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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法合
佛子야 如來應正等覺無上法王도 亦復如是하야 欲以正法으로 敎化衆生하사 先布身雲하야 彌覆法界호대 隨其樂欲하야 爲現不同이니라 所謂或爲衆生하야 現生身雲하며 或爲衆生하야 現化身雲하며 或爲衆生하야 現力持身雲하며 或爲衆生하야 現色身雲하며 或爲衆生하야 現相好身雲하며 或爲衆生하야 現福德身雲하며 或爲衆生하야 現智慧身雲하며 或爲衆生하야 現諸力不可壞身雲하며 或爲衆生하야 現無畏身雲하며 或爲衆生하야 現法界身雲이니라
佛子야 如來가 以如是等無量身雲으로 普覆十方一切世界하고 隨諸衆生의 所樂各別하사 示現種種光明電光하나니所謂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無所不至요 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無邊光明이요 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入佛秘密法이요 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影現光明이요 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光明照耀요 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入無盡陀羅尼門이요 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正念不亂이요 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究竟不壞요 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順入諸趣요 或爲衆生하야 現光明電光하니 名滿一切願하야 皆令歡喜니라
佛子야 如來應正等覺이 現如是等無量光明電光已에 復隨衆生心之所樂하사 出生無量三昧雷聲하나니 所謂善覺智三昧雷聲과 熾然離垢海三昧雷聲과 一切法自在三昧雷聲과 金剛輪三昧雷聲과 須彌山幢三昧雷聲과 海印三昧雷聲과 日燈三昧雷聲과 普令衆生歡喜三昧雷聲과 無盡藏三昧雷聲과 不壞解脫力三昧雷聲이니라
佛子야 如來身雲中에 出如是等無量差別三昧雷聲已하시고 將降法雨에 先現瑞相하사 開悟衆生하나니 所謂從無障礙大慈悲心하야 現於如來大智風輪하시니 名能令一切衆生으로 生不思議歡喜適悅이니라 此相現已에 一切菩薩과 及諸衆生의 身之與心이 皆得淸凉이어든 然後에 從如來大法身雲과 大慈悲雲과 大不思議雲하야 雨不思議廣大法雨하사 令一切衆生으로 身心淸淨하나니 所謂爲坐菩提場菩薩하사 雨大法雨하니 名法界無差別이요 爲最後身菩薩하사 雨大法雨하니 名菩薩遊戲如來秘密敎요 爲一生所繫菩薩하사 雨大法雨하니 名淸淨普光明이요
爲灌頂菩薩하사 雨大法雨하니 名如來莊嚴具所莊嚴이요 爲得忍菩薩하사 雨大法雨하니 名功德寶智慧華開敷하야 不斷菩薩大悲行이요 爲住向行菩薩하사 雨大法雨하니 名入現前變化甚深門하야 而行菩薩行호대 無休息無疲厭이요 爲初發心菩薩하사 雨大法雨하니 名出生如來大慈悲行하야 救護衆生이요 爲求獨覺乘衆生하사 雨大法雨하니 名深知緣起法하야 遠離二邊하야 得不壞解脫果요 爲求聲聞乘衆生하사 雨大法雨하니 名以大智慧劒으로 斷一切煩惱怨이요 爲積集善根決定不決定衆生하사 雨大法雨하니 名能令成就種種法門하야 生大歡喜니라
佛子야 諸佛如來가 隨衆生心하야 雨如是等廣大法雨하사 充滿一切無邊世界하나니 佛子야 如來應正等覺이 其心平等하야 於法無悋이로대 但以衆生의 根欲不同으로 所雨法雨가 示有差別이니라 佛子야 如來應正等覺이 其心平等하야 於法無悋이로대 但以衆生의 根欲不同으로 所雨法雨가 示有差別이니라 是爲如來音聲第十相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니라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의 위없는 법왕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바른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려 할 적에 먼저 몸 구름을 일으켜 법계를 두루 덮고 그들의 좋아함을 따라 나타냄이 같지 아니하니라.
이른바 혹 어떤 중생을 위하여 살아있는 몸 구름을 나타내고, 혹 어떤 중생을 위하여 화신(化身)구름을 나타내고, 혹 어떤 중생에게는 힘으로 유지하는 몸 구름을 나타내고, 혹 어떤 중생에게는 형상 몸 구름을 나타내고, 혹 어떤 중생에게는 잘난 몸 구름을 나타내느니라.
혹 어떤 중생에게는 복덕(福德) 몸 구름을 나타내고, 혹 어떤 중생에게는 지혜 몸 구름을 나타내고, 혹 어떤 중생에게는 모든 힘 깨뜨릴 수 없는 몸 구름을 나타내고, 혹 어떤 중생에게는 두려움 없는 몸 구름을 나타내고, 혹 어떤 중생에게는 법계 몸 구름을 나타내느니라.
불자여, 여래가 이와 같이 한량없는 몸 구름으로 시방의 일체 세계를 두루 덮고는 모든 중생들의 좋아함을 따라서 갖가지 빛난 번개를 나타내 보이느니라.
이른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이르지 아니함이 없음’이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그지없는 광명’이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부처님의 비밀한 법에 듦’이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그림자 나타내는 광명’이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광명이 밝게 비춤’이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끝없는 다라니 문에 듦’이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바른 생각이 어지럽지 않음’이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음’이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여러 갈래에 따라 듦’이요, 혹 어떤 중생에게 나타내는 빛난 번개 이름은 ‘모든 소원을 만족하여 환희케 함’이니라.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빛난 번개를 나타내고는 다시 중생들의 마음에 좋아함을 따라서 한량없는 삼매 뇌성(雷聲)을 내느니라. 이른바 잘 깨달은 지혜 삼매 뇌성과, 치성하게 때를 여읜 바다 삼매 뇌성과, 일체 법에 자재한 삼매 뇌성과, 금강바퀴 삼매 뇌성과, 수미산 당기(幢旗) 삼매 뇌성과, 해인(海印)삼매 뇌성과, 해 등잔(日燈) 삼매 뇌성과,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환희케 하는 삼매 뇌성과, 무진장 삼매 뇌성과, 무너지지 않는 해탈의 힘 삼매 뇌성이니라.
