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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난피(甘毒難避)
달콤한 독은 피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간사스러운 말은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달콤하게 여겨 쉽게 받아 들인다. 또 뇌물은 피해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甘 : 달 감(甘/0)
毒 : 독 독(毋/5)
難 : 어려울 난(隹/11)
避 : 피할 피(辶/13)
출전 : 여곤(呂坤)의 신음어(呻吟語)
명나라 시대의 여곤(呂坤)은 자신이 저술한 신음어(呻吟語)에서 고독(苦毒)과 감독(甘毒)에 관하여 한 글귀를 남겨놓고 있다. 고독이피 감독난피(苦毒易避 甘毒難避)라.
쓰디쓴 독은 피하기 쉬워도, 달콤한 독은 피하기 어렵다는 뜻으로서, 충직한 말은 독약이라도 되는 양 피하기가 일쑤이지만, 비위 맞추어주는 간사스러운 말은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달콤하게 여겨 쉽게 받아드린다.
마찬가지로 뇌물이 독인 줄도 모르고 잘 챙기는 이가 많다. 그 모든 것이 달콤한 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마디로, 충고는 피해가기 쉽지만, 뇌물은 피해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직언(直言)과 직간(直諫) 및 충고(忠告) 등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사람일수로 즐겨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듣기 꺼려한다. 이를 고독(苦毒)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잘 알고 있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글귀(忠言, 苦於耳 利於行)가 머리를 스쳐간다. 즉, 충직한 말은 귀로 듣기에는 괴롭지만 행동에는 이롭다는 뜻이다. 서로 의미가 상통되는 말이지만, 특히 권좌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일수록 듣기를 거려한다. 그래서 이를 고독이라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입맛(口味)을 당기게 하는 뇌물과 이권(利權) 등에 관한 것은 주저하지 않고 챙기는 사례가 오히려 많다. 뇌물과 이권이 숨겨진 그 내막(內幕)과 거래 속에는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정당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하며 사술(邪術)과 속임수가 암음(暗陰)처럼 깔려있다.
때문에 언젠가는 들통 나게 되어있고 시시비비에 말려들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그것이 독이 돼서 돌아온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비밀로 숨기면 된다고 느끼는 것 같다.
춘추시대 자한(子罕: 魯國人)이라는 사람은 유명한 경세통언(警世通言)을 남겼다. 그것이 2,50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참으로 불멸의 명례(名例)가 아닐 수 없다. 정다산(丁茶山) 선생도 그의 예화를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소개하고 있다.
어느날 밤 자한은 밤늦게까지 집무실에서 잔무 처리 중이었다. 그때 관내에 사는 주민 한 사람이 방문객으로서 찾아왔다. "용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방문객은 말하기를, "나는 옥(玉)을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옥석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옥석 가운데 이것을 드리고자 가지고 왔다"면서 큰 옥괴(玉塊)를 내놓는 것이다.
직석에서 자한은 말했다. "그대는 옥석을 보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나는 청렴을 보배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만약 그대가 이 옥석을 나에게 주고, 그것을 내가 받는다면, 그대는 평생 소중히 여기는 '옥석'을 잃게 되고, 나는 나대로 평생의 보배로 여기며 살아가는 '청렴'을 잃게 된다. 따라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가 평생의 보배를 잃게 될 뿐, 득이 되는 것이 없다(我若取玉, 君失玉寶, 我失廉寶. 君與我, 兩失無得)."
이처럼 설득하여 도리어 방문객의 낯을 세워서 돌려보냈다. 그러나 방문객은 혼자말로 "밤이라 보는 이도 없는데...?" 자한은 또 말했다.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다(天知 神知 君知 我知)."
자한은 뇌물 앞에서도 떳떳했다. 그리고 서로의 명분을 세웠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화민성속(化民成俗)의 사례인 것이다. 화민성속에 관해서는 대학 서문(大學 序文) 말미에도 밝혀져 있다. "먼저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며 백성들을 교화하고 풍속을 순화하라는 글귀가 그것이다(修己治人, 化民成俗)."
조선왕조 제21대 영조대왕(英祖大王)께서는, 즉위 후에도 대학을 여러 번 읽었다. 동양 제왕사(帝王史)에 있어서 제왕이 집적 글의 서문까지 써서 남긴 분은 영조대왕 뿐인가 싶다.
