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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11
1. 병원 앞 벤취 (밤)
벤취에 앉아서 옷깃을 여미는 중아.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가방을 뒤적인다.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낸다.
초콜릿을 먹는 중아.
중아, 가방에서 뜨개판을 꺼낸다.
뜨개질을 하는 중아.
2. 호텔-복도 (밤)
다리를 절룩이며 보안점검을 하는 재복.
이때 호텔 객실에서 나오는 국과 마주친다.
서로 놀란 표정으로 마주보는 둘.
한동안 그렇게 마주본다.
둘 사이의 정적.
재복 나... 점검 도는 중인데...
국 (침을 삼키며) 응. ...(그리곤 애써 재복의 시선을 피하며 재복을 지나치는데...)
재복 (대뜸) 술 냄새 난다, 미스터 강?
국 (멈칫) 응.
국, 더 이상 말없이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걸어간다.
국이 엘리베이터를 탈때까지 재복은 국에게서 등돌려 선채 미동도 않고 서 있다.
국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재복,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서서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다.
다시 시연의 객실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재복.
한동안 망설인다.
그러다 노크를 하려 손을 들어본다.
재복 ...(그러다 손을 내리며 고개를 떨군다.) 설마. ...(그리곤 다시 문을 본다.)
걱정스레 문을 보며 돌처럼 계속 서 있는 재복.
3. 병원 앞 벤취(밤)
중아, 국을 기다리는 듯 주변을 두리번대다가 휴대폰을 꺼낸다.
국의 번호를 누른다.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중아, 잠시 가만히 넋을 놓고 앉아있다.
중아 (혼잣말) 치킨 먹구 싶다.
4. 중아의 집 - 침실 (밤)
빈 침대 옆에 서 있는 국.
당황스런 얼굴로 밖으로 뛰어 나간다.
5. 병원 앞 벤취 (밤)
병원 앞으로 달려오는 국.
닫혀진 문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국. 그저, 닫혀진 병원 문만 바라볼 뿐이다.
중아가 콧노래로 데니보이를 흥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O.L.
6. 중아집 골목 (밤)
닭다리를 뜯으며 걸어가는 중아.
무심한 표정으로 데니보이를 흥얼대며 걸어간다.
화난표정도 즐거운 표정도 아니다. 그냥, 제 노래를 감상하듯 닭다리를 뜯으며 쓸쓸히 길을 걷는다. 터덜터덜...
7. 병원 앞 (밤)
병원 앞 문턱에 걸터 앉아 바닥을 보는 국.
세운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린채 자신의 이마를 손끝으로 톡톡톡 치고 있다.
국 머리 아퍼, 중아야.
중아의 흥얼대는 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O.L.
8. 중아집 골목 (밤)
손톱만큼 작게 걸어가는 중아의 뒷모습.
중아의 흥얼거림.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과 가지들의 바람소리만 골목에 남는다.
F.O.
9. 시연의 객실 (아침)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
목까지 이불을 덮은 시연이 아침 햇살에 인상을 쓰며 눈을 뜬다.
그대로 누운채 눈만 깜박인다.
플레쉬.
바닥에 누운 자신을 안아 침대에 눕히는 국의 얼굴이 보인다.
여전히 그대로 누워 눈만 깜박이는 시연.
시연의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
10. 중아의 집 (아침)
눈을 감고 잠이 든 중아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국의 손길에 눈을 뜨는 중아.
국이 물끄러미 중아를 본다.
중아 (누운채) 강국. ...이 배신자.
국 (미안한 듯 중아의 손을 잡는다.) 다신 안 그렇게, 중아야.
중아 (하품을 한다. 눈물이 글썽인다. 하품 때문에...)
국 (미안한 표정으로) 울지 마. ...안 그렇게.
중아 (민망한 듯 상체를 일으키며) 하품 한건데?
국 (어둡게) 내가... 좀.... 정신이 나갔다, 어제는...
중아 (어이가 없다) 하품해서 그렇다니까?
국 (저 혼자 심각해졌다.) 너랑 아가한테... 면목이 없다.
중아 (인상을 쓰며 버럭) 아, 하품해서 그렇다니까?
국 (그제사 물끄러미 중아를 본다.)
중아 ...(덩달아 국을 보며) 하품. 하품.
국 ...(죄스러운 듯) 근데... 꼭, 눈물 같다.
중아 (물끄러미 국을 본다.) 나, 인제 안 울어. ...울 시간이 없다. 먹어 대느라...
11. 시연의 객실 앞 (아침)
문을 열고 입을 벌린채 놀라서 서 있는 시연.
그 앞에 재복이 서 있다.
어색한 듯 입을 닫으며 재복을 보는 시연.
재복 (진지한 눈으로) 내가... 잠깐 들어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시연아?
시연 ...(어색한 듯 고개를 끄덕이곤 재복을 들이며 문을 닫는다.)
재복 (벽쪽으로 선다. 그리곤 시연에게) 너는 앉어.
시연 (의자에 앉으며) 너두 앉어. 괜찮아, 앉어두...
재복 난, 금방 나갈거야.
시연 쥬스 한 잔 주까?
재복 (대뜸) 강국이랑 나쁜 일 한 거 아니지?
시연 ...(물끄러미 재복을 본다.)
재복 ...
시연 (그러다 입술을 깨문다.) 나쁜 일이 뭔데?
재복 (어둡게) 알면서...
시연 ...왜? 너 샘나냐?
재복 ...(가만히 시연을 본다.) 시연아. ...너한테 뭐, 그런 거 따져 물을 입장은 아니지만... ... ... 음. ...강국한텐 그러지 마. ...오토바이 사달라구 조른 거 빼곤. 내가 처음으로 부탁하는 거다, 시연아. 오토바이 안 사준 대신에... 강국한테 그러지 마, 응?
시연 (웃는다.) 아직두 오토바이 얘길하네?
재복 (짜증스레) 얼마나 갖구 싶었으면 그러겠냐, 내가?
시연 (웃는다.) 아주 한이 맺혔네. 사줘? 새 거루?
재복 (무심한 표정으로) 그걸 니가 왜 사주냐? 그때야, 내가 빌붙어 있었으니까, 땡깡을 부려두 귀여운 거지... 근데... 오토바이는 내가 땡깡부린거구... 강국은, 처절하게 부탁하는 거다.
