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의세계 5월호가 지난 월요일 나온다 하였기에
그 다음날인 화요일 만휴에서 뭉치기로...
마침 맑은바다님 가을행복님 코리안셰프님이
아란도님 생일을 축하할 겸
건아하게 와인과 요리를 준비한다 했으니
생일파티겸 '내 인생을 바꾼 한잔의 차' 낭독 시간을
함께 가지면 딱이겠다 하였었다.
차한잔 만휴소찬 술한잔 차한잔
이렇게 한자리에서 자리이동없이
그대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테이블과 의자를 새로 세팅하여
다탁을 꾸며보다.
오시는 대로 바로 이 테이블로 착석
차한잔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코리안셰프가 도착하며 그 준비된 요리를 더해주시니
아란도님이 준비하는 만휴소찬은 그저 말뿐이었고
만휴 만찬이다 못해 아예 만휴 잔치상이 되어부렸다.
코리안셰프가 솜씨를 발휘한 음식
일본카레우동!!!
겁나 맛있엇다.
양배추와 깻잎의 키스 그 장아치에
참크레커에 각종의 잼 잼 잼들의 맛의 향연
저녁을 그리 맛나게 먹고
식사테이블을 일단락 정리한 후
이윽고 아란도 착석하여
생일축하 케익을 밝히고...
와인과 茶의 향연 속으로
생일케익 커팅식이 이어지고
귀고리와 책,
생일선물 증정이 있었으며
책은 최석환님이 준비해주셨고
귀고리는 누구였지요?
이렇게
차한잔 밥한술 술한잔
서로가 지펴지고 예열된 공감대에서
이젠 하나로 이어주는 낭독의 멋 속으로
처음부터 책을 꺼내고 낭독하자면
이 편안하게 이어지는 집중을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공간이란 악기가
서로의 공감이란 호흡으로 예열되었을 때
그 낭독이나 침묵이라는 연주는
선률과 여운으로 살아오르리니...
처음 스타트는 산울림 본인이 끊는다.
그리고 앉아있는 순번으로 돌려가며...
소리내어 읽는다는 것,
홀로 속으로만 읽어왔던 우리네였기에
낭독한다는 것은
자못 어색하며 서툴러서
스스로 계면쩍어지고
한번도 읽지않았던 내용을 바로 읽어나가기에
더듬을 수밖에 없기도 하여
못내 수줍게 스스로의 귀를 울리기도 하였지만
이를 다 서로 받아주고 북돋아주기에
우리는 공간의 울리는 서로의 목소리와 집중 속에서
새롭게 가슴이 차오르는 유대를 꽃피운다.
새삼 낭독이 얼마나 소박하게 피어나는 공간의 꽃인지
발견하게 되셨을까...
茶는 "문"이다
그냥 茶와의 조우와 그 인연을 얘기한다면 좋았을텐데... 茶 한 잔으로 내 인생이 바꾸어졌다고 과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쉽게 그런 순간이나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없었을 것이다. 하여 이 테마에 대하여 저는 따로 할 얘기가 없겠습니다 고사했었다. 세월과 세사의 부침 속에 변화된 면모지 특별히 茶로 인해 바뀌었던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처음 茶를 함께 들면서 지금까지 동행해온 친구가 '본인이 느끼지 못할 뿐이지 그대도 茶를 만나고 많이 바뀌었거든!' 하는 것이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茶로 지펴진 인연이 내 인생의 거대한 한 흐름을 차지하고 있었슴이 이내 보여진다. 인연은 시나브로였었음을. 안개 속에 옷 젖는 줄 모르고 거닐더라는 말처럼 茶는 어느새 나도 몰래 스며들어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연(茶緣)이 늘 숨쉬는 공기처럼 당연하게만 느껴졌으니 지금에 이르러선 특별할 게 없다며 둔감하게 지나쳐왔었던가? 처음 茶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본다. 茶 한 잔을 마주하고 동행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가만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고향이 충남 서천이다. 이곳엔 茶문화가 없었다. 