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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1년 4월 30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10430토] 겉도는 교육행정에 신음하는 교육현장
학교의 절박한 문제는 학생인권조례나 창의적 체험학습 같은 게 아니다. 교육계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뜬구름 잡는 주장과 실험으로 춤추는 동안 학생과 교사들은 어설픈 이념과 성급한 개혁이 뒤범벅된 도떼기시장에서 표류하고 있다.
'개정교육과정, 학교는 몸살'이라는 제목으로 26일부터 4일간 한국일보에 연재된 교육기획은 겉도는 교육행정에 지향점 없이 떠도는 학교현장의 실상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의 2009 개정 교육과정은 교과부담 경감과 창의ㆍ인성교육 강화를 내세웠으나, 무리하게 1년이나 앞당겨 적용하면서 반발과 혼선을 낳고 있다. 교과부담이 오히려 늘었다는 응답이 64.5%, 창의적 체험학습의 효과를 부정하는 응답이 83%나 되는 한국교총의 설문은 이런 상황을 웅변한다.
교육과정이 9년간 11번 바뀌어 '보도블록보다 자주 교체된다'는 비아냥을 듣는다니 화가 치밀 정도다.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초등 4, 5, 6학년 사회, 역사, 과학, 실과 교과 내용이 곳곳에서 중복ㆍ누락되고, 땜질 수업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급변하는 지식과 사회적 요구를 신속하게 반영'하기 위해 2003년 교육과정 수시개정체제를 도입한 결과인데, 이념 과잉의 어쭙잖은 현대사 기술 외에 교과서 출판사 매출 올려준 일 말고 뭐 그리 대단한 발전이 있었나 싶다.
가장 개탄스러운 건 교과서다. 전반적으로 구성과 서술이 난삽하다. 문제가 되는 초등 6학년 사회 국정교과서 1장을 보면 '우리 경제의 특징'이라는 절에 밑도 끝도 없이 '자유와 경쟁'을 특징으로 내세운다. 다른 경제체제에 대한 설명도 없이 뭐가 특징이란 말인가. 그럴 바엔 '우리 경제의 기본 이념'을 절의 제목으로 해야 옳다. 초등 쓰기ㆍ읽기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마땅히 사물과 현상에 대해 관찰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감수성과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논술의 기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발과 집필, 감수 과정에 보다 높은 지성들의 참여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계에 정치 바람을 타는 선무당들이 판치게 된 게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이다. 이걸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한겨레신문 사설-20110430토] 카터 방북 성과, 부정적으로만 볼 일 아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일행이 그제 2박3일의 방북 일정을 마쳤다.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그에게 걸었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방북을 전후한 남북 양쪽의 기묘한 행태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남쪽은 카터 방북 전부터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강조했고, 북쪽도 진정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기회가 사라졌거나 새로운 장애가 나타난 건 아니다. 또 카터 방북은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북은 정상회담까지 포함해 전제조건 없이 남쪽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카터 방북단을 통해 남쪽에 전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쪽으로 오려던 일행을 초대소로 다시 불러 그런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그렇게 해서는 대화 제의의 진정성에 무게가 실리기 어렵고 성의 없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남의 일부 당국자와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북의 제의를 평가절하하면서 내용상 새로울 게 없다거나 제3자를 통한 전달방식 자체를 문제삼았다. 기대가 무산된 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며, 카터 방북단의 순수성을 폄훼하기도 했다. 방북 전부터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미리 못박거나,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태에 대한 사과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그거 보란 듯이 카터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부었다.
이번 북의 어정쩡한 행태는 두말할 것 없이 더 큰 것을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는 북 체제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남쪽의 강고한 태도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은 지난 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비망록을 통해 남이 전제조건을 고집할 경우 “대화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서로 일이 안되는 쪽을 미리 상정해 놓고 그쪽으로만 달려간 셈이다. 그래선 희망이 없다.