불자여, 여래의 몸 구름 속에서 이와 같이 한량없이 차별한 삼매 뇌성을 내고는 장차 법의 비를 내리려 할 적에 먼저 상서(祥瑞)를 나타내어 중생을 깨우치느니라.
이른바 걸림 없는 큰 자비심으로 여래의 큰 지혜 바람둘레를 나타내니 이름이 ‘능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부사의한 환희심을 내어 기쁘게 함’이니라.
이 현상이 나타나니 모든 보살과 중생들의 몸과 마음이 다 상쾌하여지고 그런 뒤에 여래의 큰 법신 구름과 큰 자비 구름과 큰 부사의 구름으로부터 부사의하고 광대한 법의 비를 내려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느니라.
이른바 보리도량에 앉은 보살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은 ‘법계가 차별 없음’이니라.
최후의 몸 보살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이 ‘보살이 유희(遊戱)하는 여래의 비밀한 교법’이니라.
한 생에 얽매인 보살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은 ‘깨끗하고 넓은 광명’이니라.
정수리에 물 붓는 보살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은 ‘여래의 장엄거리로 장엄함’이니라.
법인[忍]을 얻은 보살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은 ‘공덕보배지혜 꽃이 피어 보살 대비(大悲)의 행이 끊이지 않음’이니라.
십주(十住) 십회향(十廻向) 십행(十行)보살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은 ‘눈앞에서 변화하는 깊은 문에 들어가 보살행을 닦으면서도 쉬지도 않고 고달프지도 않음’이니라.
처음 마음 낸 보살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이 ‘여래의 큰 자비행을 내어 중생을 구호함’이니라.
독각승(獨覺乘)을 구하는 중생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은 ‘연기법(緣起法)을 깊이 알고 이변(二邊)을 멀리 여의어 무너지지 않는 해탈의 과(果)를 얻음’이니라.
성문승(聲聞乘)을 구하는 중생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은 ‘큰 지혜검으로 모든 번뇌의 원수를 끊음’이니라.
착한 뿌리를 쌓되 결정하고 결정하지 못한 중생을 위하여 큰 법의 비를 내리니 이름은 ‘능히 갖가지 법문을 성취하여 크게 기뻐함’이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가 중생의 마음을 따라 이와 같이 넓고 큰 법의 비를 내려 온갖 그지없는 세계에 충만하니라.
불자여,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등각(正等覺)은 그 마음이 평등하여 법에 인색함이 없지마는 다만 중생들의 근기와 욕망이 같지 아니함을 따라서 내리는 법의 비에 차별이 있음을 보이느니라.
이것이 여래의 음성의 열째 모양이니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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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합(法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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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불자들이여
여래응정등각무상법왕(如來應正等覺無上法王)도 :여래 응 정등각 무상법왕, 부처님께서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그와 같이
욕이정법(欲以正法)으로 : 욕이정법으로써, 용왕이 그 비를 내릴 때 평등심으로써 비를 내리듯이 정법으로써
교화중생(敎化衆生)하사 : 중생을 교화하실 적에
선포신운(先布身雲)하야 : 먼저 법신의 구름을, 신운을 나타내시고
미부법계(彌覆法界)호대 : 미부법계하야, 가득할 미(彌)자 아미타불 미(彌)자 가득하게 덮는다. 미부법계라 법계를 가득하게 덮고는
수기낙욕(隨其樂欲)하야 : 그 중생들의 좋아함을 따라서 항순중생(恒順衆生)이라, 중생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보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사람, 만지고 싶은 사람, 맛보고 싶은 사람, 천차만별이다.
원래 부처님의 법비는 색깔이 없지만 중생이 전부 선글라스를 다른 걸 끼고 있기 때문에 색깔이 따로따로 보이는 수밖에 없다. 빨간 것을 좋아하는 사람, 노란 것을 좋아하는 사람 그 좋아함을 따라서
위현부동(爲現不同)이니라 : 나타냄이 같지 아니하다. 모양과 색깔이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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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부처님의 신운에 대해서 열 가지를 회통치는 부분이다.
소위혹위중생(所謂或爲衆生)하야 : 이른바 혹은 어떤 중생을 위해서는
현생신운(現生身雲)하며 :현(現) 나타낸다. 아주 생생하게 생신운, 살아있는 몸 구름을 나타낸다. 이것은 총체적으로 이야기한 것이고 이제 따로따로 네 개씩 보여준다.
먼저 바깥의 모양을 네 개 보여준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은 어떤 중생을 위해서는
현화신운(現化身雲)하며 : 화신(化身)구름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은 어떤 중생에게는
현역지신운(現力持身雲)하며 :힘으로 유지하는 몸 구름을 나타내 주기도 하고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 어떤 중생을 위해서는
현색신운(現色身雲)하며 : 색신 형상의 몸 구름을 나타내 주기도 하고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은 어떤 중생을 위해서는
현상호신운(現相好身雲)하며 :색신에는, 색에는 상이 있고, 상에는 호가 있다.
어떤 중생에게는 잘난 몸 구름을 나타낸다.
이것은 바깥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그렇게 잘 적어놓았다.
화신운이라고 하는 것도 그랬다.
그다음에 이제 안쪽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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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은 어떤 중생에게는
현복덕신운(現福德身雲)하며 : 현복덕신운이라. 복덕을 지으려면 집착없이 바라밀행으로 복을 지어야 할 것이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은 어떤 중생에게는
현지혜신운(現智慧身雲)하며 : 현지혜신운이라, 지혜가 있으면 어떤 아상 인상, 상이 없는 방편을 잘 나타내려고 하면 지혜의 몸을 갖춰야 할 것이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은 어떤 중생에게는
현제력불가괴신운(現諸力不可壞身雲)하며 : 제력 모든 힘, 어떤 힘이든지 깨뜨릴 수 없는 흔들리지 않는 무생법인의 요지부동하는 몸 구름을 나타낸다. 가위로 자르고 칼로 찌르고 베고 하더라도 상처가 안 나는 법신이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 어떤 중생에게는
현무외신운(現無畏身雲)하며 : 두려움이 없는 몸 구름을 나타낸다. 우리는 어떤 때 두려움이 있는가? 결정을 해버리면 두려움이 없는데 결정을 못하고 의심이 있을 때는 항상 두렵다.
여기서 무외신이라고 하는 것은 정도와 사도에 대해서 삿된 것을 확실히 가려낼 힘이 있다는 것이다.