영조대왕께서는 자서문(自序文)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대학의 여덟 가지 조목 중애서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을 아직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데, 하물며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를 어찌 바라볼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19세, 29세, 63세에도 七十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대학의 원 서문을 저술한 주자(朱子)를 추모하면서 대학을 읽고 또 읽었노라고 했다(不能 格物 致知 誠意 正心, 況,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其何望哉? 予於十九歲, 二十九歲. 六十三歲, 望七之年 因追慕朱子, 行三講...)"
사람을 다스리는 치자는 누구나 선정(善政)을 베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덕정(德政)은 더 어렵다. 왜냐하면 덕정은 덕으로써 어진 정치를 베풀어야 하기 때문이다(以德施仁).
다시 말해서 인정(仁政)이란, 비유한다면, 산 위의 암석 봉우리에 홀로 서 있는 외진 곳 소나무에 까지 수분을 공급해 주는 물의 습기(濕氣)처럼 모든 곳에 이르러야 한다. 이 말의 뜻은 수유사덕(水有四德)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물의 네 가지 덕성(德性)이란 곧,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의미한다. 물의 인덕(仁德)은 차별 없이 모든 생류(生類)에 수분을 공급함이요, 의덕(義德)은 스스로 맑아지는 자정렬(自淨力)이요, 예덕(禮德)은 위를 채운 다음에 알로 흐른다는 윤하(潤下)의 법칙이요, 지덕(智德)은 바다로 유입하기 위해 백곡천회(百曲千廻)도 불사함이다.
물은 윤하의 본질을 불변의 법칙으로 하기 때문에 겸손하면서도 만류(萬類)에 대한 영양공급과, 자정력과, 영상유하(盈上流下)와, 천류불식(川流不息)의 4 가지 불절(不絶)의 맥락을 이어간다. 따라서 부력(浮力)을 과시할 수도 있고 운등치우(雲騰致雨)라는 우로지택(雨露之澤)으로써 우주를 쉴 새 없이 생동케 한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太極旗)의 감괘(坎卦)는 북쪽을 가리키며 물의 윤하법칙을 의미하고, 이괘(离卦)는 남쪽을 가리키며 불의 염상법칙(炎上法則)을 뜻한다. 그리고 건상곤하(乾上坤下)는 우주질서가 수화(水火)의 염상윤하(炎上潤下) 법칙을 뒤 바침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한반도의 국토상은 남북으로 수화상통의 자오방(子午方) 국토로서 살아 숨 쉬는 활성국토(活性國土)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인간이란 우주시간 개념에서 보면, 무극(無極)이라는 시간대 속에서 순간에 불과하다. 그 짧은 생애를 감독(甘毒)으로 자기만족을 채우려 든다면, 이는 대지를 재 가려는 '자 벌래(尺虫)'에 지니지 않는다.
인유사분(人有四分)이라 해서 사람에게는 성분, 직분, 명분, 세분(性分 職分 名分 勢分)을 다하면서 살아가라는 명제(命題)가 주어져 있다.
그런데 옳은 길을 바로 가르치는 고독(苦毒)을 기피하고, 하늘을 가리는 감독(甘毒)에 취해서 어영부영한다면 참으로 불상(不祥)한 인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감독을 피해가지 못하는 이유는 순간적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는 탓이다.
따라서 유혹의 감독을 물리칠 수 있는 것도 순간적 결기(決機)만 있으면 된다. 인간 생애의 행불행(幸不幸)은 모두가 순간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경언(經書)에 이르기를 천소이조자 순야요, 인소이조자 신야라(天所以助者 順也, 人所以助者 信也)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순(順)은 천인(天人)관계에 있어서는 순리에 따라서 생존하라는 뜻이며, 인세(人世)관계에 있어서는 신의를 지켜가며 생활하라는 뜻이다. 순천신인(順天信人)이외에 더 큰 보람의 행도(行道)는 없을 것이다.
■ 공직자의 뇌물과 정객들의 오만한 정치
공직자를 유혹하는 것 중에는 감독(甘毒)이 있다는 것을 신음어(呻吟語)에서는 밝히고 있다. 충언(忠言)을 고독(苦毒)이라 하고 뇌물을 감독이라 한다. 올바른 말은 귀에도 거슬리고 마음을 쓰디쓰게 한다.
