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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를 다녀왔습니다 ( 지각 여행기 )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너머서 식구들의 전폭적인 기도와 후원으로 즐겁고 행복한 터키 여행 잘 다녀 왔습니다. 성지 순례를 원했지만 티켓 문제 등 여건상 터키 관광 팀에 합류하여 사도 바울의 발자취 보다 비쟌틴과 , 오스만 터키의 화려한 유적들과 이슬람 성전, 그리고 변화 무상 하고 다양한 자연 경관들을 보고 왔네요.
터키는 크기가 우리 남한의 8배. 인구 약 8000만, 98%가 이슬람 교도들이지만 나라의 독립 부터 시작된 정교 분리 정책의 기조가 아직도 확실히 살아 있는 나라 입니다. 터키는 이 정책을 세속 주의 라고 표현 하더군요. 예를 들면 공립 학교에서는 히잡을 쓰지 못하게 한다든가 하는 것이지요. GNP가 9,600불. EU 가입을 위하여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EU 전체가 기독교 국가들이라 정서상 받아 들이기를 꺼리는 것 같다네요. 공원이나 광장은 시민 들에게 개방 되고 자유롭게 이용 할 수 있는데 월요일 아침 온 공원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 더미들을 보니 공중 도덕은 우리나라 1990년대 수준의 느낌 이었습니다. 유가가 리터당 3000원이 넘고, 아이스 크림 하나에 3,000원, 화장실 한번 가는데 두 명이 할인해서 일인 당 600원, 물가 짐작이 가시죠. 여기도 역시 이상 기후로 건기 임에도 비가 많이 오고, 한창 무더위에 허덕일 때인데도 우리가 갔을 때는 한국 기온이나 다를 바 없더군요. 농작물 냉해를 걱정 할 만큼...
터키 여행은 그 국토의 면적이 넓기 때문에 절반 정도만 돌아 보았고, 주로 전용 버스로 이스 탄불을 제외 하고는 짧으면 하루 4 시간. 길면 10 시간 정도의 이동을 해야 할만큼 강행군으로 상당한 체력이 요구 되었지만 우리야 영계 수준에다 원래 여행 체질이라 별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었지요. 음식은 여행 기간 동안 주로 호텔 식당을 이용하였습니다. 주식인 빵과 고기, 부식으로는 안남 미로 한 푸슬 푸슬 한 쌀밥, 생 요구루트와 다양한 종류의 치즈, 각종 올리브 식품 그리고 풍성한 과일과 채소. 언제 어디서나 잘 먹고 잘 자는 우리는 매일 체중 불어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열심히 먹었답니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술과 돼지고기가 음식에서 철저히 배제 된 담백한 것이 특징인 것 같습니다. 소화도 잘되고 속이 무척 편하더군요. 고기는 주로 양고기, 닭고기, 쇠고기를 사용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고기를 먹기 힘들어 하기 때문에 여행사에서는 양고기를 메뉴에서 제외하는 바람에 우리는 양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절호의 챤스를 놓치게 되어 좀 아쉽더군요. 먹는 것은 무엇이든 자신이 있었는데… 터키 음식은 통상 “ 케밥”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 케밥” 이란 것이 어떤 특별한 한가지 음식이 아니라 숯불에 구운 요리는 어떤 음식이든 “ 케밥” 이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케밥의 종류가 무지 많은 것이지요.