흑백을 딱 쳐다보고 흰 것과 검은 것을 누가 못 가리는가. 그런데 집착 때문에 머뭇머뭇해서 검은 것도 살짝 페인트 발라서 흰 것이라 해버린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 어떤 중생에게는
현법계신운(現法界身雲)이니라 : 법계의 몸 구름을 나타낸다. 이 법계라고 하는 것이 바로 법성에 딱 들어맞는 것, 칭합하는 것, 시방삼세가 ‘일상(一相)은 무상(無相)이다, 한 모습이다’ 이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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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는 우리가 아까 공부할 때 뭐부터 했는가?
구름 끝나고 번개 끝나고 우레 끝나고 바람 끝나고 그다음에 비가 내린다, 이렇게 나온다고 하였다.
그 순서대로 쪽 따라가면 되겠다.
번갯불이 번쩍한다는 것은 우리 몸속에 그냥 맹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조명이 비추고 밝은 광명이 확실히 있다, 이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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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如來)가 : 여래께서
이여시등무량신운(以如是等無量身雲)으로 :이와 같은 등 한량없는 몸의 구름으로
보부시방일체세계(普覆十方一切世界)하고 : 널리 듣는다. 시방 일체 세계를 두루 덮고는
수제중생(隨諸衆生)의 : 모든 중생들의
소락각별(所樂各別)하사 : 좋아하는 바가 각기 달라서 그 다른 것을 따라서, 모든 중생의 각기 좋아함을 따라서
시현종종광명전광(示現種種光明電光)하나니 : 가지가지의 광명전광, 광명의 찬란한 번갯불, 번갯빛을 나타낸다.
그 번갯불 열 개가 뭔가? 조목조목 열 개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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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있고 구름을 의지해서 번갯불이 번쩍거리고 번갯불이 번쩍거린 다음에 우레와 같은 사자후를 터뜨려서 법문을 하게 되어서 여러 잡소리들을 다 잠재워 버린다.
여기서 번갯불이 번쩍하는 것도 쪼잔한 소견머리라든지 삐뚫은 세속의 지식들은 본심, 본지풍광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소위혹위중생(所謂或爲衆生)하야 : 혹은 어떤 중생에게는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 빛을 보일 정도의 번갯불을 번쩍거리는데
명무소부지(名無所不至)요 : 무소부지라, 이르지 아니하는 바가 없다. 아주 자비로와야 여기저기 모든 곳에 다 간다. 치우쳐서 한두 군데 단골집만 가는 것은 아주 무자비한 사람들이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위중생하야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 번갯불을 번쩍번쩍해서
명무변광명(名無邊光明)이요 : 무변광명이라. 어떤 사람들은 무변한 광명의 번갯불을 번쩍거려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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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 어떤 중생들에게는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 번갯불을 번쩍거릴 때
명입불비밀법(名入佛秘密法)이요 : 이름이 부처님의 비밀법에 들어갈 만하다. 사람이 인욕심(忍辱心)이 많고 이해타산이 없으면 부처님의 비밀법에 들어갈만한데 이해타산이 족제비같이 많은 사람에게는 비밀법을 설해줘 봐야 보이지도 않고 영험도 없고 가치도 모른다.
신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한테 80권 화엄경을 갖다 줘봐야 졸업할 때는 다 놔두고 간다.
우리 도서관에 80권 화엄경이 득실득실 쌓여있다. 운문사에 가서 강의하면서 보면 도서관에 짐이 무거우니까 그랬을 것이다.
‘술은 한 말 지고는 못가도 먹고는 간다, 책을 못 지고 가면 다 읽고 가야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위중생하야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 광명전광을 나타내되
명영현광명(名影現光明)이요 : 이름은 그림자를 나타내는 광명이라. 그림자는 끝도 없는 새끼를 친다.
허공에는 그림자가 가득히 있는데도 안 비칠 뿐이다. 여기 책상에도 그림자가 가득히 비쳐있는데 탁해서 안 나타나는 것이다.
거울 같은 데는 지가 반짝거리니까 그림자가 나타난다. 수행자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삼매의 물이 있는 사람은 달그림자가 뜨는데 삼매가 없이 빼짝 마른 강에 무슨 달이 뜨겠는가? 빼짝 마른 강에는 달이 안 뜬다. 지혜 없이 빼짝 마르게 살다 가는 것이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위중생하야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 현광명전광하니
명광명조요(名光明照耀)요 : 이름이 광명조요라. 광명으로 환하다. 우리의 본지풍광을 각각 중생의 수준에 맞춰서 나타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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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위중생하야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 나타내는 아주 빛나는 광명의 전광, 번개가 있으니
명입무진다라니문(名入無盡陀羅尼門)이요 : 그 이름은 입무진다라니문이라. 끝도 없는 다라니 총지(總持)다. 이렇게 우리가 야무지게 듣는 것, 보는 것, 맛보는 것이 흩어지지 않고 이렇게 분명하게 명료하게 있지 않은가? 이 다라니가 무진보배에 드는 것이고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위중생하야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 현광명전광하니
명정념불란(名正念不亂)이요 : 이름이 정념불란이라. 바른 생각이 어지럽지 않는 것이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은 중생에게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이 본지풍광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명구경불괴(名究竟不壞)요 : 그것은 구경불괴라. 끝까지 완벽하게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금강삼매에 들어가서 절대 무너지지 않고 모든 번뇌를 벗어난 출전진여가 되고 출전여래가 되어 버리니까 아무리 부수려고 해도 안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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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위중생하여 어떤 중생에게는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 나타나는 아주 찬란한 번개가 있으니
명순입제취(名順入諸趣)요 :그 이름이 순입제취라. 예를 들어서 지장보살님이 지옥에 가시든지 어디를 가더라도 힘들거나 즐겁거나 이런 데를 마다하지 않고 중생의 수준을 따라서 간다는 말이다.
혹위중생(或爲衆生)하야 : 혹위중생하되
현광명전광(現光明電光)하니 : 아주 찬란하게 나타내는 빛나는 광명의 번갯불, 번개광명을 나타내니
명만일체원(名滿一切願)하야 : 이름이 일체의 원을 원만하게 해서 모든 소원을 다 이룰 수 있게 원만성취하도록 해서
개령환희(皆令歡喜)니라 : 모두로 하여금 환희하게 한다.