그러나 뇌물은 사탕처럼 언제나 달콤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뇌물을 감독이라 하는 것이다. 공직자가 고독과 감독을 구별할 수 있는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는다면 언제나 감독에 혼취(昏醉)되어 부정부패를 저지르게 된다.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청렴도가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공직자들 가운데 감독을 물리칠 수 있는 정의감과 용기를 지닌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기민(欺民)은 미세먼지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악을 입힌다. 그래서 미세먼지의 공해(公害)를 일컬어 '침묵(沈黙)의 살인자(殺人者)'라 한다. 공직자의 기민(欺民)행위는 이처럼 가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부정행위(不正行爲)는 소리 나지 않는 '무성폭탄(無聲爆彈)'과 같은 것이고, 비리(非理)는 초기 자각증상을 느끼기 어렵게 하는 '고엽제(枯葉劑)'와도 같으며, 부패(腐敗)는 '세균을 품고 숨어드는 풍토병(風土病)'이라 비유해도 지나친 비유는 아닌 상 싶다.
왜냐하면 기민, 부정, 비리, 부패요인은 나라를 망치고 백성들을 못 살게 만드는 지상최대의 해악이기 때문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의 한 마디(國無遊民 朝無幸位)가 그토록 엄청나고 무서운 병인(病因)이기에 조선왕조 임금 중에서 51년간 재위했던 영조대왕께서는 19세, 29세, 63세, 시절에 대학을 세번이나 탐독했을 뿐 아니라, 임금 중에서는 오직 영조대왕만이 대학의 서문을 써서 남길 만큼 대학을 읽고 또 읽곤 했다.
역사의 거울을 바로 봐야 한다는 뜻에서 자숙자계(自肅自戒)하는 풍토가 무르익어 갔으면 하는 바램이 날로 더해 갈 뿐이다.
정객들이 왜 선거 때가 되면 노상에서 제사지내듯이 큰 절을 하고 총선이 패배 이유를 놓고 책임 전가에 급급해하는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른바 자기 텃밭을 벗어나서 당선되었다고 해서 차기 대권도전 운운하는 모습은 그것이 당사자의 의사표현이었던, 언론이 띠운 고무풍선이었던 타기(唾棄)를 금할 수 없을 만큼 뜻있는 국민들의 비위를 상하게 한다. 그 모든 것이 자기 과시벽(癖)의 잠재적인 표현임에 거의 틀림이 없는 듯하다.
일찍이 이퇴계 선생께서는 경고하였다. 이른바 우리나라 선비들이라 하는 식자층의 사람들이 남의 좋은 의견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자기 고집을 버리는 용기를 기르지 않는다면, 즉 사기종인(捨己從人) 할 줄 모른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결코 밝아질 수 없다고 하였다. 500여 년 전 학자의 말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겨버리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수기지해 신해야(受欺之害 身害也)
기인지해 심해야(欺人之害 心害也)
속임을 당했을 때의 피해는 몸으로 받는 손해이지만, 사람을 속였을 때의 피해는 마음을 상하는 해가 된다.
이 말은 송나라 시대의 유명한 학자로 알려진 여조겸(呂祖謙)의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학덕이 높다 하여 후세 사람들은 그를 경칭해서 동래선생(東萊先生)이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래라는 것은 그의 조부인 동래후(東萊候) 가문의 후예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필자가 여러 곳의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여조겸 선생의 기록문을 발견했다. 그간 기인 기세 기천(欺人 欺世 欺天) 등 구절을 많이 접해 보았지만 기인지해 심해야(欺人之害 心害也)라는 글귀를 접하는 순간, 참으로 경탄했다. 가장 놀랍고도 무섭게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남에게 욕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입을 더럽혀야 한다는 경고의 글을 읽은 적은 있지만, 이번 여조겸 선생의 글처럼 심금을 울려 받기는 처음이다. 더욱이 그의 글에 이어지는 다음의 글귀가 심해(心害)의 뜻을 더욱 독자들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있다.
심해(心害)는 곧 심사(心死)라는 것이다. 그것은 애막대어심사 신사 차지(哀莫大於心死요 身死는 次之라)고 한 말이 뒤 받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속인다는 것은 나의 마음을 죽이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더 크다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은 마음이 죽는 일이라 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육신이 죽는다는 것은 마음 다음가는 슬픔에 해당할 뿐이라 했다. 그의 말을 몇 번이고 되뇌어 생각해 보아도 굉장한 진언(眞言)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누구의 경우를 막론하고 자신이 운명(殞命)하는 순간에는 스스로의 죽음을 애통해 할 겨를이 없다. 이 순간 명심보감의 한 글귀를 회상해 본다. '인지장사에 기언야 선(人之將死 其言也 善)'이라는 구절이다.
