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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엔 이런 노래도 괜찮지요.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이 의미 있더군요.
아래에 퍼온 글도 함 읽어보세요!
♪그리워라 (외국곡. 이현경 개사)
햇빛 따스한 아침 숲속 길을 걸어가네
당신과 둘이 마주 걸었던 이 정든 사잇길을
보랏빛 꽃잎 위에 당신 얼굴 웃고 있네
두 손 내밀어 만져보려니 어느새 사라졌네
그리워라 우리의 지난 날들 / 꽃잎에 새겨진 사랑의 이야기들
그리워라 우리의 지난 날들 / 지금도 내 가슴엔 꽃비가 내리네
다정했던 어느 날 호숫가를 거닐었지
하늘거리는 바람 불어와 꽃비가 내렸지
흘러가는 물 위에 아롱지는 두 그림자
우리 마음도 우리 사랑도 꽃잎 되어 흐르네
2002년 현재의 영애 님
<펌> http://emforem.com/bbs/zboard.php?id=emforem&no=258
현경과 영애가 ’그리워라’ - 김종국 / 2002년
1971년 서울대 미대 신입생 환영회때 회화과 대표로 노래부르고 싶은 두명의 여학생이 용감하게 손을 들었다.
이화여중고를 나온 대구출신 이현경과 숙명여중고를 나온 박영애였다.
장기자랑을 위해 몇일동안 연습하여 결성한 여성포크듀엣 <현경과 영애>
너무도 순수하고 티없이 맑았던 노래들은
70년대 유신정권의 답답한 사회분위기와 불확실한 미래로 시퍼렇게 멍든 젊은 지성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던 세레나데였다.
저항적 색깔이 강하게 내재된 김민기의 노래들이 청년들을 한마음으로 이끌었던 힘찬 선봉대였다면
<현경과 영애>의 멜로디는 상처입은 마음을 자상한 누이처럼 푸근히 어루만져준 후방의 나이팅게일이었다.
’단순한 노래였지만 암울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영혼을 감싸안는 한 곡 한 곡을 절실하게 불렀다’는 현경과 영애.
’순수 아마추어가수로 대학 4년 동안만 활동하며 소중한 추억을 남기자’는 시한부 활동약속을 했던 서울대 미대생들이었다.
직업가수로의 유혹과 팬들의 아쉬움앞에 다소 흔들리기도 했지만 4년간 불렀던 노래들을 모아 데뷔앨범이자 졸업기념으로
단 1장의 독집음반을 세상에 남기곤 미련없이 본연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 너무도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을지로에서 양복점을 경영했던 부친 박창용과 독립운동가 집안의 딸이었던 모친 이은남의 1남2녀중 둘째로 태어난 박영애.
일제시대때부터 동요작가 윤석중과 함께 노래모임에 참여하며 최승희 무용단원으로 활동했던 어머니의 영향은 지대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친 그는 KBS, 기독교방송 어린이프로에 나가 ’엘리제를 위하여’등을 연주했을 만큼 음악신동이었다.
대학 때는 그림 무용 노래 연극 암벽등반 등 못하는 것이 없는 다재다능한 재주꾼으로 통했다.
부친이 군장성 출신이였던 이현경은 음대진학까지 고려했을 만큼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던 자존심 강하고 고집센 학생이었다.
두사람은 대학입학 몇 개월 전부터 기타를 배우며 팝송과 포크음악에 심취했다.
성격은 너무도 판이했지만 두 사람이 빚어낸 맑고 깨끗한 화음은
서로를 존중해 주며 전혀 트러블없이 7년간 단짝으로 붙어다니게 만들 만큼 아름다웠다.
당시 서울대 미대는 대학가 최대의 프로급 아마추어가수들의 집합장.
우선 포크의 전설 김민기가 소속된 <도비두>와 록그룹 <엑소더스>, 그리고 김아영, 최분자로 구성된 <두나래>가 유명했다.
선배 김민기는 현경과 영애의 깨끗한 화음에 마음을 빼앗기며 동아방송의 ’0시의 다이얼’ PD에게 소개했다.
