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휩쓸었던 몽골인들이 가장 잔혹하게 다루었던 중동에 그들이 남기고 간 일 한국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일 한국 분열 후의 세력중 하나인 'CHOBANIDS'는 주변 세력을 차츰 정복하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성장하여 주변 세력에
대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게된다. (옆의 맘루크에게 신경쓰면 지는거다.)
모두들 'CHOBANIDS'가 몽골의 후예를 자처할것으로 예상했으나 그 예상은 빗나가게 된다.
'CHOBANIDS'의 공식 선포가 있던날, 세간은 너나할것 없이 경악하였다. 그들이 뒤를 잇기로 선포한것은 몽골이 아닌,
몇백년 전에 갈려들어간 잊혀진 왕국 페르시아였던것이다.
(저 위엄찬 페르시아를 보라!)
CHOBANIDS의 귀족들은 단체로 몰려가 당시 CHOBANIDS의 칸이였던 Qasim 1세에게 몰려가 이를 해명할것을
요구했으나, Qasim 1세는 알수없는 노랫가락을 흥얼이며 "몽골 x까! 우린 페르시아라고 xx아!" 라는 말만 되뇌일 뿐..
이었다고 전해진다.
선포식 이후, Qasim 1세는 중동에서 한창 악명을 떨치고 있던 The Mamluks 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선물을 안겨주며
페르시아와 우호관계를 다질것을 청했고, 아나톨리아에서 쌈박질에 여념이 없던 The Mamluks 는 이를 흡족히 여기며 받아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페르시아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Hamadan의 페르시아 재무청에서 쓰러져 있는 재무장관이 증명하듯
국고가 파탄 지경에 이르었다는것이다. 페르시아 당국에서는 이에 대한 원인을 페르시아의 고소득지역에 몰려있는
시아파 신도들이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았으나 그걸 알고있다고 지금으로써는 마땅히 취할수 있는 방도도 없었기에 걷히는 모든 세금을 국고로 걷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국고가 안정되자, 페르시아는 자신들의 고유영토를 무력 점거하고 있는 유목민족 Nogai를 정벌하기로 결정하고
페르시아군 3만(은 군 전체) 을 출병시켜 Sistan, Herat 에 대한 공성을 지시한다.
'Herat가 함락되었다!' 라는 소식을 안고 전령이 Hamadan에 당도하였다. Qasim 1세는 소식을 듣고 흡족해 하며
전령을 크게 치하하였다.
Zahedan의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은 Nogai의 군대를 격파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압도적인 물량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사상자가 나왔음이 알려졌다. 병사들은 "제대로 된 장군이 없다!" 라고 외치며 불만을 토로했고, 당국은 유능한 장군 육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카프카스의 고산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Qara Koyunlu 가 페르시아 국경지대를 침범하며 남하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에 Hamadan의 궁전쪽으로 유성이 떨어졌다. 이 소식이 확산되면서 백성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했고,
안정을 유지하고 있던 민심이 흔들리게 된다.
페르시아 군이 Qara Koyunlu의 수도를 급습하여 점령하고, 그들의 우두머리를 생포하는데 성공했다. 우두머리는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였다.
북쪽의 Nogai 군대가 남하하여 Marv를 탈환하고, Marv에서 교화작업에 힘쓰는 페르시아 개척단 200여명을 무참히 도륙했다.
Khurasan 을 약탈하던 Nogai 군이 페르시아 군이 온다는 척후병의 보고를 듣고 Kazakh의 영역으로 퇴각하였다.
Kazakh는 아직까지는 우호적인 유목민족이었기에, 페르시아 군은 쫓아 들어갈수가 없었다.
여러번의 전투에서 병사들로 부터 인정을 받아 장군에 오른 Mohammad Ail 장군이 이끄는 페르시아 본대가 Charjo 에서
Nogai 군과 격돌했다. 지형이 매우 좋지 않아 많은 피해를 예상했으나,
Mohammad Ail 장군은 그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입증해냈다. 페르시아 군의 사상자는 500여명에 불과했던 반면, Nogai군은 전원이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CHOBANIDS가 몽골의 뒤를 잇지 않기로 한데 대한 불만을 가진 일부 세력이 Laristan 지역을 점거하여 뒤집어 엎고
CHOBANIDS를 다시 재건하였다. 하지만, 그 세력이 미미하여 Qasim 1세는 되려 잘되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아프리카의 토후국 Hafsids의 사절이 Hamadan에 당도하였다. 이들은 페르시아와의 동맹을 원했고, 당시 마땅히 동맹국도 없던 페르시아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Hafsids와의 거리에 대부분의 페르시아 사람들의 반응은 빛좋은 개살구 였다고 한다.
Kazakh의 유목민들이 국경지대를 약탈하고 인명을 살상하기 시작하였다.
서쪽의 고기만 먹는 야만인들의 진격이 매서웠다. 그들의 상징인 십자가를 앞장세우면서 카스피 해 코 앞까지 당도하였다.
무리한 중앙집권화에 민심이 흔들렸다.
