 해서 새로운 시인양 쓰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시가 억지스럽다’ ‘시를 머리로 썼네’ ‘시를 동화처럼 썼네’하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정리한 시 쓰기 준비 3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단계_스스로 점검하기_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2. 단계_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3. 단계_ 확장하기_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앞으로 상상 테마로 시 쓰기를 할 때 여기에서 제시한 시 쓰기 3단계를 모두 거친 다음 쓰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나만의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기회를 매번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귀찮더라도 3단계까지 준비를 한 다음 꼭 시를 쓰길 바란다.
- 출처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더푸른, 2021.09)
* 저자(하린 시인) 약력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학위. 2008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시 창작 안내서 『시클』. 청마문학상(2011), 송수권시문학상(2015), 한국해양문학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현재 중앙대 문화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시 창작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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