그다음에 구름이 나타나고 번개가 쳤으니까 우레로 넘어가겠다. 우레를 해서 빙소와해(氷消瓦解)라. 우리 마음이 꽁꽁 얼고 얼굴이 꽁꽁 얼어있던 것을 신경치료를 해서 확 풀어버려야 한다. 빙소와해라. 얼음 녹듯이 녹인다.
우레가 울고 나면, 우레가 한번 동지 무렵 지나서 좀 울고 나면, 언 땅이 살살 풀려서 봄이 되면 농사를 지을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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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응정등각(如來應正等覺)이 : 부처님께서 여래 응 정등각께서
현여시등무량광명전광이(現如是等無量光明電光已)에 : 이와 같은 등의 한량이 없는 한두 개도 아니고 수두루 빽빽한 광명의 번갯불을 번쩍번쩍해서 나타냈다.
조그만 전구, 가로등 정도 수준이 아니다.
번갯불을 한 번 팡 쳐버리면 부산 시내 전체가 밝다. 그런 것처럼
부수중생심지소락(復隨衆生心之所樂)하사 : 다시 중생심의 즐거운 바를 따라서
출생무량삼매뇌성(出生無量三昧雷聲)하나니 : 출생무량삼매뇌성하나니, 한량없는 삼매의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낸다.
여기서 뇌성, 우레 할 때는 삼매가 계속 들어간다.
삼매가 계속 들어가는 것은 ‘설법하기 전에는 반드시 입정을 하라’ 이런 뜻이다.
법문을 설하든지, 법문을 청법하기 전에는 반드시 삼매로 제정신을 차려서 들어야 된다, 이런 뜻이 되겠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레의 소리가 있는데 우레 앞에는 전부 삼매가 다 한 꼭지씩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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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선각지삼매뇌성(所謂善覺智三昧雷聲)과 : 이른바 잘 깨닫는 선각지 잘 깨닫는 지혜의 삼매의 뇌성과
치연이구해삼매뇌성(熾然離垢海三昧雷聲)과 :아주 치성하게 확실하게 번뇌의 때구정물의 바다를 다 떨쳐버리는, 벗어나버리는 삼매의 뇌성과
일체법자재삼매뇌성(一切法自在三昧雷聲)과 : 일체법에 대해서 유위법이 됐든 무위법이 됐든 어디 가든 출세간이든 세간법이든 자유자재한 것, 온갖 법의 자유자재한 삼매의 뇌성과, 묶어놔도 자유롭고, 풀어놔도 자유롭고, 묶여도 고통스럽지 않고, 풀려나와도 방자하지 않고
금강륜삼매뇌성(金剛輪三昧雷聲)과 : 금강륜 아주 튼튼한 삼매의 뇌성과 누가 깨뜨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
수미산당삼매뇌성(須彌山幢三昧雷聲)과 : 높고도 높아서 까마득하게 높은 삼매 우레와 같은 음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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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삼매뇌성(海印三昧雷聲)과 : 해인삼매, 온 바다에 통째로 세상 통째로 비칠 수 있는 해인 바다의 도장 같은 삼매의 뇌성과
일일등삼매뇌성(日一燈三昧雷聲)과 :일일등삼매라, 태양 하나 떠버리고 나면 가로등이고 LED고 아무 소용 없지 않은가. 해 한번 떠버리고 나면 일등이 되어버린 깊은 삼매에 들어가 버리면, 다른 명상을 해서 좀 고요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보령중생환희삼매뇌성(普令衆生歡喜三昧雷聲)과 : 중생들로 하여금 환희하게 하는 삼매라.
화엄경에는 빼먹지 않는 것이 있다. 가끔씩 잊어먹을만 하면 중생을 끌어당겨와서 ‘너희는 중생제도 해야된다, 환희시켜야 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중생 이익을 줘야 된다.
무진장삼매뇌성(無盡藏三昧雷聲)과 : 무진장 삼매 우레의 소리와
불괴해탈력삼매뇌성(不壞解脫力三昧雷聲)이니라 : 불괴해탈력 남들이 무너뜨릴 수 없는, 파괴할 수 없는 해탈력의 삼매의 우레와 같은 소리라.
또 한 번 짚어보겠다.
처음에는 구름 했고 그다음에는 전기 했고 우레 했고 그다음에 바람이 나왔다. 계속 반복반복이다.
이것은 현수품에도 똑같이 나온다.
신기하게 우리는 배웠는데 다 까먹는다.
현수품에는 게송으로 아주 정리가 잘되어 있다.
참고로 지난 시간에 살짝 소개시켜 드렸지만 현수품의 이 대목을 같이 보시면 여래출현품이 조금 이해가 쉽다.
현수품에는 아주 간략하게 화두처럼 칠언게송으로 딱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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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회통 친다. 바람이라고 하는 건 도대체 뭘 상징하는 것인가?
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신운중(如來身雲中)에 : 여래장신, 여래 법신의 구름 속에서
출여시등무량차별삼매뇌성이(出如是等無量差別三昧雷聲已)하시고 : 이와 같은 등의 무량삼매 내에서 한량없이 가지각색의 다양하고 차별한 삼매의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시고는 드디어 장차 비 내리기 전에 바람을 한번 쓱 부는 것이다.
장강법우(將降法雨)에 : 장차 법비를 내리려고 할 때
선현서상(先現瑞相)하사 : 선현서상이라. 먼저 아주 찬란하고 장엄한 모습, 서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중생들로 하여금 한번 봐봐라.
개오중생(開悟衆生)하나니 : 개오중생이라. 중생을 깨우치나니, 그 서상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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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종무장애대자비심(所謂從無障礙大慈悲心)하야 :이른바 소위 걸림 없는 큰 자비심을 따라서 무엇을 나타내는가? 자비심으로부터, 대자비심은 대삼매, 큰 삼매다. 이 자비심으로부터 계속 이어나오는 것이다.
현어여래대지풍륜(現於如來大智風輪)하시니 : 현(現) 나타낸다 무엇을? 여래의 대지풍륜이라, 삼매가 있어야 지혜가 돋아난다.
그래서 대자비심이 있으니까, 탐진치가 없고, 번뇌가 없으니까 삼매에 들 수 있을 것이다.
현어여래대지풍륜이라.