일부에서는 북의 제안을 “새롭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형태로나마 김 위원장이 남쪽에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화 의지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한쪽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더 구체적인 북의 제안을 기대하는 소리도 나온다. 남북 양쪽이 이런 변화의 싹들을 살려나갈 때 6자회담 3단계 접근안에도 탄력이 붙는 등 상황을 바꿔나갈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20110430토] 학생·학부모 부담 한계에 다다른 대학 등록금
연간 등록금이 800만원을 넘는 4년제 대학이 작년 34개에서 올해 50개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국·공립대는 443만3000원으로 작년보다 0.6%, 사립대는 768만6000원으로 2.29% 올랐다. 고려대 의학계열 같은 곳은 1279만6000원이나 된다. 임금근로자 1670만 명 중 40%가 월급 100만~200만원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이만한 금액을 여유 있게 낼 수 있는 가구가 350만 대학생 가정 중에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우리 대학들은 지난 10년간 경제위기 때 잠깐 빼고 매년 5~10%씩 등록금을 올려왔다. 2001년 1인당 연간 등록금은 국·공립대 241만원, 사립대 479만원이었다. 10년 새 60%(사립대)~84%가 오른 것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지금의 등록금 수준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등록금은 이렇게 올랐는데도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여전히 OECD 평균치 2배인 32.7명이나 되고, 기숙사 수용률은 원하는 학생들을 대충 수용할 수 있는 최소치인 25%에 한참 못 미치는 17.3%에 머무르고 있다. 학생들 입장에선 그 많은 등록금이 다 어디로 샜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대학의 고(高)등록금 구조는 예산의 40%(국립) ~65%(사립)를 등록금에 기대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사학 법인은 부지런히 발전기금을 모으고 수익용 재산을 잘 운용해서 학교를 지원해야 하지만,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땅을 사고 수백억원짜리 기념관·강당 건물을 지으면서 그 비용을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풍토가 뿌리가 깊다. 법인이 부담하게 돼 있는 교직원 의료보험료와 연금 등 법정부담금까지 버젓이 등록금으로 때우는 대학들이 숱하다.
상당수 사립대들은 일부러 예산을 부풀려 잡아놓고 그걸 근거로 등록금을 인상한 뒤, 남는 예산을 적립금으로 돌려놓고 이듬해에는 다시 예산을 키워 등록금을 인상하는 수단을 쓰기도 한다. 서울시내 한 사립대는 이런 방법으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400억~600억원씩을 남겼다고 한다. 2009년 기준 전국 149개 사립대 누적 적립금은 총 6조9000억원에 달했다. 이런 병폐가 고쳐지지 않고는 '인골탑(人骨塔)' 지경에 이른 등록금 고통을 덜 수도 없고 대학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10430토] ‘포르말린 사료’ 원유 정부 대처 안이했다
매일유업이 지난해 10월부터 ‘포르말린이 첨가된 호주산 사료(포르말린 사료)’를 먹인 젖소의 원유로 유아·어린이 전용 우유제품을 생산한 사실이 드러났다. 매일유업은 농림수산식품부가 12월 말부터 여러 차례 ‘포르말린 사료’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계속 사용해 왔다고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안전성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국내 전문기관의 우유제품 검사에서도 포르말린 성분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치보다 훨씬 낮게 검출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농식품부가 최근 포르말린 사료의 관련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자 비로소 지난주부터 사용을 중단했다. 유통업체들도 해당 제품 판매를 중단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포르말린 사료를 먹인 젖소 원유로 만든 우유제품의 유해성 여부다.
문제는 포르말린 사료 논란이 불거지자 매일유업이 보인 대응이다. 포르말린은 살충제, 방부제 등으로 사용되는 독극물이자 발암물질이어서 식품 사용에는 엄격히 규제되고 있는 물질이다. 현행 동물사료 관련법은 중금속 등 사료에 첨가할 수 없는 물질을 고시하고 있지만, 포르말린은 빠져 있다. 포르말린 사료의 사용을 금지할 법적 근거는 없는 셈이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농식품부가 지난해 말 포르말린 사료의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사용하지 말 것을 처음 권고한 만큼 일단 이를 따르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였다. 그런 매일유업이 어제 공식 입장 발표에서 “주무부서인 농식품부의 지침을 철저히 준수해 왔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다.
