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아내, 63년간 기다린 남편 마침내 돌아오다.
67년의 사랑…
부인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남기고 숨진 6·25참전 미군 94세 갠트 할머니의 눈물, "이제야 우리 결혼생활 완결됐네요"
“저는 지금 너무나 행복합니다. 남편이 드디어 집에 돌아왔어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의 유해가 63년 만에 미국 고향으로 귀환했다. 그 동안 결혼을 하지 않고 남편을 기다린 올해 94살, 백발의 부인(婦人)이 직접 남편의 유해를 맞이했다. 미군 병사는 지난1950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아내에게 100달러짜리 지폐를 동봉한 카드를 보냈다. 그는 그로부터 일주일 가량 지나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3개월 뒤인 1951년 3월 포로수용소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성조기에 덮인 남편의 관을 마주한 부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국전에 참전한 후 63년만에 유해로 돌아온 남편 조지프 갠트 일등상사를 맞이하는 클래라 겐트 여사 /NBC Southern California |
AP통신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지역 방송 등에 따르면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 한국전 실종 미군 조지프. E 갠트 일등상사의 유해가 지난 20일 새벽(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갠트 전 일등상사의 부인인 클라라 갠트(Gantt·94) 여사는 공항에서 남편의 유해를 직접 맞이했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미국 텍사스 시골마을에서 출발해 로스엔젤레스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시작된 가슴 절절한 러브스토리가 있다.
갠트 일등상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북한 군우리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1951년 3월 사망한 것을 알려졌다. 갠트 일등상사는 1924년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어났으며, 18살이 되는 해인 1942년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다.
클라라 여사는 텍사스의 한 농장에서 18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자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 지겨웠던 그는 시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을 들고 캘리포니아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은 1946년 그 열차에서 처음 만났다.
열차에서 클라라 여사에게 처음 말을 건넨 건 남편의 동료였다. 클라라 여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갑자기 남편이 쪽지로 ‘여기(워싱턴주)에서 내리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 때 클라라 여사의 종착지는 로스앤젤레스였고, 갠트 상사 일행의 목적지는 워싱턴주였다. 겐트 상사는 열차에서 내린 그녀에게 끈질기게 구애했다.
한국전에 참전한 후 63년만에 유해로 돌아온 갠트 일등상사 |
클라라 여사는 처음에 갠트 상사를 유부남으로 오해해 한동안 그의 구애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 당시 군인은 대부분 고향에 부인이 있었어요. 게다가 그 때 남편은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기차에서 만난 낯선 남자에 불과했지요. 그 낯선 남자가 내 인생을 걸 만한 사람인지 좀 더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어요.”
갠트 상사는 주정부 증빙서류를 보여주며 자신이 미혼이라는 것을 클라라 여사에게 증명했고, 그제서야 클라라 여사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 때 클라라 여사의 나이는 27살, 갠트 상사는 23살이었다. 두 사람은 열차에서 처음 만난 지 2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두 사람은 1948년 6월 워싱턴 포트루이스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
2년 후인 1950년 갠트 상사는 다시 6·25 참전 길에 올랐다. “그는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군인이었어요. 그는 군 생활을 사랑했어요. 2차대전에서 복귀한 직후에 바로 다른 전쟁에 지원서를 냈죠. 그게 그의 인생이었어요.” 갠트 상사는 미 2보병사단 503포병부대 C포대에 지원했다. 갠트 상사는 그가 참가한 전투에서 수많은 훈장을 받았다. 6·25 전쟁에서는 브론즈스타 메달을 받았고, 2차대전에서는 승리메달, 필리핀 독립 리본 등을 받았다.
클라라 여사는 남편이 6·25 전쟁에 참전한 그 해 12월을 기억했다. 당시 갠트 상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클래라 여사에게 100달러 지폐를 담은 카드를 보내왔다. 1950년 100달러를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980달러(120만원)에 달한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그로부터 며칠 뒤 갠트 상사는 군우리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이듬해인 1951년 3월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갠트 상사는 집을 나설 때 클래라 여사에게 혹시라도 자신이 전쟁에서 전사하게 되면 재혼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클라라 여사는 “남편은 심지어 자신보다 나에게 더 잘해줄 수 있는 남자를 찾아 소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클라라 여사는 그때 남편한테 약속했다. “당신을 제외하고 앞으로 다른 사람과 결혼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한국전에 참전한 후 63년만에 유해로 돌아온 남편 조지프 갠트 일등상사를 맞이하는 클래라 겐트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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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여사는 실제 지난 63년 동안 남편만을 기다렸다. 그 긴 세월동안 잠깐이라도 다른 사람을 사귄 적이 없었다고 했다. 클래라 여사는 기자들 앞에서 “결국 저는 여기에 그 사람의 아내로 서 있어요. 그리고 저는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부인이에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클라라 여사는 지난 수십년 동안 워싱턴 D.C에서 미국 참전용사의 미망인 및 가족들과 함께 행방불명된 참전용사를 찾는 집회를 열어왔다. 미국에는 지금도 약 8만명의 참전용사가 행방불명된 상태다. 클라라 여사의 가족은 집회에 나가는 그녀에게 “미쳤다”고 했다. 제발 남편을 잊고 재혼하라고 사정도 했다. 하지만 클라라 여사는 가족들에게 “그 사람은 제 남편이잖아요. 나는 가족들에게 내가 휠체어를 탈 때까지 (남편을 찾는 일은) 계속하겠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워싱턴 집회 참여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고, 클라라 여사는 ‘남편의 유해가 돌아왔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는 홀로 워싱턴으로 갔고, 남편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담담히 들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에 묻힌 갠트 상사의 시신을 최근에야 찾아 하와이로 이송했으며, 하와이의 ‘미군 합동 전쟁포로’ 감식반에서 신원확인 작업을 거친 뒤 클라라 할머니에게 시신을 인도했다고 설명했다.