일평생 살인강도를 일삼던 '갱'의 두목도 죽는 순간에는 인간 본심에서 우러나는 진실을 말한다고 한다. 자기 죽음을 통곡하는 이는 거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함께 뉘어 쳐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첫째, 사람을 속여 보았을 때 뼈저리게 회계해 본 일이 있는가? 둘째, 의식적으로 사기 및 기만행위를 범했을 때 나의 마음은 사망할 것이라고 슬퍼해 본 적이 있었는가?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가정적인 자문자답(自問自答)이다.
명나라 시대 학자로서 유명했던 여고(呂坤)는 그의 '신음어(呻吟語)'라는 명저에서 이르기를, 사람은 누구나 "눈에 들어간 티 하나도 용납하지 않고(目不容一塵), 아빨 새에 낀 음식 찌끼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齒不用一芥)"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양심을 침범하는 크고 작은 비리 부정 사건의 연루 유혹은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바꾸어서 말하면 나의 마음을 사망키 위한 온갖 비리 부정의 위협은 별로 걱정스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관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여조겸의 심해설(心害說)은 바로 그 같은 사례를 심사(心死)의 사건으로 다루려는 것이다. 여곤(呂坤)도 동일한 시각에서 고독(苦毒)과 감독(甘毒)이라는 경구를 더 부쳐놨다. 즉 고독은 귀에 쓰디쓴 충고의 고언(苦言)을 의미하며 감독은 받아 챙기기에 달콤한 뇌물수수의 음성거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독은 충직한 관료를 길러낼 수 있지만, 감독은 양리(良吏)도 멸망으로 유도하는 살인마의 손길과도 같다. 그것이 달콤한 감독(甘毒)인 것이다. 마음의 사망 선고는 꿈속에서 저승사자가 찾아오듯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방산(放散)하는 가운데서 그 빈틈을 타고 침투하는 과향풍(果香風)처럼 오관을 자극하는 데서 비롯된다. 순간적 선택을 경계하라는 옛 분들의 귀띔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아닐까 한다. 이 귀중한 기인심해(欺人心害)의 경구를 한 번 더 새겨본다.
■ 쓴 독(毒)은 피하기 쉽지만 달콤한 독은 피하기 어렵다
신음어(呻吟語) / 여곤(呂坤) 著
신음어(呻吟語)는 중국 명(明)나라의 관리인 여곤(呂坤)이 지은 것으로 출간 이후 줄곧 중국 관리들의 지침서로 일컬어진 명저이다.
신음어(呻吟語)는 여곤이 정치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여러 문제로부터 일상으로 흔히 있는 모든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우려(憂慮), 분만(憤懣), 내성(內省), 위구(危懼), 대책(對策), 신념(信念)등을 솔직하게 피력한 것으로서, 단편적인 이야기가 집적된 것이면서도 저자의 인품이 베어나온다.
저자는 "신음이란 병자의 앓는 소리다. 신음어린 병이 들었을 때의 아파하는 말이다. 병중의 아픔은 병자만이 알고 남은 몰라준다. 그 아픔은 병들었을 때에만 느끼고 병이 나으면 곧 잊어버린다. 사람이 병이들어 앓을때의 고통을 안다면 모든 일에 조심하여 다시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시련을 겪는 일이 없을 것이다"며 서문에 적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음어(呻吟語)'는 일종의 세상을 깨우치는 '경세어(警世語)'라 일컬어도 좋은 것이다.
제1장 자기계발(自己啓發)과 보신(保身)을 위하여
하급관리가 이러할진대 고급관리는 어떠했겠는가. 벼슬아치가 공무에 충실치 못하다면 백성들의 혈세를 도둑질하는 것이며, 공직자가 사복을 채운다면 그것은 국민들을 강탈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쓴 독(毒)은 피하기 쉽지만 달콤한 독은 피하기 어렵다
苦毒易避(고독이피)
甘毒難避(감독난피)
독이란 그것이 쓰면 입에 넣지 않지만 달콤한 독은 입에 넣기 십상이다.
