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강변음악실의 사라져간 역사적 배경
( 강변문화예술의 본산지 )
1970년도 낙동강 강변을 따라 오르면 에덴공원 끝자락 강나룻터에 하얀 돛단배가
닿을 수 있는 언저리에 강변 음악실이 있었다
에덴공원의 소유주인 백장로의 선친에서 아어받은 연세대 신학전공 문화에술인
백광덕선생이 강변음악실로 개장하여 1960년대 말경 처음으로 부산시향의 연주회를
시작으로 음악.문학. 미술등으로 문화 활동을 시작으로 강변 예술문화 발상지로
거듭니게 되었다.
그 시대에는 부산시에 공연장도 없었고 하나 있던곳은 옛날 시청 맞으편에 공보관이란
조그만한 건물 공간 뿐이였으며 활용도 부진하였기 때문에 강변음악실을 대부분
공연장으로 이용되었으며 특히 이곳에서 각종 행사를 해야만 인식을 받을수 있을정도 였다.
그로부터 강변 음악실은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전국에서 유명 인사들이 쉴틈없이 찾아들었고
모든 문화행사를 지속할수 있었던 이유는 백광덕선생님 자신의 재력으로 모든 문화행사의
뒷바라지를 감당하였으며 헌신적으로 아낌없는 후워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였다
음악 문학 미술 연극 무용 등 문화공연과 전람회를 주로 이곳에서 도맡아 개최하였으며
심지어 강변 언져리 갈밭에서 야외 활동도 전개하였으며 최고의 음악 행사는 주로 강변음악실에
서 공연을 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을정도였다.
국내 최고의 언론계 문인들 음악인들 시인 화가들 할것없이 유명 인사들이 이곳을 거쳐나갔었다.
오태균 음악 시비와 청마 시비 건립을 위해 부지와 건설비도 직접 도맡아 감당하였고 지금
에덴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와서 조용히 생각해 보면 특히 음악 예술의 단물은 음악인들이 다 빨아먹었고 그로 인해 부산
음악계의 발전을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금은 희생을 끌어 안은체 낙오되어 오랫동안
병마에 고전하고있는 배광덕 선생님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게 생각이 든다. 지금은 역사에서
사라져가는 현실아라 안타까울 뿐이다.
그당시 거쳐간 인사들중 부산시향 창립자 오태균교수 부산예술대학장 김수석교수. 송혜수화백 .
전준자교수 동아대 김형석. 김종식교수. 미술평론가이시우. 미술평론가김강석, 허만화시인교수
천상병시인 부산의대 정창수학장 곽근수 음악평론가 필자 오세효 화가 그 외 수많은 언론계인사들이
강변음악실을 거쳐갔었다.
(당시에는 문화상제도가 없었지만 이런 인재에게 문화상이필요합니다 )
음악실 외부에 위치한 피아노 건반위의 설경
추이 : 현제 살아계시는분은 - 음악평론가 곽근수. 필자 오세효 화가
주인공 백광덕선생님은 수년동안 병고로 다대포 원룸 아파트에서 어렵게 지세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