숭늉과 보리차가 일상적인 茶라 할 것이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소풍을 갈 때나 원거리 길 나설 때는 사이다나 환타 등 각종 캔과 병에 들어있는 음료들을 즐기었고, 고교를 졸업하고는 커피나 맥주 막걸리 등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즐기고 있었다. 대중매체에 선전되는 다양한 음료의 시장쟁투를 엿보면서 먹거리 그 食문화의 일편이었을 뿐.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생수가 팔리기 시작한다는 데에 예측하지 못한 놀라움이 있었을지언정 茶라는 것을 따로 알지 못했다. 심지어 茶나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에게 茶는 그것이 잎이든 뿌리든 줄기든 꽃이든 열매든 어떤 것이 되었든 자연에서 채취한 천연재료를 가지고 말리거나 볶아서 충분히 우려낼 수 있다면 그것이 차였다. 모든 천연의 원료를 가지고 각종의 다양한 차가 즐비하였을 것이니 옛부터 '다반사'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었음을 미루어 추측해보며, 그 어원의 내력을 공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차에 대한 개념은 물에 타거나 우려서 마실 수 있는 - 그냥의 물이나 술, 탄산•이온 음료와는 다른 - 천연음료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였지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이런 환경과 개념 속에서 살다가 茶동호회와 연을 맺게 되고 대전 은행동 어느 뒷골목 도솔천이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찻집, 다실이라는 공간과의 처음 만남이었다. 주점 술집 바 카페 다방 중 그 어느 명칭과도 어울릴 수없는 공간. 말 그대로 찻집이었다. 한쪽에 다구와 찻잔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소꿉놀이 애들용인듯 아기자기하게 관물 감상용으로 비치해놓은 듯 하였다. "설마 저 작은 잔들을 실제 이용하는 건 아니겠지요? 미니어처 장식용이겠지요?" 호기심을 띄우고 물으니 찻집 주인장이 웃으면서 "이쁘죠? 저렇게 작아 보여도 물고문까지 시킬 수 있어요. 찻잔으로 충분히 기능한답니다. 다 그대로 사용하고 파는 물건이예요. 결코 전시용이 아니랍니다." 술잔 말고 흔히 보이는 찻잔이라면 유리컵 커피잔 머그컵들만으로 익숙했던 나에겐 너무나도 작은 찻잔의 크기였다. 헌데, 막상 마주앉아 도란도란 茶를 들며 茶얘기를 듣노라니 그 소꿉놀이용 같은 작은 다기들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주구장창 한자리에 붙들려 나도 모르는 사이 내내 새록새록 물고문 당하고 있었다.
그 현장을 직접 확인하며 맛보면 맛볼수록 웃음지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찻잔이 작으니 얼마를 마시고 있는지도 모르게 부담없이 하염없이 맛에 집중하며 즐길 수 있었고, 다판 다구 찻잔 그 위에서 어울려지는 시간이 어색하지않고 자연스러움으로 분위기를 그리며 흘러가는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라면 물 아까운 줄 모르듯 마구 쓰신다는 것이었고, 茶나무 잎차만 너무 예찬하고 받드시는듯 한데... 아무리 새로운 맛에 놀라움이 있었다지만 그것만 차인가? 보리차도 둥글레차도 차는 다 같은 차인데 더 특별히 떠받들듯 귀하게 의미를 줄 필요가 있겠느냐며 속으로 반문하고는 다 동의할 수 없다는 내 고집을 세우기도 하였었다. 어떠한 음식이든 오랫동안 입안에 머금고 정성껏 씹으며 긴 호흡 속에 음미하다 보면 다 오미(五味)가 나오고 몸과 마음을 그 한조각에서 들여다 볼 수 있슴을 체험하였고, 이를 새겨놓은 발심자의 입장에서야 저 잎차도 그냥 일편의 음료일 뿐인데 말이다. 선다일여 다선일미가 꼭 이 茶란 것에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음식에서 다 공부하고 체험할 수 있슴을 느끼고 믿는 나에게 그간 보통명사로 알고 있었던 차를 고유명사화시켜 예찬하는 모습들이 그 진의와는 상관없이 와닿지는 않았다.