터키의 종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이 나라 국민의 98%가 이슬람. 우리나라의 교회 십자가 보다는 덜 하지만 가는 곳 마다, 마을 마다 돔식의 이슬람 사원과 높이 뻗어있는 첨탑이 보이고 있었고 새벽 4시 반만 되면 첫 예배 시간을 알리는 주문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집니다 ( 아잔 이라 하던가요). 이슬람은 사실 그 뿌리가 우리 기독교와 같지요. 구약을 다 인정 하고 우리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은 “알라” 라고 하지요. 알라는 여전히 그들에게도 유일신 입니다. 이슬람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5대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1) 알라는 유일신 이라는 신앙 고백 2) 1일 5회 기도 3) 라마단 금식 참여 4) 선행 ( 기부와 나눔의 삶) 5) 성지 순례 ( 메카) 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 신자의 5대 의무를 반드시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믿지요. 마호메트의 경전인 코란을 문자 그대로 믿고 철저히 행하는 그들은 행위에 메이는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그들의 종교는 바로 삶이고 생활 그 자체 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너머서 교회가 요즘 강조하는 삶의 예배 그 자체였다는 사실은 제게 또 다른 감명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제2 계명을 준수 하기 위하여 예배 처소에 성화나 성상을 철저히 배제 하고 다만 메카를 향한 방향 표시만 철저하게 하고 그 방향으로 예배를 드린다 거나 예배 처소를 장식 하는 것도 성인이나 성상이 아니라 코란 구절 만으로 장식을 대신 하고 바닥에도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철저히 식물 무늬로만 된 양탄자를 깐다거나 하는 것은 철저히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싶더군요. 또 사원 안에만 들어오면 모든 사람들이 신 앞에서 평등하다 하여 들어 오는 순서 대로 자리를 잡아 예배를 드리고 귀족이나 왕들도 먼저 들어온 사람들의 앞자리로 들어 올 수 없는 것이라든가, 우리처럼 정기적인 헌금이 아니라 철저히 기부금으로 사원을 운영 하고, 그 기부금의 본래적인 목적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으로, 특히 이런 종교의 영향으로 이 사회에는 부자들의 기부 문화가 특별히 발달 되어 있다는 것도 감동이었습니다. 내 사원 내 교회가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지 기도 시간이 되면 가까운 사원에 가서 기도 하고 예배 드리는 모습 들이 특히 내 교회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와 얼마나 대비가 되든지요. 특히 이슬람 하면 폭탄 테러, 이슬람 근본 주의 등 폭력 집단으로 나에게 각인 되어 있던 이슬람에 대한 선입관을 많이 벗겨내고 돌아왔습니다. 이슬람에 대하여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매력이 가더군요.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실제 이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 라더군요, 빈 라덴 같은 사람들은 이슬람 내에서도 이단아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하구요..
이제 돌아본 8박 9일 여정에 대하여 간단히 적어 봐야 하겠네요. 인천 공항 이륙 후 약 10 시간 30분 후 첫 도착지 이스탄불. 이곳은 옛날 동 로마 비쟌틴 제국의 수도로 터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약1800만) 도시. 한 도시 안에 하나의 해협을 ( 보스 폴리스) 가운데 두고 왼쪽은 유럽, 오른쪽은 아세아 대륙이 공존 하고 있는 독특한 지형. 그러니 동, 서양의 문물이 오고 가는 통로이기도 했지만 제국의 힘이 쇠약해 졌을 때는 이 땅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의 열강들이 서로 얼마나 각축을 벌렸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화려한 로마 기독교 문명과 그 문화를 말살 시키고 그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오스만 터키의 이슬람 문화가 역사의 유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 이스탄불.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마르마라 해협에서 황금 뿔까지 6키로 이상 뻗어있는 성벽의 위용이었습니다. 황갈색 줄 무늬가 있는 성벽의 탑들은 요소, 요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퇴락하고 허물어 진 곳도 있었지만 16 세기가 지난 지금도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이 성벽은 테오도 시우스 성벽입니다. 이 성벽은 외부로부터 이 도시에 이르는 모든 육로를 완벽히 봉쇄함으로 이 도시를 이 민족의 침입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보루로서 이 성벽이 뚫린 것은 단 한번 비쟌틴 제국이 멸망할 때 뿐 이였다고 합니다.
돌마 바흐체 궁전 : 터키의 베르사이유라고 불리지요. 주로 오스만 터키의 후기 술탄들이 사용하든 궁전으,로서 화려함의 극치지요. 규모나 내부 장식 면에서. 13년에 걸친 대 역사였다고 합니다 ( 솔로몬 왕궁도 13년 동안 지어졌다지요). 결국 이 궁전의 대 역사 때문에 나라가 휘청 하게 되었다더군요.
성 소피아 성당 : 비쟌틴 시대의 대표적인 성당이지요. 크기와 규모 화려함이 대단했지요. 비챤틴이 쇠퇴하고 나중에 이 지역을 점령한 오스만 터키의 이슬람들이 ( 성상이나 성화를 인정 하지 않기 때문에 ) 예수님과 마리아 상등 정교하게 모자이크 된 성상과 그림들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들을 횟칠로 덧씌워 놓거나 훼손 한 것들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 작업을 하여 이전의 모습이 다시 드러나게 하긴 했으나 완전한 복원이 불가능 하다네요. 기독교가 이슬람에게 회칠 당한 아픔의 흔적이어서 마음이 아프더군요. 특히 이 성당을 지을 때 우상 파괴라는 명목으로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든 나라들의 신전들을 부수고 그 기둥들을 가져다가 이 성당의 기둥으로 삼았다고 하더군요. 역사적으로 보면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한 일이었지만 기독교가 이 땅에 나쁜 일을 참 많이 저질렀더군요.