晋人之璧馬(진인지벽마)
옛날 진(晋)나라가 虞(우)나라에 보낸 준마(駿馬)와 벽옥(璧玉),
齊人之女樂(제인지여악)
제(齊)나라가 노(魯)나라에 뇌물로 바친 가희(歌姬),
越人之子女玉帛(월인지자녀옥백)
월(越)나라가 오(吳)나라에 예물로 보낸 미녀와 보옥(寶玉), 비단 등은,
其毒甚矣(기독심의)
而愚者如飴(이우자여이)
달콤한 덫이었다. 그렇건만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엿이었다.
卽知之(즉지지)
亦不復顧也(역불복고야)
비록 그것인 줄 알면서도 사람은 역시 탐을 내는 법이다.
由是推之(유시추지)
人皆有甘毒(인개유감독)
이로써 유추하건대 사람은 누구나 달콤한 독이라해서
不必自外饋(불필자외궤)
그것이 모두 남이 주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而耽耽求之者且衆焉(이탐탐구지자차중언)
누구나 욕심을 내는법이므로,
豈獨虞人魯人吳人愚哉(개독우인노인오닝우재)
그것이 오직 진나라 뇌물을 받은 우나라 사람, 제나라 뇌물에 눈이 어두웠던 노나라 양반, 월나라 뇌물에 놀아난 오나라 임금만이 어리석다고 말할 수는 없다.
知味者可以懼矣(지미자가이구의)
달콤한 독의 맛을 알게 된 자는 두려워하고 경계를 심히 하여야 한다.
본문 속에서 지적하고 있는 진나라, 제나라, 월나라 등 세 가지 예 중에서 맨 마지막 케이스를 설명해 보겠다.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에 있는 이야기이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싸움은 약 30년동안 계속되었는데, 그 싸움의 원인이야 어떤 것이었든 상관이 없다. 그 당시는 무슨 수를 써서든 승리하는 쪽이 영토를 확장할수 있다는 것이 강자의 논리였던 시대이다.
부왕(父王)의 유언에 따라 반드시 월왕 구천을 멸망시키고 말겠다며 이를 갈고 치를 떨던 오왕 부차(夫差)는 왕위에 오른지 2년 후, 정병을 이끌고 월나라 군관을 부초산(夫椒山)에서 격파하고 구천이 항복하기를 기다렸다.
궁지에 몰린 구천은, "저는 대왕의 신하가 될 것이며, 제 처는 모두 대왕의 시녀로 거두어 써 주십시오"라며 하소연했다. 이에 마음 약해진 부차는 구천을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오나라 명신 오자서(伍子胥)가 반대했다.
월나라에서는 차선책을 쓰기로 했다. 즉 뇌물에 약한 오나라 중신 백비(伯嚭)에게 미녀와 재보, 그리고 비단 등을 바쳤다. 애초부터 달콤한 독에 눈이 어두웠던 중신 백비는 월왕 구천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진언했다. 오왕은 명신 오자서의 진언을 물리치고 월왕 구천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그 후 월왕 구천은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다시 오왕 부차를 멸망시키고 만다는 이야기인데, 달콤한 독에 약했던 자는 중신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고, 오왕 부차 자신도 자기 자신의 힘을 과신했고 또 달콤한 독을 좋아했던 것 같다.
