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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여행기 / 주정희
어느 날 밤 군 장교로 있는 아들이 웹툰 문자를 보냈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리곤 해외여행 어디 가보고 싶냐며 생각해 보라고 한다.
전 세계 서적들로 세계 일주를 미리 해보아도 딱히 정하지 못하는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여행 일정에 열린다며 아시안게임 관람 후 발리에서 휴식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20여 년 만의 해외여행이지만 그동안에 고소공포증이 생겨서 비행기가 이륙하는데 긴장감에 심호흡을 여러 번, 오히려 하늘에 떠 있으니 편안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경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하니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중 나와 있었다.
첫날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다. 조식과 석식을 한식으로 준비해 주는데 음식이 집밥답게 입맛에 맞았다.
밤새 비행기에서 피곤한 잠을 잔 덕에 하루를 얻었다. 숙소에 짐만 두고 배구 경기를 보러 갔다.
자카르타 시내 중심에 있는 아시안게임 주 경기장은 축구장을 제외한 각종 경기장을 갖춘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입구에서 검색대를 거쳐 입장한 후 여러 경기장으로 데려다줄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데 신형 버스에 안내 방송 대신 안내원이 경기 종목을 외쳐 되면 관람할 곳에 내리면 된다. 배구만 보고 저녁은 근처에 있는 몰에서 현지 음식으로 먹고 들어갔다.
3층으로 된 게스트 하우스는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데 요리사와 운전기사는 월급이 30만 원 청소 등 보조는 15만 원 정도라고 하니 잔심부름을 하는 소년의 아르바이트비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간다.
인건비가 저렴하니 고용된 이들이 모든 일을 하고 두 부부는 예약 접수 외 하는 일이 없어 골프 등 취미 생활을 즐기며 여유롭게 사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는 빈부 차가 심하다. 수도인 자카르타 중심지는 빌딩들이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었고 쇼핑몰은 화려하지만 30여 분 떨어진 게스트하우스 동네는 한국의 7∼80년대의 골목 풍경이다.
첫날은 방이 비지 않아 옆 건물 지인의 풀빌라를 내 주어서 오전 내 푹 쉴 수 있었다.
오후에 있는 농구경기를 보기 위해 택시를 타고 주 경기장 GBK에 도착했다. 30분 넘게 왔는데 택시비가 2만 루피 한화로 2천 원이 채 안 된다.
인구가 2억6천여 명으로 세계 4위의 나라이며 면적은 한반도의 9배, 세계 15위로 넓은 곳인데 자카르타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지하철이 없고 아시안게임 동안은 격일제로 차량 운행을 한다 해도 해결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렌트를 할까 해서 국제 면허 발급을 해 갔지만 좌측통행의 운전이 낯설고 차보다도 더 많은 오토바이의 끼어들기에 낯설어 사용하지 못했다.
파란색의 Blue Bird 라고 하는 택시를 이용하다 GRAB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서 활용하면 도착 시간과 요금까지 책정이 돼서 바가지를 쓸 일도 없고 아주 편리하기 때문에 GRAB만 이용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종교 기념일이 가장 큰 명절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이슬람이고 이슬람 최대 명절인 르바란 기간이어서 농구 외 모든 경기가 매진돼 근처의 쇼핑몰에 있는 전통음식점에서 식사하고 마사지 샾에 갔는데 그곳도 쉬는 날이다.
축구 16강 이란전이 있는 날, 주 경기장이 가까운 시내 호텔로 옮기고 해외 원정 응원단 카페 회원 몇 분과 한식당 토박이에서 그동안 단톡으로 백과사전급으로 많은 정보를 주였던 현지에서 근무하는 용님과 서울에서 온 정일님 부부를 만나 식사를 하고, 용님이 대여한 15인승 버스에 다른 분들을 픽업해서 자와바랏주에 위치한 위바와 무크티 경기장으로 향하는데 현장 구매가 매진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 구매도 닫혀 있다 하고 도착해도 들어갈 수 없는 위기에 몰려 있는데 용님이 다행히 인터넷 구매를 해주었다.
조별예선 말레이시아에 충격의 패배로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꼭 우승할 거라는 믿음이 갔다. 특히나 경기 관람 때 늘 승리였다는 아들의 운이 따라 줄 것이기에, 우리가 관람했던 종목은 모두 금메달이었다는 사실.
이번에 군 면제 혜택이 달려 있어 누구보다도 선수들의 의지가 뚜렷하다. 특히 국보급 손흥민 선수는 군에 가면 국가적 손실이다.