시연 ...왜?
재복 ...
시연 ...니가 왜?
재복 시연아.
시연 ...
재복 (천천이 차근차근) 나느은... 아직도 널 위해서... 내몸이 다 찢어지도록 누구한테두 맞아 줄 수 있어. ...넌 아직도 나한테 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근데... 나한텐, 또 다른 사람 하나가 있어. ...그 사람을 위해선, 맞아주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싸울거야 싸워서 이길거야. 싸워야 되는 사람이... 시연이 너래두...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너랑 싸울거야. 그 사람을 위해서 이길거야. 너랑 싸울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처절한 부탁이다, 시연아.
시연 (인상을 쓰며) 무슨 지랄스런 소리냐, 지금?
재복 그냥... 강국이랑 나쁜 일 하지마. 니가 강국 좋아하면, 넌 나랑 싸워야 돼.
시연 ...어뜩케 싸울건데?
재복 동거한 거 까발릴래.
시연 (어이가 없어서 입이 벌어진다.)
재복 미안. ...갈게 (문쪽으로 간다.)
시연 이재복.
재복 ...
시연 ...(진지한 눈으로) 나, ...그 사람이 좋아.
재복 (애처롭게 시연을 본다.) 그럼... 난 너랑 싸워. (나가면서) 참... 그리구... 우리 시연양. 성공해서 너무 좋아, 난. 자랑스런 우리 시연양. (미소짓곤 나간다.)
시연 (물끄러미 문을 본다. 말없이 문에서 시선을 거두며) ...그 사람이 좋아.
12. 시연의 객실 앞 (아침)
객실문을 등진채 가만히 서 있는 재복.
재복 ...(말없이 서 있다가) ...또네? 또 인생 꼬이네.
한참동안 물끄러미 서 있던 재복이 복도를 걸어간다.
13. 시연의 집-거실 (낮)
고급스런 가죽 소파에 테이블이 놓여져 있다.
그러나 거실에 비해 너무나 큰 소파다.
고민스런 얼굴로 소파를 바라보고 있는 시연모.
화장실에서 나온 시연부.
시연부 ...(시연모 곁에 선다.)
시연모 ...(여전히 인상을 쓰며 서 있다.)
시연부 마루보다 소파가 더 크잖아.
시연모 그러게... 우리집 마루바닥이 이릏케 작은 줄은 몰랐을까, 난?
시연부 (인상을 쓰며) 뭐하러 헛돈을 써? 한꺼번에 돈 들어왔다구 생각없이 돈부터 쓰면...
시연모 (짜증을 내며) 아, 요즘 손님들이 많이 오잖어. 맨바닥에 앉히는게 그렇잖아. 시연이 체면두 있구... 그리구... 가죽소파 갖구 싶었단 말야.
시연부 이거 답답해서 어뜩케 살어?
시연모 집을 바꿔야지, 뭐.
시연부 소파땜에 이사를 가?
시연모 (씩 웃는다.) 집 사주겠다는 사람도 왔다갔어. 매니져하자구... 시연이 땜에 돈지랄 좀 하겠네. 간만이네, 진짜.
시연부 너무 막 쓰는 거 아닌가?
시연모 있을 때 안쓰면, 영원히 못 써. 잘 써야, 잘 벌어. ...당신이 왜 망했게?
시연부 ...돈 버는 머리가 없어서...
시연모 안쓰구, 모을 생각만 해서 망한거야. ...잘쓰구 잘 벌 생각을 해야지. 여보 나갑시다.
시연부 어딜?
시연모 집 보러...
14. 영화관 (낮)
영화관에 앉아서 팝콘을 먹는 중아와 국. 오랜만에 사복차림의 국을 볼 수 있다.
공포영화를 보고 있다.
국은 겁을 잔뜩 집어 먹은채 영화를 보고 중아는 재밌다는 듯 영화를 본다.
국 중아야. 재밌냐?
중아 응.
국 아기한테 안 좋지 않나? 공포영화는?
중아 담력을 키워야지. 세상 살자면...
국 그래두... (그러다 화면을 보곤 놀라서 악악대며 중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중아 (국을 보고 깔깔대며 웃는다.)
국 (쌀짜기 얼굴을 돌리며) 귀신 지나갔어?
중아 응.
국 (화면으로 얼굴을 돌리다 다시 악악대며 중아의 팔로 자신의 눈을 가린다. 소리친다.) 에이, 안 지나갔잖아아.
중아 (깔깔대며 웃는다.)
관객들 (눈살을 찌푸리며 두사람을 본다.)
국 (관객을 의식할 새가 없다. 다시 큰소리로) 지나갔어?
중아 (웃으며) 응.
국 웃는 거 보니까, 아직두야, 너. 아니기만 해, 이중아. (그러면서 다시 중아의 팔을 치우려하면)
중아 (국의 눈을 손으로 가리며) 넌 안 보는게 낫겠다. 그냥 눈 감구 자라.
국 (버럭) 소리까지 무서운데 어뜩케 자냐?
15. 매표소 앞 (낮)
시연의 영화 포스터가 실제 사람 크기정도로 한 켠에 세워져 있다.
그 앞에서 시연의 포스터를 바라보는 중아.
멀리서 국이 중아를 향해 뛰어온다. 감자튀김을 들고...
중아 (여전히 포스터를 본다.)
국 (왠지 찔리는 듯) 중아야. 가자.
중아 (그냥 그 앞에 서서) 오늘 시사회 있나 봐. 호텔에서 철수했겠네?
국 응.
중아 (포스터 시연을 보며) 신기하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까... 인간됐네.
국 인간되서 더 힘든가봐.
중아 응?
국 아니... 그때 촬영할 때 몇 번 얘기하구 그랬는데...
중아 (이때 핸드폰)
16. 호텔복도 (낮)
어두운 표정으로 다급히 복도를 걷는 재복.
재복 (어둡게) 중아야. ..나, 이재복.
17. 영화관 매표소앞 (낮)
중아가 얼어붙은 얼굴로 휴대폰을 받고 있다.
그리곤 국을 본다.