남쪽의 지잡 토후국이 매우 중요한 도시인 Hormuz를 점거하고 있는데에 대한 불만이 각지에서 당도하였고, 이곳은 페르시아의 고유영토이기도 하였기에 당국은 망설임 없이 선전포고문을 전달하였다. 선전포고문의 요점은 '재정복' 이었다.
페르시아의 동맹국들은 이 전쟁에 같이 참전하는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왔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페르시아의 동맹국이던 Yemen이 적군측에 가담하였다.
이에 페르시아는 남녀노소 할것없이 분노했으나, 이때문에 질것이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다.
페르시아 군은 파죽지세로 Hormuz와 Laristan을 점령하였다. 이에 감명받은 북아프리카의 Morocco 왕국에서 동맹을 청하는 사절을 보냈다.
지잡 토후국은 완전히 점령당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들은 이제 페르시아의 일부일 뿐이었다.
바다를 건너 Hormuz를 공성하던 Yemen과 Najd 연합군이 Mohammad Ail가 이끄는 페르시아군과 격돌했다.
Hormuz의 평야에서 격돌한 양측은 많은 사상자를 내었으나, 결국 Yemen과 Najd 연합군이 페르시아군 사상자의 2배에 해당하는 16000여명의 사상자를 내며 다시 바다를 건너 도주했다.
페르시아 내륙으로 기습해온 또다른 Yemen군 역시 Mohammad Ail의 페르시아군 앞에 많은 사상자를 내며 패주할 뿐이었다.
바다를 건너 Laristan으로 재차 침공해온 Yemen과 Najd 연합군은 이번엔 한명도 살아돌아가지 못하고 전멸하였다.
페르시아군의 사상자는 38명에 불과했다.
Mohammad Ail는 페르시아의 토후국 Al Koyunlu를 지원하기 위해 말을 돌렸다.
Hamadan에서 평화를 원하는 각국 사절들이 쇄도했으나, 그들의 요구가 말도 안되었기에 모두 내쫓았다.
Yemen이 점거하고 있던 Yasuj가 페르시아군 수중에 떨어졌다.
Nogai의 유목민들을 교화하기 위한 인력들을 지속적으로 파견하였다.
Mohammad Ail가 Yemen 왕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서 본국으로 돌려보낸 Laristan 전투는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었다.
걷어차인 엉덩이를 매만지며 Yemen 왕은 Yasuj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재정에 한결 여유가 생긴 페르시아 당국은 시아파 신도들을 수니파로 개종시킬것을 결의하고 이맘들을 파견하였다.
이에 시아파 신도들은 "Viva la 시아파!" 라고 하는 알수없는 말을 지껄이며 저항에 나섰다.
The Mamluks에게 영토를 점령당하여 제풀에 지친 Jalayirids가 평화 사절을 보냈다.
페르시아 당국의 대대적인 개종작업으로 시아파 신도들이 수니파로 개종하기 시작하였다.
Qara Koyunlu의 유목민들이 재차 국경지대를 침범했다.
동맹 청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적측의 우두머리격이 되어버린 Hafsids의 사절이 Hamadan의 궁전에 당도했다.
평화협정은 받아들여졌으나, 사절은 궁전의 창문 밖으로 내던져 졌다.
재차 잡혀들어온 Qara Koyunlu의 우두머리가 항복을 선언했다.
Hamadan의 시내에서 시아파 신도들의 폭동이 발생했다. 처음엔 기세등등한 이들이었으나 결국에는 전부 Hamadan의 광장 앞에서 Qasim 1세의 말을 따라할수밖에 없었다. "시아파 개객기!"
Herat의 유목민들이 교화되어 페르시아의 일부가 되는것을 인정하였다. 그 너머에 살던 몽골의 후예를 자처하는 Timurids 라는 유목민들이 Herat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당국은 또다시 모든 세금을 국고로 걷을것을 지시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자 Qasim 1세는 재무부 장관을 성난 군중들에게 던져주고 새로운 장관을 들였다.
Herat로 쳐들어온 Timurids 의 유목민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Mohammad Ail의 본대가 출병했다.
Sistan 의 유목민들도 Herat에 살던 유목민들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의 일부가 되기로 했다.
고유영토를 모두 되찾았기에 별 볼일이 없어진 Nogai에게 패배를 인정하라는 사절을 보냈고, 우두머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병사들의 전투력이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호갱님)
1405년 1월 9일. 점차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페르시아였다.
첫댓글 페르시아는 누구를 페루 가나요? 시아? ㅌㅌ
천년삼제 연대기가 떴다!
여러분 이거 다 사깁니다 코어 시간을 에딧한 더러운 플레이!
주- 코어시간은 50년입니다 호갱님!
파워 리투아니아.
-아르키메네스 페르시아 왕조의 부활을 위하영
세르비아 패기 보소 ㄷㄷㄷ
와.. 리투아니아 저상태로 튜튼까지 냠냠하면 ㅋㅋㅋㅋㅋ
발칸반도쪽에 빨간색 세르비아인가요??
올 ㅋ
다음 라운드는 페르시아 vs 이집트 맘루크. 대격돌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