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남수현
그러니까 30년전쯤 우리동네에서 사과나무를 맨 처음 심은 전무영감네 집에
고래가 품팔이를 하게 되었다. 이웃 오대마을에 살면서 남의 일이라면 새벽같이
달려오는 바람에 주인내외와 아침을 몇 술 같이 먹었던 모양이다. 10시 무렵에
새참을 내어와 일꾼들에게 나눠주며 고래에게 전무할마씨 던지는 말
-고래야, 니는 아침밥 우리랑 먹었은께 이 사람들 먹는 동안에 나무에 올라가
일이나 해라
한창 나이의 고래가 나무 위에서 힐끗힐끗 쩝쩝 입맛을 다시자 갖은 나물에
쓱싹쓱싹 비벼먹던 동네 아줌마 하나가 한 숟가락 푹 떠서 전무할마씨 딴 곳에
눈 돌리는 사이 잽싸게 입에 넣어준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미어터지게
세 숟가락 째 받아먹던 고래 손사래치며 하는 말
-이러다 밥줄 끊어질라 나 이제 그만 먹을라네
어떤 이해가 흐릅니다. 궁핍의 시절, 게다가 밥 먹고 돌아서기만 해도 배고픈 한창 나이, 게다가 왜 고래라는 별명이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몸집과 식욕이 연상되는 그녀의 입으로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미어터지게 세 숟가락 째" 주인 몰래 들어가는 밥에서 주인의 잣대와 또 다른 잣대의 인정이 흐릅니다. 그 인정으로 하여 배고픔이 서러움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정을 쌓는 나눔의 공동체를 먼저 엿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선 흐뭇합니다. 그런데 그 흐뭇함을 배경으로 하여 묘한 언어 패러독스(paradox)가 퍼덕거립니다. '밥 먹기 위해 일하는데-밥 먹다가-밥줄 끊길까봐'가 그것인데, 이것이 "전무할마씨 딴 곳에 눈 돌리는 사이 잽싸게"의 그 한 순간에 한 맥락에 있게 되면서 말 그대로 자가당착이 일어납니다. 그 순간 말의 놀이가 묘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밥을 그렇게 먹어야 하는 곤궁의 서러운 느낌을 순식간에 먹어치웁니다. 그래서 서러움은 더 이상 자리할 곳이 없고, 조장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30년 전 배고픈 시절에서부터 우리 민중은 우리 민중의 방식으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온 것입니다(당시의 도회지 공단 삶과 비교한다면 더욱 새삼스러운 장면입니다). 그래서 '고래'를 떠올리면 울분이 아니라 웃음부터 납니다. 그 웃음으로부터 자라난 공동체를 꿈꾸게 됩니다.
-글/ 오철수 시인
첫댓글 남수현처럼 쓰는 시를 감상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유는, 맹탕 같아서인데, 정말 맹탕인지는 잘 느껴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1) 우선 자기 기호에 맞지 않는다고, “에이, 이게 뭐 시야.”라고 말하지 말자. 2) 읽어서 어려운 말 없으면 그냥 읽어보자. 3) 전체적이 분위기의 느낌과 뭔가 묘한 뉘앙스를 내는 부분이 겹쳐지는 점에 집중하자. 4) 왜 그 부분이 나의 감정을 흔드는지 생각해 보자. 시 감상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동네에 조금 모자라는 어른이 살았는데 온동네 사람(애 어른 할 것 없이)이 친구였더랬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으로 시와 논다고 혹은 본다고 생각하며 ......
이곳에 온 지 한 달여...눈에 익은 詩 이외의 글은 詩가 아니라는 일종의 편견이 없어졌기에 나름대로 욜쒸미 공부하며 이해하고 있는디요..쌤~ 그 무슨 섭한 말씀을 하신다요?..ㅎㅎ 감상하기가 만만치 않다니요? 우리 감정을 물(?)로 보십니까요?..ㅎㅎ 지가 볼 적엔 말입니다요..3)번 말씀에 더하여, 맛깔글 자체에도 감동하면 그만 아닐런지요...아~~ 쌤 한티 뎀비니까 엔돌핀이 팍팍 솟네유..헤헤
수현아..쌤 있어서 좋지? 그러니 있을 때 잘해, 나처럼. 농사일이 힘들더라도 빡씨게 공부하는 겨. 왜? 너가 가장 멋있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ㅋ
내게 시가 없었다면 그 암울했던 시간들을 어찌 견뎌낼수 있었을까요.샘 고맙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직장에 다니지만 영혼을 배불려주는 것은 시입니다. 오늘도 이 시를 보니 배부릅니다 . 수현님, 선생님 감사합니다^^
문경님이 김치를 버무리다말고 꼬무장갑 획 벗어놓고 달려왔다는 (후에 확인을 해 보니 김치를 엎어버렸다!) 전설같은 얘기를 들었어요.ㅋ (나름의 상황이어서)그 마음까진 되어볼수 없지만..저도 뻗치면 맘가는대로 막 가잖아요.ㅋ 정말~ 쌤이 계셔서 든든해요.^^*
선생님 저도 그래요, 나 같은 닭장수가 멋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글쓰는 것인데, 저는 잘 못쓰니 그게 제겐 우울한 일이랍니다. 이곳에 선생님의 감상평을 받는 글들이 부럽기도 하구요. 수현씨의 댓글쓰는 심정이 저와 같더군요. 그래서 앞으로 좀 미안하고 뻔뻔스럽다 싶어도 하고 싶은 말 하렵니다. 이 시는 저의 서정과 삶을 살아가는 환경이 많이 다르지만 읽으면 슬며시 미소가 떠오르는 게 아주 속 깊은 저 아래로부터 시원한 시락국밥 한 그릇 먹어서 따뜻한 느낌입니다.
