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케이블 타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4월 초 어느 날이다.
10여 년 전에 신축한 강원도 고성 집에 갈 예정이라며 하루 전에 미리 오라는 아들의 부탁이다.
다음날 새벽, 희붐한 강원도행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고성에 가자고 할 때부터 홍천에 사는 언니가 아롱거렸다.
그랬는데 홍천휴게소에 들리는 게 아닌가.
할까 말까 망설이던 한 마디 “민아, 큰이모 모시고 가면 안 될까?”
“아 그럴까요... ” 돌아올 때 들리려고 생각했다며 변함없이 예쁜 말을 잘하는 아들이다.
부랴부랴 따르릉~ 묵묵부답~ 조카와 언니에게 번갈아 다이얼을 돌린다.
조급증에 다시 또 따르릉~ 드디어 “이모?~”사연을 들을 새도 없이
대뜸 “빨리 엄마 외출 준비해줘 여기 홍천휴게소야”
잠시 후, 연푸른 초록의 아담한 전원주택이다. 어리둥절 “이모야, 무슨 일이고?”
조카는 교육공무원 퇴직 후 전원생활을 위해 3년 전에 이주했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손풍금 연습 중이었다.
번갯불에 콩 뽁 듯한 동행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일박이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왜 이리 오래 사노?' 입버릇처럼 되뇌던 언니에게 오늘의 일정을 줄줄이 읊는다.
몇달 전부터 노친원(주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던 시드럭부드럭한 언니에겐
무조건 싱글벙글 초청이 되어 무조건 오케이!
언젠가 설악케이블 설치 소식을 들을 때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오늘이 그날이 된 것이다.
벚꽃길이지만 꽃 피울 준비를 하는 몽우리만 반길 뿐이다. 이상기온 탓이란다.
어느새 주차장이 만원이라 통과시키는 안내원 지시는 오히려 케이블 요금소가 가까워 다행이었다.
바글바글 인산인해를 이룬 케이블 매표소다.
10.25분발 케이블에 오르니
겨울에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허리를 감싸 안긴 설악산이 한 아름에 안겨 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끝없는 계단. 어쩔까??
망설일 새도 없이 92세 언니의 팔을 아들이 이끈다.
순순히 발걸음 떼는 언니를 따라 한 걸음씩 오르다 보니 어느새 300여 계단에 올랐다.
사진을 찍는 인파들 틈에 증명사진은 필수다.
히말리야 등정을 한 어느 노스님께 어떻게 오셨어요?
질문에 한 걸음씩 왔지요 라고 대답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분의 말씀이 내 말이 되었다.
정상에 오르니 가벼운 눈발이 휘날린다,
게다가 산바람이 얼마나 드세던지.
후유~ 숨 한 번 들이키고 주위를 둘러보니 눈이 소복이 쌓인 설경이 새삼 경이롭다.
서둘러 내려오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니 잠시 후 날씨도 우릴 돕는 듯 비가 그친다.
다음 코스다. 풍덩~ 온천탕 여기저기 기웃기웃 욕탕 쇼핑을 마친 후 맛집을 향한다.
싱글벙글 “아~ 꿈같은 시간을 보냈네, 민아~ 너 덕에 내가 거듭난 것 같애”
평지도 이렇게 많이 걷지 않은 내가 높은 산을 올랐다며
뜬금없는 산행에 감동하시는 언니의 말에 새콤달달한 시간을 안겨준 아들이 얼마나 고맙던지.
잠시 휴식을 한 후
고성팔경 중 4경인 청간정도 올라 짙푸른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마음평수를 넓히고
생대구탕 맛집도 들리니 어느새 알찬 하루해가 저문다.
반짝이는 무수한 별을 보라며 손을 이끈 손녀 생각이 나
살금살금~ 총총 밤하늘의 별 마중도 하였다.(손녀는 미국 시카고 대학의 교환학생으로 재학 중)
뒷날 아침이다.
언니의 체력이 여전해 얼마나 감사한지.
울산바위가 펼쳐지는 앞마당에서 청정 쑥 캐는 할미 모습도 찰칵 이래저래 행복한 시간은 계속된다.
그런데 황사비를 뒤집어쓴 자동차는 도저히 그대로 운행할 수 없을 지경이다.
쏴아~ 말끔하게 세차를 마치고,
송호강변 드라이브 후 한옥 50호가 모여있는 왕곡마을의 오봉교회에서
부활절기념 중창으로 특순하는 아들 사진도 찰칵. (한 달에 두세 번 출석하는)
2015년 1월호 ‘행복이 가득한 집’에 게재된 오우가에서의 달보드레한 추억이여.
돌아와 아들에게 감사의 카톡을 보낸다.
‘이모와 우리에게 너무 큰 선물이 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줘 고마워**!’
딩동~ 감동의 답글을 읽다가 부리나케 가족밴드에도 황홀했던 일박이일 여행 후기를 올린다.