클라라 여사는 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저는 남편이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최고의 남편이자 이해심 깊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언제나 남편만을 사랑했고, 남편과 저는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이제야 우리의 결혼 생활이 완결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갠트 상사의 유해는 이달 말 LA 인근 잉글우드에 안장된다. 클라라 여사도 사망하면 남편 곁에 묻히게 된다. 미 국방부는 북한에 묻힌 전사자 유해를 꾸준히 발굴해 미국으로 귀환시키고 있으나 6·25 당시 행방불명된 전사자와 실종자가 아직도 7900명에 달한다고 한다.
♪ 흐르는 곡 : 나나무수쿠리 - 사랑의 기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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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4.03.27. 6.25. 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감사합니다
진실한사랑이 무엇인지 알만도합니다.감사합니다.
감동적인 러브스 토리네요.
끝없는 사랑을 기다린 아름다운 이야기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사랑 .....감동......
공산당을 막으려 전사한 님과 부인님게 감사드림니다 종북세력 반성하세여 미국병사에 위대함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분들께 진정 감사의 마음과 지금도 종북편에서서 천안함폭침도 인정않고 사건이라고 하며 비하하고, 이런자들이 같은 하늘아래 있다는것이 좀 찝찝. 신이시어 어서 이들을 데려가소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아름다운 감동적인 사랑!!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초개와 같이 바치신 이런 분들이 있기에 오늘 날 우리가 잘 살고 있는데.도대체 북이 뭐가 그렇게 좋길래 북을 추종한단 말인가? 이런 밥버러지들 참 한신 스러워요.모두 잡아다 북으로 보냇음 좋겟다.
참으로 가슴아픈 사랑입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미국 캔드씨같은 분이 있어서 우리가 잘살고 있는데 종북 추종자들은 무슨생각을 하는지?????????????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전사하신 고인께 우선 명복을빌며 지금까지 기다려오신 여사님께 머리숙여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전사한 고인의 명복을 빌며 클래라 켄트여사의 사랑의 기다림에 감사 말씀 드립니다.
순애보이야기군요 것도 한국전쟁에서산화한 미군병사의.... 처죽일 김일성일가에게 하늘의 분노가 폭팔할 지어다 감사합니다
전쟁
더구나 이땅은 분단의 전쟁이 휴전 상태
늘 활화산 처럼 불안한 이땅에
또 다시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터인데~~
국론 통일 평화 통일
하루 속히 이뤄지길 기원합니다.
여사님 남은 여생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참으로 가슴아푼 일입니다. 무슨 말로 위로의 말씀을~~
클라라여사 여생 하느님의 은총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기가막힌인생이시군요 클라라여사님 이제남편을만나셨으니 마음편히 안정하세요 그정신을 감사드립니다
고맙고 감사해요
너무나 오랜세월 기다린 사랑하는이의 유골을 안고 무슨말로 위로의 말씀을 할수가 있을까 앞날에 좋은일만 있었으면 합니다
94세 아내, 63년간 기다린 남편 마침내 돌아오다 글 즐감하고 나갑니다 수고하여 올려 주신 덕분에
편히 앉아서 잠시 즐기면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대단한할머니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내요,,
건강하십시요 고맙습니다.
기다린 세월이 너무 아깝지만 늣게나마 맞아주신 여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요,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남은 여생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그리고 건강하세요
대단 합니다..건강 하세요...
감동적인 여사님의 아름다운 마음,,부디 부디 건강하세요
남의 나라에서 목숨을 잃은 저 ~ 거룩한 영혼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사랑하는 님을 그리며 그 ... 긴 세월을 살아 낸 여인앞에 마음이 숙연합니다.
모쪼록 남은 날들 건강하소서 _()_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수 없는...
너무나 큰 사랑 입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더구나 한국을 위하여 돌아 가셨으니.
존경스럽 고자랑스런'클라라'여사님 부디 오래 건강 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위해 귀하신 분 슬픕니다.명복을 빕니다.할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요.
클라라 여사의 그 지고지순한 사랑에 존경을 표합니다.
훗날 하늘나라에 가서 남편과 만나 못다 이룬 사랑을 나누세요,감동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