시 좋드만요~
길이 정해졌으면 대가리 박는 거죠. 시작은 대가리 박았기에 시야가 좁지만 점점 그 자리로부터 일어나면서 대륙을 만드는 거죠. 나이 차이도 안 나는 사람에게 이런 소릴 들으니 웃기죠? 그러치만 한번 웃고 해버리면 되는 거에요. 닭에 대해선, 그 지혜에 대해선 제가 배우리다..ㅋ...글구 이곳에서 부지런히 말씀 나누고 하세요. 제가 희철씨에 대해 알 수 있는(특히 언어행위와 관련하여) 유일한 통로에요. 저 인간의 서정 작동의 습관은 어떤지 제가 어찌 알겠으며, 그리하여 어떻게 의미개입을 하겠습니까? 희철씨가 오랫동안 주변에 있었던 것은 알지만 의외로 제가 희철씨에 대해 아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 사유와 서정을 폭발시키는 양
최희철님의 시를 읽으면서 매우 남성다운..말하자면 우리 唱에 서편제 동편제가 있잖아요...그 동편제 가락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저는 최희철님의 그 선굵은 생의 관점이 부럽습니다..아울러 좋은 시 많이 보여주시길 간청합니다^^
상에 대해서는요......요즘 저는 사이버노동대학 문화교육원에 강좌사업을 맡아 준비하고 있어요. 눈코뜰새 없는 단계에 접어들어 신경질이 많이 납니다. 좋은 시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죠. 결국 희철이 보는 게 낙인 거야. 아자!^*^
수현 누나 이런 시 한 10편 들어간 시집 엮이면 참 기가막히겠어요^^
그러면 우리 시사에 남는거 아녀...나중에 장근샘이 교과서에 있는 수현님 시를 학생들에게 침튀기며 가르칠 때가 올 것이구만^^
동네 아지매들이 우리 과수원에서 일하면서 하던 얘기가 떠올라 옮겨봤는데 시가 되었어.샘을 잘 만나서겠지.그땐 우스갯소리로 흘려들었는데, 말들(수다나 이야기)이 글로 바로 옮겨진다면 좋은데 그거이 쉽지 않아 ^^
전무할마씨: 무심한 주인(사장) / 고래: 불쌍한 삐에로 (노동자) / 동네아줌마: 인정많은 동료 (열혈 노조원) /화자: 고뇌하는 예술가 (학출 회의주의자) --- 이런 구도로 읽혀요. 농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농촌의 특수성으로 똑같이 재현되고 있구나 하는. // 조지 오웰이라면 여기서 동네 아줌마가 밥 숟가락 떠주려다 자기 배가 너무 고파 그만 두는 상황으로 갈 것 같고. 박노해라면 동네 아줌마들이 고래를 끌어내려 밥상머리에 앉히고 전무할마씨에게 집단으로 항의할 것 같고, 이해인이라면 전무할마씨가 고래를 불러내려 넌 더 먹어라 할 것 같군요. 천상병이라면 고래가 나무 위에서 감춰온 막걸리를 꺼내 마시다 훨훨 새처럼 ^^
아르케님 극작가 아니세요?
헤헤.
아르케님 감상이 쥑입니다.
크으~ 역쉬 아모르파티...댓글 하나 거를 수가 없는 이곳..참 좋은 공간이지요...안그래요 이스라엘님?
알케가 뺑이돌려면서, 그 유명한 <저변>이 넓어졌다는 것......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재산목록일 거야.
