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2월 24일(화)QT■
(야고보서 5장)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묵상)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왜 목사를 청하지 않고 장로를 청하라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은 목사가 장로보다 높은 직위로 알고 있지만, 목사는 장로 중에 하나였다. 베드로도 장로였고(벧전 5:1), 요한도 장로였다.(요이 1: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되시고, 장로들이 주님의 종이 되어서 사람들을 양육하고 가르치고 다스린다.(딤전 5:17)
병든 자가 있을 때 장로들을 청하여서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그것이 장로들의 일이고, 또한 교회가 함께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로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권하는 자로서 교회 내에서 믿음이 가장 앞선 자들이다. 장로는 그러한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는 장로들만의 몫이 아니다. 모든 성도가 함께 하나된 자로서 기도해야 한다. 야고보는 '서로 기도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렇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영적 싸움을 하기 위함이다.
이것을 게을리 하거나 귀찮아 하면 더 이상 교회로 모일 이유가 없다. 인터넷으로 설교듣고, 온라인으로 헌금을 보내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16)
우리가 서로 죄를 고백는 것은 죄를 죄로 인정하고, 죄를 표출시킴으로써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망신을 줌으로써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이라는 심리적인 효과를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서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 대중 앞에 서서 자기의 죄를 구체적으로 낱낱이 밝히라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이 내 죄를 자세히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함께 드리는 예배의 기도 속에서 고백할 수도 있고, 형제들과의 교제 속에서 할 수도 있으며 신앙이 성숙한 형제에게 개인적으로 토해놓을 수도 있다.
예배 때 어떤 형제가 자신의 악한 죄를 토하며 회개하는 기도를 하면, 교회는 그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위해서 기도하며, 형제들은 자신을 돌아보게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더욱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형제들의 솔직하고도 겸손한 회개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며, 주님의 위로가 그에게 임하기를 기도하게 한다.
죄의 고백은 아무 곳에서나 하면 안되고,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확실히 가진 성숙한 집단 내에서 해야할 것이다. 그들은 형제들의 죄의 고백을 듣지만, 결코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것으로 형제를 판단하거나 그를 죄인처럼 취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백하는 형제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가 임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집단이 그러한 성숙함을 가지지 못했으면 죄의 자백은 장로에게만 하던가, 아니면 개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16)
의인이란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는 윤리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들이란, 자기 의로 뛰어난 자들이 아니라, 믿음이 뛰어난 자들이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의 기도(15), 의인의 간구(16)라는 말을 바꾸어가며 쓴 것이 그 증거며,
엘리야를 예를 든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우리는 세상에서 말하는 의인 개념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의인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어보면 이 말이 얼마나 진실된 말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의인이란 몸이 더러워도 손과 발만 깨끗하면 된다. 즉 인간관계에서의 윤리일 뿐이다.
그러나 복음에서 말하는 의인이란, 손과 발보다도 먼저 몸이 깨끗한 사람이다. (요 13:10)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정립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손과 발도 깨끗하게 씻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내 의, 내 공로를 의지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증하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그것은 오직 믿는 자에게 주신 이름이다.
야고보를 비롯한 사도들은 이미 이러한 믿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행 15:9)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믿음이 특별난 사람이었다. (왕상 19:14)
그렇지만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性情-타고난 본성)이 같은 사람'(17)이다.
이 말은 우리도 엘리야처럼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가 기도하자 3년 6개월이나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따라 움직이셨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 의인의 기도의 힘이다.
교회는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이들의 기도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 18:19)
주님, 저에게 함께 할 수 있는 형제들과 교회를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함께 기도하며, 함께 응답받는 역사를 보게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