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마리는 피로 얼룩진 드레스를 툭툭 털다 멍하니 서 있는 헤리온을 힐끔 보았다.
보기 드문 은색의 머리칼에 사람 좋은 외모를 가진 청년은 어쩐지 넋이 나간마냥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 하얀 뺨 위에 피어난 붉은색의 홍조는 또 무언가.
“와, 어쩌면 좋지.”
한참을 멍하니 있다 내뱉은 말이었다. 마리는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어쩌긴요? 가서 구해야죠.”
“나 감동받았어요.”
“예?”
“안 그렇게 생겨서 그런 낯 뜨거운 소리를 하다니. 이럼 그냥 버려두고 갈 수가 없잖아.”
위넨과의 대화는 마리도 곁에서 들었다. 그런데 그 중에 낯 뜨거운 소리가 있었던가? 별로 그런 건 없었던 거 같은데. 하지만 헤리온은 충분히 감동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해 못할 얼굴을 하며 마리는 화제를 전환했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건 필렌의 구출이었다.
“저기요. 음, 헤리온씨라고 했었죠?”
그제야 헤리온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혼잣말은 여전했다.
“그래, 그런 인력을 또 어디에서 구하겠어? 내가 구해야지!”
“…그럼 안 구하려고 그랬어요?”
“원래는 도망가려고 그랬거든요.”
“…….”
천진난만하게 생글생글 웃는 헤리온의 모습에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생긴 건 착하게 생겨서 어째 성격은-.
“아, 그런데 이상한 일이네요. 보통은 귀족자제인 마리양을 데리고 갔어야 아닌가요? 왜 필렌씨를 데려간 거죠?”
“그야 필렌이 귀족이니까요.”
“예?”
“필렌은 워낙에 귀족 같은 사람이라, 당연히 아실 줄 알았는데, 모르셨군요. 제 쪽이 평민이랍니다.”
“…….”
이번엔 반대로 헤리온이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겉모습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 이미 오래전에 깨달은 진리지만, 이건 좀 심하다. 대체 그 산적 비스 무리했던 사람 어디가 귀족 같다는 건가.
말 그대로 좋게 봐줘도 산적이다.
사람은 옷보다 외모가 중요하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걸까. 마리는 이런 피범벅이 된 드레스를 입고 있어도 고귀한 신분의 아가씨 같았다.
반면 필렌은-.
헤리온은 헛기침을 하며 두 손을 움켜잡고 망상에 젖어가고 있는 마리에게 구출작전에 관한 말을 꺼냈다.
마리는 그에 앞서 필렌에 대해 몇 가지를 더 말해주었다.
“필렌씨에게 사실 약혼녀가 있다고요?”
“네. 같은 후작가의 사람인데다 필렌님은 유일한 후계자이셨으니 후작님이 포기하실 리가 없죠.”
쿨럭. 심지어 후작가의 유일한 후계!
헤리온은 잠시 신선한 충격에 머리가 아찔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그 후작보다 한층 지위가 높았던 수장 이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
같은 시각, 병사들에게 구속된 카엘과 위르넨은 마찬가지로 필렌의 숨겨진 신분에 대해 전해 듣고 있었다.
철장이 쳐진, 습기가 눅눅히 베여든 지하 감옥. 낯선 곳에 대한 불쾌감보다는 병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흘리고 갔던 정보가 둘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위르넨이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흘렸다.
“들었어 형? 그 곰이 후작가의 아들이래.”
“…별일이군. 나는 당연히 그 아가씨 쪽이 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난 그 사기꾼 녀석이 수장이라고 했을 때 보다는 충격이 덜한 것 같아.”
카엘도 부정할 수는 없는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필렌이 후작가의 하나뿐인 후계라는 사실이 놀랍기는 했지만 일전의 사례가 있었던 탓인지, 헤리온에 비해 무척이나 담담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넨. 정말로 헤리온님이 이곳에 올 거라 생각해? 설사 온다고 해도 우리를 구해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도 알아. 힘으로 구해줄 거라고는 애초에 기대도 안 했어.”
“그럼 대체?”
“뭐 우리도 속여 넘긴 녀석인데, 후작이라고 불가능할까. 방법이라면 그 쪽이겠지.”
위르넨은 목 뒤로 깍지를 끼며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벽에 기어 다니는 벌레에 소스라치게 놀라 옷을 툭툭 털어냈다.
카엘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를 보내오자 위르넨은 그런 표정 말라며 웃었다.
