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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의 기량을 회복하겠다고 다짐했다.(사진 한상무) |
('송종국, 찬란한 부활의 소망' 기사에 이어) 9월 27일 수원 기흥 클럽하우스에서 가진 SPORTS2.0과의 인터뷰.
최근에 인터뷰를 안 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그냥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까 인터뷰 요청도 들어오지 않더라. 꽤 오랫동안 부상 때문에 고생했다. 특별히 부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2002년에 월드컵을 끝내고 네덜란드 리그 페예노르트에 입단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다면
한일월드컵 끝나자 유럽의 여러 구단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가장 적극적이었던 팀은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핫스퍼였다. 토트넘은 잉글랜드의 전통있는 명문구단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이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당시 소속 구단이던 부산에서 반대했다. 부산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고, 나중에는 임대를 추진했다. 토트넘은 임대가 아니라 완전 영입을 원했다. 이적 조건이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팀의 반대로 시간이 흘렀고, 결국 네덜란드 리그의 페예노르트로 이적하게 됐다. 페예노르트에 진출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조건이 좋았는데 왜 부산에서 반대했나.
사실 아직까지도 국내 구단에선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진출, 해외 진출’ 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좋은 기회가 있어도 생각처럼 쉽게 나갈 수 없는 실정이다. 유럽 구단에선 아시아선수를 잘 모른다. 큰 대회를 통해 어떻게 알게 되더라도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에 거액을 투자하려는 구단은 없다. 어렵게 기회가 왔다고 해도 국내 구단의 반대로 날려버린다면 선수 입장에선 얼마나 아쉬운 일이겠는가.
네덜란드에서의 활약이 나쁘지 않았는데
네덜란드에 도착한 뒤 3개월 동안은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상으로 3개월간 공백이 불가피했고, 이후 복귀해서는 같은 부위인 왼쪽 아킬레스건을 또 다쳤다. 그러면서 컨디션이 나빠졌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루드 굴리트 감독이 새롭게 부임했다. 굴리트감독은 일부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나와 오노 신지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했다. 감독과 사이가 안 좋았다기 보다는 부상 후유증으로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잔류를 선택했다면 최소한 리그 내 다른 팀으로 이적이 가능했던 것 아닌가?
물론이다. 네덜란드 리그의 다른 팀뿐만이 아니라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에서도 내게 영입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당시에는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편안하게 있고 싶었다. 외국 생활이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K리그로 복귀했다. 후회는 없나.
K리그에 복귀하면 유럽 리그에 다시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단 아쉬운 점은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박지성, 이영표 등과 네덜란드 리그에 진출했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꼭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유럽에서 최고의 리그로 인정받는 곳에서 뛰고 싶은 욕심이 왜 없겠나. 쉽지 않았다. 유럽 진출도 그렇고 적응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독일월드컵 얘기를 해보자. 극적으로 아드보카트호에 합류했는데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2005년 5월 5일 대구전으로 기억하는데 백태클을 당해 발목을 다쳤다. 그 때부터 계속 발목이 안 좋았다. K리그 후반기까지 약 2~3달 가량 운동을 못하다가 시즌 막판에 조금 회복됐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독일에서 수술을 했는데 당시 주치의가 한달이면 회복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얘기했지만 한달은커녕 세 달이 지나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걷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자 주위에서 이상한 시각으로 나를 쳐다보더라.
주위에서 어떻게 바라봤다는 말인가?
한달이면 회복된다고 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생각이 여러 방향으로 흘렀다. 독일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소속팀에서 몸을 사린다는 얘기 등이 흘러나왔다. 사실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일본대표팀의 주치의로부터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독일에서 했던 수술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곧 K리그가 시작인데 구단은 구단대로 급했고 나는 나대로 급했다.
일본에서는 약물치료를 하자고 했다. 부상 부위 안에 물이 차있어서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또 한국에 들어오면서 뜸을 같이 하자고 했는데 그게 주효했던 것 같다. 2월 3주 동안은 그렇게 치료했다. 운동을 해보니 신기하게 좋아졌다. 이번 시즌 K리그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팀훈련에 합류했다. 제대로 훈련한 것은 3일도 안 된다. 차범근 감독님이 계속 기회를 주셨다. 물론 100%의 몸 상태는 아니었고 독일월드컵 직전까지 경기와 치료를 병행했다.
독일월드컵 직전의 컨디션은 어땠나.