▶️ 甘(달 감)은 ❶지사문자로 입 속에 물건을 물고 있음을 나타내며 입속에 머금고 맛봄을 뜻한다. 甘(감)의 음은 머금다의 뜻을 나타냄으로 나아가서 맛있다, 달다의 뜻이 있다. ❷지사문자로 甘자는 '달다'나 '맛좋다', '만족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甘자는 口(입 구)자에 획을 하나 그어 입안에 음식이 들어가 있음을 표현한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甘자는 이렇게 입안에 음식이 들어와 있다는 의미에서 '만족하다'나 '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甘자의 사전적 의미는 '달다'나 '맛좋다'이다. 그러나 실제 쓰임에서는 甛(달 첨)자가 '달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甘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먹다'와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으니 甘자를 반드시 '달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甘(감)은 (姓)의 하나로 ①달다(꿀이나 설탕의 맛과 같다) ②달게 여기다 ③맛좋다 ④익다 ⑤만족하다 ⑥들어서 기분 좋다 ⑦느리다 ⑧느슨하다 ⑨간사하다(거짓으로 남의 비위를 맞추는 태도가 있다) ⑩감귤(柑橘) ⑪맛있는 음식(飮食)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쁠 희(僖), 기쁠 희(喜), 즐길 오(娛), 기쁠 이(怡), 기쁠 열(悅), 즐거울 유(愉), 기쁠 희(憘), 즐길 낙/락(樂), 기쁠 흔(欣), 기쁠 환(歡), 즐길 탐(耽)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슬플 애(哀), 슬퍼할 도(悼), 성낼 노(怒), 슬플 비(悲), 쓸 고(苦)이다. 용례로는 군말 없이 달게 받음을 감수(甘受), 콩과에 속하는 다년생 약용 식물을 감초(甘草), 달콤하여 맛이 좋음을 감미(甘美), 단 것과 쓴 것이나 즐거움과 괴로움 또는 고생을 달게 여김을 감고(甘苦), 달콤한 말로 남의 비위에 맞도록 듣기 좋게 하는 말을 감언(甘言), 단술이나 막걸리를 감주(甘酒), 괴로움이나 책망을 달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을 감심(甘心), 달고 쏘는 맛이 있음을 감렬(甘烈), 단맛으로 설탕이나 꿀 따위의 당분이 있는 것에서 느끼는 맛을 감미(甘味), 음식을 맛있게 먹음을 감식(甘食), 달갑게 여기어 승낙함을 감낙(甘諾), 좋은 맛 또는 맛있는 음식을 감지(甘旨),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보내던 공문을 감결(甘結), 알맞은 때에 내리는 비로 가뭄 끝에 오는 반가운 비를 감우(甘雨), 죽기를 달게 여김을 감사(甘死), 물맛이 좋은 우물을 감정(甘井), 달콤한 말을 감사(甘辭), 스스로 달게 여김을 자감(自甘), 향기롭고 달콤함을 방감(芳甘), 살지고 맛이 좋음 또는 그런 고기를 비감(肥甘), 단맛을 나눈다는 뜻으로 널리 사랑을 베풀거나 즐거움을 함께 함이라는 말을 분감(分甘), 선정을 베푼 인재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감당지애(甘棠之愛), 달콤하고 아름다운 말을 이르는 말을 감언미어(甘言美語), 달콤한 말과 이로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남의 비위에 맞도록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남을 꾀하는 말을 감언이설(甘言利說), 물맛이 좋은 우물은 먼저 마른다는 뜻으로 재능 있는 사람이 일찍 쇠폐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감정선갈(甘井先竭), 물맛이 좋은 샘은 먼저 마른다는 뜻으로 재능 있는 사람이 일찍 쇠폐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감천선갈(甘泉先竭),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으로 사리에 옳고 그름을 돌보지 않고 자기 비위에 맞으면 취하고 싫으면 버린다는 말을 감탄고토(甘呑苦吐) 등에 쓰인다.
▶️ 毒(독 독, 거북 대)은 ❶회의문자로 산모(母)에게 약초(풀을 나타내는 艸에서 한 글자만 쓴 자)를 너무 많이 먹이면 몸에 나쁘다는 데서 독(毒)을 뜻한다. 사람을 해치는 풀의 뜻으로 해독이나 고통을 이른다. ❷회의문자로 毒자는 '독'이나 '해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毒자는 艸(풀 초)자와 母(어머니 모)자가 결합한 것이다.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산모는 늘 먹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 毒자는 '어미(母)가 먹으면 안 되는 풀(艸)'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毒자는 母자가 아닌 毋(말 무)자와 艹자가 결합한 것이다. 毋자가 '~하지 마라'를 뜻하고 있으니 毒자는 '풀(艹)을 먹지 말아라(毋)'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먹으면 안 되는 풀'이라는 뜻이다. 毒자는 폰트에 따라 母자나 毋자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정확하게는 毋자가 쓰여야 한다. 그래서 毒(독, 대)은 (1)건강(健康)을 해롭게 하거나 생명(生命)을 위태(危殆)롭게 하는 성분(成分) (2)해독(害毒) (3)독약(毒藥) (4)독살(毒殺) (5)독기(毒氣) 등의 뜻으로 ①독(毒), 해독(害毒), 해악(害惡) ②비참(悲慘)하고 참혹(慘酷)한 방법(方法) ③해치다, 죽이다 ④유독(有毒)하게 하다 ⑤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⑥괴로워하다, 괴롭히다 ⑦미워하다 ⑧원망하다 ⑨한탄하다, 개탄하다 ⑩거칠다, 난폭하다 ⑪다스리다, 부리다 ⑫병을 고치다 ⑬기르다, 키우다 그리고 ⓐ거북(거북목의 동물 총칭)(대)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해롭거나 나쁜 요소를 독소(毒素), 매우 지독한 감기를 독감(毒感), 독기가 있는 성분을 독성(毒性), 독주나 독약이 든 술잔을 독배(毒杯), 악독하게 혀를 놀려 남을 해치는 말을 독설(毒舌), 독성이 있는 물질이나 약물을 독물(毒物),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독념(毒念), 독약을 먹여 죽임을 독살(毒殺), 남을 살해하려는 짓을 독수(毒手), 독약이 든 잔이나 그릇을 독배(毒盃), 매우 독한 술이나 독약을 탄 술을 독주(毒酒), 독이 있는 풀을 독초(毒草), 독이 있는 벌레를 독충(毒蟲), 한여름의 지독한 더위를 독염(毒炎), 마음이 바른 사람에게 해독을 끼침을 