국, 의아한 얼굴로 중아를 본다.
중아 (휴대폰을 국에게 준다.) 이재복.
국 (황당하게 중아를 본다.)
중아 ...니가 휴대폰 잃어 버렸잖어. ..그래서, 나한테...
국 (굳은 얼굴로 휴대폰을 받는다.) 네. ...(그러다 놀란다.) 알았다. 갈게. (휴대폰을 건내주며) 중아야. ...나, 호텔 가 봐야겠다.
중아 급한 건가?
국 응. 이따가 전화하자. (그리곤 다급히 뛰어간다.)
중아 (뛰어가는 국을 본다. 그리곤 휴대폰에 찍힌 번호를 본다.) 이 번호였지? 재복이 번호가? (그리곤 몸을 돌린다.)
시연의 포스터 너머 멀찍이 시연이 보인다.
시연, 미소를 지은채 중아를 바라보고 서있다.
주변에 기자들이 몰려온다.
중아, 살짜기 미소를 보낸다.
시연, 손가락질을 하며 한켠에서 기다리라는 듯 중아에게 싸인을 준다.
18. 호텔 사장실-욕실 (낮)
재복과 경호요원들이 욕실 앞에 심각한 얼굴로 서 있다.
박사장이 응급의료요원들의 이동침대에 눕혀진다.
창백하게 눈을 감은 박사장을 바라보는 재복.
박사장의 손엔 이미 붕대가 감기워져 있다. 붕대 사이로 어리는 핏빛.
수중기로 쌓인 욕실 세면대에선 분홍색 물이 넘쳐 흘러 바닥을 적신다.
19. 영화관 안 - 텅빈 상영관 안 (낮)
나란히 앉아있는 중아와 시연.
중아 잘 먹구 잘 살겠네?
시연 (설레발을 떤다.) 잘 먹어. ..못 먹어 본거 다 먹어 봐, 요즘. 언니두 말만 해. 내가 쏴, 그냥.
중아 ...그냥, 돈으루 주지? 내가 알아서 사먹게?
시연 (미소) 돈? 오케이. 얼마 주까?
중아 (미소) 니가 받은 절반.
시연 (미소를 멈추며) 안돼. 나 좀 쓰구 남으면 주께. (깔깔댄다.)
중아 (깔깔댄다.)
시연 (물끄러미 중아를 본다. 나직하게) 언니.
중아 응.
시연 예전에 언니가 나 안나 줬었는데...
중아 (피식) 그리구 바루 빰 맞았다, 너.
시연 그게... 참... 마음에 남아.
중아 ...(미소) 사람들은 출세하면, 옛날 생각하드라? 고질병인가 봐? 잊어. 궁상맞다.
시연 그걸 잊으면, ...언닐 잊잖아.
중아 날... 꼭 기억해야 되나?
시연 ...언닐 기억 못하면, ...언니한테 나쁜 짓을 할 수 있잖아. ...그래서, 그 기억을 지우면 안될 것 같애.
중아 (물끄러미 시연을 본다.)
시연 뭘 봐?
중아 (눈길을 피한다) 강국 자주 보나?
시연 (뜨끔한다) 아니, 자주는 아니구... 아무래두 촬영하는 동안엔... 근데... 지금은 촬영두 끝나구...
중아 강국, 좋아하나?
시연 ...
중아 ...
시연 응.
중아 ...나하구의 기억 되새기면, ...강국 싫어지나?
시연 ...
중아 ...그럴 수 있다면, 그래 줘.
시연 ...응.
중아 ...(물끄러미 시연을 본다.)
시연 ...(외롭게 눈을 내린다.)
중아 협박 하나 해두 되나?
시연 응.
중아 나, 임신했다.
시연 (인상을 쓴다) 아후, 구려.
중아 (씁쓸하게 미소. 그리곤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낸다. 하나를 시연에게 까준다. 그리곤 하나를 먹는다.)
시연과 중아, 나란히 앉아서 초콜릿을 먹는다.
20. 종합병원 특실 (저녁)
박사장이 누워있다.
그 옆에 국과 재복이 서 있다. (국은 평상복차림입니다.)
박사장의 팔을 감은 두터운 붕대.
국과 재복 물끄러미 박사장을 본다.
국 그냥 주무시는 건가?
재복 응.
국 뭐, 유서 같은 거 써놓구 그러신건가?
재복 없었어. 그냥 충동적으루 그러신 거 같애. 사모님하구, 자녀분들은 외국 계시대구... 형님들한테 연락 드렸어.
국 왔다 가셨어?
재복 아니. 한 마리두...
국 경비는 재복이랑 나랑만 서면 돼?
재복 응. 둘만 있으라 그랬어. 아까 깨어나셨을 때...
국, 물끄러미 박사장의 얼굴을 바라본다.
21. 특실 밖 (밤)
병실문을 사이에 두고 대각선 방향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국과 재복.
재복,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
한참동안 말이 없는 국과 재복.
재복 (대뜸) 인간은... 불행하게 살면 안돼.
국 ...(재복을 본다.)
재복 (어둡다) 겨우 쓰레기장에서 나와서 세상 좀 보니까... 더 큰 쓰레기장이 나오네.
국 ...
재복 (국을 보며) 이게 뭐야? 뭐하러 이릏케 사냐?
국 이재복.
재복 (공격적으로) 왜? 뭐? 어쩌라구? 확 울어버릴까부다. (눈물이 돈다.)
국 ...견디는 거 배우는 거라 그랬지, 내가?
재복 (버럭 소리친다.) 그걸 뭐하러 배우냐? (그리곤 눈물이 난다.) 너, 몰라아.
국 뭘 몰라?
재복 ...내가 니 꺼까지 견디는 거.
국 ...
재복 (자꾸만 눈물이 난다.)
국 이재복. 여기서 울면 어뜩하냐? ...사람들 왔다갔다 하는데?
재복 나 안울면... 저 왔다갔다 하는 것들이 돈줘? 사랑 줘? 저것들이 왔다갔다 하든 말든? 내가 운다는데...
국 (손수건을 획 던진다.) 빨랑 닦어.
재복 (받은 손수건을 받자마자 국에게 획 도로 던진다.) 손수건 나두 있어어. (그리곤 주머니에서 중아의 손수건을 꺼내서 닦는다.) 이거 중아거다?
