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할머니였다
강현자
거울 앞에 섰다. 분명 내가 맞긴 한데 내가 나를 보지 못한다. 시간은 소리 없이 다가와 무게도 없이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나도 나를 알지 못하는데 눈으로 보이지 않는 나이는 오죽하랴. 소리도 없이 형체도 없이 슬그머니 통고만 하고는 해마다 따박따박 찾아온다. 한 치의 예외가 없다. 융통성이란 손톱 밑의 때만큼도 없다. 보이지 않는 그놈의 나이는 남이 먼저 알아버린다.
“어머, 팀장님은 나훈아나 현철 노래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아마 마흔 초반쯤이었을 게다. 직장에서 내가 맡은 팀에는 열댓 명의 팀원이 있었는데 주로 나이가 이삼십 대였다. 어느 날 팀원들은 대중가요를 화제에 올렸고 그 틈에 나도 슬쩍 한마디 거들었다. 나를 트로트나 좋아하는 노인네로 알다니. 동생뻘쯤으로 생각했던 그들은 나를 완전 어르신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요즘같은 트로트 열풍도 그때는 아직이었다. 그즈음 나는 발라드 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특히 한참 유행하던 녹색지대나 이승철 노래를 즐겨 들었는데, 그런 나를 몰라보다니. 내게 충격을 주었던 그 팀원의 말은 외면한 채 다른 사람들이 주는 마시멜로의 단맛에만 길들며 세월을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다. 서른 살 즈음의 내 눈에 비쳤던 우중충한 사십 대의 아주머니가 바로 지금의 나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10년쯤 지나 어느 공원에서 귀여운 꼬마를 만났다.
“지윤야, 할머니가 너 귀엽대~~”
‘할머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할머니는커녕 나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럼 나더러? 내가? 내가 할머니라고? 그날 아침 나는 한껏 젊은 스타일로 보이고자 레깅스 쫄바지에 긴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할머니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는지 앞서가는 제 그림자를 잡으려 앞만 보고 달리는 그 모습이 하도 천진해서 나도 모르게 뱉은 말이었다. “어머, 귀여워라.” 그때 저만치서 아기 엄마인 듯한 목소리가 내게 비수를 꽂았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또래 아기를 둔 젊은 엄마면 친정엄마도 내 또래쯤 되었을 수 있다는 위로의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우울감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더했으니까.
돌이켜보면, 마흔쯤에 내가 맡았던 팀에는 내가 그렇게 할머니로 불렸던 나이 50을 갓 넘긴 두 분의 팀원이 있었다. 그분들은 오랜 경험으로 자상하고 안정적인 회원 관리를 하며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교사 교체를 요구하는 젊은 엄마들의 클레임을 일일이 응수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내 어깨를 무겁게 했다. 그럴 때마다 그분들은 과연 이 일이 힘들지 않으실까, 언제쯤이면 은퇴를 생각하시려나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나도 저 연세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젊은 아기 엄마가 나를 할머니라고 했던 그 나이를, 나 역시 그분들을 노인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말이다.
지금 내가 이순을 넘기고 50대의 여인들을 바라본다. 젊다. 부러울 만치 젊다. 그때는 나도 갱년기 열감 말고는 아픈 곳 하나 없이 폴짝폴짝 잘도 뛰어다녔다. 나이는 들어도 내가 늙는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비록 할머니 소리는 들었을지라도 그건 나를 할머니라고 부른 사람의 잘못된 안목이라 치부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언제나 낯설고 어색하다. 생각지도 않는 내게 주어지는 원치 않은 선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보다 남이 먼저 알아차린다. 낯선 사람에게 수줍음 없이 대뜸 말을 건다든지, 어딜 가면 자꾸 쭈그려 앉고 싶다든지, 어지간한 일에는 발끈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중이라는 힌트였던 것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는 고개만 돌려도 함께 공감해 줄 이가 주변에 널렸다. 그래서 외롭지 않다.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이 걱정이지.
“연세도 있으신데…”
“그 연세에 건강은 괜찮으신지?”
늙어감을 인정하라는 이 말이 달갑지 않은 것은, 늙는다는 것이 두려운 것은, 다른 이들로부터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젊은이들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젊은이는 없고 적어도 내 또래나 나보다 연배가 있는 사람들만 있다면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빨리 나이가 먹고 싶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유, 관용, 지혜 같은 늙음이 주는 선물이 있으니까. 사람들은 매사에 선을 그어놓고는 그것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얽어맨다. 나이도 사실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구분 선이 아니겠는가. 나이에 숫자를 매겨놓지 않았다면 늙어감에 그토록 서글퍼하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로 가는 길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므로.
손주가 태어나고 ‘할머니’라는 배역이 주어졌을 때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멈칫멈칫했다.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 소리가 듣고 싶어 이제 겨우 말을 떼는 손주에게 자꾸 묻는다.
“내가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