농식품부의 대처도 안이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 3월에야 국립축산과학원에 포르말린 사료의 유해성 검증을 의뢰했다. 가장 중요한 해당 우유제품의 안전성 검사는 손놓고 있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도 포르말린 사료 파문이 일고서야 시중에 유통 중인 주요 업체의 우유제품을 모두 수거해 성분조사에 나섰다. 매일유업이 사료는 물론 우유제품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다는 전문기관의 검사 결과를 내세워 농식품부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면 바로 이 같은 조치에 들어갔어야 했다. 문제의 우유제품이 유아와 어린이 전용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농식품부는 문제가 된 매일유업 제품에 대한 유해성 여부부터 철저히 밝혀야 한다. “다른 업체의 제품에서도 미량의 포르말린 성분이 검출됐다”는 매일유업 주장의 사실 여부도 확인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 국민의 먹을거리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신속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10430토] 서울 한복판 외국인관광객 피습이라니…
우리나라에 관광하러 온 외국인 여성이 인파가 북적이는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괴한에게 피습당했다. 도심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난 것은 처음이라 충격적이다. 지난 26일 초저녁 명동의 한 대형쇼핑몰 근처에서 주일 미국대사관에 근무하는 A(48)씨가 괴한에게 흉기로 복부를 세 차례 찔렸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행 중이던 직장동료의 도움으로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괴한은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달아났다.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추정된다지만 이래서야 외국인들이 안심하고 한국관광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무차별 습격이 재발하면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에서 발을 돌릴 것이다. 이웃 일본 등 외국에서도 무차별 습격 사건이 일어나긴 한다. 내·외국인을 안 가리는 이러한 범죄는 뚜렷한 동기가 없는 우발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실업난이나 사회 양극화 심화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양극화를 완화하고, 고용을 적극 창출해 잠재적 사회불만 세력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인 처방전이 될 수 있다. 정신병력자의 철저한 관리도 요청된다.
특히 이 사건이 외국인 적대 행위로 비치지 않게 해야 한다. 오히려 이번 일은 우리 사회 일각의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은 880만명이었다.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해 귀화한 외국인이 현재 10만명을 넘어섰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100만명을 웃돌고 있다. 외국인은 우리의 관광 수입을 늘려 주거나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해 주는 소중한 존재다. 관광객이나 국내거주 외국인들이 불필요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은 진심으로 껴안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열린 사회를 만들어 세계 속의 한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자.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430토] 풀무원은 두부에서 손 떼라는 中企 업종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기준에서 시장규모를 삭제했다. 당초 안대로 1000억~1조5000억원으로 정하면 대상 업종이 제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품목별로 시장규모를 고려해 가중치를 부여하고 정성적 평가를 늘려 보완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동반성장위의 자의적 판단이 크게 작용할 게 틀림없다. 어디까지를 중기의 영역으로 봐야하는지 자체가 논쟁적인 사안인데 가이드라인까지 이처럼 모호하니 해당업종을 어떻게 가려내겠다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지원한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중기들만의 영역이라고 선을 긋고 게다가 이미 들어와 있는 대기업을 밀어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예컨대 치킨판매가 중기의 영역이라고 해서 BBQ 같은 업체를 내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런 사례는 커피 빵 의류 인형 등에서 무수히 존재한다. 품목별 영역구분 역시 마찬가지다. 반제품이냐 완제품이냐에 따라 시장규모가 다른데다 지금은 작은 시장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커진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는 이유다.
