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 내사랑 삼벽당(三碧堂) "
출근준비를 하는 오전 8시 경에는 손과 눈이 따로 노느라 늘상 분주하다. 차라리 그냥 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시청하고 가면 될 일을,조금이라도 더 준비한답시고 T.V에 고정된 눈은 떼지 못하고 별소득없이 시늉만 하는 손이 바쁘다는 말이다. 바쁜 출근시간대에 이토록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다름아닌 KBS 1T.V 의 '인간극장'이다. 어제도 여느 때와 같이 T.V 를 보고 있는데, 어라~! 화면에 나오는 풍경이 눈에 익다. '영덕 삼벽당'이다.
삼벽당이 있는 인량리전통마을은 올 초봄에 처음 가본 이후 인근의 장육사(莊陸寺)를 오가며 수차례 더 다녀온 곳이다. 그런데도 막상 내가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의 화면에 나온 모습을 보니 또다시 가고 싶어졌다. T.V의 위력은 대단하다. 같은 방송국의 '1박 2일'프로그램이 다녀간 곳은 관광객으로 넘쳐난다고 한다. 그런 일시적 시류에 편승하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번에는 집만 아니라 사람도 만나고 와야겠다...
영덕(盈德) 삼벽당(三碧堂)과 인량리마을 (2010년 3월 사진)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118호에 위치한 삼벽당(三碧堂)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중량(李仲樑,1504~1582)의 종택이다. 이중량은 농암 이현보(1467~1555)의 넷째 아들로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지낸 인물이다.
三碧堂(삼벽당) (2010년 3월 사진)
삼벽당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건물의 구조는 ㅁ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정침의 규모는 정면 5칸,측면 5칸반 이며 중문의 좌측에는 정면 3칸,측면 2칸의 사랑채가 있다. 그 중 정면 2칸은 마루로 설치되어 있으며, 고택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 소개를 하기 위해서 이 글을 포스팅한 것은 아닌데, 삼벽당이 인량리를 대표하는 유적 중 하나인지라 문화재이야기부터 들먹이게 되었다.
삼벽당이 위치한 인량리 전통마을에는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또한,국내에서 종가(宗家)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작은 이 마을에 5성씨(姓氏)의 8종가(宗家)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100~500년 된 고가(古家) 20여채가 남아있다. 재령 이씨 집안의 충효당과 갈암종택, 야성 정씨의 고택 으로 평산 신씨 집안이 사들인 만괴루, 효자 이시형의 우계종택이 있고, 무안 박씨, 대흥 백씨 등의 종택도 있다. 인량리의 문화유적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고택을 둘러보느라 사랑채 마당을 서성이는데, 반갑게 인사를 던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침에 T.V에서 본 그 부부다. 남자의 입은 옷과 노랗게 물들인 머리며 키크고 마른 체형이 똑 같다. 고택 지킴이 박미군(38세),은정선 씨 부부였다. 그런데, 이곳에 왔다가면서도 밭일을 하는 부인(오늘에야 부인으로 알게된 일이지만)을 본 적 은 있지만, 박미군 씨를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답사를 다니다보면 사람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고택은 들여다보기가 어려워 그 주위만 둘러보 고 돌아선 탓일 게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부부가 고택 옆 비닐하우스에서 빨래를 마치고 나오는 중 이었다.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나같은 불청객때문에 감수해야할 불편이 많을 텐데도 상냥하고 친절함이 몸에 배여있었다.
三碧堂(삼벽당) 사랑채
박미군 씨 부부가 1남 2녀의 아이들과 함께 고택에서 보낸지도 3년이 지났다. 이들이 이곳에 머무르게 된 이유는 의외로 박미군 씨의 건강때문이었다. 아직 40살을 앞에 둔 젊은 나이에 무슨 건강문제였을까....
박미군 씨는 울산에서 무려 천 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며 잘나가던 가위손이었다. 그런데, 한 쪽 방향으로만 쓰는 가위질로 척추에 이상이 왔고, 척추의 이상은 다리의 이상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건강의 적신호가 켜지면서 부부는 인생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부터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만난 곳이 영덕의 삼벽당이었다. 생면부지 시골 생활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문화재로 지정 되어 있는 고택을 돌본다는 것이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고택관리의 어려움을 극복한 지금의 박미군 씨는 한옥예찬가이자 전도사로 변신해 있다. 올 초봄에 들렀을 때는 중문 옆의 저 표시가 붙어있지 않았는데, 그때에도 한옥체험과 천연염색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 부부가 처음 천연 염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반 기성복이 맞지 않을 정도로 유난히 마른 체격의 '미군' 씨 때문이었다. 결국 직접 옷을 만들고자 문화센터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 알게 된 것이 천연염색이었다.
三碧堂(삼벽당) 안채
천연염색한 천으로 직접 지은 남녀용 옷들은 모두 부부의 몸치수에 맞도록 만들어졌다. 이 옷들은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도 하지만 안 팔려도 상관없다는 것이 부인의 설명이다. 그 이유는 위에 설명 한대로 부부의 몸에 맞춘 옷들이라 본인들이 입으면 된다는 말이다.
아무리 시골생활이라지만 다섯식구의 살림살이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현재로선 천연염색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생활을 꾸리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이 예약제 미용실이다.
'미군' 씨의 건강을 앗아가게한 미용일이라 다시는 가위를 잡지 않겠다고 결심 하였지만,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었다. 마을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영해면소재지에서 예약손님만을 대상으로 미용일을 하고있다.
'미군' 씨의 건강을 찾기위해 부부는 4년간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다가 삼벽당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제는 고택에서의 생활도 익숙해졌고 작은 밭도 일구며 농촌생활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바랄 것이 있다면 오로지 천연염색만을 열심히 하고 싶다는 '미군' 씨의 바램이 이루어져, 그것으로도 생활이 되고 '미군' 씨와 가족들이 모두 만족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三碧堂(삼벽당)의 오른쪽 옆건물.
삼벽당의 동쪽 옆에는 당호를 알 수 없는 ㅁ자형 고택이 또 있다.처음에는 대문 계단아래의 낮은 곳에 서서 거리를 두고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본 저 풍경이, 집 안마당 전체를 연못으로 조성한 줄 알고 저으기 놀랐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경북 영양에 있는 조선시대 민가(民家)의 대표적인 연못 서석지(瑞石池)가 떠올랐다. 경당(敬堂) 앞을 가득메운 연꽃이 핀 풍경은 가히 일품인 곳이다.
마당에는 깨진 기왓장이 어지럽게 널버러져 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깔렸을 것 같던 깨진 와편들이 소리없이 살아있었다. 그것은 인량리마을의 동선과 주요건물의 이름을 적은 약도였다.
특이하게도 대청마루 앞 안마당쪽으로 낮은 굴뚝을 설치하였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그 연기 가 집안 곳곳을 다니며 해충들을 몰아내기위한 선조들의 지혜일 것이다.
삼벽(三碧)이란 세가지 푸른 것을 일컬음이다. 소나무, 대나무, 오동나무가 그것이다.
삼벽당과 그 주변을 한 바퀴 휘휘 돌고 나오니 흐려있던 하늘이 맑아져있었다. 삼벽당으로 쏟아지는 햇살만큼이나 삼벽당 사람들의 사랑도 깊어지고 따사로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 사랑하는 이에게 / 정태춘,박은옥
|
출처: 쓸쓸히 채워져 있고 따뜻이 비워진 숲 원문보기 글쓴이: 들이끼 속의 烏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