최종 훈련지였던 스코틀랜드로 가기 전에 국내에서 세네갈과 평가전을 가졌다. 당시 선발 출전해서 전반전 뛰고 교체됐는데 왼쪽 발목에 또 통증이 왔다. 때문에 약 3일 동안을 운동 없이 쉬었는데 정말 걱정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스코틀랜드 현지에 도착했는데 2~3일만에 다시 (발목의) 각도가 나왔다. 완전치는 않았지만 훈련을 소화하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송종국 선수에 대한 아드보카트감독의 애착이 남달랐다고 하던데
네덜란드 리그에서 뛸 때부터 잘 알았다. 당시 아드보카트는 네덜란드대표팀의 감독이었고 대표팀 선수가 많았던 페예노르트 경기를 자주 보러 왔다. 자연히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또 핌 베어벡과 친하다 보니 내 얘기를 듣게 됐고 나에 관한 대화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던 시점에서 경기력이 완전치는 못했지만 회복된다면 필요한 선수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월드컵 활약을 놓고 말들이 많은데
토고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프랑스, 스위스전에는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월드컵 직전에 열린 가나와의 평가전 이후 90% 정도 회복했기 때문에 몸 상태는 좋은 편이었다. 첫 경기에선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후 출전하지 못했던 부분은 어디까지나 코칭스태프의 판단이다.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출전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은 있다. 팀 전체적으로 봐도 두번째 경기였던 프랑스전에서 극적으로 비기긴 했지만 경기 내용이 너무 떨어졌다.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던 차두리 선수가 최근 오른쪽 수비수로 보직 변경했다. 월드컵 당시 송종국 선수의 부진을 꼬집는 팬들의 의견이 부쩍 늘었는데
월드컵이 끝난 이후 (차두리와) 만난 적이 없다. 단 내가 보기에는 아드보카트감독이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두리를 측면 수비수로 쓸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만약에 그를 발탁했더라도 측면 날개로 기용했을 것이다. 언론에서 너무 추측 보도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와 두리를 저울질하는 1% 얘기도 그렇고, 상관없는 보도들이 계속되면서 힘들었던 면도 있었다.
송종국은 대표팀에서와 달리 소속팀 수원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사진 제공=수원 삼성 블루윙즈) |
베어벡감독이 선수들을 너무 심하게 다룬다는 얘기가 있다.
한국에 대해 너무 잘 안다. 그러다 보니까 본인이 어떻게 해야 선수 관리가 효율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애매한 부분이다. 나쁘거나 좋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구타하는 지도자가 있지 않나. 베어벡이 만약에 한국인 감독이라고 가정하면 결코 심한 것은 아니다. 단 유럽을 기준으로 하면 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베어벡이 화내는 부분은 대부분 운동과 관련된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특히 싫어하는 것 같다. 한 선수에게 집중된 것도 아니고 나 역시 혼난 사례가 많다.
베어벡호의 세대교체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감독님과 같은 생각이다. 기존 대표팀 선수들과 어린 선수들 간에 실력차가 꽤 벌어져 있다. 쉽게 생각하자. 당연히 현 주축 선수보다 더 좋은 선수가 있다면 세대교체를 해야한다. 더 뛰어난 게 아니라 비슷한 정도만 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영표 형과도 세대교체와 관련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따라오지 못한다. 세대교체의 당위성 때문에 잘하고 있는 선수를 “그만두라”며 일방적으로 물러나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시기상의 문제, 또 장래를 위한 포석쯤으로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나.
그만큼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내가 봐도 아직까지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나보다 뛰어난 후배가 나온다면 망설임없이 물러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감독 입장에선 성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10년 동안 대표팀 감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사실 현재의 대표팀도 어린 축에 속한다. 나도 지금 대표팀에서 어느덧 고참급에 속하고 있다.
대표팀에선 측면, 소속팀에선 중앙에서 뛴다. 어떤 차이가 있나.
대표팀에서는 사이드가 편하고 수원에서는 가운데가 편하다. 대표팀에는 능력있는 중앙 미드필더가 많다. 수원에서도 물론 측면에 있는 게 편하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중앙에 있으면 이동이 자유롭고 골도 넣을 확률이 높다. 차감독님 역시 측면보다는 중앙에서 쓰기 위해 날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될 것 같다. 막연하게 포지션 자체의 소화 여부를 따지기 보다, 이러한 부분은 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측면 수비수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플레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팬들로부터 받은 오해는 없나.