어느 기업이든 모두 중기에서부터 출발했다. 두부가 주력제품인 풀무원은 지난해 매출액이 4986억원이나 되는 어엿한 대기업이지만 1984년 출발 땐 자본금 3000만원에 직원이 10명뿐인 소기업이었다. 중기 적합업종은 이런 기업에 이제 컸으니 손을 떼라는 얘기밖에 안된다. 중기 지원대책이 정작 기업성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동태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을 정태적으로 구획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430토] 가계부채發 금융불안 가시화되나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데 반해 상환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가계부채발 금융불안이 가시화되는 게 아니냐를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부채는 937조원으로 전년보다 8.9% 늘었으며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도 같은 기간 146%에서 149%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한은은 앞으로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대출을 억제하거나 연장하지 않으면 가계부채 때문에 금융 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가계대출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위험수위에 다다르지 않았다는 진단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일정기간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내다 만기에 일시 상환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부동산담보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부동산경기가 호황일 때 대부분의 가계가 빚을 내 집을 산 뒤 일정기간 이자만 내다 집값이 오르면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고 시세차익도 챙기는 관행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대출행태는 경기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처럼 금리는 오르면서 부동산경기는 침체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가계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가 안고 있는 또 한가지 문제는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빚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와 저출산 등으로 고가주택 보유자들의 차입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9억원 초과 주택보유자의 소득 대비 대출금 비율은 360%에 달해 3억원 이하 주택보유자의 190%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 가계대출의 부실이 전방위로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갚을 능력이 떨어지면 결국 가계부채 부실화 가능성이 커져 금융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사태가 닥치기 전에 당국과 금융권 모두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득을 증대함으로써 상환능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꾸도록 하거나 저소득층의 고리대출을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대출로 전환하는 등 대출구조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일시상환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원리금을 동시에 갚는 방식으로 대출금상환 방식의 개선도 검토돼야 한다. 금융회사들은 경쟁적으로 가계대출을 늘릴 것이 아니라 가계대출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 내일/박영균(논설위원)-20110430토] 盧의 이정우, MB의 곽승준
요즘 기업 얘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화제다. MBC 수목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회사 소유권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인다. SBS 드라마 ‘마이더스’에서는 기업인 가족들이 대부분 불륜과 부도덕의 화신으로 나온다. 이런 드라마의 유행은 경제사정이 어려워지고 양극화가 심해진 것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 경제 실패 주범 찾기 식 개혁 무리수
김대중 정부 시절 빚 많은 대기업그룹들은 환란의 주범으로 몰려 구조조정과 개혁을 강요받았다. 외채를 지나치게 끌어다 쓰는 바람에 나라가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대주주들은 수년 동안 구조조정과 함께 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대주주 지분도 낮아졌으나 투자 여력은 바닥나 이후 한국경제가 난관에 봉착하는 한 원인이 됐다.
신용카드 위기와 집값 상승으로 힘들었던 노무현 정부도 재벌개혁을 부르짖었다. 대그룹의 총수 일가들은 3% 정도의 지분만 갖고도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니 소유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배경으로 앞장섰으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중도하차했다.
DJ 정부는 대주주 지분을 낮추라고 강요한 반면 노 정부는 지분이 너무 적다고 비판했다. 대주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그 와중에 경제는 뒷걸음질쳤다. 그 결과 세계경제의 호황 덕을 경쟁국에 비해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요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주장하는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의 말에도 대기업 책임론이 핵심을 이룬다. 청와대에서 노 정부 때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곽 위원장은 “대기업이 국민의 미래 먹을거리가 될 신수종 분야의 개발이나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미온적인 것이 합당한 것인지, 국가 전체적으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국내의 인재와 자원을 독차지하면서도 국가경제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주요 기업의 대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대주주라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게 맞다.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기업으로서도 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나쁠 것도 없다. 기업을 노리는 사냥꾼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는 데도 연금만 한 우호 지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과연 그럴 만한 자격을 갖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임명하는 공단 이사장이 정권의 이해보다 국민의 이익을 더 챙길지 의문이고, 연금 관리보다는 임직원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모럴 해저드가 걱정이다.
