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Haiti) 대지진 1(참사)
목불견의 참상. 신의 가호가 있기를!
(1)위치
쿠바의 동쪽, 미국 풀로리다주 남쪽 카리부해의 섬, “아이티 섬”의 서쪽
부분. “아이티 섬”은 1492년 12월에 콜롬버스가 발견 “이스파뇨라 섬”이라
했던 섬.
(2)독립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어 흑인 노예가 이주한 후 원주민은 전멸하고, 현재는
흑인이 약 90%, 뮬라토(흑백혼혈인)가 약 10%이라함. 1620년부터 프랑스가
진출 1697년 섬의 서쪽 부분이 프랑스령이 됨. 18세기 말부터 흑인이 반란하여 1804년 흑인 노예들이 프랑스 군대와 백인 지주를 내쫓고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을 선언 자긍심을 가졌던 나라. 넓이는 남한의 1/4정도. 인구는 현재 900만 명. 한 때 설탕, 커피를 세계의 절반 가까이 공급한 부유한 나라였다. 6,25 전쟁 때는 지금 돈 가치로 환산하면 약 360억원을 한국에 지원했다. 20세기 초 한 때 미국의 보호령(保護領)이기도 했다.
아이티 대지진 2(세계의 온정)
우리나라 의료장비가 일본이나 프랑스에 비해 너무나 허술하다는 평도 있다.
#고대 의료원 외과 박관대 교수는 그의 부인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한국으로 국제 전화를 걸어 제왕절개 수술 순서를 문의하고, 머리에 두루는 의료용 라이트(light)만 쓰고, 독일 마취과 의사는 동물 마취에 쓰이는 약품을 이용, 무너진 건물 틈을 만삭의 몸으로 간신히 빠져나와 산통에 시달리는 여인을 우선 잠재웠다. 미국 가정의학과 의사, 소아과 의사 그리고 한국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제왕절개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무사히 아기가 태어나는 개가를 올렸다. 이 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실상이 아닌가싶다.
아이티 독재자 “뒤발리에‘ 부자(父子)의 이야기
*미군 군의관 출신의 아버지 “프랑소와 뒤발리에”가 귀국하여 보건부장관을 역임하다 1957년 9월 국민선거로 대통령 당선.
*1964년 종신 대통령임을 선언.
*1971년 사망 직전 18세인 아들 “장클로드 뒤발리에”를 후계자로 지명.
*아버지 뒤를 이은 “장클로드 뒤발리에”는 1983년 종신 대통령임을 선언.
*1986년 2월 식량난으로 인한 국민폭동으로 일가가 미군기로 탈출함으로서
일족의 세습독재체제가 붕괴되다.
*프랑스 유명 관광지에서 탈출한 전 국고 금으로 호화생활하다 1992년 부인과 이혼하고,
*1998년 파리에서 종적. 병든 몸으로 방랑자 생활을 한다는 현지 보도 후 언론에서 멀어짐으로 세인의 관심 밖이 되다.
#전 정권에서 KBS 사장 하든 정영주는 “종신 집권을 꾸미는 남미 독재자를 대한민국이 따라야 할 모범이다.”고 했다는 데 그런 독재자의 말로의 한 보기이다. 명심해야할 대목이다.
첫댓글 아이티를 보면서 지도자를 잘 만나야겠다는 것도 배웁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