불루 모스크 :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의 하나로서 현재도 이슬람 사원으로 이용 되고 있었는데 이슬람 사원의 규모는 엄청 컸지만 내부는 생각 보다는 훨씬 더 소박하고 단순 했어요. 유명한 성당들과는 아예 비교가 안되더군요. 돔 형식의 사원 안은 메카 (마호멧이 태어 난곳)를 향한 조그만 강단 같은 것이 있을 뿐. 이맘 이라고 하는 예배 인도자가 정기 예배만 인도 하고 평소 에는 신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 씩 열심으로 드나들며 주로 신앙 고백과 기도를 하는데 정해진 헌금은 없고 기부금 만 있어요. 예배하고 나오면 기부금 접수처가 있고 기부금을 내는 누구에게나 그 자리에서 영수증을 끊어 주었습니다. 이 기부금은 주로 성당 건물 유지, 보수 및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 하는 것에 치중 하고 있었구요.
수도 앙카라. 수도로서 최근에 형성된 도시라 가볍게 지나 갔고 , 그 다음이 기독교 적으로 가장의미 있는 도시 가파도기아. 해발 1000미터인 이 지역은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는데 구름 그림자가 땅을 시원하게 해 주고 있었어요. 작은 그랜드 케년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도시는 수 백만 년 전의 화산 활동으로 흘러내린 용암이 오랜 세월 동안의 풍화 작용으로 만들어낸 기암 괴석을 보며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음미하기도 했지만 신앙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3세기 이전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하여 이 지역으로 도망하여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를 파고 들어가서 그 안에 교회를 만들고, 생활 공간을 만들어서 공동 생활을 한 흔적들을 통하여 흩어진 나그네들의 모습을 보게 하였고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6-7 세기에는 아무런 박해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불편하게 살 필요가 없었음에도 박해 없는 기독교가 타락 하지 않도록, 기독교 신앙의 초심과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곳에 동일하게 굴을 파고 공동체 생활을 했던 우리 기독교 선조들의 그 열정과 헌신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기에 특별히 더욱더 감명이 깊었습니다. 한 바위 굴 안에 교회, 식당, 화장실, 심지어 무덤까지 같이 있더군요. 베드로 사도가 그의 서신에서 특별히 이 지역을 언급 하면서 거룩한 나그네의 산 소망을 심어준 이유가 가슴에 뭉클하게 와 닿더군요.
그 다음 찾아간 곳이 언덕 위의 고대 도시 유적 히에라 폴리스
아름다운 온천수가 있는 노천 온천인데. 이 지역은 석회가 많아 석회수 물이 오랜 세월 흘러 내리다 보니 물은 흘러 내려가고 석회만 쌓이게 되어 그곳이 눈 덮힌 산처럼 하얗게 되어 마치 온 산이 눈 덮힌 설경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어요. 이 온천수가 병에 좋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도시가 형성 되었고, 클레오 파트라가 목욕하고 갔다는 엄청 큰 목욕탕과 각종 고대 도시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우리 일행도 피로도 풀 겸 이곳에 온 기념으로 흐르는 석회수 노천 탕에 발 담그고 족 욕으로 기분 쫌 내었지요. 이날 저녁 목화 성이라는 별명이 붙은 파묵깔레에서 저녁 여장을 풀었는데 목화 철이 아니라 목화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했지만 이날 밤은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네요. 우리 일행은 18명이었는데 자랑 같지만 우리는 거의 영계 취급을 받아서 경노 우대자 들에게 제공되는 1층 방을 배정 받지 못하고 가장 꼭대기인 3층 방을 배정 받았는데 이날 우리에게 배정된 3층 방은 옥탑 방처럼 천장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조였습니다. 불행 하게도 그날 저녁은 밤새 비가 와서 빗줄기만 구경 하다 말았지만 아침이 되니 하늘이 너무나 청명하게 개이고 천장에는 작은 새들이 날아와서 우리 방을 들여다 보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를 구경 하고 있더군요.