* 주주권 행사보다 연금 개혁이 먼저
국민연금공단의 기금 운용직에서 퇴직한 직원들은 상당수가 거래기관 임직원으로 재취업한다. 2006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기금운용직 퇴직자 46명 가운데 72%인 33명이 자산운용사 임원 등으로 재취업했다. 기금을 위탁 운용하던 거래기관 임원으로 재취업하는 것은 불투명한 유착 등 모럴 해저드를 초래할 수 있다. 연금공단이 투자한 기업에 퇴직자를 내려 보내는 것도 문제다. 투자가 퇴직 임직원들의 노후 보장까지 염두에 두고 결정된다면 투자의 엄격성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이런 행태가 대기업 경영행태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민들은 민간기업의 경영보다 국민연금의 건전한 운용에 더 관심이 많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추진은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않다. 이 정부 임기 내에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졸속으로 강행할 일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부작용을 줄일 대책을 마련하면서 연금 운용 측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인 뒤에 차근차근 검토할 일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송원섭(jTBC 편성기획팀장)-20110430토] 로열 웨딩
1776년, 재위 38년째를 맞은 조선 21대 왕 영조는 만 열 살인 세손(뒷날의 정조)의 혼사를 앞두고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조선조의 군왕이 살아서 세손빈을 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67년 세조가 열 살 난 손자 자을산군(뒷날의 성종)의 아내로 한명회의 딸을 맞아들인 이후 300여 년간 어떤 임금도 손자며느리를 보지 못했다.
이런 기쁨은 혼례일인 2월 2일 아침, 영조가 어린 왕세손 부부에게 내린 가르침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제 네가 초례를 치르니 400년 사직이 장차 의탁할 곳이 있게 되었다. 3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기쁜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하지만 영조는 국고를 열어 경사를 축하하지 않았다. 반대로 국혼 넉 달 전, 사치 풍조를 금하는 금사령(禁奢令)을 내렸다. 혼례에 쓰일 가마와 수레의 장식에 금 대신 주석을 쓰게 하고, 순금 패물도 도금 제품으로 바꾸게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검약을 강조하는 데 왕실이 본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반면 29일 엘리자베스 여왕이 재위 59년 만에 손자며느리를 맞은 영국 왕실은 약 1억 파운드(약 1800억원)가 투입된 초호화 결혼식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취재진만 8000여 명, 중계방송을 지켜본 전 세계 시청자만도 20억 명에 이른다.
영국 내에서도 지나친 사치라는 비판이 있었다. 경제도 어려운데 국민의 세금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일리가 있지만 이번 결혼식이야말로 ‘최고의 스타’ 윌리엄 왕세손을 앞세운 대대적인 홍보 이벤트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세손빈의 드레스를 디자인한 영국 디자이너 세라 버턴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비롯해 이번 결혼식의 경제 효과가 무려 17억 파운드(약 3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금사령 속에 진행된 국혼과 전 세계가 주목하는 화려한 로열 웨딩. 겉모습은 반대지만 왕가의 움직임은 어떤 것이든 국익을 위한 이벤트라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치러낸 영국 국왕 조지 5세는 아들에게 말한다. “이제 왕도 멋지게 말만 타면 다 되던 시대는 지났어. 국민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해.” 그런 면에서 나라를 위해 구경거리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영국 왕실이야말로 21세기형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철웅(논설실장)-20110430토] 반성의 조건
관우가 명의 화타에게 수술을 받는다. 전투 중 팔에 독화살을 맞은 관우의 상처가 깊어 살을 도려내고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해야 했다. 화타는 고통에 몸부림칠 것에 대비해 환자의 몸을 묶으려 했으나 관우는 괜찮다며 수술을 시킨다. 대신 관우는 측근 마량을 불러 바둑을 둔다. 화타의 이마엔 땀이 흘렀고 막사엔 낭자한 유혈 속에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관우는 태연히 바둑에 열중했다. 삼국지의 유명한 진중(陣中) 수술 장면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다. 마취도 없이 뼈를 깎는 수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타가 실제론 마비산(痲沸散)이란 마취제를 썼다는 말도 있다.