현지 교포 응원단과 함께 목놓아 응원한 덕에 황의조와 이승우의 골 2:0으로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TV 중계만 보다 현장 응원이 처음이었지만 승리의 열망은 더 간절하고 경기 속에 들어있듯 끝난 후의 피곤함은 몇 배였다.
두시간쯤 버스를 타고 돌아오니 12시(한국시간 새벽 2시)가 넘어서 24시 맥도날드에서 치밥과 햄버거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다음 날 스나얀 시티에서 마사지를 받고 피곤한 몸을 풀었다. 마사지 비용은 전신 2만 원 정도, 발리는 만원 정도로 저렴해서 1일 1 마사지 하라는 말이 있다.
정일 부부를 만나 펜싱 경기를 보고 중국 전통 음식점에서 입구에 통째로 훈제되어 줄지어 있던 북경 오리 베이징 덕과 딤섬. 정체 모를 볶음과 면 요리를 먹고 돌아오다 호텔 앞 호프집 멕시코에서 아들과 둘이 맥주 한잔하는데 그곳에 있던 단골손님인듯한 분이 계속 한국 음악을 틀어 주며 한국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가 나오는 길까지 배웅해 준다.
오늘 하루는 경기 관람을 접고 휴식하기 위해 초호화 호텔로 이동, 발리에 가서 스노클링과 서핑을 하려면 수영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웠다. 드라마에서 보던 썬배드에 비키니 입고 누워 세상 편안함을 누린다.
호텔 인근 거리는 인도네시아 느낌이 물씬 풍기는 풍경이다. 한국의 70년대 찐빵집 같은 상점과 작은 리어커 노상, 꼬치구이 냄새가 유혹하지만 위생이 믿음이 가지 않아 저녁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빈땅 맥주 세트와 나시고랭으로 호젓한 시간을 보냈다.
여러 사람의 추천이 있었던 플라자 인도네시아는 규모도 크고 시설도 최상이다. 어느 몰에 가도 마사지 샾이 체인점처럼 있는 것 같다. 마사지를 받고 저녁 야구 경기를 보고 나오니 인파가 몰려 GRAB이 잡히질 않자 부모님과 중학교 때부터 살았다는 현지인 정욱님이 정일님 부부와 우리를 태우러 와서 한인 식당 미스터 박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축구 8강 우즈베키스탄전 자와바랏주 브카시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으로 가는 45인승 버스는 붉은 악마 응원기가 달려 있고 붉은 악마 응원단장님이 생수 2병과 빵 2개씩을 준비해 주었다. 늘 인솔하던 용님은 직장 때문에 오지 못해 아들이 대신 인솔 해서 경기 2시간 전에 도착했다. 가까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한국에서 온 우리는 이렇게 한 팀이 되었다.
경기장 입구에서 우즈베키스탄 응원단이 민속 음악으로 춤으로 벌써 시끌시끌했다. 열 명도 채 안 되는 응원단치곤 웅장하고 요란스러웠다.
경기장 출입 때 물과 음식물을 가져갈 수 없고 경기장 내에 있는 매점을 사용해야 하는데 너무 길게 선 줄에 시간이 안 될 때가 있어 가방 안에 있는 것은 발견 안 하던 것을 알아 간식도 챙겨 왔는데 너무 일찍 와서 한적한 검색 대원들이 가방까지 샅샅이 뒤지는 게 아닌가
다행히 축구협회 관계자가 먹을 것은 봐주라 해서 가지고 갔는데 다른 이들은 담배와 라이터를 다 뺏겼다. 그래도 잠깐잠깐 담배 피우러 나가는 이들은 있었다.
치고받는 난타전에 계속 손에 땀이 나도록 긴장되는 경기, 결국 후반에 역전을 당했지만 황의조의 해트트릭으로 3:3 동점을 만들어 연장전에서 황의조가 페널티킥을 얻어 황의찬의 골로 승리를 이끌었다. 키퍼 손에 맞고 들어가서 안 들어가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같은 경기장 다음 순서가 베트남이어서 베트남 응원단들도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베트남전을 보기 위해 일부는 남고 힘이 다 빠져 지친 우리는 다시 버스에 탑승 자카르타로 돌아와 간단한 뒤풀이를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양궁 경기장에 갔는데 너무 더워서 교체 시간에는 버스를 타고 경기장 한 바퀴 돌며 에어컨 바람을 쐤다.
금메달 선수 중에 순천 시청 소속 이은경 선수가 있는데 못 보고 가나 했는데 관람석 옆자리에 있던 양궁협회 회장님이 선수 대기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신다. 시상식이 끝나고 들어오는 선수마다 사진 찍게 해주셨다. 이은경 선수도 만나 사진을 찍고 격려도 해 주었다.