그렇다.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선 후반에 아드보카트감독의 지시가 있었다. 왼쪽에 위치하는 (이)영표 형은 공격에 집중하는 대신 나는 수비 위주로 플레이하라고 요구를 했다. 이 때문에 후반전에는 거의 오버래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내막을 모르는 팬들은 송종국이 아직 체력적으로 준비가 덜됐기 때문에 후반 수비만 한다고 말했다. 측면수비수의 활약도는 작전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2002년 월드컵에서 활약이 대단했는데, 최근 그러한 위력이 발휘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2002년 월드컵 때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1년 반을 준비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23명의 선수들이 그만큼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1년 반의 준비 기간이 있었고 홈경기였는데 4강을 못했다면 말이 안 된다.(웃음)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뒤에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고 계속된 부상 등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2002년과 비교해 대등한 수준까지 컨디션을 끌어올렸다고 생각한다. 다른 데 신경쓰고 싶지 않다. 운동만 잘하고 싶다.
송종국 선수는 대표적인 멀티플레이어다. 과연 멀티플레이어란 효과적인 것인가.
멀티플레이어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감독이 본격 도입한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 히딩크감독은 한 선수를 이 포지션에서, 또 저 위치에서 다양하게 실험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 히딩크감독의 지시를 따랐고 실제로 잘했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는 한 선수가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지 않는 편이다. 대신 한 포지션에서 이른바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한다. 한국은 아직 유럽에 비해 선수층이 얇다. 때문에 능력있는 선수들이 같은 위치에서 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딴 자리에 배치한다.
언제쯤 완벽하게 부활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그냥 열심히 할 뿐이다. 사실 K리그에선 아무리 잘해봤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최근 정조국같은 경우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지만 공격수로서, 그리고 많은 골을 터뜨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풍토가 좀 바뀌었으면 한다. 만약 내가 대표팀이 아닌 K리그에서 잘해봤자 예전같은 칭찬들을 못 들을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대표팀에서 골을 넣고 어시스트를 해야 관심을 조금 받을 뿐이다. 안타깝지만 인정받으려면 대표팀에서 잘해야 한다. 아니면 K리그에서 매경기 골을 넣어야 가능할 것이다.
수원에서 감남일과 중앙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김)남일이 형과는 유난히 호흡이 잘 맞는다. 하면 할수록 잘 맞는다. 나와 형이 중앙 미드필더로 동시에 출전하는 것은 차감독님의 구상이었다. 남일이 형이 약간 수비에 치중하고 내가 다소 공격적으로 나간다. 전방에 이관우, 백지훈이 뛰는데 이들 역시 호흡이 잘 맞는다. 부상이나 징계 등으로 남일이 형이 빠지고 가끔 혼자서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될 때는 정말 힘들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 하는 선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일부에선 여전히 차감독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차감독님에 대한 거센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수원팬들일 것이다.(웃음) 성적이 좋지 않다면 비판받아도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요즘같이 성적이 좋을 때도 그러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SPORTS2.0 제 19,20호(발행일 10월 2일) 기사
김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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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시 소속 구단이던 부산에서 반대했다. 부산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고' 안습....ㅜ
이래서 k리그가 발전이 안되는거
김남일의 굴욕
왜요?
난 남일이가 동생인줄알았는데;;;; 남일이형이라니;;
과거는 과거고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송종국선수 화이팅!
그놈의 부상....;;; 아쉽다 송종국..
박동혁 독일 FC쾰른인가? 뒤스부르크인가? 어디서 영입제의 소속팀반대 당시소속팀 고려대 인가 김태영(뉴캐슬) 최순호(유벤투스) 많았던걸로..
유상철선수 바르샤에서 찾았었죠 아마 ㅋㅋ 홍명보선수랑 황선홍선수도 빅리그 어디선가 불렀던거 같은데
유상철선수는 부인의 반대로..ㄷㄷ
뉴스 검색해보니 유상철선수 부인의 반대라는 말은 없던데요... 유상철의 유럽행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시기는 98월드컵이 끝난 직후, 당시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생제르망의 감독이었던 TV해설자는 ‘유럽에서도 충분히 뛸 수 있는 힘과 기량을 갖춘 선수’라며 유상철을 극찬했었고 그러한 평가는 비단 그 해설자 한 명만의 판단이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FC바르셀로나는 월드컵이 끝난 후 유상철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영입을 추진, 당시 모 스포츠일간지에는 ‘확정’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했었다. 하지만 울산구단의 미온적 태도와 에이전트의 미숙한 일처리 등이 겹치며 살며시 이적 건은 무산.
흐흐흠..-ㅁ- 현지적응력 안습...... 구단들의 횡포 안습...
그때 왼쪽 거의 빈상태였는뎁;; 갔음 주전가능햇을지도
개인적인문제... ㅉ
폐예노르트대 유벤투스 영상만보면 종국이형이 아쉽다
송종국 볼때마다 남자는 여자를 잘골라야 된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남.
ㅡㅡ;;
뭐 어쩌라는건지.
아 좀 해외로 보내주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