아르케! 그땐 지금보다 지배의 구조가 분명했던 것 같아.과수원은 그 집 달랑 하나였고 어쨌거나 그 전무영감의 영향으로 그 후에 동네가 과수농사로 많이 바뀌어 먹고 살만해졌다곤 하지만 ..음..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면서 또한 많이 남아도는 시기여서 일꾼들이 (일하는 게)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그 자리에서 짤리기도 했다는 걸 보면 말이야. 여러 인물중에서 천상병이 압권이다.^^*
수현님께 보내는 선생님의 말씀에 정이 철철 넘칩니다. 수현님 선생님 너무 좋지요.
다래언니 이렇게 복터진 생을 살아갈수있게 하는 샘을 어찌 안좋아할수 있겠어요 그런말 하고 싶은거지요.수현님 아들핑게말고 서울올수 있는 발걸음을 더 한층 가볍게 만들어주셨지^^
문경님은 내맘 알제 ㅎㅎ
하하, 아르케님 때문에 웃습니다. 아마도 저는 고래였다가 서서히 전무할마씨로 변해가는 중은 아닐까 더럭 겁부터 납니다. ^^* 선생님께서 수현님께 보내는 사인이 대단합니다. 여기까지 열기가 느껴집니다.
'미어 터지게 세 숫가락 째...'에서 아주아주 복잡한 감정이 이는 거이......웃음은 나오는데 쓴웃음도 아니고 이 게 무신 감정인지 지도 잘 모르겠어유...ㅎ
눈물을 닦고 난 후에 나오는 웃음인 게지요^^
둉요야..쌤 있어서 좋지? 꼭 그러시는 것 같네요.^^ 수현님의 시가 이제 제 몸에 콱 박힐라고 합니다. '쪼구'도 아주 재밌게 읽었거든요. 시와 해설 덕분에 웃음으로부터 자라나는 공동체..댓글 또한 황홀한 amorfati...!!
이곳에 있는 우리모두는 복터진거예요 그렇죠 동요언니,어디가서 우리가 이렇게 대접을 받아 보겄어요.헤헤
동감 동감^^
동요님 각별 해서 좋습니다.
우와, 시도 댓글도 황홀하고만요. 시힘!
언젠가(1년반 전쯤에) 답답한 맘으로 제가 샘께 멜을 보냈었나 봅니다.내용은 확실히 기억나지않지만..아마도 '제가 이러저런 일들로 힘들고,시골에 살아서 보고듣는것도 턱없이 부족하고,공부는 하고픈데 시간은 없고,어떻게 해야죠?'라고 엄살을 떨었을겁니다.그때 샘이 보내주신 간단한 멜의 내용은 "그곳 생활이 그에게는 자산일 수 있어요.아니,자산으로 만들어야지 삶을 사랑하는 거지요" 이 간단한 두마디가 여기 공부방 학동들 모두에게 또한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겠죠.<있을때잘해!>를 노자나 니체로 말하면 어떻게 풀어쓰실지궁금해요ㅎ 다른건 몰라도 시와 관계된 것엔 제가 복이 많은가 봐요. amorfati님들! 감사^*^
이 마슬엔 시가 기본, 댓글이 엔돌핀! 나이트엔 술이 기본, 부킹이 엔돌핀. 난 거기, 뵈는 거이 없은 게, 해골 부서질 것 같아서 못감니다. 가끔 가고 잡긴 한디. 그땐 여그서 놀지요. 해골 빡빡 닦음시롱.
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서 젤 무서운 빈걸님...뵈는 게 없다는 말씀...빈걸님은 온 몸이 눈이예요...저번에 빈걸님 앞에 앉아서 술마실 때요..나는 빈걸님이 온 몸으로 절 보고 있다는 느낌에 젓가락질 하나도 조심히 했다는 거...알지요^^
해학의 맛이 묻어나는 시입니다. 수현님 이미지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한 것 같구요.^^ '밥'이라는 낱말, 참 많은 느낌을 줍니다. "밥 먹었니?" "밥 한 끼 같이 먹자." "밥벌이라도 해야지." "밥 먹을 땐 건드리는 거 아니다."...
그제 저녁식사시간...."밥 먹어라"(여러번)...엄마 말을 들은체 만체 한참 종이접기에 몰두해 있던 딸녀석이 이제 물리려고 하는 밥상머리에 앉아 "엄마 밥 줘. 배고파".....이거 굶겨 말어...엄마의 잔소리에 딸네미 국이 그날 좀 짰을 거예요^^
욕심없이 덤덤하게 쓸 수 있는 남수현님이 항상 부럽습니다.
이리님 언제 안양에 초빙해서 전체모임 한 번 갖는 거 어때요???
으앙...,겁나,무지 황홀하구만요.수현님의 시,맛나고요,'자산'의 힘이 팍 느껴져요. 아르케님의 댓글에 절로 고개 끄덕끄덕..어떡하죠? 우리 쌤~~~~~~! 너무 행복하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