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멀티플레이 시대 이효리·비 등 ‘쿨한 문어발’이 먹힌다
[주간지] 2003년 11월 11일 (화) 15:03
대한민국의 섹시코드로 자리잡은 ‘이효리’. 일간 스포츠 신문의 1면에 이효리가 섹시한 옷을 입고 눈웃음을 치는 사진을 실었을 경우 그날의 판매고가 오른다는 말이 나올 만큼 최근 이효리는 그야말로 신드롬이다.
솔로 데뷔 후 1집의 성공과 오락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 높은 점수를 받아냈고 이미 영화사에서도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이효리 앞에 내밀었다. 이 중 이효리는 인터넷 소설이 원작인 ‘삼수생의 사랑이야기’에 주연으로 캐스팅이 확정돼, 이만한 멀티플레이어가 드물 것이다.
또 지난달 30일 산업정책연구원이 조사 발표한 ‘슈퍼 브랜드’ 개인 브랜드 분야에서 이효리는 여자가수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결과는 대한민국 성인 남녀 1천6명을 대상으로 대면 인터뷰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얻은 결과로 산업정책연구원 관계자는 “기업명이나 제품명과 달리 인물의 이름을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는 분석 기준이 없어 순위로만 발표했다”며 “하지만 굳이 가치를 따지자면 ‘슈퍼 브랜드’에 선정된 이들 스타의 이름값은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여자 연예인으로 이효리가 있다면 남자 연예인으로 최근 드라마에 출연해 호연을 보이고 있는 가수 ‘비’가 대적할 만하다. 비는 1집 활동 후 공백기를 갖다 연기자로 컴백했다.
그의 연기자 데뷔에 우려의 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그가 주연한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 1회를 보고 난 후 태도가 돌변했다. 그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인기에 편승한 드라마 출연’이 아니라며 그의 연기를 칭찬했다.
비의 경우 드라마 데뷔 이전에 제작이 무산되긴 했지만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기도 해 영화배우 데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데뷔 2년차, 그것도 여성에 비해 멀티플레이어 가능성이 좁은 남자 가수로서 대단한 기록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이효리와 비는 최근 연예계 매니지먼트 ‘멀티플레이어 만들기’의 단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가수가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고, 사회도 보고, 광고에 나오는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이 아닌 꾸준히 마케팅되어 이 시장에 맞게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데 이견을 내는 사람은 드물다.
‘섹시’ 어필로 16개사 광고 불러
이효리의 경우 핑클이라는 10대 취향의 여성 4인조 그룹으로 출발, 음반시장 침체와 핑클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독자 노선을 가졌다. 4명의 멤버 중 최근의 유행 코드인 ‘섹시함’과 이효리가 가장 잘 맞아떨어진 셈. 각종 쇼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서 보여주는 그의 당돌할 만큼 솔직한 표현은 신세대의 코드에 그야말로 딱 부합한 것이다.
이효리가 최근의 인기를 얻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롯데칠성이 올 봄 새롭게 출시한 열대과일 음료 ‘망고주스’. 델몬트 망고 광고제작 대행사 대홍기획의 정하양 부장은 “촬영지는 필리핀, 제품이 주스이니 모델은 건강하고 춤과 노래에 능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대상 모델을 물색했으며 이효리는 롯데 칠성에서 가장 염두에 둔 모델이었습니다.
당시 이효리는 핑클에서 독립,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하며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한마디로 ‘뜰 기미’여서 우리가 찾는 모델에 잘 맞았죠. 이효리가 젊은층 사이에서 갑자기 인기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도 제품 이미지에 적합해 별로 주저하지 않았어요”라고 이효리가 델몬트 망고 모델이 된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이효리는 6개월 단발에 2억원의 모델료를 받아 평균 이상의 개런티를 받았고 현재 이효리의 몸값은 6개월 단발에 3억에서 3억5천만원으로 김희애, 이영애, 이미연 등과 같은 특급 모델 개런티를 받고 있다.
이효리의 인기는 판매 신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1월 출시된 델몬트 망고는 출시 9개월 만에 2억1천만 캔이 판매돼 전국민이 모두 4캔의 델몬트 망고를 마신 셈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델몬트 망고는 2003년 약 1천억원의 매출이 예상되는 것이다. 배상면주가의 산사춘은 이효리를 모델로 기용한 후 전년대비 매출이 2배 신장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쌍방울 트라이는 남성용 속옷이라는 이미지를 벗었다고 한다.
이 같은 이효리 효과는 그의 CF모델 성공으로 이어져 11월초현재 이효리를 모델로 한 9개의 CF가 방송을 타고 있고, 5편은 새로 제작돼 공개를 앞두고 있다. 현재 광고중인 CF는 쌍방울 ‘트라이’, 롯데제과 ‘돼지바’, 롯데 칠성 ‘델몬트 망고’, 배상면주가 ‘산사춘’, 해태제과 ‘내몸에 플러스 888과자’, 애견 전문 쇼핑몰 ‘쥬쥬시티’,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 캐주얼 의류 ‘FRJ’, SK 엔크린 정유 등이다. 비오템 화장품, 애니콜 휴대폰, 도브 초콜릿, 롯데 영마트 쇼핑몰, 에이스 침대 등은 곧 공개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가 지난해 6월 핑클에서 솔로로 전향한 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총 16편의 CF에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관계자들은 5년의 핑클 활동에서보다 1년이 조금 넘는 솔로 생활에서 벌어들인 돈이 더 많을 것이라며, 밝혀진 광고모델 수입만도 약 50억원은 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효리가 이렇게 승승장구하자 그에게는 별도의 마케팅 매니지먼트가 붙었다는 얘기가 나돌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효리의 기획사 DSP엔터테인먼트측은 “우리 회사에는 이효리 외에 핑클의 다른 멤버들도 활동하고 있고 또 다른 가수들도 있어 이효리만 신경 쓸 수 없습니다. 이효리도 핑클의 전 멤버들과 비슷한 강도로 트레이닝을 시켰고 그에게 맞는 프로그램에 사회를 볼 수 있도록 적극 추천한 것 밖에는 없다”며 “이효리는 다만 현 트렌드에 아주 잘 맞고 재능이 다양하고 여기에 운까지 따라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효리나 비의 경우 매니지먼트의 전략적인 마케팅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 공통된 생각이다.