국 (입이 벌어진다.)
재복 (여전히 울면서) 냅둬. ...내가 중아가 좋다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그냥 너랑 잘 사는 거 보면서 좋아하겠다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국 여기, 사장님 병실앞이다, 이재복?
재복 사장님 병실 앞에서 중아 좋다는데, 뭐? 그래서?
국 ...너... 술 먹었냐?
재복 (주머니에서 조그만 양주병을 꺼낸다. 그리곤 국에게 던져준다.) 나랑 수준 맞추려면 너두 먹든가...
국 너, 지금 경호를...
재복 안하겠다는 거지. 그냥 병실 앞에서 놀겠다는 거지. 울구, 웃구, 떠들구, 개기구...
국 ...
재복 병실 습격하는 새끼들 막을 정도 정신 있어, 나두. ...그르니까, 그냥 앉아서 환장하게 냅둬. ...(소리를 친다.) 무슨 인간들이 이릏케 짜증이 나아?
국 ...
재복 (그리곤 소리내서 운다.) 인간들, 멋있게 사는 줄 알았드니, 개똥이 멋있다, 씨. (엉엉 울면서) 술 안 마실 거면 내놔, 씨.
국 ...(술병을 만지작대며) 너 더 먹으면 안되니까, 내가 대신 먹는거다? 응? (그리곤 술을 마신다.) 이건... 진짜... 무덤까지 가져가야 돼. 여기서 내가 술 마신 거...
재복 (눈물을 닦으며 씩 웃는다.) 넌 딱 걸렸어. ..약점 잡혔어, 너. 자꾸 재수없게 굴면, 확 불어 버릴거야, 내가...
국 (픽 웃는다.) 사람들 니 말 안 믿어. ...(그리곤 술 한 모금을 다시 먹는다.)
재복 ...강국.
국 응.
재복 ...나... 경호원을 때려치는 한이 있어두... 너랑 중아를 위해선 살신성인한다. ...그게 내 인생 유일한 낙이다. 물론 중아 때문에, 너는 덤으루 혜택을 받는 거지만...
국 ...
재복 알았냐?
국 ...(굳은 표정으로 재복을 본다.) 살신성인, 한자루 써 봐.
재복 ...(국을 쏘아본다.) 애가 아주, 인간성을 상실한 놈이야. (어금니를 물며) 잔인한 놈.
국 (재미난 듯 웃는다.)
이때, 심실장이 그들 앞에 선다.
심실장 (인상을 쓰며) 뭐가 좋아서 히죽대요? 사장님 병실 앞에서?
재복/국 (벌떡 일어서며 웃음을 멈춘다.)
심실장 (둘을 쏘아보며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또다시 낄낄 웃어대는 둘.
22. 특실 안 (밤)
상체를 일으킨 채, 우울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박사장.
심실장이 들어선다.
박사장 (힘없는 목소리로) 심실장님. (그리곤 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심실장 (가까이 다가간다.) 네. 사장님. 괜찮으세요?
박사장 (진지하게) 부탁 좀 해야 되겠는데?
심실장 네. 사장님.
박사장 ...나, 피자 먹구 싶은데... (어색하게 미소) 00호텔 피자루... 거기게 맛있거든?
23. 특실 앞 (밤)
병실 문이 열린다.
심실장이 나온다.
국과 재복, 부동자세로 선다.
심실장 ...(난감한 표정으로) 하, 미치겠네.
국 왜 그러세요, 심실장님?
심실장 (어이없는 표정으로) 피자 사달래.
국/재복 (깔깔 웃는다.)
24. 시연의 집 (밤)
어색하게 놓여진 소파 위에 대강 포개져서 TV를 눈이 빠져라 바라보는 시연 가족.
이때, 시연이 들어온다.
시연부 (웃으며) 얼른 와. 니 선전 볼라구 기다리구 있었어.
시연 아빠, CF.
시연부 그래, 씨에프 선전.
시연 지금 나오나? (바로 자리잡는다. 소파를 보며 인상을 쓴다.) 근데, 이거 뭐야?
시연모 (시연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표정으로 아무 말 않고 TV만 본다.)
시해 엄마가 샀어.
시연 이걸 왜 사? 거실 꼴이 이게 뭐야? 엄마? 응?
시연모 (못 들은 척 표정도 변하지 않고 TV만 본다.)
시채 내가 엄마 깨질 줄 알았어.
시연 (시연모의 어깨를 툭 친다.) 엄마. 제 정신이야?
시연모 (역시나 아무 말도 않고 티비만 본다.)
시연 아줌마. 나랑 말 안해?
시연부 시연아. 내일은 문 두개 달린 냉장고 온대는데?
시연모 (시연부를 째려본다.)
시연 (시연모의 얼굴을 두 손으로 터프하게 감싸쥐고 얼굴을 들이댄다. 그리곤 소리친다.) 뭐하는 짓이야? 응? 지금 이 거실에 이 소파가 자세가 나와? 냉장고 그걸 엇따 넣어? 마당에다 풀게? 아줌마. 돈을 줬으면, 재대루 써야지, 이게 머야아?
시연모 (얼굴을 감싸 쥔 시연의 손을 뿌리치며) ...제대루 쓸라 그랬지.
시연 근데?
시연모 ...(인상을 쓰며) 글쎄, 그게... 뭘 쓰긴 써야 되는데, 엊다 먼저 써야 되는지 정신이 없드라?
시연 ...
시연모 (몸을 긁적이며 민망한 듯) 뭐, 대강 테리비에서 봤던거, 우리두 저런 거 있었으면... 평소에 찍어 논거... 그거 한두개 사구 싶드라구... ...근데, 갖다 놓구 봤드니... 좀 구리드라구, 기분이..
시연 눈 대중두 못해?
시연모 (웬지 자신없고 속상하다. 눈물이 글썽) 눈 대중으루 안 된단 사실을 알았지, 오늘. ...돈만 없었던 게 아니라... 그만큼 시야두 좁았던 거지, 뭐. 내가... 아흐... 옛날에 좀 살땐, 물건 보는 눈두 있구 그랫는데... 그냥... 오늘 보니까, 완전 촌닭이드라구, 내가...