처음 찻집에 들러 느낀 차에 대한 내 마음의 풍경은 차맛에 대한 놀라움도 있었지만, 茶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徳은 알 수 없었고, 찻잔 다관 숙우 다판이 연주하는 찻자리 그 공간이 그려내는 매력이 더 컸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학창시절 친구들의 종용에 모임을 주최한 적이 종종 있었다. 이때 '술이라는 것!' 없으면, 맹숭맹숭 아쉽고 데면데면 서먹서먹한 멋쩍음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술 한 잔 "짠" 부딪치고서야 운을 떼며 서로를 한줄로 허랑허랑 풀어내게 되니 이보다 매력적인 게 어디 있을까. 그러나, 과하면 아니한만 못하기도 하였고. 우리는 다들 혈기왕성한 20대였다. 제멋에 겨울 나이였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술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지배하여 제각각 흩어지고 고성도 터져나오고마니 주선한 입장에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자리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 모임을 주선하는 일을 삼가했고, 술에 흥청망청 퍼져버리는 풍경을 내켜하지않았다. 그저 개인으로 참가하여 내 주량대로 일고지는 맘 따라 즐기다 올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을 뿐. 깊어지는 술자리는 되도록 피하게 되었다.
그런데 술 없이 차만으로도 모임과 자리가 멋지게 피어남을 보았으니 서른에 만난 찻자리의 매력은 나에게 "유레카"였다. 차를 처음 만났을 때 차보다는 찻자리의 매력이 더 크게 닿은 이유였다. 술을 경계하고 있는 시점에서 발견한 찻자리의 미학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와 다기가 있고, 그 위에서 어우러지는 말과 침묵이 다 자연스러운 대화가 되고 있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았을까? 차한잔 들고 있으면, 말을 해도 좋고 말을 안해도 못해도 좋았다. 말이 이어져도 끊어져도 전혀 어색하지않고 편안하였다. 이것을 알았을 때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내 이야기에 취하지도 저이 이야기를 저어하지도 않았고, 담담히 말하고 담담히 들으며 만남을 꽃피웠다. 그것이 스침이 되었든 부딪침이 되었든 머뭄이 되었든 차차 스며지는 인연을 노래하며 시간을 향유할 수 있었다. 성큼성큼 찻자리로의 발걸음이 가볍다. 내딛는 걸음걸음이 소담스러웠다. 시간이 흐르고 절로 인연이 넓어지고 점점 깊어져간다.
茶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남은 茶가 아무리 넘치고 과해도 과유불급하지 않았고, 처음 만나도 잠깐 함께 자리하다 보면 오랫동안 만났던 것 같은 느낌. 데자뷰랄까? 그런 인연에의 교감이 그윽했다. 그러던 어느날 차맛이 입에 배고 茶 자체의 매력과 덕을 느끼게 되었다. 茶緣을 따라 다니다가 결국에는 茶에 차츰차츰 물들어 茶 본연, 그 고유명사에 스며있는 문화와 정신을 온 몸과 맘으로 열렬히 취하게 되었다. 우릴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茶라 하기엔 茶가 가지고 있는 색성향(色性香) 그 진선미(眞善美)에의 매력이 다른 일반차와는 큰 변별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다반사'라는 말도 그 茶나무 잎에서의 유래하였었음을 알게 되었다. 茶와 대용차를 구별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茶한잔에는 잔잔히 차분하게 관조하고 음미하게 해주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그래서 옛부터 명선[茗禪]이란 말이 내려왔을 듯...
