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성당들은 왜 종탑과 붉은 벽돌 일색일까?
성당 건축, 21세기 문화와 감성 담아야
- 1916년 완공된 부산진성당(부산 최초 성당인 초량성당 전신). 공사비를 절약하기 위해 미사 공간은 목조로, 종탑 부분은 벽돌조로 축조됐는데 벽돌조 종탑은 성당 이미지를 강조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한국교회 성당들은 왜 종탑과 붉은 벽돌 일색일까?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품어봤을 의문이다. 건축물은 당대의 정신과 문화, 재료가 혼합된 시대적 산물인데도 한국교회는 여전히 높은 첨탑과 스테인드 글라스, 장방(長房)형이 특징인 중세 고딕식 건축양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동명대 김의용(라파엘, 44) 교수는 9일 부산교회사연구소 주최로 열린 학술연구발표회에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만한 흥미로운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이런 현상과 성당건축 이미지는 초기 성당건축이 구축되는 개화기와 식민지 시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선 박해를 겪다 한불수호조약(1886)으로 선교권을 얻은 프랑스 선교사들은 마을 중심, 높은 곳, 역사적인 곳에 주로 성당을 지었는데, 이때 성당 이미지를 가장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고딕양식을 선택했다. 프랑스에서 13~15세기에 절정을 이룬 고딕양식은 이미 유럽에서 종교건축 양식의 대명사로 정착돼 있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선교지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본국인이 하루빨리 교회운영을 맡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선교정책을 폈다. 하지만 성당건축만은 건축물 자체가 선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고딕식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모국의 문화적 정서와 우월주의도 작용했다.
또 선교사들이 건축 시기, 장소, 비용을 대부분 결정하거나 해결했다. 이 때문에 한국 신자들 의견은 반영될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일부 농촌에서는 신자들이 돈을 모아 한옥성당을 짓기도 했다. 토착화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전통 축조방식이 서양식 성당건축 모방보다 공사비가 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1920년대 들어 벽돌이 대량생산되면서 벽돌조 한양절충식 또는 벽돌조 고딕 모방식으로 옮겨간다. 본래 고딕식은 석재를 사용하지만 석재는 벽돌에 비해 비용이 많게는 10배 이상 더 들기 때문에 벽돌을 선호하게 된다.
김 교수는 "한국 가톨릭 상징인 명동성당의 고딕식 건축양식도 타 성당 건축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붉은 벽돌은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이 마산 양덕성당, 서울 불광동성당, 서울 경동교회 등을 지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이후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 양식이 한국교회에 유전자처럼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고딕 모방식 성당은 대부분 자본주의 영향을 받아 크고 화려하게, 빨리 지어 외형은 화려한 반면 내부는 짜임새가 없다"며 "신자들은 과거 회귀적 성당(고딕식)을 잘 지은 성당이라고 칭찬하지만 후손들이 현재의 성당에서 21세기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당 건축의 근본과 본질적 요소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0년 예술가들에게 한 연설 일부를 결론 삼아 제시했다.
"현대 성당건축은 바실리카나 로마네스크, 고딕이나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모방일 수 없다. 우리 시대의 문화와 감성, 그리고 오늘날 가능한 재료와 수단을 유용하면서 오늘날의 신앙에 그 형태와 표현을 부여해야 한다."
[평화신문, 제926호(2007년 6월 24일), 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