대지혜의 바람 둘레를 나타내니, 여기도 즉사표법(卽事表法)이라. 바람이나 구름이나 우레나 천둥 번개 이와 같은 사(事)를 표시해서 이치를 나타내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명능령일체중생(名能令一切衆生)으로 :그래서 능령(能令)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뭐뭐 할 수 있게 한다.
생부사의환희적열(生不思議歡喜適悅)이니라 : 불가사의한 환희심을 내어서 아주 기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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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현이(此相現已)에 :이 상이 나타날 때 이러한 아름다운 서상이 나타날 때
일체보살(一切菩薩)과 :일체 보살과
급제중생(及諸衆生)의 : 모든 중생의
신지여심(身之與心)이 : 몸과 마음이
개득청량(皆得淸凉)이어든 :개득청량이라. 바람이 부니까, 선풍기 바람이 부니까 시원하다. ‘청량하다’는 것에 줄을 그어놔도 좋다. 번뇌가 다 소멸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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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후(然後)에 : 그러한 후에
종여래대법신운(從如來大法身雲)과 : 여래, 부처님의 대법신운과 이러면 이제 ‘아 구름이 법신이었구나’하는 것이다.
대자비운(大慈悲雲)과 : 대자비운과
대부사의운(大不思議雲)하야: 대부사의 구름으로부터 무엇을 내리느냐?
우부사의광대법우(雨不思議廣大法雨)하사 : 불가사의한 광대한 법비, 감로법비를 설법해서, 수사적으로 법비는 성불을 의미한다. 장차 성불한다. 법비를 내려서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으로 :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신심청정(身心淸淨)하나니 : 몸과 마음이 청정케 한다.
오온(五蘊)이 개공(皆空)하게 해서 편안하게 한다.
드디어 마지막에 다섯 번째 법우, 법비를 내리게 된다.
탐현기에 보면 여기서부터는 등각(等覺)이라고 해놓았다.
앞에는 삼현십지(三賢十地)를 이야기했고, 여기서는 등각이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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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위좌보리장보살(所謂爲坐菩提場菩薩)하사 : 이른바 보리장에 앉은 보살을 위하여, 좌보리장보살 소위 보리장에 앉아 있는 보살을 위하여, 보리장에 앉아 있으면 엔간히 됐다는 말이다. 보리수 아래 앉아 있으면 좀 이따가 몇 초 있다가 성불한다, 이 말씀이다.
보리장에 앉은 보살을 위하여, 보리장에 앉아 있다는 것은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곧 성불을 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성불할만한 사람에게 어떤 법을 내리느냐?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 우대법우하니, 법비를 내리는데 그 사람한테 걸맞는 맞춤형으로 딱 주는데 뭐냐?
명법계무차별(名明法界無差別)이요 : 이름이 법계무차별이다. 성불하는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법계에 무차별의 법비가 좀 내려야 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태양이 쑥 떠오르는데 산이 좀 높다고 가로막아봤자 태양이 뜨는 것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떤 높은 산, 오악이 있다고 해도, 태양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보리수 아래 앉았다고 하면, 순금이 되는 것이다. 놋그릇도 아니고 순금이 좀을 먹는다거나 녹이 슨다거나 이런 일은 없다.
여기서는 마군을 완전히 항복시켜서 등각위에 오르는 상태다. 보리장에 앉은 보살에게 대법비를 내려준다고 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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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최후신보살(爲最後身菩薩)하사 : 맨 나중 최후신의 보살, 맨 나중 몸보살을 위해서는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 큰 법비를 내리는데
명보살유희여래비밀교(名菩薩遊戲如來秘密敎)요 : 이름은 보살유희여래비밀교라.
여기서 최후신보살, 최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입태해서 출생해서 나왔지만, 태에서 나와서는 아직 도량에는 앉지 못한 보살을 말한다. 출생은 했는데 도량에는 못 앉아서 비밀지에 들어간다. 비밀지에 들어가고, 유희라는 말씀은 완전삼매를 말한다. 유희가 완전삼매가 되면 유희 다음에 붙는 말이 항상 경전에서는 신통이다.
유희신통 그래서 유희신통이 비밀신통이다.
그러니까 여래비밀신통이 다 똑같은 뜻이다.
여기서 부처님의 비밀한 가르침, 밀교라고 하는 것, 불미밀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비밀스러운 지혜에 들어간다, 하는 뜻이다.
유희라고 하는 것은 오락하면서 희희낙락 웃는 것도 오락이고, 이것이 자유자재한 것은 대신통법이라.
여기서는 대신통법은 아까 나왔던 저기 일번에서 누구였나? 보리장에 앉은 보살이나 여기 최후신이니 하는 보살들은 흔히 등각(等覺)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위일생소계보살(爲一生所繫菩薩)하사 : 일생보처(一生補處)라고 한다. 한 생만 소계(所繫) 매인 바의 보살, 한 생만 끝나면 성불해 버리는 그 보살을 위해서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또 큰 법비를 내리니 한 분은 이미 도량에 앉아 보리수 아래 앉았고, 한 분은 태어나기는 했지만 보리수 아래는 앉지 못했고, 한 분은 아직도 한 생은 매여 있고 한 생을 노력해야 된다, 이 말이잖은가? 그분을 위해 법비를 내리니
명청정보광명(名淸淨普光明)이요 : 이름이 청정보광명이다. 일생소계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태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 생을 더해야 태에 들어간다, 이 말이다.
일생보처라고 하는 건 아직 태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다.
옛날 어른들은 그런 것을 치밀하게 공부를 하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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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관정보살(爲灌頂菩薩)하사 :위관정보살이라. 관정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에다가, 정수리에 물을 붓는 것이니까 곧 부처님이 된다, 이런 말씀이다.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큰 법비를 내리니
명여래장엄구소장엄(名如來莊嚴具所莊嚴)이요 :이름이 여래의 장엄거리로 장엄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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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득인보살(爲得忍菩薩)하사 : 법인을 얻은 보살, 지혜를 인(忍)이라고 한다. 지혜를 인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을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많이 가니까 나중에 여유가 되면 자세하게 유인물로 만들어서 여러분들께 간략하게 한 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다.
흔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든지 여향인(如響忍)이라든지 인(忍)이 있잖은가. 화엄경에는 또 십인품(十忍品)이 있잖은가? 십인품을 열 가지 지혜라고 한다.