차 맛 어 때
처음 나에게
茶는
우연한 만남이었고
경설일미[驚舌一味], 혀를 희롱하는 놀라움이었다
그러다가
나에게 茶는
설레이는 만남이었고
세신신심[洗身新心], 맑게흐르는 몸의 깨어남이었다
점점 茶는
나에게
깊어지는 인연이었고
시즉유여[視卽幽汝], 그윽하게 바라보는 정향(情香)이었다
시나브로 시나브로
茶는 나에게
인연의 덧
아름다운 구속이었고
세로행등[世路行燈], 욕망을 부추기고씻어내는 살림살이 공부이렸다
茶라는 것은
사바의 땀과 눈물 그 파아란 상처의 멍울이요
그 상처의 결정, 풀어지고 풀어지어 씻어지고 씻어지어
있고도없음이라 우리우리 우리우러러 니르바나로다
아아,
세월에 세상에
나는 일염일진[一染一塵],
비우고비우려나 닳고쌓여만가는 오탁(汚濁)이오니
오늘 나에게 茶는
아끼는 인연(人緣)이요 감사의 염원(念願)이다
일로일식[一露一息],
오탁을 씻어내리는 이슬 한방울 큰 숨
지금 내 드는
茶한잔은
"인덕인향[人德仁香]"
그 인연에 배우는 발심(發心)과 하심(下心)이다
- 다기와 차에의 인연을 한 잔 들다가 -
인생을 바꾼다는 것은 무엇일까?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는다는 것. 주당이 술을 끊는다는 것. 복권에 당첨된다는 것 등등. 내 성향과 환경의 흐름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흐름을 개척해내는 것일 것이다. 단번에 확 변하거나 그 흐르는 방향각의 꺽임이 눈에 확 띄었을 때는 바뀌었슴이 선명했을텐데. 나에게 茶는 말 그대로 차차 차차차 스며들어 물든지도 모르게 물들었다는 것이다. 茶를 통한 인연과 문화도 그 맛과 멋이 스며드는 속도처럼 차차차 잔잔히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어서 흐름의 고저나 완급이 급함없이 완만하기만 하였었다. 막상 돌아봐도 그 변곡점이 쉽게 보이지 않았던 것도 茶에 깃든 느림과 멈춤의 미학이었을까. 그러나, 변화에는 계기라는 것이 있고. 그 계기를 촉발시키는 것이 사람이고 만남이라고 보면 茶는 나를 변화시키는 그 샘터 원천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 원천이 흐름을 꺽거나 변화를 주었다기 보다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여 큰 길을 내었다는 점이 달랐을까. 茶는 나에게 인연의 징검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고 지금에 이르러선 내 인생에 하나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음임에. 30에 만난 茶가 20대까지 흘러온 내 흐름의 옆에서 새로운 흐름을 하나 더 내고 있었고. 별개로 흐르던 그 지류가 내가 되고 강이 되어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져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茶를 만나고 그 이전과 가장 바뀐 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내 가슴이 유연해지고 얼굴이 말랑말랑해졌다는 것! 세상살이 겪다보면, 한 사람이 있어서 더불어 흥겹게 물들다가도 그 한 사람이 거북하니 모든게 부담스러워 발길이 뜸해지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 그 사이의 간격에는 최적의 촛점거리가 있었던 걸까? 저만치쯤 있을 적엔 매혹적이다가 가까와지면 어색해지기도 하고 멀어지면 소원해지기도 하고, 한 사람이 있어 즐거워지고 한 사람이 있어 불편해지고. 산다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는 것이라 모두가 내 맘 같지 않으니 관계가 다 좋을 수는 없을진데... 어느 순간이라도 나로인해 거북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이 생기지않기를. 나를 미워하거나 밀어내는 사람이 생기지않기를. 나 역시 그 누구도 거북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기를. 미워하거나 밀어내지 않기를. 이렇게 스스로를 다듬으려 하였다. 이것이 열려있는 관용적인 자세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것이 내 정성과 노력이 아니라 내 고집이고 스스로를 구속하고 경직시키는 견고한 아상(我相)임을...... . 茶와 만나고 이를 가까이 즐겨 들면서 많은 사람들과 차한잔 마주하다 보니 견문이 절로 넓어지고 내 틀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항상 좋을 수만은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좀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졌다.
