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의 인과응보
무한한 우주 공간에 태양과 달이 존재하여 빛과 그림자가 나타나며,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한 시간이 주기적으로 순환하며, 음양과 오행의 상대성이 삼라만상을 창조하고 진화시킨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지구상에 창조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약육강식의 질서를 위한 상극 작용으로 지하에 매장되었던 황금이 강바닥으로 노출되며 인간들의 욕망을 부채질하였다.
상생의 선천지기를 가진 인간의 원초적 본능 원초아 이드의 리비도인 삶의 선한 본능에서 상극인 후천지기 죽음의 악한 본능으로 변하고, 인구가 증가하며 치열한 생존 경쟁의 싸움터로 변하였다.
언어란 개체의 구체적 현상을 명명하여 설명하고, 추상적 개념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상호간의 의사 소통을 위하여 신체 언어에서 구두 언어로 다시 문자 언어를 사용하며, 존재와 허무의 개체를 소리와 글자의 언어로 이름을 붙여 개념화하고 널리 대중에 인식됨으로 제각기 이념과 사상의 의미를 가진다.
노자의 도독경 첫장에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이란 구절이 있다.
도를 도라고 불러도 좋지만 굳이 도라고 이름을 안 부쵸도 된다는 의미다.
이 세상에 상생만 있고 상극이 없으면 질서가 존재할 수 없듯이 선과 악도 상대적 양면성을 가진다. 이 세상에 선만 있고 악이 업으면, 선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선을 리와 기의 청한 도라면, 악은 기의 탁한 기운에서 생기는 현상으로 선이 타인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세상에 유익한 공리주의고, 악은 세상에 피해를 주는 행위 이기주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삼의 법칙대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선과 악의 싸움은 불의가 정의를 구축하지만 악의 승리는 순간적이며, 제삼의 악에 의해 패망하는 법이다.
선은 리의 기가 동일하고, 지고지순하여 일시적으로 악에게 질지 모르지만, 결국은 선한 행위가 진정한 승리를 얻음으로 종교와 문학에서 권선징악(勸善徵惡)을 추구하는 이유이다.
사주 명리학에서도 운과 명이 불운하더라도 적선과 공덕을 쌓으면 길운으로 바꿀 수 있는 법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개체가 태극이며, 각 개체의 중심은 무극이라, 태풍의 중심은 무풍지대이고, 생각의 중심은 무념 무상이고, 도의 중심은 무짐 무아이다.
원자는 양의 핵과 음의 전자와 중성자가 있듯이, 삼라만상도 선과 악과 중도가 존재한다.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선이 일할 정도이고, 악은 3할 정도이며 중간이 6할 정도인데, 상원갑자, 중원갑자와 하원갑자의 시대 변화에 따라 약간씩 선악의 역할이 변한다.
사람이 살면[live] 악[evil]이 되고, 살았다[lived]면 악마[devil]로 둔갑하는 세상이다.
성경이나 불경 귀절처럼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죽음을 초래하는 법이다.
악의 기가 구체적 형질로 변한 것이 죄이고, 죄란 허구적 성서에서 말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생긴 원죄가 아니고, 음양합일의 섹스를 통하여 자손에게 유전자를 넘겨 주고 성인이 될때까지 양육만 시켜 주면 충분한데도, 권력과 재물과 명성을 대물림하여 유산으로 세습화하는 것이다.
선[善]이 아닌 네가지 일[四 非]의 죄[罪]는 살인과 도적질과 사기와 강간이다. 악의 산물인 죄(罪)를 말과 칼형태(四 言刀)로 벌[罰]하는 재도권의 처벌 기준이 물처럼 흘러 가는 법[法]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적극적이고, 진취적 정복욕이 영웅시되고, 목적을 위해선 개 같은 수단과 방법의 힘이 정의로 합리화되는 마키아벨리즘 사고와 사리분별을 가리지 않는 기독교 신앙이 부귀권세를 누리는 승리의 투쟁과 대립과 갈등의 시대로 변천되었다.
세계 최고 갑부 빌 케이츠와 삼성왕국의 이건희회장은 법은 이현령 비현령이라 지킬 필요가 없고, 불멸의 신성가족 판검사들과 로비나 잘하며, 법적 송사가 생기면 말 잘하는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처음에는 무조건 모르세의 기억 상실증 환자가 되어 오리발을 내밀고, 두번째로 거래 상대방을 철저히 비난하고, 마지막으로는 정황이 불리하여도 최고 결판이 날때까지 버티기의 후안무치한 모리배가 되는 것이다.