방송출연 소식을 들은 미대 동창생 김덕년도 슬그머니 데뷔곡이 된 ’얘기나 하지’라는 자작곡을 건넸다.
이후 이장희 윤형주 강근식 등과 친분을 쌓으며 레코드녹음과 라디오프로에 출연하는등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주요 레퍼토리는 김민기 김의철 조동진 김광희등 비상업적인 작곡가들이 만든 창작곡들과 자신들이 즐겨부르던 팝송이었다.
음악친구들의 공연 때는 늘 백코러스를 자청하여 ’우’, ’와’하는 화음을 많이 넣다보니 <더 와우스>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제법 대학가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업소출연 유혹이 뒤따랐다.
하지만 친분이 있는 이장희나 어니언스의 리싸이틀 공연이나 대학축제무대만을 고집하며 상업적인 어떤 제의도 거절했다.
다만 절친한 사이였던 어니언스 멤버 이수영의 간청은 거절하지 못하고
단 한번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 대구의 생맥주홀에서 한 달간 공연을 했다.
’서울서 현경과 영애가 내려온다’는 소식은 대구 경북지역대학생들을 들뜨게했다.
학생가수로는 거금인 14만 원의 수고비를 받았을 만큼 현지 대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박영애는 ’나이가 든 어느 날 들어도 맑고 깨끗한 영혼과 빛을 잃지 않는 순수하고 깨끗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며
자신들이 추구한 음악적 색깔을 고백했다.
이들이 부른 ’아름다운 사람’은 김민기조차 그 누구도 따라갈 수없는 최고의 노래’라고 감탄했다.
서울대에는 ’현경과 영애 음악듣기 모임’이 생겼을 정도.
화려한 화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단순한 화음이 맑고 긴 생명력을 지닌다’며
늘 아껴주었던 성음레코드의 나 사장은 졸업기념 음반제작을 제의했다.
세션은 친하게 지냈던 동방의 빛이, 음악친구들과 우연히 들렸던 쟈니브라더스의 김준 등이 화음을 자청했다.
불멸의 명곡 ’아름다운 사람’, ’그리워라’ 등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10곡이 수록된 유일한 독집앨범
<현경과 영애-대도,DSO0040,74년11월30일>은 마니아들이면 누구나 소장하고픈 고가희귀음반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다.
당시는 서슬이 시퍼렇던 음악적 암흑기.
녹음해 두었던 김의철곡 <저하늘에 구름따라> <마지막 교정>과 조동진의 <마지막 노래>등이
’마지막이라는 표현이 불손하다’는 등 온갖 이유로 금지가 되면서 기념앨범에서 제외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조동진의 <마지막 노래>는 <다시부르는 노래>로 제목을 바꾸어 불렀을 만큼 가장 사랑했던 곡이었고
<작은배>녹음때도 백코러스로 참여했다’고 박영애는 회상한다.
앨범수록곡은 아니지만 박영애와 고영수가 함께한 ’둘이서 부르는 노래’도 재미있는 포크곡.
77년 재일동포 의류 유통 사업가와 결혼을 해 일본 교토에 거주하며 네아이의 어머니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현경과
자아를 키우며 미술작업에만 전념하며 대학강단에 서고 있는 박영애.
85년 연락이 끊긴 이래 16년만인 지난 5월 재회를 한 두사람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들의 노래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음에 감격하며 그들을 위한 작고 소박한 음악회를 꿈꾸고 있다.
제가 청년시절에 무지하게 즐겨들었던 두 사람의 수정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그리워라’를 띄웁니다.
노래의 추억을 먹고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멋진 과거를 추억할 수 있다면,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에 맑은 물줄기 같은 노래가 될 수 있다면 좋을 뿐입니다.
근래엔 이런 류의 노래가 없어서 더욱 정겹습니다.
<펌>
첫댓글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제 마음에도 꽃비가 내립니다.
정말 아주 오래 된 노래지요. 젊음 내음이 풀풀 나는 듯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