시연 (물끄러미 시연모를 본다.)
시민 (시연모에게 휴지를 빼서 건내며, 시연의 팔을 들어 시연모의 어깨에 두른다. 그리곤 달래주라는 듯 눈을 찡긋댄다.)
시연 (시면을 보며) 경련오냐? 왜 눈꺼풀을 떠냐? (시연모를 보며) 전화해서 물러. (그리곤 방으로 들어간다.)
시연부 물러두 줘? ...에이, 그럼 물러, 시연엄마.
시연모 (휴지로 눈물을 찍으며) 기집애. ...쪽팔려 죽겠네.
시연부 그 참... 재복이가 있었으면... 시연이가 안 저럴텐데... 당신두 달래주구, 시연이두 달래주구... 재복이 나가기 전에 내가 그거나 좀 배웠어야 되는데...
시연모 시연아빠. 입조심해. ...동거한 거 알려지면, 쟤 끝장이야. (아이들을 보며) 니네두 입 조심해. 응? 재복이란 이름을 머리통에서 확 지워. 알았지?
시연부 (슬픈 듯 시연모를 본다. 그러다가 대뜸) 얘들아. 선전 어뜩케 됐냐?
시해 지나갔지이.
시연부 (아쉬운 듯) 에이, 그거 봐야되는데?
시경 난 봤어.
시연모 잘 나왔니, 시경아?
시경 응. 누나 까만 부라쟈 입구 나왔어.
시연부 왜 속옷이 나와?
시연모 속옷 선전이니까, 속옷이 나오지.
25. 시연의 방 (밤)
물끄러미 자신의 방에 꽂힌 에로비디오를 본다. 쇼핑백을 꺼낸다.
그러더니 쇼핑백 안에 비디오들을 담는다.
그리곤 재복의 스크랩북도 담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쁜이 왕관까지...
시연 태워 버려야지. 다...
쇼핑백을 들도 나간다.
허전하게 빈 비디오장.
F.O.
26. 종합병원 로비 (아침)
동석과 함께 걸어가는 중아.
동석 요즘은 외과 인기 없어서... 레지던트 티오 있을거야. 일단 얼굴이나 익혀. 과장님하구...
중아 ...아직 전공 못 정했는데...
동석 전공은 내가 정해야지, 니가 왜 정해?
중아 왜요? 내 전공인데?
동석 안돼. 내가 하라는 거 해야 돼. ...신경외과하구, 정형외과는 내가 했으니까, 딴과 중에서 고를거야, 내가... 그래야, 우리 병원에서 제대루 부려먹지.
중아 나, 레지던트 마치면, 개업할거예요. ..돈 벌어야 돼요. 애 먹여 살리려면...
동석 나의 전철을 밟네. 나두 애땜에 개업했는데... 근데, 안돼. 넌 내꺼야.
그리곤 바삐 걸어간다.
중아, 웃으며 따른다.
27. 특실 앞 (낮)
국이 복도 끝에서 걸어온다.
국 곧 교대 오니까, 재복씨는 먼저 퇴근해라.
재복 (하품을 한다.) 그래주면 고맙지.
국 외래 들러서 담당 선생한테 사장님 깨셨다구 전해주구... 외래 얼루 가냐면...
재복 (걸어가며) 나두 이 병원 와봤어. 알어.
28. 외래 앞 (낮)
외래 진료실에서 나오는 재복. 현관으로 가려다가 외래 앞 의자를 본다.
미소가 어린다.
그 곳에 앉는다.
옆쪽에 앉은 아이가 초코볼을 먹는다.
아이를 보며 씩 웃는다.
재복 너, 그거 잘 먹어야 돼. 목에 걸려. (그리곤 일어선다. 그때 몸을 돌리려다 한 곳을 본다.)
건너편에 놀란 눈으로 중아가 서서 재복을 바라보고 있다.
굳은 듯, 서로를 바라보는 둘.
중아와의 두 번째 만남이 있던 바로 그 곳, 그 위치다.
아이의 손에서 바닥으로 구르는 초코볼....
재복의 발 앞으로 굴러와 멈추는 초코볼 한 알 C.U.
중아의 발 앞으로 굴러와 멈추는 초코볼 한 알 C.U.
환타지로...
(회상이 아니라, 환타지였으면 합니다. 복장은 그때 그 모습이지만, 그들의 현재 모습과 표정이길 바랍니다.)
재복의 시점에서 보이는 중아.
커다란 환자복을 입고 있는 중아의 모습.
중아의 시점에서 보이는 재복.
머리에 사탕을 달고 있던 그 복장의 재복 모습.
환타지 속,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환한 미소를 보낸다.
중아 (나직하게) 재복아.
재복 (나직하게) 중아야.
서로를 향해 걸어가 부등켜 안는 둘. (고속 촬영)
클로즈업 된 기쁜 두 사람의 눈이 서로를 마주보며 교차된다.
O.L.
다시 현실로.
클로즈업 된 둘의 애틋한 눈. O.L.
현재의 그들은 그 먼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본채 서 있다.
굳은 듯 서 있던 둘.
재복, 쓸쓸한 미소를 남기며 돌아선다.
그리곤 현관을 향해 걸어간다.
재복의 뒷모습이 현관 밖으로 사라질때까지 재복을 바라보는 중아.
중아, 돌아선다.
놀라는 중아.
돌아선 중아 앞에 국이 서 있다.
국 ...그렇게 보지마, 중아야.
중아 ...국아.
국 ...
중아 ...
국 날... 가볍게 봐 주면.... 널 가볍게 놓아 둘게.
중아, 여린 눈으로 국을 바라본다.
국, 고개를 끄덕인다.
중아도 국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곤 살며시 국의 손을 잡는다.
29. 병원 정문 앞 (낮)
넥타이를 풀며 걸어가는 재복의 모습.
잠시 멈춰서서 돌아볼까 망설인다.
그러다 돌아보지 않고 그냥 병원정문을 나선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재복의 모습이 멀어진다.
30. 경호회사-숙직실 (낮)
책상에서 시를 쓰는 기웅.
이때, 기웅의 등 너머로 얼굴을 들이미는 재복.