역적은 삼족을 멸하던 한 많은 한민족이 해방을 맞이하여, 자유당 정부가 역사의 죄인들인 친일파들을 처단하지 못하고,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관료와 군대와 경찰에서 지도자의 핵심 인물로 제도권을 지배함으로 인해 법통과 민족사의 근원적 문제가 있었다.
세계 역사상 40년 이상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굴욕과 압박을 당하고도 민족의 반역자들을 법으로 처단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일제 식민지 잔제인 권위주의 관료와 포악한 군사문화가 발흥하고, 공평무사한 행정과 공명정대한 선거풍토가 제도화되지 못했다.
권모술수의 공작과 중상모략의 사색파벌의 기득권층들이 무지몽매한 민초들을 보안법으로 속박하고, 돈 바람으로 타락선거를 조장해 치졸한 지학혈연의 인맥을 악용하여 권력을 장악해왔다.
무지몽매(無知蒙昧)한 민중들은 자기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성한 투표권을 돈바람에 현혹당하고, 치사스런 연줄의 미련과 지역 감정으로 인하여 착각의 한표를 행사함으로 구조적 모순의 제도권을 창조하는 오류를 자행했다.
치사한 지학혈연의 패거리 문화의 인맥 연줄은 하나회같은 영남 군벌의 독재와 고소영같은 영남 문벌의 사색 당파의 파벌 정치와 지역감정과 빈부격차와 노사분규와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여 집단 이기주의와 님비현상을 초래했다.
부귀영화(富貴榮華)에서 소외된 빈민 계층들은 불평과 불만을 증폭시켜 범죄가 난무하고, 폭력이 설치는 불안한 사회가 되어 연쇄 살인사건과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와 숭례문 방화같은 묻지마식의 방화를 자행하여 대형 사고를 유발시켰다.
역사의 장에는 원과 인이 있는 인과응보의 법이다. 고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군사독재 정권의 경제 정책과 대기업의 적극적 생산활동이 아니라, 남십자성 하늘아래 흘린 파월용사의 피와 열사의 중동 사막에서 노무자들이 흘린 땀과 수출전선에서 저임금 장시간 근무로 헌신한 여성 근로자의 흘린 눈물이 성장의 디딤돌이었다.
민초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인 경제 성장의 분배는 성장의 디딤돌이었던 민초들에게는 겨우 먹을 정도만 분배하고, 대부분의 부는 몰인정한 재벌과 몰상식한 관료와 몰염치한 군부와 그 힘의 세력에 아첨한 언론 계층과 몰지각한 소수 엘리트들이 독점해 왔다.
두발로 뛰며 취재하지도 못하며 겨우 출입처 관료들이 던져주는 정보로 먹고 살면서도 엘리트라고 자칭하는 황색 저널리즘의 지식인들은 사상, 이념,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며 보수나 진보주의같은 색갈론 주의를 주창하며 그릇된 독단적 신념 도그마로 정치적 파벌을 조성하년서 무지몽매한 민중을 지배하고 있다.
신념이란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일상 생활에서 자기가 경험하고, 학문으로 습득한 사고와 통찰력으로 세상을 보는 가치관의 인생관과 세계관이다.
이 세상은 얻는 게 잇으면, 잃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다. 미숙하고 불안정한 청소년기 시절에서 습득한 어슬픈 이념과 사상의 독단적 신념 도그마를 시대적 상황이 변해도 버리지 않고, 고정관념을 가지고 선입관의 편견으로 확신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의지가 박약한 벽창호같은 인간들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의 존재 가치를 배반하는 인식의 맹신적 종교적 관념에 집착하고,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의 정치적 이데올르기 도그마의 확신이란 사슬에 얽매인 보수 이념론자들은 성장을 멈춘 의지가 나약한 사람들이다.
빨리빨리의 급속한 고도 경제 성장과 변화막측한 현대 사회에서 확고한 지조로 편견과 수구적 과거의 신념에 얽매인 인간들은 정신적 성장이 정지된 인간들이다.