그러면 십인품 앞에는 반드시 뭐가 있어야 되겠는가? 십정품(十定品)이 있어야 된다. 선정으로 인해서 지혜가 돋아나기 때문이다.
십정(十定) 십통(十通) 십인품(十忍品) 이 세 가지는 7회차 설법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 기초 초석이 다져지고서 건물이 완성되는 것이 보현행품(普賢行品)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이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여래출현품은 7회차 설법의 완성이다. 완전한 지혜를 인(忍)이라고 하는데, 법인(法印)이다, 중생인(衆生忍)이다,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다 아시겠지만 또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나중에 한번 더 정리해 놓겠다.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 큰 대법우를 비 내리니
명공덕보지혜화개부(名功德寶智慧華開敷)하야 :이름이 공덕보지혜화개부다. 지혜의 꽃이란 말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앞에 무슨 자가 있는가? 참을 인(忍)자를 같이 물고 있는 것이다. 공덕 보배 지혜 꽃이 피어서
부단보살대비행(不斷菩薩大悲行)이요 : 보살의 대비행을 끊지 않는다. 보살의 자비행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안에서 지혜가 있기 때문에, 구분해 낼 수 있는 방편을 쓰기 때문에 끊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공덕보(功德寶) 공덕의 보배, 그렇게 딱 끊어서 읽어야 된다. 공덕보(功德寶) 지혜화(智慧華) 잘못 끊어 읽으면 골치 아프다.
공덕은 귀하기 때문에 뭐라고 해놓았는가 하면 공덕보 보배라고 했다. 여기서 지혜는 어떻게 비유했는가 하면 ‘지혜는 꽃처럼 피어난다’ 지혜롭게 살면 꽃처럼 피어난다고 해서 지혜화라고 했다.
이 두 가지 행, 부처님처럼 복과 지혜 두 개가 상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이 정도면 한 7지 정도는 돼야 된다고 한다. 그 밑으로 또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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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주향행보살(爲住向行菩薩)하사 : 여기서 십주(十住) 십회향(十廻向) 십행(十行)보살이라고 하는 수도 있지만 제가 꼭 찝어서 얘기하자면 저는 향행(向行)이라, 수행을 향한다, 아뇩다라 수행을 향하여 나아가는 행이라, 향행이라 그렇게 찌르겠다. 어디로 향하느냐? 바른 정각을 향하여 나아가는 행위라, 향행, 정행을 향해서 나아가는 데 머무르는 보살을 위하여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 큰 법비를 내리니 그 이유는 다음 대목에 나온다.
명입현전변화심심문(名入現前變化甚深門)하야 : 그 이름이 뭐냐? 현전 눈앞에서 변화하는 심심한 매우 깊은 법문을 나타내어서
이행보살행(而行菩薩行)호대 : 이 보살행을 행하되
무휴식무피염(無休息無疲厭)이요 : 무휴식무피염이라. 쉬는 것도 없고, 피염이라.
솜씨가 깊어지면 자기가 하는 일이 싫어지지 않는다.
붓글씨도 처음에 배울 때는 조금 싫다가 완전히 명필이 되어버리면 그것이 업이 되어서 싫지 않고 즐긴다.
축구선수도 처음에 운동으로 축구를 할 때 잘 안될 때는 힘들다가 완전히 프로가 되면 싫어하지 않는다.
화엄경도 역부역시다.
중생을 위한 자비심도 스스로 행하는데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깊이 들어간다. 자기 스스로 싫어하지 않아야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불피염(不疲厭)이라고 하기도 하고 여기는 무피염(無疲厭)이라고 하였다. 이타행, 남을 위해 남을 이롭게 하는 데 피곤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행하는 것에 대해서 싫어하지도 않는 것이 화엄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무피염심이다.
우리가 이 삼복더위에 무휴식무피염 하는 것이 경전을 못 봤다 하더라도 솜씨가 깊어진 것이다.
이 더운데 8월달 딱 하루만 쉬어버리면 참 좋겠는데 8월달 하루를 안 쉰다. 그 하루 차이가 어디 한 천년의 차이를 내는 것 같다. 지우개로 싹 지워버리고 딱 8월달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다음 대목은 조금 단계를 낮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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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초발심보살(爲初發心菩薩)하사 :처음 발심을 낸 보살은 초발심 보살은 십주 보살이다.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 초발심주에서 비 내리는 것은 어떠냐?
명출생여래대자비행(名出生如來大慈悲行)하야 : 이름이 여래에 대해 자비행을 내어서
구호중생(救護衆生)이요 : 중생을 구한다. 중생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흔히 우리가 잘 이야기하는 것이 정혜쌍수(定慧雙修)라고, 지관쌍수(止觀雙修)가 처음으로 일어나는 자리가 바로 여기 십주초발심이다.
정혜쌍수가 일어나는 자리, 그래서 초발심공덕품에 보면 자세하게 이야기해 놓았다.
범행품 말미에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라고 하는 대목이 그 대목이 되겠다.
초발심 때 지관쌍수, 정혜쌍수를 해서 정각을 이룬다고 하는 뜻이 거기에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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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독각승중생(爲求獨覺乘衆生)하사 : 이제 보살은 끝났고 보살보다 조금 수준이 낮은 데는 어디로 내려왔는가? 독각으로 내려왔다. 조금 가면 또 성문으로 내려가고 그렇게 된다. 앞에서는 이렇게 안 쓰고 순류로 해왔다.
여기서는 역류로 나가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전부 역류로 역차순으로 설명을 한다. 그러니까 번뇌로 휘말려 들어가는 것은 강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듯이 설명한다.
우리 경전에 나오는 것처럼 수행을 해서 하나하나 단계로 올라가는 것은 연어가 모천을 찾아가는 것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우리 수다원과(須陀洹果)를 뭐라 하는가?
입류라 밑으로 내려가는 입류가 아니고 역류를 입류라 한다.
역류 거슬러 올라간다. 십지보살부터는 오온이 개공하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뜻이다.
여기서 설명하는 것도 제일 좋은 것 보리수 아래 앉았다, 최후신이다, 일생보처다, 이렇게 해서 쭉쭉 내려온다.
그다음은 역차순으로 순류를 설명해 놓은 것이다.