지상파 방송국의 12년차 한 음악프로그램의 작가는 “요즘은 가수의 노래 실력을 보기 전에 어느 매니지먼트 소속인가를 먼저 묻게 된다. 매니지먼트사의 눈을 믿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신세대에 맞는 가수들은 노래 실력만으론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CF를 겨냥한 좋은 외모와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을 위한 재치는 필수요소며 그러기 위해선 수준급의 연기실력도 갖춰야 한다”며 멀티플레이어가 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대형기획사, 스타 ‘멀티플레이어화’ 부추겨
비의 경우는 바로 이런 매니지먼트의 마케팅 성공 사례로 꼽힌다. 비는 2002년 5월 데뷔했다. 그의 데뷔 전략은 그의 매니지먼트사인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와 마케팅팀에 의해 진행됐다.
JYP 마케팅팀 양성원 팀장은 “데뷔 초부터 비에게 맞는 프로그램이나 CF 등을 선별하는 등 철저한 시장 조사를 거쳐 무대에 세웠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데뷔에 앞서 JYP는 비가 주목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빅 이벤트에 얼굴로 내세웠다. 그 첫 시도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의 음반분야 프로모션을 맡고 있는 오이뮤직이 공동으로 진행해 11만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이벤트다.
비는 공중파에 데뷔하기 전에 자신의 노래 ‘나쁜 남자’를 네티즌이 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나쁜 남자 뮤직비디오에서는 비가 직접 연기를 해 돋보일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다. JYP측은 노래는 물론 그의 남성으로서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당시 인기를 누리던 오락 프로그램 ‘강호동의 천생연분’에 이효리 파트너로 비를 출연시켜 단번에 10대와 20대의 눈길을 잡아끌 수 있도록 했다. CF 역시 대형 통신사인 SK텔레콤의 네이트 메인 모델로 출발한 것은 신인으로선 보기 드문 행운이었다.
그리고 1집 활동을 접으면서 비는 바로 연기를 준비, 올 하반기에는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로 모습을 드러냈고 이 드라마의 종영이 가까워지자 바로 2집 활동을 개시했다. 이렇게 그의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매니지먼트사는 비를 아시아 스타로 키우기 위해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8개국과 프로모션 계약을 완료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홍보와 마케팅을 대행하는 애플트리의 안재만 이사는 “국내 연예인들의 멀티플레이어 현상이 두드러지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으로 전형적인 형태를 띠진 못했지만 하이틴 스타였던 손지창과 김민종을 들 수 있죠. 국내에 본격적인 멀티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5년 미만으로 대형 기획사 시대가 열리면서부터입니다”라며 “기획사들은 한 영역에서 자신들이 미는 사람이 실패했을 때 이를 만회할 목적으로 다른 기능을 갖춘 이들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기획사를 통해 배출되는 신인들이 대부분 연기와 노래 실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도 이런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만약 능력이 없다면 훈련을 시키죠”라고 말했다.
안 이사는 만약 핑클의 인기가 좀더 지속되었다면 오늘의 이효리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정하며 “스타의 멀티플레이어 현상은 작은 시장에서 보다 많은 파이를 먹으려고 하는 시장의 논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니지먼트사에서 한 가수를 통해 창출해 낼 수 있는 수익원은 몇 가지나 될까. 가장 대표적인 수익원은 역시 음반이다. 여기에는 카세트 테이프, CD, 비디오, MP3, 온라인 스트리밍 등이 포함된다.
모든 가수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음반 못지않은 수익원은 역시 광고 모델이다. 광고 모델로 활동할 수만 있다면 적은 시간을 투자해 수억원대의 수익이 가능하다.
광고에 출연할 만큼 인기 있는 가수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캐릭터 물품도 수익원이 된다. 최근 휴대전화 배경화면에 사용되는 가수들의 얼굴도 모두 캐릭터화되어 판매되는 것이다. 가수 몸값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은 행사나 이벤트에 참석하는 것.
일례로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효리는 노래 3곡에 5천만원을 준다고 해도 스케줄이 많아 힘들다는 후문이 있다. 가창력이 좋은 가수들은 콘서트 등 공연에서도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만약 이 가수가 연기도 잘한다면 연기로 인해 들어오는 개런티도 수입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가수는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한다. 한 해 평균 출시 음반은 1천여 장인데 이 중 신인의 90%는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의 빛도 보지 못한다.
따라서 매니지먼트사에서 스타를 키워낼 때는 기왕이면 적은 투자로 가장 확실하게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 것이다. 그러기엔 연기자보다는 가수가, 남자보다는 여자가 낫다는 것이 업계의 정평이다.
현재 제2의 보아를 꿈꾸는 12세의 김윤혜를 키우고 있는 매니저 이대희 씨는 “과거에는 운이 70%, 제작자 능력이 30%였지만 요즘은 능력이 50% 이상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결국 스타는 잘 짜인 각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렇게 투자해 만들어졌다면 다양하게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며 기업의 현실”이라며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