기웅 (시를 가리며) 아, 뭐야?
재복 ...이딴 거나 쓰니까, 양숙씨가 싫어하지. 양숙씬 터프한 거 좋아하는데... (그리곤 침대로 가서 잔다.)
양숙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재복에게) 이층 침대를 놔 달라구? 그냥 기웅이 몰아내. 오빠가 침대쓰구...
기웅 (양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숙의 입술에 쪽 기습키스를 날린다.)
양숙 (인상을 쓰며) 너 뭐했냐, 지금?
기웅 (그냥 그렇게 서서 양숙을 바라본다.) ...터프한 거 좋아한다 그래서...
양숙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웅의 머리채를 잡아서 쓰레기통에 박는다.)
31. 시연의 객실 (밤)
자신의 짐을 정리하는 시연.
그러다 침실 다리 옆에 떨어진 휴대폰을 본다.
전원을 켜는 시연.
메시지 창에 중아의 무표정한 얼굴 사진이 떠 있고 “강국꺼”라는 휴대폰 이름이 찍혀 있다.
이때, 시연의 휴대폰 벨.
시연 네. 감독님. ...아니요. 호텔 방 필요없어요, 저. 방뺄라구요. ...(가만히 듣고 있다. 그러다가) 내가 방을 빼겠다는데, 니가 왜 지랄 발광이냐? ...영화제 안가, 새끼야. ...그래, 나 떴다. ...넌 아트해에? 난 뜬 걸루 돈이나 벌거니까... 아유, 진짜, ...거울이나 보구, 똥배나 집어 넣어. (휴대폰을 닫는다. 얼굴이 환해진다.) 헤. ...뭐야? 내가 왜 참았지? 영화두 끝났는데? 헤... 아우 좋아, 욕하니까...
이때, 객실 초인종.
깜짝 놀란다.
시연 (망설이며) 어뜩하냐? 저거 힘센데? 아, 씨. (인상을 구기며 문을 열며, 미소) 감독님. 나, 지금 자다가 전화받아서 잠꼬대를... (그러다 놀라며 방밖을 본다.)
32. 객실 앞 (밤)
국이 서 있다.
놀란 눈으로 국을 바라보는 시연.
국 ...아, 저기... 혹시나 해서... 제가 어제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감독 (국을 밀치며 화가 나서 시연 앞에 선다.)
시연 (놀라서 감독을 본다.)
감독 (국을 보며) 뭐야? 여기 볼 일 있어?
국 아니, 뭐.
감독 없으면 가. (그리곤 시연의 팔을 잡아 끌며 문을 닫는다.) 너, 일루 와 봐.
닫혀지는 문틈으로 울상을 지으며 감독을 바라보는 시연. 그리곤 허공으로 손을 치켜드는 감독.
닫혀진 문 앞에 그대로 서 있는 국.
시연이 뺨맞는 소리가 난다.
감독E 양아치같은 년이...
국, 돌아서서 가려는데, 탁자 무너지는 소리와 시연의 괴성이 들린다.
감독E 일어나. 줘 터져야 정신차려, 너같은 년들은... (그리곤 다시 뺨때리는 소리)
시연E 잘못했어요, 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얻어 맞은 듯)
국, 입술을 깨물며 노크를 한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국, 뒤로 물러선다.
그리곤 문을 발로 찬다.
열리지 않는 문을 계속 힘껏 발로 찬다. 어금니를 문채...
감독E 누구야?
대답도 않고 무조건 발로 찬다.
문이 열린다.
문 앞으로 들어서는 국의 눈에 시연이 테이블 옆 바닥에 앉아 발갛게 부어 오른 볼을 감싸쥐고 있다.
강국 앞에 서는 감독.
감독 너 안나가?
국 안 나가.
감독 너, 박사장 딱가리 아니냐? 박사장 어딨어?
국 박사장 아퍼.
말과 동시에 감독의 얼굴을 날린다.
감독이 테이블로 넘어진다.
국, 바닥에 앉아있는 시연을 일으킨다.
국 나가요.
이때, 테이블에 놓여있던 유리 스탠드로 국의 뒷통수를 내리치는 감독.
동시에 한쪽 발로 감독의 얼굴을 날리며 쓰러진다.
정신을 잃은 감독과 국.
국의 눈에 놀라는 시연의 얼굴이 흐르게 머물며 눈이 감긴다.
시연, 놀란 눈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국의 머리를 받쳐든다.
시연 아저씨. ...(국의 뒷통수에서 피가 배어 나와 시연의 손과 옷깃에 묻어 난다.) 아저씨.
바닥에 깨진 유리조각들.
바닥에 앉아있는 시연의 다리에서도 피가 배어 나온다.
33. 시연의 차 안 (밤)
재복의 무릎에 강국이 누워 있다.
시연이 운전대를 잡았다.
재복 내 무릎은 인제 강국 전용베개야. (머리를 만지며) 피는 말랐네.
시연 ...재복군 와줘서, 고마워. 다행이야.
재복 ...
시연 ...전화할 사람이... 너 밖에 없었어. 딴 사람들 부를 수가 없잖아. 소문나면 끝장이구...
재복 (말을 자르며) 너, 왜 자꾸, 강국 꼬시냐? 그르지 말랬지, 내가?
시연 안 꼬셨어.
재복 (인상을 쓰며) 근데, 왜 자꾸 강국이 니 방엘 가냐? 그리구... 너 영화두 끝났는데 왜 계속 호텔에 있냐?
시연 (백미러로 재복을 쏘아보며 소리친다.) 왜 지랄이야? 안 꼬셨다니까?
재복 니 눈보면, 보여. ...강국한테 뻑간 거... 내가 그 눈을 알지이. ...지금, 눈 둘려... 마음까지 가기 전에, 얼른...
시연 ...(씩씩대며 백미러로 재복을 본다.)
재복 (다짐을 하듯 소리친다.) 알았냐, 시연아?
시연 벌써 갔어. 난.
재복 ...(입이 벌어진다.)
시연 ...
재복 환장하네. ...너 클났다. 이제, 고통 시작이다.
34. 부부의원-치료실 (밤)
(중아는 일상복 차림일 것)
가물대며 눈을 뜨는 국.