독정(毒正), 더할 나위 없이 독함을 지독(至毒), 독을 푸는 일을 해독(解毒), 몹시 까다롭고 심악스러움을 혹독(酷毒), 약물이나 열 등으로 병원균을 죽이거나 힘을 못 쓰게 하는 일을 소독(消毒), 독성이 있는 물질을 먹거나 들이마시거나 접촉하여 목숨이 위험하게 되거나 병적 증상을 나타내는 것을 중독(中毒), 독기가 있음을 유독(有毒), 미생물 따위의 독성을 약하게 함을 감독(減毒), 심한 독기를 맹독(猛毒), 독약을 먹음을 음독(飮毒), 좋고 바른 것을 망치거나 언짢게 하여 손해를 끼치는 것을 해독(害毒), 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도 독이 있다는 뜻으로 고문이나 불법 도청 등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를 이르는 말을 독수독과(毒樹毒果), 독을 없애는 데 다른 독을 쓴다는 뜻으로 악인을 물리치는 데 다른 악인으로써 함을 이르는 말을 이독제독(以毒制毒), 독으로써 독을 친다는 뜻으로 악을 누르는데 다른 악을 이용함을 이르는 말을 이독공독(以毒攻毒), 붉은 입과 독한 혀라는 뜻으로 심한 욕설을 이르는 말을 적구독설(赤口毒舌), 해도 없고 독도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무해무독(無害無毒) 등에 쓰인다.
▶️ 難(어려울 난, 우거질 나)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새 추(隹;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근; 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진흙 속에 빠진 새가 진흙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 합(合)하여 '어렵다'를 뜻한다. 본래 菫(근)과 鳥(조)를 결합한 글자 형태였으나 획수를 줄이기 위하여 難(난)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새의 이름을 가리켰다. ❷형성문자로 難자는 '어렵다'나 '꺼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難자는 堇(진흙 근)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堇자는 진흙 위에 사람이 올라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근, 난'으로의 발음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難자는 본래 새의 일종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일찌감치 '어렵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새를 뜻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새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가 왜 '어렵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혹시 너무도 잡기 어려웠던 새는 아니었을까? 가벼운 추측이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서 難(난, 나)은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어서 어려운 형편이나 처지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렵다 ②꺼리다 ③싫어하다 ④괴롭히다 ⑤물리치다 ⑥막다 ⑦힐난하다 ⑧나무라다 ⑨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⑩공경하다, 황공해하다 ⑪근심, 재앙(災殃) ⑫병란(兵亂), 난리(亂離) ⑬적, 원수(怨讐) 그리고 ⓐ우거지다(나) ⓑ굿하다(나) ⓒ어찌(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쓸 고(苦), 어려울 간(艱)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쉬울 이(易)이다. 용례에는 어려운 고비를 난국(難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난문(難問), 어려운 문제를 난제(難題), 전쟁이나 사고나 천재지변 따위를 당하여 살아 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난민(難民), 풀기가 어려움을 난해(難解), 일을 해 나가기가 어려움을 난관(難關), 무슨 일이 여러 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순조롭게 진척되지 않음을 난항(難航),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기색을 난색(難色), 어려움과 쉬움을 난이(難易), 견디어 내기 어려움을 난감(難堪), 바라기 어려움을 난망(難望), 처리하기 어려움을 난처(難處),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어떤 사물의 해명하기 어려운 점을 난점(難點), 뭐라고 말하기 어려움을 난언(難言), 병을 고치기 어려움을 난치(難治), 이러니 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시비를 따져 논하는 것을 논란(論難), 남의 잘못이나 흠 따위를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비난(非難),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고 궁핍함을 곤란(困難),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을 재난(災難), 힐문하여 비난함을 힐난(詰難), 괴로움과 어려움을 고난(苦難), 위험하고 어려움을 험난(險難), 공격하기 어려워 좀처럼 함락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난공불락(難攻不落),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일컫는 말을 난망지은(難忘之恩),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비슷함 또는 사물의 우열이 없다는 말로 곧 비슷하다는 말을 난형난제(難兄難弟), 마음과 몸이 고된 것을 참고 해나가는 수행을 일컫는 말을 난행고행(難行苦行), 어려운 가운데 더욱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난중지난(難中之難),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생겨난다는 말을 난사필작이(難事必作易), 어렵고 의심나는 것을 서로 묻고 대답함을 일컫는 말을 난의문답(難疑問答), 매우 얻기 어려운 물건을 일컫는 말을 난득지물(難得之物), 변명하기 어려운 사건을 일컫는 말을 난명지안(難明之案), 교화하기 어려운 어리석은 백성을 이르는 말을 난화지맹(難化之氓) 등에 쓰인다.