정보화 현대 사회는 암흑의 중세기 시대에 범람하던 형이상학적 이데아와 허황된 기독교 사관응 낡아 붕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하게 신념의 노예인 오류의 기독교 원리주의와 이분법 색갈론을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민주 사회에서 도태되어야 한다.
자유와 평화와 평등이 유토피아의 꿈이지만, 평등을 주장하며 므산계급을 지향하던 프로레트리아 공산주의는 생산의 비능률로 자승자박(自繩自縛)의 파멸을 초래하였다.
황금 만능의 자유가 지상 낙원인 자본주의는 절제를 모르고 부정과 부패를 자행하며 양키와 유태인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란 그물에 걸려 자가당착(自家撞着)의 길을 걷고 있다.
자유는 합리적 이성과 동물적 감정이 조화된 사상이 필수적이다. 인간은 자기 내면의 의지력을 강화하고 인격을 고양한 가치관의 척도에 따라 이념과 사상을 가지며, 신념에 따라 성공된 삶과 실패한 인생의 승패가 판가름난다.
이 것이 잇으면, 저 것도 존재하는 법이다. 여당이 있으면 야당도 존재하는 상대적 관계다. 상대가 없는 유아독존의 독재는 부패와 사치를 조장하여 나중에는 필히 패망하게 된다.
경쟁자인 상대방에 대한 적의도 무조건 타도되고 비방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자기 발전을 위한 상대적 경쟁의 분발심을 충동시키는 비교의 대상으로 승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원시적 본능 원초아 이드의 욕망은 자아와 초자아의 정신적 에너지로 근절되고 억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미숙한 청소년 시절에 습득한 신념과 죵교를 죽을때까지 가지는 확신이야말로 확고한 지조가 아니라, 무지몽매한 인간들의 우매한 사고이다.
서구 흑백 논리와 독선적 이기주의와 독단적 신념에 빠져, 내가 아닌 남은 무조건 죽이고 타도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극단적 이념과 사상과 종교야말로 바로 타도되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삼라만상은 변하는 시중의 시변지도이다. 이 세상에서 절대적 진리나, 영원한 사실은 존재할 수가 없다. 진리의 오류는 무지나 맹목에서가 아니고, 홀로 서려는 두려운 공포감에 빠진 확신이나 맹신의 맹목적 신념이 오류의 근원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21세기 초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홀로 서려는 의지가 없이,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부조리한 배타적 보수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기독교 성서 복음주의나 이슬람교의 원리주의 같은 맹신의 종교나, 확신의 정치적 사상에 몰입되는 신념의 노예가 되어, 타인들도 자기들처럼 노예 근성을 가지기를 강요하다가, 자기의 독단적 신념과 상반되는 종교나 정치적 사상을 이단이나 반동으로 몰아 부치는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는 지양되어야 한다.
종교와 양심의 자유란 미명아래 여호와 증인들의 대체 군복무제 요구나, 동국대 강박사의 통일 전쟁론이나, 황당무게한 황박사의 국익 신들름이나, 집단 이기주의적 스크린 쿼터 보수나, 부조리한 사학 재단의 공개 반대 투쟁같이 명분없는 논리나, 뉴라이트 같은 편향적 이념은 타도의 대상이지 타협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은 정도(正道)를 걷는 자에겐 지옥이요, 사도를 걷는 자에겐 천국인 별천지 세상이다.
사람은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처럼 강한 자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고, 약한 자를 돕고, 강한 자의 권세를 억제하는 억강부약의 세상이다.
억강부약의 근원이 측은지심의 인(仁)으로 자비와 사랑이다. 인의예지신의 도덕 재무장 운동으로 역지사지의 관용을 배우고 느림의 미학을 알고, 사회적 윤리가 올바로 확립되어야 밝은 한국의 장래가 도래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만인을 위한 책이나 이데아는 존재할 수 없듯이 진리나 사상과 이념도 누구에게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맑은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는 법이다.
뱀이 성숙하려면 허물을 벗는 것처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도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성숙한 인격을 가지려면, 과거의 신념을 자유롭게 벗어 버리고, 변화무쌍한 새로운 세계를 보는 열린 시각과 유연한 자세로 신념의 주인이 되어 개혁을 추구하여야 한다.
온고지신(溫故之新)이라, 현명한 자아를 가진 지성인들은 고루한 신념의 노예에서 탈피하여 항시 중용과 조화의 지혜로 열린 마음과 유연한 자세를 가진 신념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