흐리게 형체가 보인다. 시연인가?
국 맞은데는... 괜찮아요?
중아E 국아.
국 (눈을 깜박인다. 중아가 보인다.)
중아 ...
국 응? (일어서려) 중아야.
중아 누워 있어라.
어느새 국의 머리에 붕대가 감겨져 있다.
중아 어지러울 테니까, 좀 누웠다가 집에 가자, 국아.
국 응. ...저기...
중아 응.
국 그 사람이 델구 왔어? ...그 사람은 괜찮아? 많이 맞았는데... 봤어? 괜찮은지?
중아 ...(물끄러미 국을 본다. 못마땅한 눈으로) 안봤다. 너 보느라...
국 많이 맞았어. 변태같은 새끼한테...
중아 국.
국 응.
중아 (차갑게) 니가 걔 경호원이니?
국 ...
중아 강국은 국민의 경호원인가부다. 누워 있어라.
병실을 나간다.
35. 복도 (밤)
치료실 문을 열고 나오는 중아.
복도엔 재복과 시연이 앞섶에 피를 묻힌 채 서 있다.
시연 (중아에게 다가온다.) 아저씨 괜찮아, 언니?
중아 응.
시연 ...미안한데... 내가 인사만 하구 나올라 그러는데?
중아 ...
재복 (입을 벌린채 시연을 바라본다.)
시연 정말 인사만 하구 나올게. 아무짓두 안하구... (당황) 나, 원래두 아무짓 안했어.
중아 (문을 열어준다.)
시연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재복 (머뭇대며 중아에게) 인사만 한대.
중아 (복도 끝을 가리키며) 저쪽 창가에 서 있으면, 동네 불빛이 되게 예뻐. 너랑 나랑은 그거나 보자. 쟤넨 인사하라 그러구...
중아, 터덜대며 복도 끝으로 걸어간다.
36. 병실 안 (밤)
배실배실 소녀처럼 웃으며 침대 앞에 서 있는 시연.
시연 아저씨, 모자쓰면 어울리겠다. 붕대 감으니까, 더 괜찮네?
국 (벌떡 몸을 일으키며 버럭 소리친다.) 왜 맞구 다녀요? 그게 감독이예요?
시연 ...(물끄러미 국을 본다.) 줄창 양복입은 것만 봤는데, 일반인 옷 입으니까, 좋으네. ...일할 때, 꼭 양복만 입어야 되요? 너무 획일적이야.
국 (다시 소리친다.) 왜 두들겨 맞냐구요?
시연 (또다시 물끄러미 국을 본다.) 아참. 휴대폰... (그리곤 휴대폰을 내민다.)
국 (인상을 쓰며) 내 얼굴은 잘두 때리더니, 되두 않게 맞기나 하구...
시연 (대뜸) 잤으니까... (그리곤 퉁명스레 국을 본다.)
국 ...
시연 (국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남자들은 자구나면, 여자를 때려요.
국 ...
시연 (슬픈 듯) 나랑 잔 새끼들은 다 나 때렸어요. 한 사람만 빼구...
국 ...(물끄러미 시연을 바라본다.) 결국은 잤구나, 그 감독놈이랑.
시연 (실실 웃으며) ...난 꼬시면 잘 넘어가요. 감독이 둘만 있으면 자꾸만 귀엽다 그러구, 꼬시구 그러니까, 진짜루 나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요. 사실은 아닌건데... ...내가 날 속이는 거지, 한마디루...
국 (한심한 듯) 원래 헤퍼요?
시연 (쌩긋) 네.
국 그렇게 살구 싶어요?
시연 (농담을 하듯 웃으며) 그러구 싶어서 그러나? 그럴 일 밖에 없으니까 그러지.
국 웃겨요?
시연 (아무렇지도 않게) 웃기죠? 웃으면서 살아야, 그냥 살지.
국 (그냥 눕는다.) 나가요.
시연 쫌만 더 놀자, 아저씨. ...언니, 밖에 있으니까, 딴 맘 안먹구, 아저씨랑 좀 놀래요. 에이씨, 뭐 어때? 수다 좀 떤다는데? (그러더니 저만치서 의자를 가져다 침대 옆에 앉는다. 미소) 붕대가 차암 잘 어울리네.
국 (물끄러미 시연을 본다. 그리곤 시연 무릎에 유리로 베인 상처를 본다. 인상을 쓰며 벌떡 상체를 일으키더니 시연의 양어깨를 잡아 흔든다. 답답한 듯 소리친다.) 그릏케 사는 거 아니예요오. 네? 제발, 제발... 왜 그렇게 살하요오?
37. 병원 복도 창가 (밤)
나란히 서서 창밖을 보는 중아와 재복.
중아 저 여배우 알어?
재복 응.
중아 쟤가 강국 좋아해.
재복 ...
중아 질투나드라. 참느라구 혼났다. 배운티는 내야 되는데...
재복 (인상을 쓰며) 뭐하러 참어? 쌍욕을 해서 접근을 못하게 해야지. 그, 머리채를 쥐어 뜯든가... 그게 특효야. 바람필라 그런 것들은...
중아 (재복을 보며 어이없이 웃는다.) 안 찔리나?
재복 ...(인상을 쓰며) 우린, 바람이 아니라... 로맨스. 우린 심각하잖아, 사실적으루다.
중아 ...(깔깔 웃는다.)
재복 (같이 웃는다.) 중아가 웃네? 간만이네.
중아 재복아.
재복 ...
중아 사실은, 내가... 강국을 붙들구 늘어졌던 거 같다. ...강국 없으면 아까울 것 같애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재복 ...(놀란 눈으로 중아를 본다. 안절부절 못한다.) ...너 임신해서 너무 예민해졌나 부다. 내가 볼땐, 쟤네들은 그냥, 서로 친절한 사이야. 너랑 나처럼 그렇게 드런 사이가 아니야. 니가 오바야.
중아 ...(어이없어 웃는다.) 너나 오바하지마.
재복 너같이 질투난다구 이혼을 하니까, 이혼율이 증가하지?
중아 ...오바맨이야, 이재복.