독각승을 구하는 중생을 위해서는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 큰 법비를 내리니
명심지연기법(名深知緣起法)하야 : 이름이 연기법을 알고, 12연기법을 알고
원리이변(遠離二邊)하야 : 그 이변을 여의어서
득불괴해탈과(得不壞解脫果)요 : 무너지지 않는 해탈의 과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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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성문승중생(爲求聲聞乘衆生)하사 :성문승을 구하는 중생을 위해서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큰 법비를 내리니
명이대지혜검(名以大智慧劒)으로 :이름이 큰 지혜검으로
단일체번뇌원(斷一切煩惱怨)이요 : 모든 번뇌의 원수를 끊어 버린다. 고집멸도를 확 잘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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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적집선근결정불결정중생(爲積集善根決定不決定衆生)하사 : 그다음에 열 번째 위적집선근이라. 선근을 쌓되 결정 불결정 중생이라. 미적미적거리는 것을 유예(猶豫)라고 한다. 족제비처럼 의심이 많아서 신심이 없고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정 중생을 우리는 정정취(正定聚)라고 하고, 불결정을 부정취(不定聚) 중생이라 한다.
기신론(起信論) 같은 경우는 부정취 중생을 위해서 설했다고 했다. 정정취 중생은 자기가 다 알아서 극락에 가니까 설할 필요할 필요가 없다. 사정취(邪定聚) 중생은 설해도 말을 안 들어서 잘 모른다.
여기서 결정 불결정 중생이 선근을 쌓는다고 했는데, 화엄경 속에 이런 것이 자주 나온다.
백정법(白淨法)이라고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희고 깨끗한 법이라는데 백정법 전에 우리 먼저 알아야 될 것이 백법과 흑법과 비흑백법이다.
백법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유루의 선근 공덕 착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세간에서 착하게 사는 것이다.
세간에서 못되게 탐진치를 일으켜서 아주 악독하게 교활하게 사는 것을 흑법이라 한다.
백법과 흑법 그러니까 착한 것도 부류를 두 개로 나눈다.
백법은 유루선근이고 백정법 할 때의 정법(淨法)은 무루선근법이다.
비흑백법은 어떤가? 비흑백법이 되면 진여에 들어가서는 선악이 없다.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이라.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을 우리는 비흑백법이라고 하고, 이것을 백법이라 하지 않고 백정법이라고 한다.
경전을 보다 보면 화엄경 속에서 백정법이 여러 번 나오게 되는데 구분을 하면 좋다.
백법을 적집하고 이런 얘기가 많이 나왔잖은가?
백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부처님의 입장에서 진(眞)도 망(妄)도 다 수용한다. 저 바다가 똥물이고 샘물이고 좋은 물이고 나쁜 물이고 혼탁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것과 똑같다. 허공이 모났든지 뾰족하든지 둥글든지 다 수용하는 것이 바로 백정법이다.
부처님의 입장, 백정법(白淨法)에서는 각(覺)도 없고 불각(不覺)도 없다. 중생이 곧 부처고 부처가 곧 중생이다.
그러나 생멸법에 있어서는 각은 각이고 불각은 불각이다.
진여법에 있어서는 각과 불각이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진여법에서는 오롯이 여실공(如實空)과 여실불공(如實不空)이 있을 뿐이다.
생멸법에서 각과 불각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다. 여기도 결정, 불결정하는 것들은 전부 유루법이다.
부처님 입장에서는 결정할 것도 없고 안 결정할 것도 없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데 무슨 결정이 있고 안 결정이 있는가.
선근을 쌓을 때 결정하고, 결정하지 못한 중생을 위해서 법비를 내린다. 아주 하수들을 위해서 하는 소리다.
우대법우(雨大法雨)하니 : 큰 법비를 내니
명능령성취종종법문(名能令成就種種法門)하야 :이름이 갖가지 법문을 성취하여
생대환희(生大歡喜)니라 : 크게 기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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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제불여래(諸佛如來)가 : 모든 부처님께서
수중생심(隨衆生心)하야 :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우여시등광대법우(雨如是等廣大法雨)하사 : 이와 같은 광대한 법비를 내리되
충만일체무변세계(充滿一切無邊世界)하나니 : 온갖 일체의 그지없는 세계에 가득하거든, 충만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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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응정등각(如來應正等覺)이 : 여래 응공 정등각은
기심평등(其心平等)하야 : 그 마음이 평등하야
어법무린(於法無悋)이로대 : 법에 인색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나는 깨달았는데 내 깨달은 것을 남이 훔쳐갈까 싶어서 나는 법문 안 한다’ 이런 사람이 있다.
깨닫는 것은 남을 위해서 법문하라고 깨닫는 것이다.
그러면 확실한 건 뭐냐? 못 깨달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깨닫고 나서 부처님도 법을 아끼려고 도망가시려고 했다. 그러니까 옆에서 사천왕, 제석천왕들이 와서 ‘부처님이 이제까지 얻어 잡순 것은 어쩌고 도망가시면 어쩌냐’고 ‘본전 내놓으십시오’ 이래서 부처님이 법문 하신 것이 아닌가?
책에는 딱 그렇게 되어 있다.
부처님이 먹튀가 되실 뻔했다.
그다음 대목이 법에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법에 아낌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뭐 조금이라도 깨달은 것이 있으면 상표 등록을 해 버린다. 원래 부처님께서는 심(心)이 평등하여 마음이 백정법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어떤가? 백법도 없고 흑법도 없고 무차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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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이중생(但以衆生)의 : 그러나 다만 단이중생의
근욕부동(根欲不同)으로 :근기와 욕망이 같지 않다.
그릇이 받아들일 그릇이 안 된다.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 들고 와서 포항제철 용광로를 받으려고 달려드니까 ‘아이고 안 된다, 안 된다, 좀 다른 그릇으로 바꿔 오라’ 이런 말이 있잖은가.
근기와 욕망이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중생의 수준에 맞춰서
소우법우(所雨法雨)가 : 소금비도 내리고 물비도 내리고 꽃비도 내리고 보배비도 내리고 옥비도 내리고 다 내리는 것이다. 소우법우가
시유차별(示有差別)이니라 : 그 차별이 있음을 보이니라
*
시위여래음성제십상(是爲如來音聲第十相)이니 : 이것이 여래 음성의 제 열 번째 모양이니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제보살마살이
응여시지(應如是知)니라 :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그다음에 법으로써 모두 총결하는 대목이 나온다.