“바라는 건 사실 그리 크지 않아. 그냥 돌아 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상대가 로열나이트나 신관이 아닌 이상 이 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위르넨은 이 기회를 통해 헤리온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 마저도 요 근래 감정의 변화가 생긴 탓이다. 아니었다면 이런 시도는 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믿을 수 있게 만들어봐. 그럼 이제 진짜 동료로 여겨줄 테니까.’
그가 누군가를 동료도 생각한다는 것은 꽤나 큰 의미를 가진다.
특히나 그 대상이 지금껏 벌레 보듯 하던 평민출신에, 거짓말만 일삼던 헤리온이라면.
가진 능력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헤리온을 인정할 구실이 필요했을 따름이다. 치졸하다 해도 귀족에 대한 자긍심이 남다른 위르넨으로서는 이것이 최대한의 양보였다.
태연함을 가장하고는 있지만 초조함에 꽉 쥐어진 손에는 땀이 베어났다. 헤리온이 오지 않게 되면 자신은 이대로 카엘과 떠나면 그만이다. 그건 그것대로 좋을 텐데 어째선지 시선은 철장 밖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
불어오는 미풍에 반짝이는 은발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헤리온은 바위에 걸터 앉아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후작가라면 고위귀족이다. 위르넨와 카엘을 구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도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신의 능력을 깨닫기는 했지만, 아직 실험이 필요한 단계인지라 그것만 믿고 무작정 덤벼들 수는 없었다.
“뭐하세요?”
“작전구상 중이에요. 상대가 일개 도적도 아닌데, 그냥 무턱대고 움직일 수는 없잖아요.”
“그렇군요. 그런데 헤리온씨는 아까 그 두 분처럼 바람을 다루지 못 하시나요?”
“바람이라.. 다룬다면 다룬다고 할 수 있죠.”
“그럼 세분 다 귀족? 아,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요. 대신에 바람 좀 일으켜 볼 수 있어요? 난 술사들이 그렇게 신기하더라구요.”
두 손을 맞잡으며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이는 마리의 모습에 헤리온은 나중에요. 하고 웃어 보인 뒤 다시 작전구상에 푹 빠졌다.
하다 보니 재미가 붙어 버린 것이다.
음, 그러니까 전부터 귀족을 대상으로 꼭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소재가 하나 있긴 한데 말이지.
[“근데 믿어볼게. 그러니까 네가 가도록 해.”]
귓가에 아직도 선연히 맴도는 위르넨의 목소리.
남들에겐 사소할지도 모를 말이다. 하지만 헤리온은 태어나 처음 듣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나 당하고도 자신을 믿겠다니.
자신이 대게 굉장히 사소한 부분에서 감동을 잘 받는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런 말에 동할 줄이야.
헤리온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자, 가죠 마리양.”
“네? 벌써 작전 끝?”
“그럴리가요. 배고프니까 일단 밥부터.”
생글생글. 해맑게 웃고 있는 헤리온의 모습에 마리는 정말 저런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걸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지는 오후.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골목을 걷고 있는 작은 소녀가 있었다.
10세 정도의 작은 체구를 가진 아이는 대륙에서 보기 드문 흑발에 흑안을 가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여긴 왜 가도 가도 끝이 없어.”
인형같이 예쁘장한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한가득 묻어났다.
라니아 이름을 가진 소녀는 현재 헤리온이 전해준 잘못된 정보의 의해 엄한 곳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배를 탈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는데, 걸어도 걸어도 보이는 것이라곤 나무와 숲 뿐이다. 사람이라도 보이면 다시 길을 물을 텐데,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씨근씨근 거리면서도 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마차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어라? 인간이네?
라니아는 반가운 기색으로 마차를 반겼다. 멈추라는 의미로 손까지 방방 흔들었지만 결코 멈출 기색은 안 보인다.
자신을 무시하는 기색에 웃고 있던 얼굴이 차츰 굳어져 갔다.
비켜!! -언뜻 마부에게서 그러한 경고가 들려온 것도 같았지만, 소녀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움츠러드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마차의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커다란 마차에 아이가 흔적도 없이 짓밟힐 위험천만한 순간, 심연과도 같은 검은색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콰쾅! 콰콰콰쾅!!
땅이 진동 할 만큼 커다란 굉음이 일었다. 뿌연 먼지가 가라 앉을쯔음, 작은 그림자가 비쳤다.
라니아는 옷자락을 툭툭 가볍게 털어냈다. 그리곤 새카맣게 그을린 마부와, 마차를 흘기며 투덜거렸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감히 누굴.”
불쾌한 듯 애꿎은 땅을 차던 라니아가 다시 길을 찾기 위해 등을 돌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자신이 길을 헤매고 있던 사실을 떠올라 걸음을 멈췄다.