그 다음 경유지가 안탈리아 ( 성경에는 아달랴로 나오던가요). 이제 내륙을 지나 지중해 지역으로 들어서게 되네요. 기후와 풍광이 달라지고 관광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강렬한 지중해의 햇살, 터키석 같은 옥 빛 지중해의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 호텔이 바닷가 해수욕장과 연결 되어 있어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해변 가에서 “ 나 잡아 봐라” 좀 하다가 말았는데 낮 동안의 따가운 햇빛에 달구어진 탓인지 물도 별로 차갑지 않았고, 주변에는 제주도 정방 폭포 같이 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도 있더군요
그 다음은 약 3000 년 역사를 자랑하는 에베소 . 지금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고대 도시. 사도바울의 에베소 전도의 자취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에배소의 아데미 신전 ( 에르 데미스 신전 )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서 파르테논 신전의 네 배나 되는 엄청난 크기로서 그 신전을 짓는데 120년 이나 걸렸다는 군요. 그 당시 이 도시의 중심에 놓여있던 이 신전은 전 에베소 사람들의 정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 도시의 전향을 보여 주는 이 도시는 크기로 유명한 셀루수스 도서관, 사도 바울이 설교 했다고 전해 지는 원형 경기장, 로마 도시에서 뺄 수 없는 목욕탕. 그리고 그 당시의 공중 변소의 모습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3000년 전에 바위를 깍아서 양변기를 만들고 땅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함으로서 오늘 날 수세식 화장실과 같이 사용 했던 흔적들은 그 당시 로마 문명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로마 영향력 아래 있던 식민지 각 도시의 신전에서 뽑아 왔다는 각가지 형식의 건축 양식을 한 기둥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고 여기 저기 진행되고 있는 발굴 현장들을 통하여 살아 숨쉬는 에베소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 도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로 널리 알려 지게 되었고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3500년 전의 도시 트로이. 여기도 여전히 발굴 작업이 한창 이었구요. 에베소 같은 도시가 워낙받컸기 때문에 규모 면에서는 비교가 안되지만 3500년 전의 고대 도시라는 점을 감안 하면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우리 둘은 트로이 목마 안으로 들어가서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기념 사진 한 컷. 사진 발 좋고….
마지막 날 하루 온 종일 첫 날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던 데린 구유 지하 도시를 비롯한 이스탄불 유적을 다시 돌아 보고, 일행 들과 함께 높은 공동 묘지 언덕 위에 서 있는 한 유명한 찻집에서 저 멀리 보스 프로스 해협과 ,황금 뿔을 내려다 보며 터키의 유명한 차 한잔씩을 나누고 공항으로 출발 , 온 밤을 달려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드디어 8박 9일의 대 장정이 긑이 났네요. 지루한 지각 여행기를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최 우돈, 유 정숙
첫댓글 마치 직접 같이 가는 느낌을 갖는 여행기 멋져요^^ 그리고 장로님의 글을 보면서 직접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네요^^ 역시 장로님의 글은 살아 있습니다^^
아..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역시 장로님 내외분의 해박한 안목을 통해서 들으니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는군요...
이슬람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시게 되었다는 말씀에 매우 공감하구요
장로님과 권사님이 영계 시라는거 알게되었습니다 - 영계가 왜 '변소'라는 표현을 쓰시는지 원 ㅋㅋㅋ
사진도 좀 올려주시지요? 영계장로님~ ^^
저희도 10년전에 터키를 다녀왔는데...,어쩜 이렇게 수준차가 느껴지는 여행기인지...ㅋㅋ 저또한 이번여행에 동참한듯한 느낌으로 실감나게 여행기를 읽었습니다.^^ 그때 저희는 이집트를 함께 여행하느라 사흘의 터키여행이라 아쉬움이 남아, 터키만 다시오자고 했는데 장로님여행기덕분에 안가도 될듯합니다.ㅋㅋ여행비줄여주셔서 감사...*^^*
사실은 사진까지 같이 올리려고 하다가 지각 여행기가 되고 말았는데, 사진은우리 아들놈이 와야 올리겠네요. 내가 글을 올릴 실력은 되는데 아직 사진 올릴 실력은 못되서요. 아들이 지난주에 집에 올 줄 알았는데 못왔고, 언제 또 아들 얼굴 볼지 현재로서는 기약이 없는데요.... 기다린 김에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선교사님! 저 홍아 입니다.아니..터어키까지 오셨는데 알바니아는 안오시고 그냥 가십니까??
알바니아에선 터어키를 이웃이라고 합니다. 알바니아 사람들이 비자없이 갈 수 있는나라가 터어키와 코소보이거든요.
하기사 저도 아직 터어키를 못가보았지만...춘석 선교사가 한번 오라고 해도 그게 잘 되질 않아요...
선교사님 글을 읽고 나니 저도 한번 가 보고 싶어지네요. 가서 본다면 선교사님 글이 많은 도움이 되겠어요.가서 확인만 하면 되겠는데요.... 건강하시구요.
아~흐 가고파라. 터키와 그리스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 그래도 이렇게 장로님과 권사님 덕분에 집에서 터키를 다녀온 듯 황홀합니다.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