이 고사를 꺼낸 건 ‘뼈를 깎는 반성’이란 유래는 알 수 없되 유구한 세월 사용된 표현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다. 반성 앞에 거의 기계적으로 갖다붙이는 수식어가 ‘뼈를 깎는’이다. 여야 없이 정치인들이 이 표현을 즐겨 쓴다. 선거에서 지기만 하면 즉각 뼈를 깎겠다고 한다. 하도 많이 쓰다 보니 “그렇게 깎아댔으니 더 깎을 뼈도 안 남았겠다”는 말이 나왔지만 그것도 이젠 우스개 축에 못 낄 정도다. 지난 재·보선 후 한나라당에서 또다시 뼈 깎는 소리가 들린다. 대변인의 일성이 “뼈를 깎는 각오로 국민의 뜻을…”이다. 한 여성의원은 “창조적 파괴만이 답”이란 글을 올렸다. 재창당이란 말도 했다. 이렇게 반성과 쇄신 다짐의 새 버전도 나오지만 본질은 진부한 ‘뼈를 깎는 반성’ 그대로다. 왠가.
말로만 뼈를 깎기 때문이다. 말이 그렇지, 뼈를 깎는 수술은 화타가 환생해도 매우 어려운, 무지하게 아픈 수술이다. 관건은 뼈를 깎는다는 식의 레토릭, 수사가 아니라 행동, 즉 정치행위·정책·이념의 전환이다. 그것이 정치적 반성의 절대적 조건이다. 화장을 고치는 것 정도로는 진정한 반성이 될 수 없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침통해하는 모습의 한나라당 지도부를 보면 적이 궁금해진다. 그들은 뭘 고뇌하나. 날아간 지역구인가, 의석 수인가, 살길 찾기의 묘수인가.
화타는 요새로 치면 유능한 외과의사였다. 한나라당이 필요한 건 무슨 체질 개선 같은 내과적 치료가 아니라 과감한 외과 수술이라고 본다. 환부를 찾아 외과적 수술로 도려내기다. 그것 없이 반성이니, 쇄신이니, 거듭나는 계기 운운하는 것은 다 사기로 판명났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송시영(연세대 의과대학 내과교수)-20110430토] 환자와 의사의 신뢰
완치의 기쁨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 원망이 남은 곳.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그곳은 병원이다. 이곳에는 환자와 의사의 만남이 있다. 환자에 따라 의사에 대한 기본 감정은 다양하다. 전적인 신뢰를, 혹시나 하는 의구심을, 철저한 적개심을 갖기도 한다. 그럼 의료진은 어떤 생각으로 환자를 대하고 있을까.
며칠 전 젊은 여제자가 당일 검사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자가 던진 집기에 이마를 다쳐 꿰맸다. 앞으로 긴 의사 생활을 하면서 이 젊은 의사 가슴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폭력은 아니더라도 수많은 갈등이 의료현장에 상존하고 있다. 비록 만남이 생사 여부를 조건으로 한 계약관계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이 속에는 분명 풀어야 할 감정의 얽힌 실타래가 있다.
말기 암 환자와의 만남. 항암치료로 고통받는 것보다 치료 없이 편안히 지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가족들은 난감할 뿐이다.
A의사, "5년 생존율 3%입니다. 전이가 있는 현 상태에서 가망은 없습니다. 항암치료로 크기가 줄어들 확률은 20%이며, 크기 감소와 생명 연장 효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환자가 20%에 속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B의사, "현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라도 항암치료가 널리 시행되는 이유는 나름대로 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족들도 힘을 내어 환자에게 희망을 주면서 한 번 해봅시다". 두 표현 모두 정확히 맞는 말이다.
전자는 교과서적인 명확한 지표와 함께 방어적 측면을, 후자는 감성에 따른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환자와 가족들은 어떤 의사를 더 신뢰하고 좋아할까. 분명한 것은 환자 선택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어쩌면 A의사는 과거에 B의사와 같이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견디기 힘든 항의를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의학은 자연과학이지만, 의술은 인문과학이다.
3분 진료 현장에서 오류를 피하기 위해 결과 확인과 처방에 온 정신을 빼앗기며 환자 눈이 아닌 모니터만 쳐다보는 현실 속에서 실타래가 더욱 엉키게 될까 걱정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혼신을 다한 공연 속에서 관객과의 호흡을 통한 즐거움만이 배우의 보람인 것처럼, 몸이 녹초가 되고 근심 가득해도 환자의 호전에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의사란 직업을 이미 버렸을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