재복 (물끄러미 중아의 옆모습을 보면서 어둡게) 자꾸, 강국이랑 헤어질 이유 찾지마라. ..니네 둘, 웃는 거 한번 보겠다구, 니네들 담밑에 숨어서 폴싹댄다, 내가. ...담벽에 대구리 박구 환장해서 되지구 싶은 적 많어. ...뭘 어쩌든지, ...마지막에, 니 웃음소리루 세상이 쫑났으면 한다. ...성공이구 개똥이구 필요없어. 너 웃는 걸루 나두 세상 쫑이야.
중아 ...(미소 띈 입술. 애틋한 눈으로 재복을본다.)
재복 (시선을 피하며 어둡게 정말 환장하겠다는 듯... 웃거나 미소짓지 마세요.) 환장해에. 난 왜 이릏케 여자를 잘 꼬시냐? 쥐뿔두 없는 새끼가...
중아 너 쥐뿔있어.
재복 ...쥐뿔 뭐?
중아 ...
재복 ...
중아 ...찾아 보자. 있겠지, 그래두... 인간인데... (그리곤 등을 돌린다.)
재복 (벽에 머리를 박는다) 에유, 씨.
중아 ...사람들.
재복 뭐?
중아 (돌아서며 재복을 본다.) 니 쥐뿔은... 사람들. ...니 마음안에 사람들이 살아. 착하구 재미나게... 와글와글... 난 그게 보인다. (미소지으며 걸어간다.)
재복 ...꼭 배운티를 내, 재섭게... 뭔 말이야, 그게?
씩씩하게 복도를 걸어가는 중아의 미소.
38. 시연의 집 앞 (밤)
집 앞까지 시연을 바래다 주는 재복.
재복 들어가.
시연 ...이재복.
재복 ...
시연 넌... 내가 맞았다는데 아무렇지두 않냐?
재복 넌 맞아야 돼.
시연 지랄하네.
재복 꼴두 보기 싫어. 얼굴두 욜라 못생겨졌어.
시연 지랄하네.
재복 잘 살 줄 알았지. ...어뜩케 글루 가서 더 구리게 사냐?
시연 ...안 구려.
재복 구려.
시연 안 구려.
재복 (소리친다.) 구려, 구려, 구려. ...다 구려. 하는 짓마다 구려.
시연 ...(인상을 쓰며) 안 구려. ...좀 있으면, 건방떨면서 살 수 있어. ...시건방 떨기까지, ...내가 놀던 바닥보다 더 박박 기어야 되지만... 세상 원래 그런거, 난 알구 있었어. ...개 싸가지루 시건방 떨날... 바루 눈 앞에 있어. (손으로 가늠하며) 일미터 앞.
재복 (물끄러미 시연을 본다.) ...널 내가 욕할 수가 있겠냐? ...왜 모르겠냐, 내가?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긴거... 알어. 근데...(한동안 말이 없다) 니가 널 느끼잖아. ...니가 현재, 매우 구리다는 거.
시연 ...
재복 ...
시연 ...(입을 닫은 채 한동안 말이 없다.) 엄마가... (눈물이 흐른다.)
재복 ...
시연 비싼 물건을 사다놓구, 오히려 기가 죽어 있드라. ...나는, 비싼 옷을 사입구두, 안 어울릴까봐 조바심이 나드라. ...이게, 우리한테 어울리나? 당근 촌발나지. ...그러면 옛날이 더 좋은건가? ...아니거든. ...옛날부터 그렇게 살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거든? 나는, 우리 가족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한 눈에 물건 고를 줄두 알구, 자신있게 거울보구 자뻑하는 거... 이걸루 마무리 할 거야, 내인생.
재복 ...
시연 ...됐냐?
재복 ...(슬픈 듯) 우리 시연이, 말 길게 하네?
시연 ...
재복 원래... 스스로 구리면, 말이 길어져. ...그래두... 난 너 응원해. 욕하는 새끼들 있으면, 내가 백배 더 드런 욕으루 그 놈들 아구 날리께. 대신... 기쁜 맘으루 살어. ...니가 기뻐야 응원을 하지.
시연 ...
재복 ...근데... 강국은 꼬시면 안돼. 갈게. (돌아선다.)
시연 ...몰라. 그것두 어뜩케 될지... 나두 몰라. (그리곤 뒤돌아서 초인종을 누른다.)
재복, 물끄러미 시연을 보다가 등을 돌린다.
시연의 고통의 무게를 제가 짊어진 양 골목길을 터덜터덜 내려가는 재복.
39. 중아의 집 앞 (밤)
중아와 국이 손을 잡고 걸어간다.
인상을 쓰며 걸어가는 국.
중아 아직 많이 아픈가, 머리가?
국 (괜시리 흥분을 해서) 왜 그릏케 인생을 드럽게 사냐아?
중아 응?
국 그 여자.
중아 ...
국 그렇게 살다 죽으라 그래. 씨. 내가 다친게 아깝다.
중아 국아.
국 (인상을 쓰며) 아, 머리 아퍼.
중아 ...(국의 눈을 들여다 본다.) 국아.
국 왜?
중아 ...
국 왜?
중아 붕대 다시 감아야겠다. 풀어질라 그런다.
40. 도로 횡단보도 앞 (밤)
녹색신호등이 점멸한다.
뛰어가는 재복.
붉은 신호등으로 바뀌고 중앙선에 갇혀 버렸다.
처음 중아를 만나던 날...
재복이 주머니에서 중아의 동전을 만지작 댄다.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난다.
재복 (오토바이 소리를 따라 보면 멀리서 달려오는 오토바이가 보인다.) 저거 한번 태워줘야 되는데...
그와 동시에 재복의 몸을 스치며 지나치는 오토바이.
그걸 피하느라 휘청이던 재복의 손에서 중아의 동전이 공중으로 날아간다.
동전을 받으려 손을 뻗는 재복의 몸이 기우뚱.
중앙선을 벗어난 재복의 몸이 달려오던 차에 받힌다.
바닥으로 풀썩 떨어지는 재복.
차 바퀴에 다리가 깔린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뀐다. C.U.
재복의 손. C.U.
재복의 손에 꼭 쥐어진 동전.
손마디가 힘없이 풀린다.
손에서 떨어져 나와 도로를 구르는 중아의 동전.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