축구 4강 준결승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을 만났다. 이틀 만에 열리는 경기라 선수들이 얼마나 힘들까 걱정이 되었다. 해외 원정 응원팀은 버스가 2대로 늘었다. 경기가 열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는 대한민국 응원단들도 많았지만 베트남 응원단들도 많았다.
경기는 3:1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베트남 응원단은 졌어도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경기 후 자카르타에서 뒤풀이 하는데 아들의 엄마가 아닌 누나라고 소개를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나는 차를 마시기 위해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가고 아들은 오전 내 일어나질 않는다. 경기가 선수도 힘들지만 응원단도 힘들다.
옆 호텔에 묵는 민영님이북한관에 있는 평양냉면 먹으러 가자 해서 북한관이 있는 호텔에 갔다. 평양 옥류관에서 나온 주방장이 만든 평양냉면과 밥만 만 김밥 2개가 나오고 대동강 맥주를 시키니 생선 훈제가 따라 나왔다.
여자 핸드볼 결승전, 1시간 거리에 있는 자카르타의 폽키 찌부부르 경기장을 동행하기 위해 정일님 부부가 묵는 호텔로 갔다. 호텔은 20만 원 대로 자카르타에서는 가장 좋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정일님은 호텔이나 넓고 좋은 곳에 묵어야 한다는 쪽이다. 나는 살 것도 아닌데 잠만 잘 잘 수 있는 쾌적하고 깨끗하면 된다는 쪽이다.
여자 핸드볼 결승은 중국을 29:23으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핸드볼이 생각보다 몸싸움도 치열하고 힘들어 보이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경기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축제 분위기, 선수들과 함께 포토 타임을 가졌다. 어느 맘 좋은 선수는 목에 금메달을 걸어 주었다. 내 생전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음날 있을 축구 결승전을 위해 하루는 쉬기로 해 호텔 근처에 있는 사리나 몰에서 루왁 커피와 스노클링용품 등 쇼핑을 하고 아들은 번개 장소에 보내고 나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엄마와 늘 붙어 다니니 아들에게도 혼자만의 자유를 주고 싶었다.
축구 결승전, 금메달이 달린 역대급 한일전이다.
유관순 복장으로 응원하고 싶었지만 의상을 구할 수 없어 붉은 악마 복장으로 가게 됐다.
해외 원정팀들은 베트남전부터 보기 위해 1차 45인승 버스로 출발했다. 우리 경기에 맞춰 버스 2대가 더 출발할 것이다.
16강전, 8강전, 4강전, 결승전까지 네 번째 현장 응원이지만 가슴이 더 뜨거워짐을 느낀다.
경기 초반에는 우리 대한민국의 날카로운 공격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숱한 찬스가 있었지만 쉽게 열리지 않은 일본 골문이었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더뎌진 반면, 일본 선수들은 경기 끝까지도 스피드가 살아있었다. 이대로 연장전에 넘어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고, 실제로 경기는 0대0! 전/후반 90분 경기를 모두 마치고 연장전으로 갔다.
연장 전반 4분에 터진 이승우 선수의 골, 상대 일본 골문 앞에서 손흥민 선수가 한 번 접은 볼을 빼앗아 그대로 슈팅! 온 국민의 막혔던 가슴을 뻥~ 뚫어준 대포알 한 방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터진 황희찬 선수의 헤딩슛 추가 골은 승리로 이끈 천금의 것이었다.
골 넣은 후에 응원단 앞에 서 있는 황희찬을 계속 외쳐주었다.
연장 후반, 일본의 코너킥 상황에서 어수선한 중에 1골 잃긴 했지만 경기는 그대로 종료. 2:1 승리로 금메달이다.
유난히 가슴 뭉클한 시상식까지 보고 자카르타로 다시 돌아와 뒤풀이를 2차까지 하고 숙소로 왔다.
아시안게임도 폐막식을 끝으로 자카르타를 떠나기로 했다가 축구 다음 날은 힘들어서 하루 더 있다 가기로 했는데 축구 대표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해외 원정 방장이랑 공항에 가서 축구 대표 선수들의 사인을 받고 사진도 찍었다.
손흥민 선수는 역시 프로다운 팬 매너까지도 있는 미소가 멋졌고 황희찬 선수의 친절함에 늘 잘되기를 바라는 팬심을 심었다. 황의조 선수의 겸손하고 점잖은 모습은 천성 천사 같다. 하지만 조현민, 조현진, 두 아들의 이름과 형제 같아 더 좋아했던 조현우 선수와 이승우 선수는 공항에서 팬심을 버리고 왔다.