어쩔까, 하며 난감해 하다 저들 중 하나에게 길을 묻기로 했다. 그런데 보이는 광경은 자신이 저지른 것이지만 꽤나 참혹하다.
굳이 살피지 않아도 누구 하나 살아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쩝…. 성질나서 다 날려버렸네.”
허탈함에 라니아는 멋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 * *
2주만인가요; 시험끝나고 한편 올리고 갑니다. ;ㅂ;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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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아는 누구지? 어디서 들어본거같기도 한데..... ㅋㅋ
헤리온 그런 사소한데서 감동을 받는군요!! 반응을 보아하니 헤리온이 구하러 갈것 같은데 그럼 위르넨에게 인정을 받을수 있겠네요
ㅎㅎㅎ그리고 저 소녀 평범해 보이진 않는데...나중에 헤리온에게 보복하는건 아닌가 모르겠어요ㅋㅋ
다행이다 헤리온이 구하러 갔으니깐!!
ㅋㅋ헤리온!!! 어서 구해죠~!!!!ㅋㅋㅋ이거 진짜 올만에 보내용~근데도 잼잇게 스토리 흐름 잡아가면서 보고 잇어요^^ㅎ
저 여자애 역쉬!!드래곤인가여ㅇ0ㅇ!!...
역시헤리온ㅋㅋㅋㅋㅋㅋㅋㅋ
흠 역시 인간이 아니였던가,,,,,,유희나온 드래곤 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왠지 헤리온에게 복수 할 것만 같은ㅋ
음..라니아..마족..?
역시 헤리온이네요ㅎㅎ
드래곤드래곤드래곤! 드래곤일것같은 느낌이 물씬나는데..
헤리온! 역시 넌 대단한 인간 이었어! 으하핫! 라니아는 정말 드래곤인듯 해요. 곰이 귀족…. 크크흠. 미안해, 나도 네가 산적인줄 알았….큼.
헤리온..이런상황에서 밥이넘어가다니 역시 헤리온ㅋㅋ
헤리온이 어떻게 구출할까?
라니아......
잊고 있었어....
흐윽....미안해, 리아(애칭.ㅋ)
아!! 라니아!! 잊고있었다!!
라니아는 불의 술사인가?? 헤르온이랑 동료가 될 것같은데..??
역시나그여자는드래곤이었어.음..헤리온빨리가서구해라!
헤리온이 어떻게 구출해낼것인가..ㅡ,.ㅡ
걔 용인가??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드래곤이라....
헤리온! 어서 가서 구출해!!!!!!........요
헉스..무섭무섭;;
곰이 귀족....역시 사람은 겉만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말리 맞았어..그리고 헤..헤르온 너 나중에 라니아 만나면 어뜨케 할려고 그랬냐...
과연 헤리온이 생각해낸 방안이란..!! 두둥.~!!!! ....,,,,,(민망민망;;;뻘줌뻘줌;;;)
점점 드래곤같아지는 라니아....ㅋㅋㅋㅋ
라니아....무섭구려ㅜ^ㅜ
필렌이 귀족....? 쿠.. 쿨럭.. 헤리온은 어떻게 구하러 갈까요??>< 궁금합니다아~!
ㅋㅋㅋㅋ필렌...........정말 귀족인게 밎기지 않았죠
으헉..저런 짓을 저질러놓고도 볼만 긁적이게는게 다인가요..? 라니아 정말 무섭네요;;
라니아.. 무섭군용~~ㅎㅎ
음.. 헤리온 나, 난 너..너를 믿을게
오 흑발,흑안의 소녀 등장?
라니아.. 가 이야기에 큰 비중을 차지할듯!! ㅎ
라니아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라니아...불쌍
정말이지.. 쿠키조아님은 낚기를 잘하시는군요..ㅠㅠ 또 낚였어요;; 설마 필렌이 귀족일줄은..
라니아 능력이 뭔가 대단한듯 !ㅋㅋ
자기도 모르게 다죽여버렸네요 ...
헤리온이 저런 소소한말에 감동을 느끼는 아이었군요
곰이 귀...귀족이었다니...내머릿속의 이미지들이!!!!
저 성격이라면 나중에 헤리온을 만난다면 죽이려고 들겟어요ㅎ
과연 소녀의 정체는...
으얼...진짜 처음에는 필렌이 귀족일지는 상상도 못했죠
..........그 겁많고 덩치 큰 말그대로 곰같은 필렌씨가 귀족이라고요?????그것도 차기 후작???????????
..........후작님 대체 필렌씨를 어떻게 키우셨나요....!!!전 진지합니다!!!!!
라니아...새로운 캐릭?
재밌네요
라..라니아...ㄷㄷ
반전이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