茶를 만나고 내 내면의 깊이와 인연의 깊이가 달라졌다. 내 안팎을 건네고 들이는 그 기복이 잔잔해졌다. 지나온 茶와의 동행을 돌이켜보면, 한마디로 茶는 내 길에 지펴진 "문"이다. 내 안팎을 소통시키는 길목의 "문" 말이다. 처음엔 "넌 뭐기에?" 호기심을 실어 놓은 물음[問]이었고. 점점 茶緣을 쫓아 인연을 열고,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게 되니. 茶는 인연의 징검다리이자 새로운 문화에로의 초대석 그 길과 무대로의 문[門]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며 가는 나그네 고독한 존재라는데, 茶는 그 홀로의 길을 가는 나그네 머리 위에 지펴진 벗, 문[moon]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술자리도 긴장하지 않으며 즐기게 되었다. 내 주량과 술문화에 접근하는 내 마음이 茶로 인해 다채로와졌고 술에 치우치지 않는 내 중심의 균형자가 되어주어 자유로와졌다. 이것도 茶를 통해 바뀐 큰 변화라 할 수 있겠다. 茶는 술과도 잘 어울리면서도 술기운을 풀고 깨우는데 가장 탁월한 음료였다. 술자리가 깊어지면 긴장하게 되었었는데 찻자리에서 기우리는 술잔에 대해선 흥과 멋으로 삼을 수 있었다. 술은 엉겨 맺힌 기운을 풀어내어 위로 띄워날린다면 茶는 엉겨 맺힌 기운을 녹이고 녹이며 씻어내린다. 하나는 풀어내고 하나는 씻어내니 이 둘이 함께 연주해내는 화음이 풍류도였을 듯. 그로부터 만남은 차곡차곡 지펴지는 인연이었고 새롭게 열리는 문화였다. 더해지는 나이테마다 그려지는 풍경이 새록새록 차한잔에 우러나고 있었다.
이토록 茶는 내 스물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만난 오솔길 샘이었고, 어울림과 홀로의 시간 사이에 서서 내 진로와 인연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을 때, 내 안팎을 소통시키며 나와 세상을 긍정으로 이끌어주던 문[問], 문[門], 문[Moon]이었다. 茶는 나에게 生을 음미하라고 삶은 다정이라고 위로하는 벗이다. 茶는 희노애락(喜怒哀樂) 정반(正反)의 모든 긍정과 부정을 우려서 긍정으로 들게하는 합(合), 삶에 대한 지극한 긍정이었다. 그대 힘들거나 즐거워도 차한잔 하시고 가시라~~~
- 차맛어때 카페지기 산울림 dream -
그리고 다시 돌아가며
낭독 이후의 각자 소감 및 감상...
이미 일상적인 관계처럼
우리의 만남은 차한잔 위에서 상투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읽어주고 들어주는
서로의 시선과 귀기울임에
이 일상적인 얼굴과 목소리가
새롭게 보이고 들려오는 만남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 밖의 풍경으로서
특별한 맛과 멋으로 들어오셨을까?
살짝 속삭이듯 물어보며
오늘 함께 만들어 본 시간을 감사히 달아두고 갑니다.
- 산울림 dream -
|
첫댓글 울림이 있어 행복하구료. 지금처럼 영원히.!
다음은 형님 차례네요.^.,~
기대해유~~~
산울림님 글맛. 만휴의 차향. 보기에도 군침도는 만찬의 맛. 모여 나누는 분들의 공감과 따뜻함이 같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아란도님의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기다리고 있었구만^.,~
왜 안오셨스유~~~ ㅠ.,ㅍ
ㅎ~~~감사드려요~~~^^£
<<茶를 만나고 내 내면의 깊이와 인연의 깊이가 달라졌다. 내 안팎을 건네고 들이는 그 기복이 잔잔해졌다. 지나온 茶와의 동행을 돌이켜보면, 한마디로 茶는 내 길에 지펴진 "문"이다. 내 안팎을 소통시키는 길목의 "문" 말이다.>>
늦게나마 댓글로 나마 생일 축하드리고, 겸하여 월간지 등단 축하혀유!! ......... (()) .........
커~걱, ^.,~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산울림님의 월간지 등단도~~~~^^£
차와 시 낭만적예요 그런데 아란도님은 생일인데 직접 생일상 차리신건가요ㅎ
그렇게 되었슈.ㅠ.,ㅍ
ㅋ~그리되었네요..
그래도 코리안 쉐프님이 음식 해오셔서 한끼 저녁 충분했어요...ㅎ~^^
감사해요~~~^^€
귀걸이는 타이거백님 아는 분이 만든 수제 귀걸이.
발찌도 있는데, 가을행복님이 직업 만든 수제발찌.
책은 차의 세계님...
그리고 제가 입고 있는 원피스와 니트는 맑은바다님의 선물입니다.^^
산울림님 등단 축하 드려요..아란도님 생일 축하해요. 코리안쉐프님 오랜만요 반가워요.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