(3) 總結
復次佛子야 應知如來音聲이 有十種無量이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如虛空界無量하야 至一切處故며 如法界無量하야 無所不徧故며 如衆生界無量하야 令一切心喜故며 如諸業無量하야 說其果報故며 如煩惱無量하야 悉令除滅故며 如衆生言音無量하야 隨解令聞故며 如衆生欲解無量하야 普觀救度故며
如三世無量하야 無有邊際故며 如智慧無量하야 分別一切故며 如佛境界無量하야 入佛法界故니라
佛子야 如來應正等覺音聲이 成就如是等阿僧祗無量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니라
“또 불자여, 마땅히 알라. 여래의 음성에 열 가지 한량없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허공계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온갖 곳에 이르는 연고며, 법계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두루 하지 않는 데가 없는 연고며, 중생계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여럿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연고이니라.
모든 업과 같이 한량이 없으니 그 과보를 말하는 연고며, 번뇌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모두 없애게 하는 연고며, 중생의 말과 같이 한량이 없으니 이해하는 대로 듣게 하는 연고며, 중생의 욕망과 이해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널리 살펴서 제도하는 연고이니라.
삼세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끝닿은 데가 없는 연고며, 지혜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모든 것을 분별하는 연고며, 부처님의 경계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부처님의 법계에 들어가는 연고이니라.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의 음성은 이와 같이 아승지 한량없음을 성취하였으니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
총결(總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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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또한 불자야
응지여래음성(應知如來音聲)이 : 마땅히 알아라
유십종무량(有十種無量)이니 : 여래의 음성에는 열 가지의 한량없음이 있다.
하등(何等)이 :어떠한 것이
위십(爲十)고 : 위십고
소위여허공계무량(所謂如虛空界無量)하야 : 부처님의 무량한 음성이냐? 지금까지 열 가지를 1번부터 다 이야기하고 여기 총결로 마지막으로 묶어서 회통 시키는 것이다.
지일체처고(至一切處故)며 : 일체처에 이르는 연고며
여법계무량(如法界無量)하야 : 그것이 여법계하야 허공계처럼 일체처에 허공처럼 못 가는 데가 없고
소위불변고(無所不徧故)며 :법계가 무변한 것처럼 두루하지 않는 데가 없는 연고이고
여중생계무량(如衆生界無量)하야 : 중생계가 끝도 없는 것처럼
영일체심희고(令一切心喜故)며 : 일체 중생의 마음을 다 기쁘게 하는 연고며, 무량한 그 중생들을 다 기쁘게 하는 연고다.
그래서 부처님을 무진장이다, 여래장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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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제업무량(如諸業無量)하야 :모든 업과 같이 한량이 없으니 업이 얼마나 많은가?
설기과보고(說其果報故)며 : 그 과보를 다 설하는 연고며
여번뇌무량(如煩惱無量)하야 : 여번뇌무량하며, 우리가 흔히 얘기했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풀어 놓은 것이 이런 것들이 되겠다. 번뇌와 같이 한량없으니
실령제멸고(悉令除滅故)며 : 모두 다 그 번뇌를 어떻게든지 다 없애는 연고며
여중생언음무량(如衆生言音無量)하야 : 중생의 다양한 말과 생각이 한량이 없는데
수해령문고(隨解令聞故)며 : 수해 그 이해하는 바를 따라서, 수해연별(受解緣別)이라고 이해하는 폭과 인연이 다르다 하지 않는가.
그걸 다 알아듣게 설명한다.
한글 모르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림이라도 그려서 설명해야 한다.
여중생욕해무량(如衆生欲解無量)하야 :중생은 욕망과 이해가 한량이 없이 무량한데
보관구도고(普觀救度故)며 : 그것을 널리 관해서 그 중생들을 일일이 다 구하고 제도하고자 하는 연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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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삼세무량(如三世無量)하야 : 마치 삼세와 과거 현재 미래가 얼마나 세월이 무량한가. 부처님의 설법도, 음성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삼세도 무량하야
무유변제고(無有邊際故)며 :무유변제라. 끝 다 한 데가 없는 연고이고
여지혜무량(如智慧無量)하야 : 또 부처님의 어떤 일반적 지혜가 무량하여, 지혜가 한량이 없으니
분별일체고(分別一切故)며 : 분별일체고라. 모든 것을 분별하지 못할 것이 없다. 미주알고주알 다 안다는 것이다.
여불경계무량(如佛境界無量)하야 : 부처님의 경계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입불법계고(入佛法界故)니라 : 부처님의 법계에 들어가는 까닭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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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응정등각음성(如來應正等覺音聲)이 : 여래 응 정등각 음성은
성취여시등아승지무량(成就如是等阿僧祗無量)이니 : 이와 같은 등 아승지무량을 아승지 한량없음을 성취하였으니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모든 보살마살이
응여시지(應如是知)니라 :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그다음을 조금 열어놓고, 유인물을 한번 읽고 오늘 회향해야 되지 않겠나 싶다.
(4) 十種譬喩의 重頌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三千世界將壞時에 衆生福力聲告言호대
四禪寂靜無諸苦라하야 令其聞已悉離欲하나니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이 이치를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삼천대천세계가 장차 무너질 때에
중생들의 복의 힘으로 소리가 있어
4선천은 고요하고 괴로움 없다 하니
그 말 듣고는 욕심을 떠나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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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종비유(十種譬喩)의 중송(重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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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爾時)에 :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이 : 보현보살마하살이
욕중명차의(欲重明此義)하사 : 이 이치를 거듭 밝히려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 게송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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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세계장괴시(三千世界將壞時)에 :삼천대천세계가 장차 무너지려면
중생복력성고언(衆生福力聲告言)호대 :중생들의 복력으로 그 소리가 있어
사선적정무제고(四禪寂靜無諸苦)라하야 : 사선천은 고요하고 적정하고 모든 고통이 없다 하니
영기문이실이욕(令其聞已悉離欲)하나니 : 그 말을 듣고 욕심을 떠나게 된다.
이것이 제1번을 할 때 배웠던 대목이다.
이 게송은 우리가 유인물을 한 번 보고 나중에 이해하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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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일등삼매뇌성?
@연기의 도리와 인생을 알고자 고맙습니다^^
일(일)등삼매뇌성 ᆢ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나무대방광불 화엄경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