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성경책 ‘렉시오 디비나’ -날로 썩어가는 부패인생이 아닌, 날로 익어가는 발효인생을 삽시다-
2024.1.31.수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1815-1888) 기념일
2사무24,2.9-17 마르6,1-6
성경의 이야기는 하느님 중심으로 펼쳐지는 성인들 삶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성서와 교회에는 참 무수한 성인들이 나오고 이들의 삶이 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성서책 같습니다. 이래서 제가 몇해전부터 심취해 읽는 위인들의 자서전이나 평전으로 성서를 렉시오 디비나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읽습니다.
누구나의 참 소중한 성경책같은 인생입니다. 성서의 이야기뿐 아니라 믿는 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소중한 살아있는 성경책입니다. 하루하루 써내려 가는 아직 미완의 내 삶의 성경책입니다. 내 나이 곱하기 365하면 각자 고유한 삶의 성경책 쪽수가 나옵니다. 삶이 혼돈스럽고 앞이,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내 삶의 성경책을 “렉시오디비나”하면서 삶을 새로이 추스릴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로서 1월은 끝나고 내일부터는 2월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하루하루 써내려 가야할 선물의 날들입니다. 우리 교회의 살아 있는 보물이 성인들입니다. 성인들의 삶자체가 하나의 고유한 성경책이요 우리 삶의 좌표가 되고, 구원의 표지, 회개의 표지, 희망의 표지가 되는 성인들입니다. 성인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의 성경책을 부단히 렉시오 디비나 하면서 부단히 배움의 여정에 충실함이 참으로 지혜로운 삶입니다.
오늘은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교회의 무수한 성인들이요 똑같은 성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생몰(生沒)연대도 다 다릅니다. 성인들 모두가 가르쳐주는 바 하느님 중심의 내 고유의 삶을 살라는 촉구입니다. 누구를 부러워하거나 모방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성인들의 삶을 통해 늘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사실이 생몰연대에 산 햇수요 여기에 견줘보는 제 나이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떠날 인생임을 확인합니다.
성 요한 보스코 성인은 약 100년전 성인으로 현대의 성인에 속합니다. 생몰연대를 보니 73세로 선종했으니 저는 성인보다 3세를 더 많이 살고 있습니다. 산날보다 살날이 얼마 안남았음을 봅니다. 성 요한 보스코의 참 아름다운 성경책 같은 삶이 우리를 분발케 합니다. 성인들의 배경에는 거의 틀림없이 성녀같은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부전자전이기 보다는 모전자전입니다.
요한 보스코는 1815년 8월16일 이탈리아 카스텔누오보 베키에서 출생합니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두 형과 함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마르게리타 어머니는 신앙심이 매우 깊은 분이었고 요한이 신앙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합니다. 그녀는 기도를 생활화하였으며 힘든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자기집을 찾는 불우한 이들을 결코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없었다 합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은 아홉 살 때의 꿈을 계기로 사제 성소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었고 26세 되던해 1841년 토리노 교구의 사제로 서품됩니다. 성인을 돕던 젊은이들과 함께 살레시오 남자 수도회의 창립을 시작으로 성녀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와 함께 살레시오 수녀회와 평신도 단체인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창설하여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사도직의 기틀을 확고히 다집니다.
19세기 산업화라는 격변기 속에서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빈곤하고 버림받은 청소년들에 대한 교욱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몸소 실천한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였고 동시에 2천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놀랄만한 작가였습니다.또 사회변혁의 순간에 교회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호교론자이며 청소년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성을 교회 안에 심은 대 영성가로 살레시오 프란치스코 성인을 참으로 존경했기에 수도회 명칭도 “살레시오회”입니다.
돈 보스코는 자신의 모든 것을 청소년 특히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다 내어주고 1888년 1월 31일 바로 오늘 선종합니다. 이때 성인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성인이 남긴 어록 둘이 대표적입니다.
“청소년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도록 사랑하십시오.”
요한 보스코는 1934년 부활절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으로 반포되고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성인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던 1988년 1월31일 교황 성 바오로 2세는 재차 그를 “청소년의 아버지요 스승”으로 선포합니다. 성인의 지칠줄 모르는 활동의 원천은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일치”와 자신의 사업전체의 영감이자 후원자로 여겼던 도움이신 마리아 성모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였습니다.
기억하고 기념할뿐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 고유의 성인이 될 것을 촉구하는 성인축일입니다. 우리는 성 요한 보스코를 통해서만 아니라 오늘 제1독서 사무엘 하권의 다윗으로부터도 참 많이 배웁니다. 내일부터 제1독서는 열왕기상권 시작으로 다윗의 죽음이 소개되고 오늘로서 파란만장했던 다윗의 생애도 끝납니다. 그런데 말년에 다윗은 또 죄를 짓습니다. 인구조사를 한 다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주님께 말씀드리고 죄과를 기꺼이 받습니다.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잠시 유혹되어 무지와 불신으로 인구조사를 한 교만을 후회하여 즉시 뉘우치는 회개에 있습니다. 완전히 회개가 일상화된 회개의 여정에 충실했던 다윗이요, 마지막으로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기도하는 다윗의 백성 사랑하는 마음이 감동을 줍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당신 손으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을 치십시오.”
말그대로 회개의 달인인 다윗이요 겸손한 성인 다윗입니다.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을 비교하며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부패한 성인은 없다”라는 교황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회개한 성인이 다윗이요 부패로 성인이 못된 솔로몬입니다. 끊임없는 회개가 썩어 악취를 발하는 부패인생을 막아주고 익어 향기를 발하는 발효인생으로 만들어 줍니다.
부패인생이냐 발효인생이냐 수시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회개의 달인인 다윗이 발효인생의 모범이라면 솔로몬은 시작은 좋았지만 회개의 소홀로 부패인생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평생 끊임없이 바치는 “회개의 시스템”같은 공동전례기도의 은총이 회개의 일상화와 더불어 참 좋은 영적 효소가 되어 발효인생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하루하루 내 고유의 성경책을 잘 써가도록 도와 줍니다.
오늘 다윗의 불신과 교만이 문제였다면 복음의 예수님 고향 사람들 역시 편견과 불신의 무지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에 놀라던 이들이 급변하여 편견과 질투, 불신에 사로잡히니 바로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이기도 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좌절감의 표현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 존경받지 못한다.”
무지와 질투, 불신으로 인한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이 얼마나 고질적 영혼의 질병인지 우리가 체험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 고향 사람들의 불신에 놀랐고 별 기적도 행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진정 회개가 필요한 고향사람들입니다. 무지와 편견에 대한 궁극의 답은 회개의 은총뿐이기 때문입니다.
내 고유의 성경책을 써내려가고 렉시오디비나 하는데 기도와 회개, 배움의 겸손한 자세가 얼마나 본질적이고 결정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복음의 마지막 말마디,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 다니며 가르치셨다.”라는 대목에서 고향 사람들의 불신에 실망감을 즉시 떨쳐 버리고 본래의 복음 선포의 사명에 충실한, 주님의 한결같은 초연한 모습이 큰 가르침이 됩니다.
우리 삶의 여정은 믿음의 여정이자 회개의 여정이요 동시에 끊임없는 배움의 여정입니다. 이런 여정과 더불어 점차 완성되어가는 내 삶의 성경책이요, 날로 익어 향기를 발하는 발효인생이 됩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썩어가는 부패인생이 아니라, 날로 익어가는 향기로운 발효인생으로 만들어 줍니다. 아멘.
우리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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