▶️ 避(피할 피)는 ❶형성문자로 辟(피)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辟(벽; 한쪽으로 기울다, 피)으로 이루어졌다. 부딪치지 않게 피하여 지나가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避자는 '피하다'나 '벗어나다', '회피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避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辟(피할 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辟자는 사람과 辛(매울 신)자를 함께 그린 것으로 '피하다'라는 뜻이 있다. 한자에서 辛자는 주로 노예와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避자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죄수가 잡힐까 두려워 길을 피해 다닌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천민들이 상전들을 피해 골목으로 다닌다는 해석이다. 조선 시대 때 말을 타고 종로를 행차하던 양반들을 피하고자 서민들이 다니던 길을 '피마골(避馬골)'이라 했으니 避자의 대략적인 의미가 이해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避(피)는 ①피(避)하다 ②벗어나다, 면(免)하다 ③회피(回避)하다 ④떠나다, 가다 ⑤물러나다 ⑥숨다, 감추다 ⑦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도망할 도(逃), 숨을 둔(遁)이다. 용례로는 선선한 곳으로 옮기어 더위를 피하는 일을 피서(避暑), 재난을 피해 멀리 옮아감을 피난(避難), 추위를 피하여 따뜻한 곳으로 옮김을 피한(避寒), 몸을 숨기어 피함을 피신(避身), 난리를 피하여 있는 곳을 옮김을 피란(避亂), 더위를 피함을 피서(避署), 세상을 피해 숨음을 피세(避世),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하는 말을 피사(避辭), 병을 앓는 사람이 있던 곳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요양함을 피접(避接), 병을 피하여 거처를 옮기는 일을 피병(避病), 꺼리어 피함을 기피(忌避), 몸을 피하여 만나지 아니함을 회피(回避), 도망하여 몸을 피함을 도피(逃避), 위험이나 난을 피하여 기다리는 일을 대피(待避), 면하여 피함을 면피(免避), 어떤 일 따위로부터 꾀를 써서 벗어남을 모피(謀避), 세상에 나가 활동하기 싫어 숨어서 피함을 둔피(遁避), 사양하고 거절하여 피함을 사피(辭避), 등지거나 피함을 배피(偝避), 당연히 피하여야 함을 응피(應避), 책임이나 맡은 일을 약삭빠르게 꾀를 써서 피함을 규피(窺避), 혐의를 논변하여 피함을 논피(論避), 서로 함께 같이 피함을 통피(通避), 노루를 피하려다가 범을 만난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작은 해를 피하려다가 도리어 큰 화를 당함을 이르는 말을 피장봉호(避獐逢虎), 흉한 일을 피하고 좋은 일에 나아감을 이르는 말을 피흉취길(避凶就吉),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를 이르는 말을 사차불피(死且不避), 귀신도 피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단행하면 귀신도 이것을 피하여 해롭게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귀신피지(鬼神避之), 피하고자 하여도 피할 수 없다를 이르는 말을 회피부득(回避不得), 맞부딪치기를 꺼리어 자기가 스스로 슬그머니 피한다를 이르는 말을 오근피지(吾謹避之)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