13일간 머물렀던 자카르타를 떠나 족자카르타로 왔다. 이곳에서는 족자라고도 한다.
공항 국내선은 화장실 옆 줄지어 있는 수도꼭지에서 씻고 기도실에서 기도한다.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는 하루에 5번 기도 시간이 정해져 있다 어느 곳이든, 일하다가도 기도하러 간다고 한다. 한적한 동네에서는 스피커를 켜놓고 시끄럽게 기도를 한다.
문화와 교육의 도시 족자카르타는 신비하고 신성한 기운이 맴돈다.
기후는 자카르타보다 낮은 편이고 물가가 더 저렴하다.
인근의 많은 섬에서 유학을 올 정도로 명문대와 켤리지가 있다. 족자에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온 강원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두 학생을 만났다. 족자에 온 지 한 달 됐는데 한국 사람이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렌터카로 한 학생과 띠망비치에 갔다. 런닝맨에서 방송한 후 더 알려진 곳인데 3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었다.
띠망비치 입구에서부터는 지프로 갈아타고 갈 수밖에 없을 정도의 험한 길이었지만 우람하고 멋진 풍경에 고생한 길이 허사가 아니었다.
파도가 거세게 치는 건너편 작은 섬에 들려면 아슬아슬한 흔들대는 다리를 건너든지 수동 목재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요금은 2만 원으로 비싼 편이다.
나는 무서워서 건너지 못하고 아들만 혼자 다녀오는데 건장한 사내 몇이 양쪽에서 밧줄을 밀고 당기는 수동식이다. 인도네시아는 문명보다는 거의 사람의 힘을 빌린다.
바다가 사나워서인지 노을이 떨어지자 바다도 영업을 끝내고 다시 돌아와 명문대라는 학생의 기숙사 구경을 했다. 마당이 있는 넓은 집 한 채를 둘이서 쓰고 있다. 그런 집들이 여러 채였다.
학생들과 한식당에 가서 김치찌개와 곱창전골을 사 주었다. 족자에 와 한국 음식은 처음 먹는다며 맛있게 먹는다.
학생들과 헤어진 후 우리는 둘 다 감기에 걸렸다. 아마도 아픈 학생에게 옮긴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느낀 것은 낯선 여행길에서는 아픈 사람과의 만남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여행자들의 거리인 말리오브르 거리는 풍경이 정겨웠다. 차보다는 마차와 인력거가 더 많고 길안에 쇼핑몰과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3일간의 족자 여행을 마치고 발리행 비행기를 탔다.
첫 번째로 우봇으로 가서 홈스테이에 짐을 풀고 바이크를 렌탈해 너티 누리스 와릉 발리 맛집에서 폭립을 먹고 뜨갈랄랑 계단식 논 라이스 테라스에 가서 전망이 더 가까워지는 그네를 타고 카페에서 우왁 커피를 마시면서 경관을 구경했다.
우리나라에도 계단식 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발리의 계단식 논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유독 더 녹색인듯한 벼 이파리와 열대 특유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야자수가 산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이 이국적인 것이다.
우봇의 시내는 거의 외국인들이다. 한국인들도 더러 보인다. 거리는 쇼핑 샾과 식당과 카페로 모두 북적인다. 전통 문양의 터들이 많아 발리의 문화를 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스타벅스 옆으로 들어가니 연꽃들이 멋있게 피어 있고 전통 사원의 돌탑들이 멋스러워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다.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면 우봇 왕궁이 있는데 일부는 공사하고 있지만 그곳 역시 포도존이라 사람들이 즐비하다.
족자에서 얻은 감기가 낫지 않아 한국 음식점에 가서 얼큰한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먹고 우봇에서 유명한 마사지 샾에 갔다.
먼저 좋아하는 오일 향을 고르고 커플실에 가서 누워 있는데 아들은 남자 안마사가 들어온다. 거의 노출이나 다름없는데 민망함에 여러 생각이 든다. 신혼부부일 경우에 남자 안마사가 들어오면 아내를 훔쳐볼까 남자가 불안하겠고 여자 안마사가 들어오면 남편이 민망할 거고 아니 아내가 더 싫어할 거고, 그러니 커플실은 남녀가 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키 프레스토에는 가끔은 원숭이가 물건을 뺏어 달아난다고 해서 카메라와 가방을 꼭 부여잡고 들어갔는데 순한 애들만 만난 것 같다.
가만 앉아 있는데 아들의 어깨로 원숭이가 올라오더니 고사리같이 작은 손으로 가방 지퍼를 열려고 애를 쓴다. 반대로 당기니 안 열리자 가방을 꽉 물어도 본다.
인도네시아에서 발리는 힌두교도가 많다. 몽키 프레스토 안 사찰에서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다. 여러 악기의 음악과 의복을 갖춘 이들의 존엄한 행사를 여행객들은 구경거리쯤으로 여겼다.
바비글링이 유명한 식당에 왔는데 처음으로 음식에 숟가락도 대지 않았다. 제사훗밥같은 느낌이 드는 비주얼과 장소가 음습해서였던 것 같다. 카페에서 빈땅과 스테이크로 끼니를 때웠다.
우봇에서 렘봉안섬을 가기 위해 사누르 항으로 이동 보트를 타는데 표 붙은 짐들은 일꾼들이 반쯤 빠진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캐리어 두 개 세 개를 거뜬히 나르는 진풍경이다. 무릎까지 잠기는 곳으로 다가와 승객을 태우는데 하필 내가 탈 때는 파도가 밀려 와서 다 젖게 되었다. 그럴 걸 예견하고 레시가드를 입고 온 게 참 다행이었다.
계속 같은 풍경이 지루하다 느낄 때쯤 멀리 섬이 보인다. 경계를 짓는 듯 렘봉안 바다색은 더 푸른 에메랄드빛이다.
보트 회사에서 숙소까지 데려다주는데 화물차 뒤 칸에 좌석을 만든 군용차 같은 차에 여러 여행객을 내려 주다 보니 가까운 길을 돌아왔다.
바이크를 렌탈해서 드림 비치에 가서 물놀이와 식사를 하고 데빌스티어 선셋을 보러 갔는데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어느 틈에 많은 이들이 바위에 걸터앉아 노을빛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스노클링 하는 첫날, 안전요원이 있는 업체에 예약해서 모든 장비를 대여해 주었다. 보트를 타고 네 군데를 갔는데 첫 번째로 간 곳은 파도가 드세서 처음인 나로서는 두려웠다. 모두 보트에서 첨벙첨벙 뛰어내리는데 나도 어쩔 수 없이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심정으로 퐁당 몸을 던져 봤다. 파도가 너무 세서 다른 곳으로 자꾸 떠내려가자 죽을 맛이었다. 그때 안전요원이 구명 튜브를 던져줘서 나와 또 나와 같은 사람, 둘이는 튜브를 타고 스노클링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예 못 들어갔지만 나중에는 아들 말대로 침착하게 하니 내가 수영을 잘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자재로 방향을 잡기도 하고 물속 물고기 떼를 가까이에서 보고 이제는 자신감마저 든다.
바다 앞 카페에서 피자와 빈땅으로 식사를 하고 베드쿠션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니 아들 덕에 호사를 누리는 것 같다. 외지에서 대학 다닌 것 외에 7년을 군에 있다 보니 함께할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오랜 시간 꼭 붙어 있다.
음식과 구경할 곳을 검색해서 세세히 신경 써 주고 엄마를 이토록 생각해 주는 아들이 또 어디 있을까!
바이크를 타고 렘봉안 전체를 투어하고 다녔다. 가는 곳마다 바다는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파도가 멋진 풍경을 한몫하고 있는 렘봉안은 역시 매력 있는 곳이다. 섬이라서 그런지 물가가 좀 비싸고 바가지가 좀 있다는 것은 제외다.
서핑을 하기 위해 렘봉안에서 나와 꾸따로 갔다.
꾸따가 가장 발리다웠다. 3층으로 된 호텔은 엘리베이터가 없지만 화이트 색으로 꾸며진 편안함이 있었다.
꾸따 바치는 파도가 서핑하기 좋은 곳으로 전 세계 서핑 객들이 붐빈다. 그래서인지 거리는 젊음의 활력이 느껴진다. 춤추고 노는 유명한 클럽도 몇 개 있지만 이비자 비치 클럽은 바다 앞에 있어 바다를 보며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썬배드에 누워 와인을 마신다. 단 10만 원 이상을 써야 한다. 인도네시아 물가로서는 비싼 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한 달 살다 보니 어느 정도 자카르타와 발리는 또 다른 문화를 가진 것을 알겠다.
종교도 이슬람교와 힌두교로 달라 금지 음식도 다르고 힌두교인 발리는 종교색이 더 짙다. 동네마다 큰 사원이 있고 가족 사원도 있다. 가정집이나 쇼핑몰에서 그리고 길에서 매일 보게 되는 향, 꽃, 음식으로 꾸민 차낭사리, 곳곳에 문지기 석상들은 오래되어 이끼가 끼어 있고 천으로 옷을 입기도 한다.
전 세계 많은 리조트 중에 발리에 여행객이 많은 이유는 물가가 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점이 나에게도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발리를 떠나 오면서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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